사소한 변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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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 보면 내 심장이 뛰어...”

어느 드라마나 영화, 혹은 소설에서 흔히 보이던 로맨스였다. 누군가의 심장을 이식받은 여자(남자)가 어느 이성을 보고 갑자기 심장이 뛴다는 설정. 알고 보니 그 이성은 이식받은 심장의 원래 주인과 상당한 인연을 맺고 있었다는 것. 사실 그런 설정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를 보면서도, 어쩌면 과학적으로 증명하지 못한다고 해도, 살아가면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인간이라는 게 참 신비한 존재이기도 하니까. 누군가의 심장이 내 몸 안으로 들어와 그 사람이 살아있을 때와 같은 감각을 느끼고 성향을 지니는 일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가정이 성립되기도 할 것 같다. 하지만 그게 심장이었을 때 이야기다. 하트 모양을 닮았다는 심장이 사랑을 바탕으로 일어나는 일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우리 머릿속의 뇌를 이식해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까? 누군가와 마주쳤을 때 어디선가 본 것 같고, 기억이 날 것 같은 이상한 느낌말이다.

 

청년 나루세는 어느 날 부동산에 갔다가 강도에게 총을 맞는다. 사경을 헤매다 깨어난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그는 자기가 살아있음에 놀라워한다. 머리에 총을 맞고 살아난 사람이 과연 있을까? 알고 보니 그는 의료진에 의해 뇌의 일부분을 이식받았다. 공여자가 누구인지 알 수는 없다. 그가 총상으로 잃은 뇌의 일부분을 공여자의 뇌에서 꺼내와 이식받은 것만 안다. 사경을 헤매다 살아났고, 잃어버린 뇌의 일부분도 채워졌다. 그는 사고가 나기 전의 상태와 똑같아졌다. 이제 몸을 추스르고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면 된다.

 

생각해본 적이 없다. 뇌를 이식한다? 신체의 다른 부분도 아니고 뇌가 이식 가능한 대상이었던가? 의료나 과학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없어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만, 뇌는 인간의 심장보다 더 어려운 존재라고 생각했다. 작은 시경 하나도 건드리는 게 어려워서 웬만한 뇌수술은 피해 가는 진단이 내려지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런 뇌의 일부분을 이식받은 환자는 어떻게 될까? 나루세의 몸은 전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조금씩 그의 감정적인 부분이 변화한다. 좋아하던 그림은 점점 멀리한다. 연인 메구미의 품에서도 안정되지 못한다. 소심하다고 할 정도로 차분했던 그의 성격은 점점 하는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폭력적으로 된다. 그리고 천재적인 음감을 나타낸다. 피아노 근처에도 가본 적 없던 그가 피아노의 조율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음감에 뛰어나다.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일에도 주저하지 않고 말한다. 타인과의 융화가 아니라, 자기 자신만의 기준으로 세상과 사람을 보면서 자꾸만 어긋난다. 자꾸만 과거의 자기 모습을 잃어가는 나루세는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하루하루 변하는 자기 모습을 기록한다. 오늘은 어제와 얼마나 달라졌는지, 내일 다시 이 일기를 보면 또 무엇이 달라져 있을지 두렵다.

 

이상하다. 수술 이후로 전에 없던 성향이 나타나는 자기 몸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 없을 거다. 자기 자신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지기까지 하니, 이건 사회에 해를 끼치는 괴물을 격리하거나 사살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것과 같다. 그런 변화를 누구보다 자기가 더 잘 알게 되니 두려움을 점점 커질 수밖에.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뇌의 이식은 앞으로의 인생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칠까? 이대로 변하는 것을 받아들여도 괜찮은 걸까?

 

소설의 중간에 등장하는 기록들은 이 소설을 더 궁금해하고 빠져들게 한다. 아직 다 드러나지 못한 기록의 실체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파헤쳐보고 싶어진다. 그만큼 페이지가 빨리 넘어가서 결말에 다다르기도 한다. 작가의 인터뷰에서 이 소설의 플롯이 거의 15분 만에 완성되었다는 걸 듣고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읽히는 이유가 이해되기도 했다. 그만큼 작가 자신도 15분 만에 완성된 플롯에 푹 빠져서 미친 듯이 소설을 완성했으리라는 예상 때문이다. 그러면서 평소에도 가끔 궁금했던 그 질문을 떠올린다.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심장일까, 뇌일까. 감정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일에는 심장이 주관하겠지만,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일에는 뇌가 주관하는 일일 텐데, 인간의 일상과 세상이 어떻게 그 둘 중의 하나로만 판단하면서 나아갈 수 있겠는가. 그래서 가슴과 뇌는 하나인 것처럼 세트로 묶여 인간사를 주관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이 소설에서 마주하는 나루세의 변화는 인간이 추구하는 완벽함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묻고 싶게 만들기도 한다. 인간의 부족한 부분, 결여된 부분을 채워 넣는 일이 필요한 일인지, 그렇게 채워 넣고 만족할 수 있는지를. 인간이 살면서 한 번쯤 마주치는 죽음이란 순간을 받아들이는 건 어떤 결정에 의해서일까 계속 묻게 된다. 정말로 뇌 이식이 가능해진다면, 나는 나의 뇌가 온전하지 못할 때 이식을 선택할 수 있을까? 타인의 뇌가 일부분이라도 내 안으로 들어온다면, 그때부터 살아가는 나는 진짜 나일까 아닐까? 나루세에게 이식된 뇌는 극히 적은 부분이었다. 총상으로 소실된 뇌의 한 부분을 이식한 것뿐인데, 수술 이후의 나루세는 점점 원래의 자기 모습을 잃어간다. 이식된 뇌의 주인에게 지배당한다. 그럼 나루세는 이제 나루세가 아닌 게 되는 건가?

 

"당신은 몰라. 뇌를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 지껄이는 당신은 말이야. 뇌는 특별한 거야. 당신이 상상이나 할 수 있어? 오늘의 나와 어제의 내가 달라. 내일 눈을 뜨면 거기 있는 건 오늘의 내가 아니지. 먼 과거의 추억은 전혀 다른 사람 것이 되고 말지. 그렇게밖에 느껴지지 않아. 오랜 시간을 들여 남겨온 것들이 모두 사라져버려. 그게 어떤 건지 아나? 가르쳐줄까? 그건……" 나는 도겐의 코 바로 앞에 검지를 들이댔다. "그건 죽음이야. 살이 있다는 건 그저 숨이나 쉬고 심장이 뛰는 게 아니야. 뇌파가 나온다고 살아 있는 게 아니라고. 산다는 건 발자국을 남기는 거지. 뒤에 남은 발자국을 보며 저건 분명히 내가 낸 거라고 알 수 있어야 살아 있는 거야. 하지만 지금 나는 예전에 남긴 발자국을 봐도 내 것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 이십 년 이상 살아온 나루세 준이치는 이제 어디에도 없다고." (270페이지)

 

범인을 찾아야 하는 추리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인간의 모습과 변화, 도덕과 윤리적인 문제와 상충하는 의료의 연구는 어디서 그 중심을 잡아야 하는지 고민하게 한다. 사소한 부분의 더하기 빼기로 이루어진 일의 결과는 절대 사소하지 않았다. 한 사람의 인생을 쥐고 흔들며, 나아가 세상의 선과 악을 논하는 사고의 존재로 남게 되었다. 내가 나로 살아가는데 무엇이 우선되어야 하는지 묻게 하는 소설이다. 신체의 부족한 부분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하는지, 그 부족한 부분을 타인의 것으로라도 채워 넣어서 원래의 모습으로 만들어 살아가야 하는지. 그렇게 만들어진 나는, 나일까 아닐까.

 

솔직히 지금이야 이런 설정이 그럴 수도 있는 일 중의 하나로 여길 수도 있지만, 작가가 이 작품을 거의 이십 년쯤 전에 썼다고 하니 아마 그때 이 소설을 마주했다면 굉장히 놀랍고 신선한 작품으로 기억할 것이다. (사실 출간 때 읽었는데 기억이 안 나서 잠깐 헤매기도 했음. ㅠㅠ) 다양한 소재와 시도로 언제나 독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작가로 기억될 것 같아서 이 작가의 작품을 계속 찾아서 읽게 된다. 요즘 나오는 작품들은 개정판이 많지만, 영화가 리메이크되면서 지금 세대가 몰랐던 이야기를 다시 전하는 것처럼 소설도 마찬가지일 거로 생각한다. 십 년을 훌쩍 넘어 다시 태어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이 요즘의 독자에게도 사랑받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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