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노예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09
미셸 오스트 지음, 이재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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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공쿠르상 수상작입니다. 과연 듣던 대로 미셸 오스트의 개성과 깊이가 물씬 묻어나는, 페이지를 쉬이 넘기기가 삼가지는, 축축하면서도 속이 꽉 찬 내러티브네요. 이름만 보고 착각을 하시는 분들도 있던데, 이분은 이 작품을 쓸 때 44세였고, 지금은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할아버지입니다. 최근에는 작품 활동이 뜸해진 걸로 압니다.


내용은 다들 아시는 대로입니다. 주인공은 자신도 여러 차례 강조하듯, 유한 계급 출신의 사실상 기생 생활자입니다. 스 스로에 대해 확신이 결여되었고, 가족과 친지들과의 관계도 원만치 못합니다. 비전도 희망도 먼 과거에 버려둔지 오래이며, 다만 자신이 보유한 다양한 종류의 결핍에 대한 모호한 보상심리, 혹은 모친과의 껄끄러운 관계에 대한 일종의 타협안으로, 폴라라는 여인(시를 쓴다고는 하나 재능도 충분치 않고 대외적으로 확고히 인정 받은 직업이 못 됩니다)과 교제하는 게 유일한 타인과의 소통 창구입니다. 거리의 지나가는 여인들을 두고, 마치 자신의 의지가 작용이라도 해서 거리가 멀어지는 양 자발적 착각을 통해 모종의 쾌감을 느낄 만큼, 염세적이고 퇴행적인 자아의 소유자죠.


주인공은 유년기의 교육, 정서의 건전한 발달, 성취감정, 자아통합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장애성 결핍에 시달리는 유형이지만, 이에는 중요한 세 가지 원인이 작용한 바 있습니다. 1) 부친 상실(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처음엔요) 2) 모친으로부터의 애정 거부 경험 3) 별 가치 없는 불장난으로서 맞이한 첫사랑의 (그나마) 좌절, 이 세 가지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트라우마로 작용하는 듯합니다. 자기중심적인 말투만 들어서 청소년이나 미숙한 청년 정도인가 했으나, 어느 자리에서건 경칭을 들을 만한 장년의 나이입니다. 외부에서 보아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인생이며, 다행인 것은 그 자신도 이걸 잘 안다는 점입니다.


그가 아버지의 소식을 알고, 상봉을 원한 건 딱히 현실 타개의 의욕이 있어서는 아닙니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찾듯, 모든 문제가 거기서부터 잘못되었겠거니 하는 막연한 치유 욕구에서이죠. 주인공의 자아는 그만큼 병든 상태이며, 우리 독자는 이런 매력 없는 캐릭터로부터 멀찌감치 거리를 유지하게 됩니다. 동정할 건 없습니다. 그도 그걸 원할 테니까요. 아무튼 이 점에서, 저는 역자의 이른바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 그리고 미궁에의 유비"에는 격하게 반대하는 편입니다(역자 후기 참조). 테세우스는 이 필립과 정반대의 스탠스라고 봐야죠. 신화에서의 그 demigod는, 고귀한 출생이었으나 나면서부터 그 모든 세속의 혜택을 상실했고, 모든 것을 회복하는 그 순간 죽음으로부터의 도전장을 받았으며, 자신의 존재 증명을 위해 가망없는 모험에 모든 것을 건 말 그대로의 영웅이었습니다. 반면 필립은 뭡니까. 길게 이야기할 것도 없이 테세우스의 사항별 대척형이라고 봐도 되죠. 그가 아버지를 찾아 떠난 건 자아의 환골 탈태나 주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한 게 아니라, 그저 찌질하게 응석을 부리고 싶은 이유밖에 없었습니다. 부친을 찾아 떠나는 여행도 그 가망이 없었던 게, 이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 형성에 원초적 장애가 있는 유형이니까요. 대상이 친부라고 해서 결과가 크게 다르지도 않았을 테며 그 결말도 과연, 끝까지 읽은 우리가 아는 대로입니다.


과연 이 소설에서 폴라의 역할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리아드네는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영웅 테세우스의 자아 완결, 세상의 구원 오디세이에 동참한 순교자였습니다. 저는 이 소설에서 폴라가 맡은 역할은, 유혹적이지도 않으면서 안온한 중독으로 사람을 꾀어서는, 결국 극한의 회의와 환멸을 부르는 현실 절충적 키르케에 가깝다고 봅니다. 아니, 필립에게는 오뒷세우스를 억류했던 바로 그 고혹적 마녀로 다가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마치 키하나 노인의 눈에 푸줏간 딸 둘시네아가 공주처럼 보였듯이요. 가망 없는 난관을 타개하게 도와주는 마돈나는커녕, 그나마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던 낙오자의 삶에 최종의 관 뚜껑을 덮어 못질해 주는 악질의 마녀라고나 해야 합당하겠습니다.


아무런 생기도 존재 이유도 없는 잉여의 인생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다시 말해 소설의 주인공 필립은 과연 뭘 상징하고 있는 걸까요? 저는 2차 대전 이후 자존감의 근원, 재생의 활기, 하다못해 유구한 역사의 상속자로서의 긍지, 이 모든 걸 상실한 프랑스 자체라고 봅니다. 이런 소설에 왜 그토록 자주, "게르만"에 대한 적대감이 등장하며, 또 "유태인"이라는 민감한 코드와 "배경"이 자주 제시되어야 했던 걸까요? 제가 생각하는 답은, 2차 대전 이후 외부의 도움을 받아 침략자의 점령으로부터 벗어나긴 했으나, "위대한 조국"의 이상상에 걸맞는 정체감을 여전히 회복 못 하고 표류하는, 프랑스 자체를 표상하는 캐릭터가 바로 이 필립이라고 봅니다. 소설에서 우울한 나르시즘의 보조관념으로 자주 쓰이는 여성화된 도시 파리의 무게가 바로 그 예증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이 Grand Nation의 심장 노릇을 했던 그 고색창연한 수도, 그 사소한 풍경이나 개성 하나도 거주자, 시민, 국민인 그(필립보다는 차라리 작가 오스트라고 하겠습니다. 이 소설에서 화자는 분명 "나", 즉 필립이지만, 그 자학적이고 음울한 말투는 제 3의 전지적 존재로부터 일종의 필터링을 거치는 듯만 합니다)의 눈에 허투루 지나칠 수 없습니다. 파리가 당하는 굴욕은 프랑스의 굴욕이고, 그녀의 조신하지 못한 거동은 곧 육각형 조국이 내비치는 부정함입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짙은 우수와 비관으로 묘사되는 파리의 정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만, 바로 그 점 역시 작품의 전 설정이 프랑스 역사의 대유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부분이기도 하죠. 본디 프랑스어에서 valet은, "노예"같은 강한 뜻이 아닙니다(호텔 등에서의 "발렛 파킹"이 뭐라고 생각하세요?).그저 "시종"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이 작품에서는, 말 그대로 "노예"의 의미가 실감납니다. "밤la nuit"이란 무엇인가. 치욕과 모멸을 원인으로 한 자폐의 대유겠죠.


현실이 못마땅하고, 먹고 살 만한 여유는 있으나 왠지 수치심이 느껴집니다. 살아 있다는 느낌이 없고, 바로 응보의 파멸이 자신의 운명을 방문할 것만 같은 불안을 못 떨칩니다. 내가 지금은 이처럼 초라한 존재지만, 나의 부친은 멋지고 존경 받을 만한 위인이 아니었을까? 못난 후손은 과거의 (가상적) 영광에 기대며 힘들고 지친 자아을 지탱합니다. 그냥 그대로 덮어도 좋은데, 현실이 못 견딜 만큼 괴로운지라 막판에 몰린 선택을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 안 보느니만도 못한 환멸입니다. 나의 근원, 나의 과거 역시, 현재의 자아와 하나 다를 바 없이 초라하고 추악했습니다. 폴라의 부친은 파티 석상에서, 서로 속이고 불신하는 모세와 아브라함의 농담을 들려 주죠. 폴라의 부친이 필립에게 들려 주는 그 자랑스러운 (부친의)무용담에는, 이미 사기와 과장의 복선이 깔려 있었던 겁니다. 그는 말 중에 이런 의미심장한 한 자락을 깔아 둡니다. "저항도 좋지만,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 지나 정확히 알고 살았어야 했는데,..." 레지스탕스의 신화는, 샤를 에바리스테라는 거창한 이름(수학자 갈로아의 이름에서 땄다고 하죠?)을 단 아버지의 그 처참한 몰골에서 역력히 붕괴하고 맙니다. 레지스탕스는 무슨. 처음부터 우세한 전력과 부(富)를 두고 마지노선에서 패퇴하질 말았어야죠. 이 엉큼한 유태인 족속들은, 그 모든 사정을 알고도 더 참담한 침잠을 유발하느라고, 가증스런 극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었던 거죠. 물론 유태인을 그리 노골적으로 악하게 묘사하면 "법"에 걸리므로, 그 정도로 돌리고 또 돌려 말합니다.


오스트의 문장은 파리 최고의 멋쟁이가 부리는 세련의 극치요, 동시에 데카당스의 퇴폐 그 극한입니다. p192의 "주름살이 여자를 절단하듯 물결은 도시의 동체를 절단한다." 같은 걸 보세요. 대단히 감각적인 표현이죠. 일단 저 문장의 전단에서, 여자를 "절단"하는 게 주름살이란 언사에 정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남자의 경우,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룬 신분의 남자의 얼굴에 설득력있게 이리 저리 획을 그은 주름살이란 정말 멋져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성의 주름살은, 가장 화사한 미소를 지을 때 눈가, 입가에 살짝 생기는 것만으로도 보는 이에게 연민과 비애(최소한 그렇다는 겁니다. 대부분은 불쾌감과 역겨움을 자아낼 때도 있습니다)를 유발합니다. 그 타당성은 그렇다치고, 후단의 "도시 동체 절단" 운운은 뭘까요? 원문을 찾아 보지는 않았으나, 여기서의 물결이란 도시에 생명력을 공급하는 강줄기가 아니라, 마치 채만식의 맥락에서 그 "탁류" 같은 걸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바로 그 뒤에 작가의 의도가 더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심상 간의 비례식이 확실히 완성되죠.

이처럼 문장이란, 단지 기계적 의미를 전달함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로 인해 파생되는 무수한 심상의 연속이요, 나아가 자아와 세계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도구이며, 어쩌면 문학의 본체적 요소일지도 모릅니다. 어리석고 둔한 머리에서 생산되는 그 생각이 짧으면 말도 덩달아 짧을수밖에 없고, 말이 짧다고 해서 허위와 군더더기가 없는 정신의 건강성을 보증하는 건 전혀 아니라고 봐야 겠죠. 이를 간결한 표현으로 절제된 의지와 정갈한 상념을 전달하는 양 호도, 위장하는 것은 오히려 (예컨대 헤밍웨이 같은) 간결체를 즐겨 구사한 대문호를 모독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미셸 오스트의 예에서, 산문이 시가 되고, 화사한 문장이 깊이 있는 사색으로 전화하는 좋은 예를 얼마든지 볼 수 있어요. 어리석고 열등감에 가득찬 낙오의 인생은, 극히 제한된 자신만의 오타쿠적 미니어처 밀실에서 세상이 시작하고 끝나는 줄 알지만, 아니 우기는 중이지만, 그런 자에게도 잔혹한 각성의 순간은 찾아 오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펜을 향하고 펜을 통하여 우주를 제한된 수단으로 포착하려는 문필에의 꿈을 그 하찮은 정신으로도 꿈꾼 적이야 있겠으나, 이에 성공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냉연한 현실에서 문득문득 마무치는 자신의 모습이란,  밀가루푸대마냥 밋밋하고 초점 없이 흔해빠진 그 얼굴만큼이나 가망 없이 역력한 시궁창임을 확인할 뿐이겠죠. 풋.

p238 핑크 플로이드의 "디 아더 사이드 오브 더 문" 언급은 시대상의 반영이고, 동시에 청각 매체를 동원할 수 없는 소설의 한계상 우리가 최대한 협조하며 떠올려야 할 미장센입니다. 소설의 분위기가 잘 감이 안 잡히는 분은, 이 곡을 듣고 책을 다시 읽어 보세요. 오스트와 바로 페친 먹고 싶으실 겁니다(이 할아버지는 아마 SNS를 안 하시겠습니다만).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리고요? 차라리 "병태와 영자"라고 하시는 게 어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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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을 사로잡는 Why 마케팅 - 감성시대에 요구되는 마케팅 트렌드
조기선 지음 / 타래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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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마케팅에 주제가 한정된 것 같지만, 내용을 통독해 보니 이 급변하는 세상이 어떤 방향과 패턴으로 그 구조를 형성해 가고 있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안목을 길러 주는 책이었습니다. 특히 한국의 다양한 소창업자(자영업), 중소 기업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어서 비즈니스 현장의 실감을 얻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례를 책 한 권에 담을 수 있었던 건, 저자 조기선 씨가 실제로 비즈니스 스큘, 혹은 소규모 모임을 운영하고 있으므로, 자신이 관리하는 회원들의 모범 케이스를 고스란히 소개할 수 있는 입장이기 때문이죠. 두껍지도 않은 책에서 생생한 정보를 이만큼이나 많이 얻을 수 있는 점은 우리 독자로선 고마울 뿐이구요.


일단 주제부터 좀 짚어 보겠습니다. WHY 마케팅이란 무엇인가? 저개발의 질곡에 신음하는 나라라면 몰라도, 한국처럼 산업과 환경이 고루 잘 발달한 나라라면, 어떤 생산자나 판매자가 독점적 위치(과점이라면 모르겠지만)를 갖고 시장 지배적 위치를 제 홀로 누릴 수는 없다는 겁니다. 내가 만드는 건(특허, 실용신안 등의 법제적 제약, 혹은 권리가 따르지 않는 한) 남도 만들 수가 있고, 결국 commodity로 떨어져서 레드 오션이 되기 쉽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고, 또 익히 알려진 상식입니다. 내 제품은 이런저런 점이 좋다? 남도 얼마 후면 그 좋은 점을 다 따라합니다. 그러면 결국 개성과 장점이 사라지게 되죠. 또, 내 제품은 이 인근에서 가장 가격이 싸다? 이거 아무 소용 없습니다. 요즘처럼 정보가 흔하고 생존 경쟁이 치열한 시대에, 가격 인하 요인은 결국 경쟁자도 다 배우고 따라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 제품과 서비스가 최고의 질, 혹은 양(가격)을 자랑합니다!" 이게 바로 구시대의 마케팅 개념이라는 말입니다. 내가 파는 그 무엇(what)을 내세우는 마케팅이 아니라, "여기도 저기도 당신의 상품, 서비스에 못지 않은 우수한 것들이 널려 있는데, 왜(why) 그 경쟁자들을 젖혀 두고 당신에게서 그것을 구매해야 하는가? "를 소비자, 고객에게 납득시키는 쪽으로 발상부터가 전환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게 바로 저자가 말하는 why 마케팅입니다.


이 책을 읽은 분이면 누구나 흥미롭게 보셨겠습니다만, p75에 보면 와인 POP가 나와 있습니다(위사진 오른쪽). 와인의 품질과 가격을 어필하는 문구가 아닙니다. 그 숱한 명품 와인, 혹은 이름 있는 사업자를 다 마다하고, 왜 우리(그들)에게서 이 와인을 구매해야 하는지를 잘 소개해주는 좋은 예입니다(국내에서는 저 브랜드가 상당히 명품인 걸로 인식들 합니다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참고로, 저사진 보시면 "방싱 질탕"이라는 이상한 표기가 있습니다. 밑에 나온 대로 뱅상 지르라댕이 정확합니다). 저자는 여기서, what이 아닌 why를 파는 아주 전형적인 마케팅의 사례를 보여줍니다. 이 사례가 실린 제 2장의 제목은 what이 아닌 why를 팔다인데요, 책 제목과도 거의 문구 일치를 보이는 이 챕터는, 이 책 내용의 핵심을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시간이 없는 분들은 이 2장만 읽어도 내용의 핵심을 알 수 있습니다. 10회 주문하면 서비스 1회를 제공하는 치킨집, 이거 너무 식상합니다(이 혜택을 제공하지 않는 업소는 없습니다). 이 책에 소개된 업소는, 단골 고객에게 부정기적으로(꼭 10회, 20회 등의 순번이 아니라도) 꽃과 카드를 제공한다거나, 친절한 배달 서비스로 "치킨 외의" 감동을 선사하는 시도를 합니다. "왜 당신네 가게에서 닭을 사먹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주문하는 나를 "차별화"하여 바라보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러면 나도 그 가게의 서비스를 "특별히 알아 주면서" 애용하게 되죠. <어린 왕자>의 그 유명한 문장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이 장에는 이 사례 말고도, 요즘처럼 일반 빵가게 죽어나는 프랜차이즈 제과점의 홍수 시대에, 안산 신도시에서 꿋꿋하게 지방 최고의 명소로 자리잡은 제과점의 이야기도 소개됩니다. 이 제과점의 "고객 우선, 감성 전달"의 마케팅은 그것만으로도 주목할 만하지만, 더 놀라운 건 제과점 내에서 직원을 교육하고 다루는 방식, 나아가 "기업(규모가 작아도 기업은 기업입니다)"을 경영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일반 자영업자들이 크게 반성하고 참조할 점을 시사하고 있었다는 건데요. 이 사항은 리뷰의 좀 뒷부분에서 논급하겠습니다.


사실 책의 주제와는 좀 무관한 부분이긴 합니다만, 안산 제과점의 경우는 마케팅 개념의 혁신에만 장점이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주제와는 다소 상반되는 느낌마저 듭니다만, 이 제과점의 경우 WHY에만 초점을 둔 게 아니라, WHAT에도 분명히 방점을 찍고 있는 셈입니다. 그 증거로 1)빵은 아침에만 굽는다는 고정 관념을 깨고, 현실적으로 한국 직장인들이 빵을 사가는 오후에 맞춰 구워 낸다(빵이 일용식인 서양에서나 맞는 관습이었죠. 저도 이 생각은 언제나 들었습니다) 2) 쿠폰제를 적극 활용하여 재방문을 유도한다(이는 WHY 마케팅 요소와 직접 연관이 있습니다. 기존 고객의 중시라는 대원칙에도 부합하고요) 3) 입자가 더 고운 빵가루를 사용하여, 결과적으로 더 우수한 품질의 빵을 제조해 낸다(전형적인 WHAT요소입니다). 다 시 말씀 드리지만, 책의 컨셉과는 안 맞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책의 구조미를 따지는 일이 아니죠, 죽느냐 사느냐 하는 비즈니스판에서, 같은 책에서라도 뭐 하나 유용한 정보를 더 건지면 그게 남는 장사입니다. 좋은 정보가 많아서 독자는 그저 고맙네요.


요즘 어쩌다 전철을 이용하면, "이런 사람들도 이처럼 대규모 광고를 론칭하나 싶게, 창의적이고 재기발랄한 자영업자들의 PR 실례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구체적 거명은 하지 않겠습니다만). 그런데 이 책에서도, 그런 광고의 컨셉과 거의 일치하는 좋은 예를, p94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정서와 감성에 호소하는 새로운 트렌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올해 초에 필립 코틀러의 신작을 읽고, SCR(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그의 주장에 깊이 공명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SCR이라는 게, 다른 관점에서 보면 결국 "왜 우리 기업에서 물건과 서비스를 사셔야 하"는지, 그 이유를 납득시켜 주는 하나의 방편입니다. 이게 꼭 사회학이나 윤리학의 이슈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당신네 기업은, 내가 지속적으로 상품을 구매해야 할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당신 기업의 고객인 이유이다. 이게 바로 이 책 저자의 주장이기도 합니다. SCR의 존재기반이 참 여러 차원에서 마련되는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이 책의 본체적 컨텐츠는 1장과 2장에 있습니다. 1장은 사회의 거대한 트렌드에 대한 개관입니다. 마케팅에 아무 관심이 없더라도, 이 1장은 일독의 가치가 있습니다. 경영이라기보다는 인문의 비전을 던져 주는 바 있습니다. 혹시, 여기저기서 들어 본 이야기의 반복이다 같은 반응을 보이는 분에게라면, "세상을 좀 긍정의 시선으로 보라."는 한 마디를 던지고 싶네요. 저는 아주 유익하게 읽었거든요. 2장은 다양한 사례(어떤 건 일본의 익잼플이 아닐까 싶지만, 대체로 저자가 직접 보고 겪은 국내의 사례들입니다)가 실려 있어, 페이지가 술술 넘어갑니다. 구경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특이한 점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좀 다른 주제까지 다루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3장의 제목은 One&Only 회사를 만들다. 4장의 제목은 비즈니스가 요구하는 능력입니다. 이 내용들은 딱히 마케팅 관련도 아니고, 책의 핵심 컨셉과도 직접 연결사항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자가 직접 체험하고 통감한 현장의 감이 듬뿍 담겨 있어서, 어느 구석을 읽어도 도움이 된다는 점입니다. 3장의 내용은 주로 중소 규모 기업의 경영자가 참고할 내용인데요, 그 핵심은 회사의 정체성 자체를, 대체불가능한 소통의 대상으로 소비자에게 각인시키라는 게 핵심입니다. 그렇게만 놓고 보면 결국 마케팅론 아닌가 생각하시겠지만, 조직 구조 리빌딩 작업(인적 자원 관리)에 대한 많은 시사가 주된 내용이므로, 굳이 마케팅 개념으로 보자면 그 최광의적 확장이 아닐까 생각도 듭니다. 원 앤온리의 개념은 많이들 들어 보셨을 테므로 반복하지 않습니다만, 이 책에는 가장 최근의 실제 사례가 실려 있어 역시 부담 없이 읽어 나갈 수 있다는 게 좋습니다. 읽기는 편하게 읽어도, 머리는 긴장을 시켜야 독서의 보람이 있을 것입니다.


4장은 결국 이 책의 총정리 파트입니다. 앞에서 말한 WHY 컨셉과 원앤온리 아이덴티티 형성이, 얄팍한 눈가림이나 상술이 아니라, 경영자 인격 자체의 변혁과 탈바꿈이 근본 추동력으로 작용해야 한다는 결론입니다. 사람이 바뀌어야 스토리도 진정성 있게 생기고, 그 스토리를 체화한 직원들도 CEO의 스피릿을 잘 소화하여 손발이 척척 맞는 유기체로 재탄생이 가능하다는 요지입니다. 이 모든 주장이, 일관되게 "실제사례"라는 강력한 물증의 뒷받침이 이뤄져 있기에, 이 책은 원앤온리의 가치를 지니는 것처럼 보이네요. 좋은 책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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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만처럼 - 나일론에서 쏘아올린 섬유 강국의 신화 대한민국을 바꾼 경제거인 시리즈 8
박시온 지음, 나공묵 감수 / FKI미디어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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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KI에서 청소년을 위한 기업인 위인전을 계속 발간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번에 한화그룹 창업자 김종희씨를 다룬 전기를 읽었는데요, 이번에는 코오롱그룹 창업자 이원만씨를 주인공으로 한 이 책을 일게 되었습니다.


코오롱그룹이라고 하면 저를 포함해서 요즘 세대들은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기업의 지명도가 상당했고, 이 책에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만 라이벌 선경그룹이 MBC 장학퀴즈를 후원할 때 이 기업은 KBS의 다른 퀴즈프로그램(성우 배한성씨 진행)을 스폰싱했고, 1990년대초 한국이동통신이 당시 대통령 사돈 가문이었던 모 대기업으로 넘어갈 때, 017을 식별번호로 하는 이동통신 사업자 컨소시엄에 포항제철(현 포스코그룹)과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만큼, 현재는 많이 격차가 벌어진 상태이지만, 재계의 굴지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한, 섬유화학 분야에서 한국인의 기초 생활 품목 보급을 담당한, 국가의 기간 산업을 담당하여 오늘날의 무역대국 코리아를 일궈 내는 데에 한몫한 엄청난 기업이라는 뜻입니다.


현재는 이 코오롱그룹이, 미국 듀퐁사와의 큰 소송에 걸려 있습니다. 최첨단 소재의 특허와 미국 내 판매유통권을 두고, 기업의 생사를 건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중입니다. 다른 기업들이 비업무용 부동산 투기나 손쉬운 사치성, 향락성 소비재 시장의 개척에만 몰 두하여 떳떳지 못한 축재에만 몰두할 때, 코오롱 기업은 국민의 기초 생활 품목과 첨단 벤처 업종에만 역량을 전념하여, 남들이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묵묵히 제 길을 걸으며 사업보국의 길을 걸어 온 거죠. 이런 걸 보면 우리 한국인은 참다운 기여와 가치를 인정하는 데에 인색하다는 생각입니다. 금전적 보상이 아니라 해도 무형의 평판이라는 대상(代償)을 고생한 이들에게 부여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도 않습니다. 이러면 음지에서 명분 하나로 고생할 이가 누가 있을까 싶기만 합니다.


이 책은 그 코오롱기업의 창업주 이원만의 일대기를 다룬 내용입니다. 이원만은 1904년생이니, 김일성보다 8년 연상이고, 박정희보다 13살 더 먹은 나이였습니다. 이원만이 태어났을 무렵이면, 성숙기에 막 접어든 일본 제국주의는 10년 전 청 제국의 핵심전력을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궤멸시키면서 동아시아 핵심 지역의 이권을 여럿 확보한 상태였겠죠? 그를 발판으로, 이번에는 전세계를 무대로 하여 영국과 곳곳에서 패권 다툼을 벌이는 초열강 러시아와 한판 싸움을 막 열고 있을 때입니다. 이 전쟁에서, 역시 세계를 충격과 경악에 몰아 넣은, 대한해협에서의 극적인 해전을 계기로, 최강 러시아의 예봉을 무너뜨린 채 동아시아의 절대 강자로 등장하게 됩니다. 식민지에서 출생한 이원만은, 이런 시국에서 제아무리 강단있고 의식이 투철했다고는 하나, 그의 비전과 포부를 실현하는 기반을 조선 국내에서 마련할 수는 없었습니다. 욱일승천 기세의 일본으로 건너 가서, 기술도 배우고 사업 밑천도 장만하는 길밖에 없었죠.


식민지 출신은 변변한 셋방 한 칸 얻기 어려운 상황에서, 취업은 고사하고 단단한 일자리 하나 잡기가 쉽지 않은 게 현지의 이원만 청년이 직면한 처지였습니다. 이 젊은이의 가장 빼어난 자질은, 역경에 직면해서도 목표한 바를 포기할 줄 모르는 그 불굴의 의지에 있었습니다. 그는, 받아주지 않으려 하는 일본인들의 텃세와 멸시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원하는 직장의 문을 노크하고 기어이 노른자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포스트를 따 냅니다. 아무래도 청소년전기라는 한계가 있으므로, 다 소의 미화와 비약이 없지는 않겠습니다만, 제가 보기엔 현지의 일인들이 짐짓 취업의 문을 닫는 척 하면서, 요즘말로 3D 포스트에 전략적으로 조선인 출신을 몰아넣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원만은 expendable 신세로 떨어지지 않고, 그 회사에서 용케 핵심 기술을 배우고 또 약게 그 정수를 뽑아내어, 장래의 생존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이 놀라웠던 겁니다. 이원만은 일단 허점이 보인다 싶으면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식으로 진입 장벽을 허물었고, 그 안에서 다시 힘의 한계에 부딪혔다 싶으면 살짝 잔꾀(제가 보기에는, "나를 받아주지 않으면 조선에 돌아가 큰 말썽을 만들어 당신을 곤경에 몰아 넣겠다."고 일본인을 몰아 붙인 건, 결국 대구의 지역 유지였던 친척 형 이원기의 뒷배를 의식한 점도 적지 않았다고 봅니다)도 부려 가면서, 결국은 주위 모든 이들을 설복하기에 이르렀던 거죠. 자라나는 아이들이 그 끈적한 생존 근성을 배울 필요가 있는 대목으로 생각합니다.


아무튼 어언 40대에 접어든 이원만은, 일본에서 제법 큰 성공을 거두기에 이르고(이런 경우가 아주 드문 건 아닙니다. 나이로는 이원만의 아들뻘인 롯데 창업주 신격호씨도 이런 케이스죠), 패전 직전 집중 폭격을 받았던 오사카가 폐허로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원만의 자산만은 멀쩡하게 보호되는 행운이 생깁니다. 결국 전쟁은 일본의 패망으로 귀결하고, 조선 땅에는 해방이 찾아 오죠. 본디 정치를 했던 가문이기도 해서, 일본 현지에서 큰 재산을 모은 사업가라는 자랑스러운 경력도 생긴 그는 신생 조국에서 유력 정당 한민당(책에는 안 나오지만 동아일보 사주 김성수 등이 그 설립 주체였습니다)의 공천을 받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그의 다소 파격적인 언행은 선거구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선거라기보다 테러에 가까운 험악한 분위기에 밀려 결국은 석패하기에 이르죠. 낙담한 그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붉은여왕의 법칙이 이 당시에도 통용되지 않은 게 아니라서, 그저 현재상태에 안주할 수 있었던 이원만이었으나, NYT에서 소개하는 최첨단 신소재에 눈이 번쩍 뜨이게 됩니다. 그게 바로 나일론이었습니다. 이에 주목한 이원만은 대 뜸 이 나일론에 손을 뻗쳐, 이미 단단한 기반의 사업은 더욱 큰 확장을 이루게 되죠. 그런데 이원만은 여기서 남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개인의 장사가 잘되는 건 좋으나, 그 과정에서 외화 유출이 많다는 게 개탄스러웠던 거죠. "저 stretch絲 하나만 우리 기술로 직조 가능해도, 아까운 달러가 출혈하는 일은 없을 것 아닌가?" 이 책에는 안 나와 있습니다만, 지금 코오롱그룹이 겪고 있는 고초도 어찌 보면 창업자의 이 고지식한 경영 이념을 고수한 결과입니다. 좀 국민들이 이런 기업에는 성원을 보내 줘야 합니다. 땅투기나 하고 설탕 밀수나 하던 악덕 사업자는 결국 "개처럼 벌어도 정승처럼 잘 쓰는" 복을 받고, 예전에도 굳이 편한 벌이 다 내팽개치고 험지에서 국가 건설의 일념으로 어렵게 사업하던 역군은 지금도 그 후손들조차 고생길에서 여전히 악전고투하는 중입니다, 이래 가지고 나라에 정의가 선다 할 수 있겠습니까?


1960년대 코오롱그룹이 한국에 나일론을 성공적으로 공급하지 못했으면, 한국인이 언제 의식주 최소의 욕구를 해결하고 빈곤선을 탈피했을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도 코오롱은 그저 중소기업 레벨에 머물러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화려함에 속지 말고,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진정한 공로자, 은인이 누구인지 좀 생각도 하면서 사는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 서푼도 안되는 정치선동 프로파간다만 외우고 다닐 게 아니라 말이죠.

 

이 책은 같은 시리즈의 다른 권에 비해 내용이 재미있다는 게 특징이에요. 고 이원만 회장이 참 재미있는 캐릭터여서 일화가 많이 남은 이유도 있겠으나, 집필자가 필력이 빼어나서 같은 이야기라도 재미있게 구성하는 능력이 탁월한 덕도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론 앞으로 이 시리즈는 이 박시온씨가 계속 맡앗으면 하는 바람도 있네요.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읽기에 재미있는 책이 대중적 보급도 수월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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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 - 어느 은둔자의 고백
리즈 무어 지음, 이순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어떤 평면 위에 최소한의 숫자만으로, 흔들리지 않는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는 삼발이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전통적으로 삼위일체의 교의를 가르쳐 왔고, 우리의 단군 신화에도 환인, 환웅, 단군의 3대가 등장합니다. 둘만으로도 외롭고, 셋이 있어 줘야 최소의 틀이 생깁니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있다는 요즘이지만, 커플만으로도 왠지 허전하고, 가족이란 모름지기 자식이라는 한 명의 성원이 더 있어 줘야 하죠. 이 중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그 원심- 구심의 상호 균형이 깨어져, 각각의 안정된 삶도 자칫 붕괴할 수 있는 위험이 생깁니다.


은둔자의 고백이라는 부제 때문에, 저는 상당히 (본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무거운 내용의 소설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더군다나 그 은둔자는, 주로 절제 못 하는 식욕 때문에, 거동도 불편하고 수치심으로 밖에도 못 나가는 딱한 처지입니다. 이런 분들은 보통 성격에 문제가 있는 수가 많고, 특히나 그간 많은 소설(특히 스릴러)에서라면, 처참하게 희생당하는 처지나, 아니면 그 반대로 가해자에 놓이는 걸 종종 봤습니다. 아니라고 해도, 결국 자기 혐오와 연민을 이기지 못하고 파멸로 치닫는다든가 하는 설정을요.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하게 전개됩니다. 은둔자는 성격 이상자는 아니고, 빼어난 지성을 지니지는 못했으나, 평균을 상회하는 지성과 자기 성찰력, 교직 경력, 그리고 넉넉한 재산을 가진 중년의 캐릭터입니다. 다만 그가 굴하는 건 식욕쪽입니다. 식욕의 문제에 이르러서는, 그의 건전한 판단력과 통제가 미치지 못하는 영역입니다. 그는 대인 접촉을 대단히 꺼리는 편이나, 이에는 대체로 자신의 감정에 대한 우려 못지 않게 타인의 감정에 대한 배려가 더 크게 작용합니다. 돈을 지불하고 가사 정리를 맡기는 출장 홈메이드 인력에조차, 그는 별스럽다 싶을 정도의 조심과 유의를 기울입니다.


그는 비대한 체구 때문에 상당한 열등감을 가지는 듯도 보이입니다. 예컨대 켈의 사진을 보고 홈메이드 욜란다가 "누구에요?"라고 묻자, "아들"이라고 대답하려는 걸 억지로 누르고 조카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있죠(물론 이 장면은 중반 이후로 가면서 대단한 반전의 복선이 됩니다만). "아들"이라고 말하고 싶었다는 건 본능적 친밀감과 관계 회복에의 욕구, "조카"라고 타협적으로 수위를 낮춰 대답하는 건 상대 욜란다에 대한 배려("네 선입견을 굳이 배반하고 싶지 않아.")의 산물입니다. 욜란다는 켈보다 두 살이 많은,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는 (아마도) 불법 이민자 출신의 혈혈단신 처녀입니다. 청소는 잘할지 모르지만, 그 외의 서비스 매너는 미숙련 인력의 그것에 지나지 않는 취약 계층입니다. 이런 사람에까지 주인공(아서)이 순진한 애착을 보이는 건, 순전히 관계(relationship)에의 욕구, 가족 회귀 본능에 기인합니다. 그 는 욜란다를 볼 때마다, "저 아이를 입양하면 어떨까?"같은 생각을 끊임 없이 떠올립니다. 관계의 본격적 상실 이전에도 그는 비만의 징후가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재앙으로 귀결한 건 사람들과의 유리가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가족, 가족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한편 저 멀리, 아서와 오래 전 잠시의 인연을 맺었으나 타향에서 살고 있는 모자가 있습니다. 어머니는 많은 교육을 받지 못했고, 무슨 이유에서인지(외국은 우리 나라와 달리 이런 예가 드문데도) 하나뿐인 아들의 교육에 강박적으로 집착합니다. 아들은 선천적으로 머리가 둔하다기보다, 이런 어머니에 대한 반작용 때문인지 공부를 싫어합니다. 대신 그는, 어린 시절부터 지역에서 촉망 받는 야구 선수였습니다. 이미 14세부터 로컬지에 이름이 나서, 인터넷에 그를 검색하면 사진이 나올 정도입니다. 결정적 시함에서 트리플 플레이(플라이아웃-3루 주자 태그아웃- 2루 주자 아웃)의 짜릿한 경험은, 내면 깊숙한 곳에서 절대 긍지를 놓지 않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합니다. 그는 언제나 스타였고, 동급 여학생들의 시선을 한몸에 모으는 주목 받는 인생이었습니다. 엄마는 이런 아들의 진학(엄마의 관심사는, 정확히 말하면 "교육"보다 "진학, 학벌"에 가깝습니다)을 위해 없는 돈을 들여 (우리식으로 말하면) 학군이 나은 동네로 이사 오지만, 그는 순탄히 적응하지 못합니다. 소년 켈(아빠 이름을 땄다는)은 언제나 어머니에 대한 불안과 불만에서 벗어날 줄 모르는데, 이는 엄마에 대한 정면의 반감이라기보다,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허기가 더 크게 작용한 듯합니다.


소년의 엄마는, 존재 깊은 곳의 근원적 불안을 떨치지 못합니다. 살아오면서 받은 많은 상처와, 태생적으로 보유한 성격적 결함이, 일종의 네크로필리아로 수렴하는 모습입니다. 엄마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대며 아서(은둔자 주인공)에게 오랜 인연을 환기하며 아들의 사교육을 촉탁하고, 그저 가족관계가 그리웠을 뿐이었던 아서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수락합니다. 사진을 보니 잘생겼고("나 같은 이에게서 이런 아들이 나올 수야 없지!"), 자동응답기에 남겨진 음성을 살짝 들어보니 생각보다 더 앳된 목소리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만나서,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봉사나 배려를 베풀고 싶습니다.


이 소설은 은둔자의 고백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으나, 시점의 전환은 장마다 교차되고, 마지막 장에서 드디어 두 화자가 만나면서 그 통일이 이뤄집니다. 아서의 독백, 그리고 소년 켈의 독백이 번갈아 등장하는 식입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분명히 ㅗ속 집단으로부터 경원될 소지를 안고 있으면서도, 결정적 이유 하나 때문에 이른바 "왕따" 신세로 추락하지는 않는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둘은 지향하는 바도 같습니다. 아서는 아들(혹은 자식)을 원하고, 켈은 아버지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소년의 어머니는? 그녀가 원하는 건 무엇이었을까요? 자식의 출세, 학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소설의 주제입니다. 소설은 일종의 비극적 결말을 예비하지만, 남은 인물들은 새로운 출발과 희망의 맹아를 보게 됩니다. 그 과실은 거저 다가오지 않고, 우리에게 나름의 부담, 즉 무게(heft)로 다가옵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이것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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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 야구의 전설 한국시리즈
배정섭 지음 / 보누스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처음에 이 책을 펼쳤을 때는, 선진적이고 과학적,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빠질 것 없는 구단 운영을 하는 삼성 라이온즈 프런트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건 아니었고,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당시부터 한국 야구팬과 영욕, 고락을 함께해 온 삼성 라이온즈 구단에 대한 팩트북이었습니다. 삼성 라이온즈의 팬이 아닌 입장에서는 다소 아쉬웠지만, 그런 느낌도 잠시일 뿐, 340여 페이지가 언 제 다 넘어갔는지 모를 만큼, 어언 30여년에 달하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의 가장 중요한 주역 중 하나인 이 구단의 갖가지 사연과 기록이 빼곡이 담겨 있어서, 그 출발이 미미했던(이 책에는 1982년 개막전이, 대통령이 시구를 하는 등 화제의 초점이 되어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되어 있으나, 현재 기록 영상이 남아 있는 걸 보면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그 개막전의 극적인 승부를 기점으로, 한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자리잡았지만요) 한국야구가 이만큼이나 풍성하고 알찬 역사를 일궜는지에 대해 감회가 북받쳐 오르는 느낌에도 푹 젖을 만했구요. 일부 비뚤어진 팬들을 제외한다면, 최소한 야구만큼은 모든 팬들이 다 전체 구단의 팬입니다. 어느 팀만 광적으로 좋아하여 타 팀을 증오하는 한심하고 어리석은 행태(이런 자는 야구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제 열등감 좌절감을 해소하려고 야구를 이용하는 거죠)를 보이지 않고, 우선 순위에 따라 고루 애정을 분배하는 게 바로 우리 성숙한 야구팬들의 태도입니다. 그런 까닭에, 삼성 팬이 아닌 저도 이 책을 너무너무 재이있게 읽었습니다. 어떤 대목에서는 "맞아, 그랬었지." 하고 맞장구를 치기도 하고, 다른 대목에서는 "그런 일도 있었구나."하며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했습니다. 삼성 구간에 그렇게나 레전드가 많았구나, 하는 당연한 깨달음이 들기도 했고, 당시만 해도 우리의 감정을 그렇게나 뜨겁게 달구던 그 숱한 스타들, 알짜배기 조연들이 까맣게 잊혀진 걸 알고는 무상함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특정 구단에 대한 선호를 떠나, 야구팬이라면 페이지페이지마다의 공감을 안 보낼 수 없는, 빼곡한 팩트로 가득합니다. 대신, 시대순으로 정리되어 있다든가, 주제별로 촘촘히 목차가 짜여져있다든가 하는 점에서는, 아쉬운 면이 있습니다. 야구에 대해 웬만큼 아는 입장에서 봐야 책이 눈에 들어올 것이며, 잘 모르는 입장에서는 "이런 책도 있나?"하고 쉽사리 접근이 안 될 것 같다는 게 단점입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씀 드렸듯, 웬만큼 아는 입장이라면 책이 정말 술술 넘어갑니다. 언제 다 읽었는지 모를 만큼요. 되풀이되는 이야기지만, 한국 프로야구의 팬이라면, 그 사람은 곧 9개 구단 모두의 팬입니다. 타팬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팀도 아닌 삼성 이야기가 남 얘기처럼 낯설 수는 없습니다. 그 팀은 "나의 팀"과도 일 년에 17~19 게임을 치르면서, 지긋지긋하게 괴롭히거나 아주 압도를 해 버린 무적의 함대였습니다.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죠.


이 책은 영욕의 역사를 빠지지 않고 다 담았다는 점에서, 삼성 라이온즈 구단이 펴 내는 공식 홍보 책자와 크게 다릅니다. 우리도 다 알다시피, 삼성은 초창기부터 강자였을 뿐 어느 한 시기도 언더독으로 떨어져 본 적이 없는 무서운 팀이었으나, 야구 출범 20년이 지나도록 한국시리즈 우승을 해 본 적이 없는 아픔을 갖고 있었죠. 이 책은 프로야구 첫 10년기, 20년기에 이 팀이 가졌던 해태 트라우마, 20년기의 말에 겪었던 현대 유니콘즈 징크스에 대해, 제법 긴 분량을 두고 서술해 줍니다. 나이 든 삼팬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그 녀석들은 정신상태가 썩어서 안 돼!"하는 (애정어린) 개탄이 여기저기서 나왔다고 합니다. 야구팬들은 이리 신사적이라서 좋습니다. 결코 남을 탓하지 않고, 자신의 팀을 질타(말이 그렇다뿐, 거의 자식을 향하다시피한 애정입니다)하는 쪽으로 그 열정을 발산합니다. 팀이 졸전을 펼치다 지면 자기 팀 홈페이지에 몰려가 성토를 하고, 때로는 자기 팀 감독 가는 길 막아서고 청문회를 하자고 덤비는 게 한국 야구팬들입니다. 이 책에도 다분히 반성의 의도에서 실려 있긴 하지만, 해태 구단 버스 방화 사건 같은 것은 그 예전에나 일어났던 사건일 뿐입니다. 되풀이하지만, 일부 몰지각한 자들을 제외한다면, 어느 스포츠보다 신사적이고 이지적이며, 그러면서도 열정적인 태도로 경기를 즐길 줄 아는 분들이 한국야구팬들입니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은 응원팀을 떠나 누가 읽어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책입니다.


이 책에 자세히 나와 있지는 않으나, 사실 삼성 라이온즈 구단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1987년(박영길 감독) 최강 전력을 구비하고도(이 책에 나와 있는 바를 인용하자면, 전무후무-지금까지도 없습니다-의 팀타율 3할을 기록한 시즌이었죠), 우승에 실패한 이래, 또 시즌 4위에 그쳤으나 빙그레, 해태를 연파하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여 돌풍(삼성 같은 강팀에 이 단어는 사실 어울리지 않습니다. 돌풍은, 약팀이 예상치 못하게 일으키는 거니까요)을 일으켰던 1990년시즌의 또다른 실패(이건희 당시 구단주는 이 충격으로, 정동진 감독을 바로 해임해 버립니다. 상대가 당시만 해도 재계 라이벌이었던 LG였다는 팩터가 크게 작용했습니다)를 거친, 그 직후였습니다. 1991~92년은, 지금은 야신으로까지 추앙받는 김성근 감독 지휘 하에 팀이 놓였던 시기인데, 이때 삼성은 최악의 시기를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책은 이 시기를 자주 다루고 있진 않은데, 다만 재일동포 에이스 김성길(김성근 감독이 영입한 선수입니다)의 활약에서 짧게 언급되곤 있습니다. 1991년 준플레이오프에서 너무 혹사를 당 한 탓에, 이 선수는 다음해부터 재기불능의 부상으로 결국 은퇴하게 되죠. 예의상 언급은 안 하지만, 김성근에게도 이런 흑역사는 존재했던 것입니다. 이 책에도 이후 삼성에서 톡톡히 제 몫을 해 준 김현욱 같은 선수가 잠시 나오는데요, 김성근 감독은 저 김성길 운용의 실패를 거울삼아. 혹사를 시키되 선수에 최소한으로 무리가 가는 방법을 개발하여, 이 김현욱을 탑 레벨의 투수로 키우는 일(1996년 이후 쌍방울 시절)에 성공합니다. 야신도 처음부터 야신이었던 게 아니라, 이런 시련과 시행착오의 시절이 다 있었던 거죠. 이 책은 김성근의 삼성 시절은 그리 길게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나이 어린 팬들이라면, 야신과 최고의 팀이 한솥밥을 먹던 시절이 다 있었나 하는 생각에 깜짝 놀랄 만합니다. 그 역사가 그리 자랑스럽지 못한 탓에 쉽게 잊혀졌을 뿐이죠.


이 책은 삼성의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들에 대해, 드라이하면서도 그때의 감동이 잘 살아난 서술을 하고 있습니다. 삼성 팬들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만한, 이승엽의 동점 스리런과 마해영의 끝내기로 삼성이 최초 한국시리즈 패권을 잡았던 그 시즌에 대해, 자세하고 정확한 서술이 실려 있습니다. 또, 비록 기록에 남지는 않았으나 우리 모두가 기억해 줄만한, 배영수 선수의 사실상 퍼펙트 게임, 그리고 1993년 한국시리즈 3차전 박충식의 15이닝 완투 무승부 같은 큰 이벤트가, 역시 감동적으로 잘 서술되어 있습니다. 박충식은 광주일고 출신의 고졸 에이스였는데, 고향팀 해태의 그 기라성 같은 에이스(문희수, 선동렬)를 상대로 그만큼 놀라운 투혼을 보인 모습, 아직도 많은 삼팬들께서 기억하실 겁니다. 삼팬들이 또 잊을 수 없는 선수가 강동우입니다. 외야 수비 중 펜스에 부딪혀 이후 몇 년을 뛸 수 없었던 상 에 시달렸으나, 삼성 구단은 그를 냉혹하게 버립니다. 삼성은 이만수, 김시진, 장효조에 대해서도 말년에 후한 대접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는 과거의 일이고, 현재 모든 면에서 최고의 레벨로 자리한 이 구단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책에는, 근세 삼성의 레전드이자 걸출의 슈퍼스타인 양준혁에 대해(그는 진정 천부의 조건을 타고난 "신적인" 선수였습니다) 후한 은퇴식을 베풀어 준 일도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중고신인 이동수의 기억도 많은 분들이 잊었을 수 있는데, 이 책에 다정다감한 서술로 우리에게 환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웃지 못할 해프닝 중에 최초 몰수게임사건, 부정 배트 의혹 사건 둘이 나와 있는데요, 전자는 MBC 청룡, 후자는 LG 트윈스(전자를 승계한)가 상대팀이었습니다. 이 두 팀이 거의 10년을 두고 좀처럼  보기 드문 사건으로 악연을 이어 갔고, 두 사건 모두에 백인천 감독이 그 주역(?)이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책에는 간혹 오류가 있습니다. 배영수 투수는 지역 명문 경북고 출신인데, 서울의 경복고로 잘못 쓰여진 대목이 있고요. p45 중간쯤에 보면 "배영섭는" "배영섭은" 같은 오타가 있습니다. p85에 보면 김용철 감독이라고 나와 있으나 , 당시 김용철씨는 김명성 감독의 급서(急逝)로 감독대행직에 올랐을 뿐, 이후에도 감독직을 맡은 적이 없습니다. 배영수 선수가 빈볼 투척으로 인해 "배열사"라는 별명을 얻은 일은 책 전체에 두 번이나 다뤄지는데, 지면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한 번으로 충분합니다. p58에서, 전기, 후기 리그를 두고 "양대 리그"라는 표현을 쓴 건 어색합니다. 삼성의 원년에 가장 두드러진 유격수(이 때문에 서정환이 트레이드를 요청한 사실은 이 책에 잘 나와 있죠)로 활약한 오대석의, 한국 프로야구 최초 사이클링히트 기록 사실이 이 책에 보이지 않는 것도 좀 의외였습니다. 당시로서는 대단한 화제였던 자잘한 에피소드들이 깨알처럼 소개된 건 이 책만의 매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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