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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테크 미래의 기회 - 의료 3.0 경제가 이끌어갈 투자 패러다임 쉬프트
앤드류 크레이그 지음, 이상훈 옮김 / 길벗 / 2025년 6월
평점 :
앤드류 크레이그는 롬바드 스트리트(한국으로 치면 여의도나 학동?)에서 잔뼈가 굵은, 날카로운 안목, 광범위한 시야로 많은 투자자들에게 주목 받던 애널리스트, 창업가였으며 <How to own the world>가 그의 책 중 가장 유명합니다(한국에는 아직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분이 이렇게 책 한 권 전체에다 바이오섹터로 주제를 잡은 건 이 신간(원서는 작년 8월)이 처음인데, 과연 투자 패러다임 쉬프트를 논할 만큼 메가트렌드 자체가 이제 변하는 것 아닐까 생각하게도 되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90에서 저자는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아툴 가완다 박사라는 분도 앞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지만, 이른바 "재생성 신체조직"에 대해 어느 분이 혁신적인 발견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혁신이 (타 산업과는 달리) 현장에 혹은 기기업계, 제약업계 등에 급속하게 확산되지 않는가? 왜 이런 전문가들이 바로 돈방석에 앉고, 투자자들은 30일 연상 같은 대박을 치지 못하는가? 저자가 잠정적으로 내리는 결론은, 인력의 재훈련, 고용 위협, 기존 시스템의 전면 교체에 따른 부담(과감하게 매몰비용으로 무시해 버릴 수 없는 심리적[비합리적] 주저함) 때문이라는 취지로 저는 읽었습니다.
사실 이런 건 미국만의 사정이 아닙니다. 한국도 최소 5년 전부터, 코스닥에 이런저런 유망한 바이오기업들이 있는데, 이 회사는 대표의 얼굴만 봐도, 살아온 경력이나 스펙, 학력, 창업 전 직책만 봐도 반드시 잘된다며, 혹은 지금 추진하는 신약이나 요법 개발 등이 정말로 혁신적이라며, 이제 4상도 다 통과했으니 다음달에 열릴 미국의 무슨 학회 후에는 반드시 폭등한다며 얼마나 기대를 불어넣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시름시름 주가가 주저앉더니 지금은 그야말로 동전따리 신세입니다.
물론 애초에 제품 자체에 문제가 있기도 했겠고, 대표님이 겉보기처럼 그렇게 훌륭한 분이 아니어서일 수도 있지만,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이른바 "만족 모형", 즉 흠 없는 최상의 솔루션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른 조건들을 감안할 때 혁신 없이 그대로 가는 게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결론이 의료 산업에선 빈번하다는 것입니다. 허버트 사이먼은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이지만 경영학, 행정학 등을 공부한 이들도 저 만족 모형에 대해 많이 들어 봤을 것입니다. 그러니 뭐 하나가 나왔다고 우루루 몰려가 돈부터 박고 보는 국장식 행태는 특히 바이오 섹터에서 위험하기 짝이 없겠습니다.
p107에서 저자는 기하급수적(exponential) 성장에 대해 설명합니다. 사람의 뇌는 기하급수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설계된 조직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고1 때 로그함수라는 것을 배워 엄청난 속도로 증가하는 상황을 보다 편하게 이해하는 방법을 익힙니다. 종이를 일곱 번 접는 게 웬만해서는 불가능하다는 재미있는 상식도 이 원리에 기반합니다. 익숙한 선형적(linear) 사고에서 벗어나야 바이오테크의 발전을 현황 그대로 이해할 수 있는데, p117에서 저자는 일본에서 특히 두드러진 암치료법으로 독자의 주의를 돌립니다. 사실 2세대 항암요법이라는 표적치료에 아직 익숙하지도 않은데 3세대(면역 항암), 최근에는 4세대(대사. 특히 ADC)까지 등장한 걸 보면 그렇기도 한 것 같습니다. ADC 테마가 국장에서 작년에 얼마나 핫했는지 아직도 기억이 새롭죠.
p167에 나오듯 천연두, 나병, 장티푸스, 페스트 등 온갖 무서운 질병들을 과학의 위력으로 지상에서 퇴치한 건 정말 위대한 업적입니다. 20세기 중반에는 페니실린이 나와 그간 답이 없었던 폐병 치료율을 높여 크나큰 공포 하나를 퇴치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른바 현대성 질병(disease of modernity)이 새로 등장하고, 항생제가 먹히지 않는 슈퍼박테리아가 출현하여 사람들의 진을 빠지게 합니다. 해리슨 포드가 주연한 <파이어월>이란 스릴러를 보면 어린 아들이 땅콩알레르기로 고생하는(죽고사는 문제입니다) 설정이 있는데, 땅콩버터는 미국인들, 최근에는 한국인들도 꽤나 좋아하는 음식이라서 더욱 공포감을 자아냈습니다. 무서운 병 몇을 퇴치했다 싶으면 새로운 문제가 두더지처럼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의학과 질병 사이의 게임에 과연 승산이 있는지 회의감을 자아냅니다. 저자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장내 미생물 균형, 면역력 증대 문제가 앞으로 바이오업계가 사활을 걸고 매달릴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현대인들은 대체로 장수하며 80 전에 돌아가시면 무슨 문제가 있으셨냐고 물어 보는 게 보통입니다. 그런데 투병 기간이 길거나 하면 이는 삶의 질을 크게 저하시키니 단순히 수명의 길이로 모든 걸 판단할 문제는 아닙니다. p278을 보면 QALY라는 지표가 나오는데, 삶의 질이란 팩터를 고려하여 보정한 수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지표가 왜 중요한가? 종래 고가의 약물이라면 정책 입안 단계에서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는 픙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예 초기에 (효과도 좋고 대신 비싸기는 한) 약물을 과감히 처방함으로써 Qaly를 늘리는 선택을 하자, 무의미한 장기 입원, 요양이 크게 줄었다는 쪽으로 최근 컨센서스가 생겼다는 거죠. 보건의료 분야는 그저 시장에서 모든 게 결정되는 게 아니라 공익성을 고려하여 관료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므로 이 이슈가 중요해졌다는 뜻입니다. 어느 쪽이 수혜주가 될지도 잘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CRISPR 기술이라는 게 일반들에게도 알려진 게 근 9년이 다 되어갑니다. 뚜렷한 발전이 있었냐면 답은 "그렇다"인데, 그래서 우리네 삶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나아졌냐고 물으면 아무도 명쾌하게 답을 못합니다. 저자가 가장 주목하는 건 p306의 카스게비(Casgevy)입니다. 겸상 적혈구병 환자들에게 바로 다음날부터 완전히 새로운 삶,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선사한 임상 기록(의 요약)은 바이오 문외한이 읽어도 경이감을 느끼게 됩니다. 단백질 스캐폴드 기술을 연구하는 기업들도 주의깊게 관찰해 보라고 저자는 조언합니다.
노화 퇴치, 완화는 암치료보다 쉽다(p338)는 데이비드 싱클레어 교수의 말도 흥미롭습니다. 노화 지연 테마가 며칠 전 코스닥에서도 잠시 주목을 끌었던 사실도 기억났습니다. 바이오테크와 태양광 발전이 접점을 마련하는 언급도 있는데 이는 확실히 통섭적 인사이트를 갖춘 애널리스트라야 가능할 듯합니다.
맨뒤의 참고문헌 목록을 보면 일일이 한국어로 번역이 되었고, 한국에서 번역 출간이 된 책들에는 제목과 연도가 다 표시되었는데 개인적으로 전 이런 건 드물게 보는 터라 좀 놀랐습니다. 번역자와 편집진의 성의를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