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연대기
리디아 유크나비치 지음, 임슬애 옮김 / 문학사상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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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극심한 가정 폭력에 시달렸던 저자는 그 후유증 때문에 온전한 대인 관계를 맺기 어려웠나 봅니다. 이 회고록의 제목이 "물의 연대기"인 이유는 일단은 저자가 수영 선수 커리어를 10대 때 가졌었기 때문입니다. 멋진 사람들과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치열한 삶을 살았지만 그 결과가 항상 좋지는 않았습니다. 살아오면서 만났던 이들(독자인 제 눈에는 멋있는 이들이 많았습니다)에 대한 회고가 구체적이며, 저자가 비록 큰 상처가 있지만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극복하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엿보여 미국에서 그토록 큰 인기를 끌게 된 책이었겠다고 짐작합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지난달 말에 마무리된 78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부문에 이제 연출자로 초대된 여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트와일라잇 4부작의 벨라)가 감독한 작품 원작이 바로 이 책이기도 합니다. 아쉽게, 상을 타지는 못했지만, 영화의 소재가 될 자격이 충분하게, 이 책은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p59를 보면 가수 제임스 테일러를 닮았다고 해서 별명이 JT맨인 필립, 첫사랑이자 첫남편인 남자에 대한 애증(愛憎) 가득한 회고가 시작됩니다. 저는 처음에 제임스 브라운으로 잘못 읽고 작가가 남자 외모 절대 안 보는 분이구나 생각했는데, 제임스 테일러도 꽤 예전 사람입니다. 작가분도 나이가 꽤 많으시기 때문에 예전 연예인이 이렇게 언급되기도 하나 봅니다. 왜, 로드 테일러나 로버트 테일러를 예로 드시지 않고...(닮았으니까 닮았다고 했겠죠)

수영선수라고 하면 (여자라도) 어깨가 딱 벌어지고 건장한 체격이 바로 연상됩니다. 그런 작가가 열세살 때, 아니 열다섯살때 큰 욕구를 느꼈던 상대 시에나 토레스는 열일곱 살이었다고 나오는데(p174), 대체 체격이 얼마나 좋았으면 "나보다 큰 소년이 필요했다"고 하는 그녀의 눈에 바로 들어왔다는 것인지. 물론 서양인들은 대체로 체격이 좋긴 합니다만 이 정도 예외적인 여성(여자 맞습니다)은 서양인들한테도 마찬가지 느낌인가 봅니다. 저는 여기서(p169) 저자 린다(당시 십대)가 하고 싶었던 행동을 꾹 참는 그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또 스스로 자랑스럽게, 자신이 그때 충동을 참아서 지금 이만큼이나 성장할 수 있었다고 회고하는 대목도 그랬습니다. 물론 사람은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충동을 일일이 행동에 옮길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지만, 우리는 이 당시 작가가 큰 위기에 처했다는 점 감안해야 하겠습니다.

한국인들이 북미 대륙에 이주하기 시작한 건 물론 역사가 오래되었지만 이런 나이 많은 저자의 회고록 앞부분(대체로 저자도 젊었던 파트)에 한국계 셀럽이 등장하는 걸 보면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여기(p179)에서 언급되는 이창래라는 분은 지금 이 작가보다는 나이가 몇 살 아래지만 글쓰기 멘토 구실을 하던 분인데, 작가(당시 대학원생)는 이분(교수)의 클래스에서 모욕적인 평가를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책에서도 여전히 앙앙불락하는 낌새가 느껴집니다. 뭔지는 독자인 제가 알 수 없으나, "당신의 글은 충격적인 소재로 사람들 관심을 끌려는 소재주의이지, 스타일은 진부하기 짝이 없어!" 같은 게 아니었을까 짐작합니다. 책에는 그녀가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에서 캐디(골프 캐디가 아니라 캔디스의 애칭입니다)의 관점에서 소설을 썼는데, 교수 이창래씨가 그런 평가를 했다고 나옵니다.

p202에는 좀 특별한 서술이 있습니다. 앞에서 여성수영선수 토레스에 대한 묘사에서도 몸에 털이 보슬보슬했다는 문장이 나오는데, 저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머리털을 상자에 모으는 취미가 있다고 고백합니다. 영어로 체모와 모발은 철자가 같아서, 맥락으로만 구별되는 단어입니다. p203에는 샤를 드브로스(Charles de Brosses)가 페티시라는 개념을 널리 보급했다는 언급이 있는데 사실 좀 섬뜩해지기도 하는 문장입니다. 이 사람은 활동 시기가 사드 후작보다 더 앞섭니다. 이어 피부, 살갖에 대한 인문적(?), 자전적 회고가 이어지는데 영어로 skin이라고 하면 "목숨"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아무튼 이 대목에서 작가가 꺼내시는 말들은 독자에게 많은 생각을 유도합니다. 집착, 욕망, 사랑, 치유 등에 대해서.

현재 린다는 영화감독 앤디 밍고와 부부 사이이며 재주 많은 운동선수 마일즈 밍고라는 99년생 아들이 두 사람 사이에 있습니다. 남편이 십 년 연하이며 특히 이 책 p318 이하에 깨가 쏟아지는 연애 이야기가 나옵니다. 책을 다 읽고,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과연 이 책을 대체 어떻게 스크린에 옮겼는지 무척 궁금해지기도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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