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 괴물
김정용 지음 / 델피노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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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과학문명이 유럽 중심으로 화려하게 꽃핀 건 근본적으로는 "개인의 자유"라는 소중한 가치를 존중했던 문화 덕분이었습니다. 이 책의 부제를 보면 "암스테르담, 1677년 자유의 발명"이라고 나오는데 1677년은 벤투 스피노자가 40대의 아까운 나이로 타계한 해이며 또한 그가 쓴 저작들이 출간된 연도이기도 하다고 이 책 뒷표지에 나옵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는 바뤼흐 스피노자의 평전이지만, 그 형식이 "소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 작품이 "역사에 기반한 허구"라는 점을 스스로 부인합니다. 그간 스피노자의 생과 사상은 다분히 추상적으로만 알려졌으며, 유명한 말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은 그가 한 말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처럼 스피노자는 중고등학생도 알 만큼 유명한 철학자이지만, 그가 과연 한 인간으로서 실제 역사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정확한 자신의 신조나 가르침은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싸였거나 크게 곡해되었다는 게 작가의 관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전하는 자료만으로 더 정확한 진실을 어떻게 밝히겠습니까? 저자가 선택한 방법은 "소설의 형식을 통한 탐구"입니다. 꽤나 재미있기도 한 이 "소설"을 통해 스피노자는 추상의 너울을 벗고 피와 육신을 지닌 인간으로서 독자를 만납니다. 프랑스어 원제 "le clan spinoza"는 직역하면 스피노자 무리라는 뜻인데, 영원한 개인의 자유의지를 강조한 그의 가르침을 계승한 이들 모두가 "스피노자들"이란 뜻도 되며, 좁게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스피노자의 모든 동조자들과 동료들을 뜻하기도 합니다. 인물들은 비록 작가의 상상력에 힘입어 다채로운 대사를 읊고 행동하지만 하나하나가 다 실존인물들이며 가공된 캐릭터는 드물게 나옵니다.

네덜란드는 상인들의 나라이며 특히나 암스테르담은 당시도 지금도 세계적으로 번성한 상업도시입니다. 이 소설에서 일어나는 상당수 사건의 배경은 거래소들인데 거래소라고 해도 참으로 다양한 품목을 거래합니다. p107을 보면 한 노인이, 아직은 세상 물정에 서투른 젊은이가 저자를 기웃거리는 걸 보고 현물 거래는 여기서, 또 선물(先物) 거래는 저쪽에서 이루진다고 가르쳐 줍니다. 17세기라도 이미 현대의 금융파생상품과 매우 흡사한 형태의 선물(future)이 거래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선물은 일종의 위험 헤지(risk hedge) 수단입니다.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그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으므로, 나쁜 일이 터져도 이 선까지만 피해를 입겠다고 미리 선을 긋는 거래행위입니다. 밀, 설탕, 향신료의 가격 동향에 대해서는 그렇게 조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말합니다. "두려움은 얼마이고, 반대로 희망은 얼마의 가치를 지니는가? 신중함에 얼마를 지불해야 하는가?" 현자들이 대중을 위해 고안한 파생상품이 바로 철학이라고 스피노자는 말하는 듯합니다.

p242를 보면 데카르트는 논리, 기하, 대수라는 별개의 영역을 통합했다는 찬사를 받고 실제 스피노자도 자신의 시대에 데카르트 전문가로 꼽혀 우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20세기 논리실증주의의 위대한 좌절을 보면 알듯 이 세 영역의 완전한 통합이란 요원한 목표이며 다만 데카르트는 초급 해석기하의 발판을 놓았기에 상당수 도형 문제를 방정식으로 훨씬 명료하게 처리하는 천재적인 업적을 이뤘습니다. 예컨대 원은 천 수백 년 전 에우클레이데스의 언명대로 "특정 점으로부터 같은 거리에 놓인 다른 점들의 집합"일 수 있지만, 데카르트의 좌표계에 기반한 방식이라면 (a,b)로부터 거리 r을 유지하는 (x,y)로 표현됩니다. 스피노자, 그리고 로데베르크 메이어르는 novum institium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데, 이 세계관에서 기존 물리학이나 의학의 개념들은 일제 변혁을 맞습니다.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명제는 수백 년 후 변증법의 근대적 변용을 예고하는 듯합니다.

p379를 보면 판 벨타위선은 <철학이 성경을 해석한다>를 쓴 불온한 저자로 지목되어 재판관들의 엄혹한 추궁을 받기 직전입니다. 불온서적의 명단에는 홉스가 쓴 <리바이어던>도 포함되었습니다. 오늘날 청소년 필독서로도 꼽히는 이런 책들이, 그토록 자유로웠다던 암스테르담에서도 칼뱅주의 신정론자들의 엄혹한 심판대 위에 올라야만 했습니다. 스피노자의 친구들 사이에서도 마냥 의견일치만 있었던 건 아니어서, p458 이하에서는 스테논 등이 이의를 제기하며 논쟁이 일기도 하지만 이 클랜 안에서 언제나 최상위의 제단에 고정된 덕목은 첫째도 자유, 둘째 셋째도 자유입니다. 스피노자라는 이름은 지구 최후의 날까지 자유와 동의어이자 그 상위개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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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 - 세상의 모든 전략과 전술
임용한 지음, 손무 원작 / 교보문고(단행본)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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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 시험은 과거와는 달리 현재는 지원한 인재의 핵심 역량을 테스트하는 중요 절차로 간주됩니다. 하긴 이 사람이 우리 조직에서 어떤 책임감을 갖고 얼마나 성실히 일할지, 필기 시험의 점수만으로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면접 시험을 거쳐야, 그 사람의 인성과 태도, 총체적 역량이 비로소 가늠되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아무리 실력이 빼어나다 해도 짧은(요즘은 꼭 짧지만도 않지만), 시간 동안 자신의 강점을 면접관에게 어필하지 못한다면 정말 안타깝죠. 그래서 수험생들에게 이처럼 면접의 에센스를 추린 교재가 필요한 것이겠습니다. 이 교재에는 연계 인강, 강좌도 마련되었으니 필요한 사람들은 따로 신청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책 분량은 그리 많지 않지만 워낙 알차게 책이 짜여져서 책만 열심히 공부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20대 대기업, 그리고 20대 공공기관의 면접에 대비(p13)하는 체제입니다. 우리 나라의 청년들이 모두 들어가기를 선망하는 조직들이죠. 이런 곳에 취업하려면 물론 본인의 실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면접관들에게 나를 뽑아야만 한다는 분명한 인상을 심어 주는 게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p17에는 이런 공기업들과, 대기업 면접이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합니다. 우선 책에서는, 공기업 면접이라는 게 상대적으로 정형화되었다고 합니다. 대개, 일대다 형식의 직무수행능력 면접, 다대다 형식의 직업기초능력, 이 두 형식으로 진행된다는 거죠. 반면 대기업에서는 공공성보다는 수익성을 더 추구하는 인재상이며, 그 형식도 딱히 정해져 있지 않고 기업마다 다양하다고 나옵니다.

이 책에는 실제 면접장에서 나올 만한 다양한 질문들이 나옵니다. 또, 각 질문들은 아무 회사, 아무 기관에서나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라, 그 질문의 성격에 따라 나올 가능성이 높은 기관이 따로 있습니다. 이를테면 p80의 "인생관에 가장 큰 요인이 무엇인가요?"는, 성격상 어느 곳에서나 물어 볼 만한 질문이긴 하죠. 하지만 책에서는 새마을금고중앙회, 하나은행, 우리은행 기출이라며 이 문항이 금융기관에서 주로 출제되었다는 걸 밝힙니다.

또 이 교재의 좋은 점은, 베스트답안과 워스트답안을 같이 제시했다는 점입니다. 베스트답은 그러려니 하는데, 워스트답안이 왜 나오나 할 수 있습니다. 워스트라고 나온 것도 아주 형편없는 엉망진창은 아닙니다. p80에 나오는 워스트답안은 감동적이긴 하지만(?), 금융기관에 왜 입사하게 되었는지 그 동기를 밝혀 주는 답이 못 되기 때문에 워스트입니다. 반면 베스트에 나온 답안은, 이 기관이 이 지원자를 왜 채용해야 하는지 면접관도 채 생각하지 못한 바를 당당하게 소명합니다.

"지원한 직무에 가장 필요한 역량이 뭐라고 생각하나요?(p112)" 이 역시도, 워스트답안이 그렇게 나빠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직무 역량에 적실하게 필요한 내용은 아니며, 그저 끈기가 있다 정도로는 이 사람을 채용해야 할 충분한 이유를 설득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반면 베스트답안은, 반도체 설계 업무에 대한 확실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 직원이 주어진 과업을 확실하게 해 낼 것임이 기대되는 답변임이 분명합니다. 교재에는 상세한 설명이 딸려 있어서, 이를 바탕으로 수험생이 자체적으로  또하나의 베스트답안을 안출해 낼 수 있게끔 돕습니다.

입사햐려는 조직의 서비스와 제품에 대해 무조건 찬양 일변도일 필요는 없습니다.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개선할 부분이 있으면 지적을 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제품 불만을, 고객의 입장에서 말하는 건 곤란합니다. 사원은 이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지, 제3자 입장에서 클레임 제기하는 위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떤 답을 해야할까요? 내가 실망했다, 별로더라, 이런 감정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베스트답변에 나오는 대로, 심지어 경쟁사의 장점을 드는 한이 있어도, 대안을 제시하고 개선을 제안하는 형식이 되어야 한다고 알려 줍니다.

p200에서, 학교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걸 말하라고 하니, 짜릿한 야구부 우승 경험을 장황하게 말한다... 물론 자신에게는 가슴 벅차고 감격적인 체험일 것입니다. 그러나 면접관 입장에서는, 이 일이 자신들과 무슨 관계인가 싶을 겁니다. 베스트에 나온 답변은, 그 체험에서 내가 어떤 자질을 얻어내었는지, 그 자질이 이 조직에 어떤 도움이 될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답변이 바로 면접관이 원한 것입니다.

"정답은, 역지사지해서 자신이 면접관이면 무슨 답을 원하겠는가에 있다." 이 교재의 핵심은 바로 이 한 줄에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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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인사이트 - 예술에서 배우는 삶의 가치
김영애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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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36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족의 철제 하에 신음하다가 1945년 해방의 기쁨을 맞이했습니다. 그 기쁨도 잠시, 남북이 분단되고 좌우가 대립하여 급기야는 동족 상잔의 비극까지 이어졌습니다. 1945년부터 1948년 단정 수립까지를 보통 해방공간, 해방 정국이라 부르는데요. 신복룡 박사님의 이 묵직한 책을 보면 우리 민족이 그 기간 동안 얼마나 치열하게 장래를 모색하고 민족의 앞날을 설계하려 노력했는지 그 생생한 단면을 개관할 수 있습니다. 분량도 풍성하거니와 대석학의 원대한 통찰까지 지면 곳곳에 숨어 있기에 독자로서는 너무도 행복하면서도 유익한 독서가 가능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역사는 대개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 간 쟁패의 연속으로 채워졌습니다. p29를 보면 저자께서도 버나드로 몽고메리의 말을 인용하여 "결국 해양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의 패권자가 된다"고 소결론을 내십니다. 일본은 왜 그리도 잔인하거나 호전적이었나? 이에 대해서는 무려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에도 언급이 있다고 하시며, 이렇게 호전적이고 냉혈 기질이 다분한 그들, 집단의 명예와 가치를 위해 (자신을 포함하여) 개인의 목숨을 초개같이 버릴 것을 당연시하는 그들의 심성이, 바다를 지배하는 실력과 결합되었을 때 이웃 반도에 위치한 우리 겨레에 어떤 피해가 닥쳤는지는 이미 역사를 통해 우리가 확인한 바입니다.

언변 좋고, 부티 나고, 사회적 지위도 번듯한, 누구에게나 사랑 받는 사람, 아마도 우리 모두가 이런 유형이 되고 싶어하며 혹은 그런 사람과 친분을 맺길 원할 것입니다. 저자는 몽양 여운형을 가리켜 그런 축복 받은 인물이었겠다고 추정하며, 다만 이런 분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처럼, 해방공간에서처럼 좌와 우가 극렬히 대립하는 국면에서 과연 어떤 포지션을 취하는지, 양자를 조화롭게 중재하는 게 가장 바람직했겠으나 그런 고상하고 숭고한 시도가 좌절했을 때 어떤 비극이 초래되는지 실감나게 보여 준 위인이 바로 몽양 아니었겠냐는 취지로 말씀하십니다. 합리적인 중도가 설 자리가 없었다는 게 해방공간 비극의 한 국면이었음은 우리 모두가 통감하는 바입니다.

p147을 보면 저자의 참으로 심오한 통찰이 담긴 말씀이 나옵니다. 해방공간은 과연 좌우의 대립이라는 하나의 프레임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방울뱀도 동종의 공격에 대해서나 생사를 걸고 싸우지, 이종과의 대치 상태에서는 상대가 강하다 싶을 때 적정선에서 꼬리를 미리 내리는 게 보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같은 우파 내에서, 또는 좌파 안에서의 권력 투쟁이 더 심각했으며, 이승만과 백범의 갈등도 두 사람 모두 (각각의 이유에서) 임시정부의 법통을 대표하는 이들이었기에 더욱 심각성을 띠었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두 사람이 대등한 위치에서 대립했는지에 대해 저자는 회의적입니다. 백범은 올곧은 지사형 인물이었지 권력투쟁 쪽에는 무관심했으며 실제로 한 살 연상이었던 이승만에 대해서도 대체로는 형님 대접을 하며 양보하는 편이었다고 합니다. 반면 이승만은 우리 모두가 아는 대로 권력욕의 화신 같은 권위주의적 성격이었습니다.

"용서해라, 그러나 잊지는 말라"는 명언이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과거의 원한을 간직하고 살아야 할까요? 대체로 사람은 아무리 지독한 악몽에 대해서도 세월이 어느 정도 지나면 잊기 마련인데, 이는 머리가 나쁘거나 사람이 물러터져서가 아니라, 나쁜 기억을 갖고 사는 게 자신의 생리적 건강 유지에 해롭기 때문입니다. 전후 프랑스의 나치 부역자 색출 처단은 물론 긍정적인 면도 있었으나, 그저 생계 유지를 위해 적군에 몸을 허락했던 매춘부 등에 대한 린치, 마녀사냥, 사력구제 등 한심한 분풀이에 그쳤던 일부의 행태에 대해서는 이걸 자랑스러워할 게 아니라 반대로 자성의 대상으로 삼아야 합니다. 또 칼 야스페르스 역시, 뉘른베르크 재판은 진정한 전범자를 가리는 정의의 심판장이 아니라, 거꾸로 크고작은 공범자들이 자신만은 가담의 책임을 면하려고 더 큰 범죄자를 지목하기에 바빴던 위선의 퍼레이드였다는 취지로 말한 적 있었다고 p199에 나옵니다.

김일성은 과연 진짜 독립 운동가였을까요 아님 가짜를 덧칠한 과장일까요? 일단 나이 서른을 갓 넘긴 젊은 나이였다고 해서 그 많은 공훈이 그것만으로 부정될 근거는 되기 힘들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북측에서는 만주 일대의 가혹한 기후, 지형 조건을 고려할 때 오히려 젊은이라야 그런 행적이 가능하다는 식으로 옹호하기도 합니다. 반면, 만주 일대에서 벌어진 일련의 혁혁한 공적은 1920년대까지도 거슬러올라가는데, 그 많은 전승이 심지어 10대 시절의 김일성에게 낱낱이 귀속되는 게 과연 물리적으로 가능하냐는 상식 선의 반론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한국전은 과연 남침을 유도한 미국의 음모 같은 게 개재했었나? 이 역시도 근 70년 동안 불씨가 꺼지지 않고 이어지는 오래된 논쟁거리입니다. 미 국무성에서 유엔 담당 업무를 맡던 D W 웨인하우스가 이미 한국전이 발발하기도 전에, 침략자로서 북한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이미 마련했다는 것입니다. 수정주의도 두 갈래 입장이 있는데 하나는 브루스 쿠밍스(=커밍스)의 주장처럼 미국의 압도적인 구조적 유도 끝에 북한이 필연적으로 남침을 감행한, 사실상의 북침설이며, 다른 하나는 이 신복룡 박사님처럼 미국이 어설프게 뭔가 함정을 파 두기는 했었는데 우연도 다분히 개재하여 북한이 덜컥 미끼를 물었다는 입장입니다. 참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동안 신복룡 박사님의 이 주제에 한정된 어떤 압권(壓卷)이 하나 나왔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이 있었는데 마침 딱 맞게 이 멋진 신간이 출간되어 독자로서 너무 행복하고 책을 받아들어 읽게 된 자체가 영광입니다. 원래 주간조선에 연재되던 아티클을 모은 2017년 지식산업사판이 있었고, 이 신간은 그에 여운형, 김규식론, 남북협상 등의 화제가 더 보강되었습니다. 두고두고 읽으며 제 마음의 양식과 교양의 원천으로 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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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패턴 독일어 회화 - 내 인생 첫 번째 독일어 내 인생 첫 번째 시리즈
이로사 지음 / PUB.365(삼육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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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자율주행 시대가 열린다고 하지만 기술적, 법제적 난점이 언제쯤 말끔하게 해결될지는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동안 운전면허 보유자가 국내외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도 많고, 한국의 운전면허 시험은 인근 중국에 비해서는 쉬운 편이라고도 합니다. 또 이 책 표지에도 나오듯, 올해 10월부터는 1종도 오토(자동)로 면허를 딸 수 있게 되어 많은 젊은이들이 그간 바라던 바가 실현되기도 할 예정입니다. 보통 독학으로 운전면허를 딸 생각들은 잘 못하는 편인데, 생각해 보면 혼자서도 열심히 공부하여 필기건 실기건 통과하면 되며, 구태여 학원에 비싼 수강료를 내고 취득해야 할 이유야 없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어떤 시험이든 간에 어려운 유형이 따로 있습니다. p24에 나오듯 학과 시험에서는 숫자를 묻는 문제, 또는 정비 문제 유형이, 많은 수험생들이 힘들어하는 유형이라고 하겠습니다. 같은 페이지에 예시가 나오는데, 답은 ③배기량 125cc 이하, 정격출력 11kW 미만입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건 이하와 미만 단위를 반대로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점이겠습니다. 사실 정격출력이라는 말 자체가 상한선을 나타내므로 그 앞의 "최고"라는 수식어는 사실 중복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또 고속주행차량 타이어 이상의 두 경우를 고르는 문제가 정비형의 예시로 나왔는데, 답은 ②스탠딩웨이브 현상과 ④하이드로플레이닝 현상이 되겠습니다. 이 교재의 장점은, 오답인 ①베이퍼록 현상과 ③페이드 현상에 대해서도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두 현상은 고속 주행과는 큰 관계가 없습니다.

운전면허를 취득한 지 오래되고 경력도 긴 운전자들도 자주 틀리는 게 p43에 나오는 교차로 신호등 보는 법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물어 보면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실제 운전에서는 많은 운전자들이 무시하기 일쑤인데... 시험 시 기능장 내 교차로 신호등이 일반 도로의 신호등보다 신호 간격 주기가 짧다고 나옵니다. 또 교재에 특히 빨간색으로 처리된 부분이, "교차로 정지선 전에 신호등이 파란불이라고, 이걸 빨리 통과하려 들기보다는 다음 신호를 기다리라"는 문장입니다. 안전을 위하여 우리 운전자들이 명심해야 할 대목이겠습니다.

차량 후진이 초보자들에게는 참 어려운데, 이 교재에서 가장 잘된 부분이 바로 p50 이하에 나오는 수정 방법입니다. 저자는 특히 "공식대로 진행했더라도 수정 없이 한 번에 들어가려고 하면 조금의 위치 변화 때문에 탈선할 수 있다"고도 알려 줍니다. 윙 미러로 뒤를 보며 후진한 후, 핸들을 오른쪽으로 끝까지 꺾은 후, 기어를 후진(R)에서 전진(1단)으로 변속하고, 차량 적재함이 뒷부분 모서리에서 반대편 모서리의 중간까지만 전진하도록 주의하라는 게 이 대목의 포인트입니다. 마무리는 뒷바퀴가 하얀 확인선과 맨끝 황색선 사이에 들어가게만 하면, "확인되었습니다!"라는 멘트가 나온다고 하네요. 확인되었습니다 부분을 그냥 텍스트로 처리하지 않고 그래픽으로 보여 주는 데서 이 책의 편집센스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요즘은 책에 QR코드가 박힐 수 있으니, 책을 읽으면서도 저자가 직접 골라 둔 영상을, 이 QR코드를 통해 볼 수 있다는 점도 좋습니다. 운전자에게 가장 어려운 점 중 하나가 바로 차선바꾸기이겠는데, 초보자들은 겁이 나서 이럴 때 속도를 줄이곤 한다는 게 저자의 말씀입니다. 차량의 흐름에 방해를 주는 것은 물론, 위험천만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이 페이지(p73)에 찍힌 영상을 보면, 왜 차선 변경시에 속도를 줄이면 안 되는지, 어떤 위험이 초래될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p85를 보면 집에서 물 풍선을 만들어 발 밑에 두고 연습하면, 브레이크 페달을 밟을 때 유격을 느끼며 실수를 할 확률을 줄일 수 있다고도 나옵니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중요한 요령 중 하나는 복잡한 도로에서의 시선처리(p111)일 수도 있습니다. 옆 차량의 속도와 거리를 관찰하며, 동시에 윙미러로 옆 차선의 뒤 차량도 체크하라고 합니다. p113을 보면 출발할 때, 유지할 때, 가속 구간에서 엑셀 페달의 각도가 어떠해야 하는지가 그림을 통해 잘 나옵니다. 실기에서 특히 조심행야 할 포인트를 그림과 함께 요령껏 잘 짚어 주는 교재라서 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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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 영어
조정현 지음 / PUB.365(삼육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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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搜査)의 달인인 수사(修士). 우리말로는 묘하게 동음이의어 구조를 이루는 두 단어가 모두 이 주인공의 성격을 설명하는 데 쓰일 수 있습니다. 캐드펠은 명석한 두뇌를 가진, 박학하고 침착한 지성인의 전형입니다만 그 불타는 정열만큼은 최대한 자제하며 살아야 합니다. 평생의 순결을 서원하고 베네딕토 회 슈루즈베리 수도원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폐쇄된 공동체를 이루며 오로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순명하고, 청빈과 지식 정리에 모든 주의를 기울이는 이들의 모임치고는, 암투와 경쟁, 모함, 야망 등으로부터 기인한 복잡다단한 정치 싸움 때문에 그리 편안할 날이 없습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라도 비슷하리라 생각합니다.

노르만 인은 일광이 길지 않은 추운 고장에서 내려와 유럽 곳곳에 세력을 뻗쳤습니다. 프랑스 북서쪽에 거하던 노르망디 공 윌리엄은 브리튼 섬의 혼란을 틈타 해협을 건너와 잉글랜드를 정복하고 새 왕조를 열었습니다. 영어에 침투한 고급 프랑스어 어휘는 대부분 이때 들어온 것입니다. 시리즈 3권 서두에 잠시 언급될 스티븐 왕과 마틸다는 비생산적인 싸움을 벌이다 결국 노르만 왕조의 문을 닫는데, 이 1권 p16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콜롬바누스 수사(고위 성직자의 길을 통해 출세의 우회로를 닦는)는 그 노르만 귀족의 혈통을 이어받아 훤칠한 외모에 튼튼한 체격이 돋보이는 인물입니다("야심가들은 수도복을 입고서도 엄청나게 출세를 한다잖아요[p236]"). 이처럼, 수도원에 들어온 인물들의 동기는 모두 제각각이며 생김새나 기질, 특기도 천차만별입니다.

"농노가 자유민을 때리면 손목을 자르게 되어 있습니다.(p84)" 중세 신분제 사회가 배경이라 이처럼 비인도적 비합리적 인습도 도처에 가득합니다. 3권에서도 장원의 각종 비밀을 요긴하게 캐드팰에게 알려 주는 역이었던 앨프릭의 신분도 역시 농노였습니다. 여기에, 수천 년을 두고 이어진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항쟁 대립상도 여전하며, 떠돌이 베네드와 쇼네드 리샤르트 사이의 사랑도 갖가지 악폐가 낳은 장애물 때문에 순조롭게 풀리지 못합니다. 캐드펠 등이 던져진 중세 영국은 이런 사회입니다. 이 와중에 리샤르튼는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됩니다(p128).

잘 짜여진 추리소설은 일단 시신을 둘러싸고 그 위치, 자세, 주변 환경(밀실이라든가)에 대한 세팅이 무척이나 정교합니다. 이 사람이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이 모습으로 죽을 수 없었을 텐데... 사실 누군가를 범인으로 정하려면 구태여 죽음(살인)의 매 단계를 물리적으로 소명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2011년 경북 문경에서 일어난 십자가 살인사건의 경우도, 검경이 재판에서 밝힌 사건의 경위가 모두에게 납득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의 명탐정은 일단 상식선에서 제기되는 의문에 대해 최선을 다해 접근합니다. 이 의문이 풀리는 과정에서 진범의 정체도 자연스럽게 큰 단서를 노출합니다. "어떻게 얼굴을 바닥으로 한 채 쓰러지셨을까요?" "바로 그걸, 우리가 알아내야지."(p190)

카이, 아네스트나 쇼네드나 보통내기들이 아닙니다. 부수도원장 로버트나, 콜롬바누스 수도사는 이들 캐드펠의 동맹군들과 곳곳에서 부딪힙니다. 아무래도 영혼의 빛깔이 다르다보니 별것아닌 계제에서도 뭔가 서로를 밀어내게 되나 봅니다. "꼭 위니프리드 성녀가 자기 것이나 되는 양 큰소리를 치더라구요.(p275)" 성녀 위니프리드에 대해서는 p349에 후주로 설명되는데 은근히 이 작품 안에서 인문적으로 중요한 함의을 지니게 됩니다. 존 수사는 과연 집행관의 마수를 피해 신변의 안전을 꾀할 수 있을까요?

"열정 앞에, 격식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뼛속까지 웨일즈인인 여자였다.(p298)" 캐드펠(혹은 전지적 화자)이 쇼네드를 두고 내린 평가이며 우리 독자들도 그녀의 행보에 대해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중세적 억압도, 혹은 이후 수백 년에 걸쳐 전개된 역사의 흐름도, 소수 종족의 자존과 개성을 끝내 말살하지는 못하고 기어이 그 민족혼의 불씨를 살려 새 발전의 발판으로 마련합니다. 압제는 항쟁을 짓누를 수 없고, 거짓과 흉계는 진실의 불빛을 폐색할 수 없음을 명탐정 캐드펠은 화려하게 증명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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