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 괴물
김정용 지음 / 델피노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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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걸려 다 읽고 나서 참으로 마음이 무거워지는 작품이었습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서 이처럼 하루하루를 전투하듯 살아가는 걸까요? 니체는 일찍이 말한 적 있습니다. "괴물과 싸우는 자는 괴물이 되고 만다." 생(生)이란, 나를 먹어치우려는 천적, 나에게 적대적인 환경과의 지속적인 투쟁으로 채워집니다. 나에게 먹히는 피식자 역시, 제 생명을 걸고 필사적인 도주를 행하니 나의 일격을 피하는 순간 그가 바로 승자입니다. 약한 자는 약하게 태어난 대로 강자를 피하며 살아갈 방도가 있으니 세상이라는 격전장에서 누가 최후의 승자로 남을지는 아무도 모르나, 그 과정에서 상처만 가득 입은 채 내가 괴물로 남는다면 이는 너무도 슬픈 일 아닐지요.

(*문충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어려서부터 특별한 머리를 타고난 소년 서이준. 하지만 그의 재능이 마냥 축복만은 아니었습니다. "곧 모두의 날이 옵니다. 준비해야 합니다." 수수께끼 같은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날은 도둑처럼 온다. 준비 없이 그날을 맞는 자는 새신랑 앞에서 전혀 단장을 못했던 신부처럼 너무도 부끄러워질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형사 민성후는 모든 게 비틀어진 공간에서 중력과 에너지의 이질적 파동을 느끼듯, 이 천재소년의 괴이한 진술을 듣습니다. "죽은 사람은 슬프지 않잖아요. 왜 다른 사람들이 슬퍼하는 거죠?" 소년은 하나만 알고 둘을 알지 못합니다. 조문객들이란, 뭇 사람들이란, 원래 자신을 위해 이기적으로 울 뿐인 존재들입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조.효.익(p108)" 일부러 또박또박 끊어 읽는 이명도의 속셈이랄까 심리는 우리 독자들도 어느 정도는 눈치챌 수 있을 듯합니다. 회색 눈동자 증후군(p59, p228)이라고 들어 본 적 있을까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눈동자의 색이 변하는 현상인데, 다미앵이라는 광인이 16세기 중반 프랑스의 국왕 루이 15세를 암살하려 들었다가 잡혀 거열형에 처해진 적 있었습니다. 집행 중 그의 머리는 하얀 색으로 변했다고도 하죠. 사람의 신체는 환경의 극단적 변화를 겪으며 어떤 기이한 변화를 겪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돌연변이도, 진화의 급작스러운 발생도 어쩌면 비슷한 기제를 통하는지 모릅니다.

현해탄 건너 열도의 중심지 도쿄는 우리네 서울과 닮은 바도 많고, 갖은 음모와 탐욕이 판치는 현대 자본주의의 압축적 무대이기도 합니다. p174에서 민창진(민성후의 부. 현재 식물인간 상태)은 피를 말리는 긴장 상태에서 대체 무슨 운명이 그를 기다릴지 필사적으로 추론해 보지만 여전히 답은 오리무중입니다. 이케부쿠로[池袋]에서 구입한 선불폰이 그의 행적을 모호하게 가려줄 것으로 기대하지만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올리에라 호텔을 황급히 떠나, 저 멀리 후쿠시마의 대참변 뒤에 과연 어떤 사정이 숨어 있는지에 대해 생각만 해도 전율이 느껴지지만, 세상이 통째로 뒤집힐 만한 그 비밀은 누군가는 나서서 끝까지 지켜 내야만 합니다. 이치가 본래 그렇기 때문이죠.

권 실장(p232). 무책임한 사람입니다. 돌연한 사태의 진전에 대한 보고를 받고 격노한 모습을 보이지만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당신은 대체 무엇을 했냐고 질문 받는다면 그 입에서 어떤 변명이 나올까요? "자살로 위장한 타살(p252)!" 보통, 허탈한 블랙 유머로 "자살당했다"고도 하죠. 우리 주변에서는 이처럼 대체 무슨 곡절인지도 모른 채 여러 사람이 죽어나갑니다. 무서운 음모가 도사리는 시국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세상이 이럴진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평한 일상을 이어가며 천진난만하게 공터를 뛰노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놓여야 하는 건지 눈물이 주루룩 터져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천재 서이준은 답을 알고 있을까요.

아, 민성후는 드디어 권총을 집습니다(p275). 일이 여기까지 왔는데, 지독한 놈인 줄은 알았지만 그 역시도 놈에게 쉬이 양보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제 세상의 운명도 그의어깨가 지고 있는 셈, 건곤일척의 한판 싸움을 벌여야 할 때입니다. 방독면, 방독면. 세상에 그 어떤 독가스가 퍼져도 누군가는 나서서 사랑하는 사람과 죄 없는 영혼들을 구해 내야 합니다. 가능하면 그 과정에서 나도 내 자신으로 온전히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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