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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 - 세상의 모든 전략과 전술
임용한 지음, 손무 원작 / 교보문고(단행본) / 2025년 1월
평점 :
임용한 박사님은 국방TV에서 제작 방영했던 토전사 시리즈를 통해 큰 인기와 영향력을 얻은 분이며 사실 그 이전부터 전쟁사 관련 대중서 저술로 유명했던 분입니다. 최근 계엄령 사태에 대해서도 한 말씀을 남기기도 했는데, 지금도 YTN 등에서 틀어 주는 <전쟁과 사람> 몇몇 회차에 출연하여 허준 MC, 이세환 기자, 윤지연 아나운서 등과 함께 다시 좋은 컨텐츠를 만드시는 모습을 보면 시청자로서 반갑기도 합니다.
(*책좋사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손자병법>은 인간의 본성을 꿰뚫어보는 통찰이 담겼기에 이천오백년이 지난 지금도 고전으로 존중됩니다. 임 박사님도 토전사 등에서 기록만으로는 알 수 없는 사건 이면의 독특한 사정이나 맥락을 잘 짚어 주기에, 해당 고전의 주해자로서 이보다 더 적격인 분이 없다 싶었습니다. 책을 받아보고 큰 기대감을 갖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손자병법은 모두 13편으로 되었는데 임 박사님도 이 편제에 맞춰 내용을 이어갑니다. 역시 임 박사님답게 동서고금의 중요 전쟁사를 자유자재로 원용하며 이 오랜 동아시아 고전의 내용에 생생한 주해를 달며 원전의 볼륨을 훨씬 풍성하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p122(제3편 謀攻 중) 같은 곳을 보면, "병력이 대단히 열세이면 전투를 피한다"는 구절에 대해, 저자는 이게 정말로 항전을 포기한다는 뜻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 속에서 그나마 최선인 방법을 모색한다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같은 말이라 해도 수백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르면 의미라는 게 바뀌게 마련입니다. 또 워낙에 중국이란 나라가 땅이 넓다 보니, 이 전선에서 일이 잘 안 풀리면 다른 theater에서 재도전을 모색한다는 뜻도 관용적으로 품는다는 의견을 저자는 제시하는데, 임 박사님의 책들은 이런 독자적이고 살짝 변칙적이기도 한 해석의 독창성이 그 읽는 맛 중 하니입니다.
p123에서 저자는 분진합격(分進合擊)이라는 전법에 대해 설명합니다. 이는 12세기 몽골 기병들이 본격적으로 발전시킨 택틱스라고 할 만한데, "여러 개의 여단으로 산개(散開)하여" 하나의 목표를 향해 돌진하다 결정적 타깃 앞에서 가공할 만한 위력으로 적을 타격하는 것입니다. 이런 공격의 위력이란 이치상으로 누구라도 납득하고 상상할 만하지만, 몽골 군대의 특별한 성공 비법이 있었다면 그건 그들만이 실전에서 구현할 수 있었던 기동력 덕분일 것입니다. 또 저자는 십자군의 요새 운용법에 대해, 부족한 병력을 기술로 대신했다고 진단하는데, 크라크 데 슈발리에(Crac des chevaliers)가 <손자병법>의 "적은 분산, 아군은 집결" 원칙을 저 성채라는 구조물로 달성했다는 탁월한 분석이 있습니다.
"수비는 내게 남음이 있게 하고, 공격은 적이 부족함이 있게 하는 것이다(p181)." 임 박사는 이 구절을 두고, 손자병법에서 가장 난해하다는 평가를 소개합니다. 이 구절은 제4편 형(形)에 나오는데 4편의 제목은 진형(陳形)이라고도 칭합니다. 바로 앞 페이지에서 저자는 태평양전쟁의 시발점이 된 진주만 폭격에서, 왜 미군을 더 철저히 무력화할 수 있었던 유류저장고 파괴를 단행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평소의 지론을 다시 전개합니다. 토전사 해당 에피소드를 시청한 이들에게는 익숙할 듯합니다. 이어 저자는 독소전으로 화제를 옮겨, 의도는 아니었다고 해도 소련군 포로의 엄청난 숫자가 결과적으로 독일군의 자유로운 기동에 큰 방해가 되었음을 지적합니다.
기세(氣勢). 사람 사이의 싸움이라는 게 참 묘해서 분명 어느 한쪽의 역량이 상대방에 크게 못 미쳐도, 이 기세라는 것이 뜻밖의 국면에서 작용하기라도 하면, 마치 1526년의 파니파트 전투처럼, 명백한 언더독 바부르가 이브라힘 로디를 패퇴시킨 결과가 나오기도 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p238에서 이릉의 전투를 분석하며, 적의 기세에 휘둘리지 말고 나의 기세를 조절할 줄 알라는 문장으로 이 장의 취지를 요약합니다.
1차 대전 직전 독일 육군은 필승의 방책이라 할 슐리펜 작전을 마련해 두었으나, "지나치게 대담한 계획이었던 탓에 독일 참모본부의 심장이 나약해진 탓으로(p286)"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고 저자는 결론내립니다. 반대로 2차 대전 때에는 간이 부은 히틀러가 만슈타인의 낫질 작전을 기다렸다는 듯 승인하여, 허를 찔린 프랑스 육군을 대파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기세" 라면 바로 이런 걸 두고 이름이겠는데, 요아힘 페스트 같은 이는 그저 "도박꾼의 행운"으로 평가절하하기도 했습니다.
제11편 구지(九地)에는 박사님 말씀대로 현대인의 감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용어들이 자주 쓰입니다. 사실 <손자병법>뿐 아니라 중국 고전 대부분이 이와 같습니다. 박사님은, 어렵게 파고들면 한도끝도없이 어려운 이 고전에 대해 최대한 쉽게, 또 박사님의 장기인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하며 경쾌하게 해석해 줍니다. 지금으로부터 1800년 전에는 위 무제(조조)가 주석을 달았고, 이제 인류의 간교한 지혜가 끝을 모르고 발달한 현황을 낱낱이 반영하여, 박식한 임 박사님이 고전에 이처럼이나 팔팔 뛰는 생명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손자병법의 타이틀을 빌린 세계전쟁사로 읽어도 되겠으며, 버나드 로 몽고메리의 책보다 더 실용적이고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