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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다면 니체를 만나라
이동용 지음 / 초록북스 / 2024년 9월
평점 :
니체는 마치, 현대인이 앞으로 앓게 될 모든 정신적 고뇌를 혼자 도맡아 선제적으로 앓아 내기라도 한 듯, 진정한 초인이라고 할 수 있는 철학적 천재입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그에 걸맞게 성숙한 세계관이 몸에 배어야 하는데, 니체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 일생을 두고 한 번도 맞닥뜨리지 못할 추싱적인 난제를 다룬 딴세상의 신선이 아니라, 어른이라면 누구나 골머리를 앓고 갈등했을 만한 이슈에 대해 감각적이고도 직관적인 언어로 그 해명을 시도했기에 우리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지난 시대의 독일인이기에 한국 독자에게는 여전히 거리감이 있을 수 있는데, 저자 이동용 박사님이 더욱 쉽고 일상적인 설명으로, 더 멋진 어른이 되고 싶은 우리들에게 속시원하게 풀어 주십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사자도 자신의 먹잇감이 된 동물에 대해 사냥을 마치고 경멸감을 느낄까요? 이 책 p79에서 <차라투스트라....>를 재인용한 구절이 잘 설명하듯, 사람은 무엇인가에 대해 경멸을 표출하는, 좀 독특한 감정 성향을 지닌 존재입니다. 그 경멸감이란 약하고 무능하고 열등한(그렇게 판단되는) 무엇인가에 대해 느끼는 단순한 우월감일 수도 있고, 나 자신이 저런 무기력하고 위험한 상태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되겠다는 어떤 위기감이 그리 발현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간에, 대체로 인간은 (만약 그가 성숙한 어른이라면) 그런 경멸감을 느끼는 자신에 대해 그리 편한 태도를 취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약한 타자에 대한 경멸감이라면, 아 내가 이래서는 곤란하겠다며 비겁한 자신에 대해 책망할 줄도 압니다. 만약 내 자신에 대한 경멸이라면, 그게 경멸감 같은 낮은 차원의 감정에 계속 머물게 하지 않고 더 높은 차원으로 오르게 스스로를 재촉할 줄도 압니다.
그러나 니체는 이런 경멸감에 대해, 스스로를 애써 부정하지 말고 좀 더 솔직해질 것을 권합니다. 일단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건 그 자체로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어떤 감정이 솟아오를 때 일일이 이를 성현, 석학의 가르침에 대응하여 더 고상한 무엇으로 치환하는 건 대단히 피곤할 뿐 아니라 아무나 수행할 수도 없는 과업이라고 하겠습니다. 니체는 구태여 감정을 속일 게 아니라, 있는 힘껏 한계에 부딪혀 과연 내 자신이 경멸받아 마땅한 저 다른 패배자들과 같아질지, 아니면 그 한계를 뛰어넘는, 이전의 나와는 다른 차원으로 도약할지, 현실의 좌표에서 어디 나 자신을 제대로 점검해 보라고 합니다. 어떤 안온한 울타리 안에서 나 자신을 과잉보호할 게 아니라, 승리자와 패배자 사이에서 과연 내가 어느 그룹에 속할지 칼 같은 잣대로 숨김없이 회피않고 마주쳐 보라고 외칩니다.
독일어의 Wildnis, 영어의 wildness도 우리말로 옮길 때 오해를 사기 좋은 단어들입니다. p158에서 저자께서 잘 설명하시듯이, 이걸 구태여 황야 등으로 옮기기보다, 야생, 야만, 자유분방 등을 뜻하게 번역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니체의 심상에서 사자가 궁극적으로 드러내는 바는 바로 "자유"입니다. 사자는 야생에서 절대 강자이기에 그 무엇에도 예속되지 않으며, 어떤 강제력 앞에 쉽게 굴할 필요도 없습니다. 물론 사자 역시 자신보다 강하거나 덩치가 큰, 기린, 코끼리, 코뿔소 등 앞에서 때로 목숨을 건 사냥을 감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비겁하게 타자의 폭력 행사 앞에서 물러날 필요까지는 없기에, 사자의 삶은 호쾌하고 사내다우며 행여 일격을 당하고 사바나의 그늘에 피흘려 눕더라도 그의 여생에 아무런 회한이 없습니다. p159에 잘 나오듯, 끝없이 이어지는 도전의 사슬을 지혜롭고 끈기 있게 풀어나갈망정 운명 앞에 체념하거나 비참하게 좌절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사자의 삶이요, 또 자유로운 인간의 지향이라야 합니다.
p170에 잘 나오듯, 니체는 흔히 "신은 죽었다"는 말을 한 철학자로 알려졌습니다. 자 그럼 신이 죽었으니, 악마는 세상 살판났다는 듯이 설치는 세상이 되었다는 뜻일까요? 악마가 그토록 득세하게 되었다면 우리 인간은 윤리 도덕은 땅바닥에 갖다버리고 악마의 길을 따르면 그만일까요? 니체는 그런 말을 하고자 한 게 아니라, 그리스도교가 은연중에 사람들의 마음에 심은 패배주의, 수동적 삶, 세상의 악에 끌려나니며 마침내 굴복할 수밖에 없는 노예적 평화주의 따위를 비판하려 들었던 것입니다. 니체가 말한 신이 죽었다는 건, 사문화한 규범에 더이상 기대지 말고, 십계명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나를 지켜 주겠거니 막연히 의지하지 말고, 내 인생은 내가 싸워서 쟁취하고 개척해 나간다는 의지를 다지라는 뜻으로 우리는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그게 바로 니체가 말한 자유인의 삶이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