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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그 화석이 된 흔적들
홍긍표 지음 / 반달뜨는꽃섬 / 2024년 8월
평점 :
우리는 모두 아름다운 추억을 먹고사는 존재들입니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풍족해도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이 내 영혼을 지탱해 주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런저런 현재의 바람 앞에 결국은 한쪽으로 쓰러지는 오외로운 나무 신세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저자께서는 평생 교편을 잡으시고 이제 정년을 맞아 중국의 고등 교육 기관으로 소속을 옮기시는 교육자이시며, 이 예쁜 책 안에 자신의 지난 인생 소중한 추억을 담으시어 우리들 후학에게 소중한 가르침을 전수하십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47 이하에는 "꽃상여를 볼 수 있을까?"라는 제목 하에 참으로 심오한 교훈이 전개됩니다. 저자님 등 동료분들의 부모님들께서는 거의 구순 가까이되는 연세에 별세하신지라 다들 호상(好喪)이라며 지나친 비통보다는 가벼운 농담도 오가는 분위기였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나를 세상에 낳아 주시고 어렸을 시절 보설펴 주신 부모님을 이제 세상에서 영원히 볼 수 없다고 생각하면, 어찌 그 마음이 미어지지 않겠습니까. 저자께서는 인생의 신산을 두루 겪으신 분들만이 들려 줄 수 있는 따스한 말씀, 그리고 개인적인 회고를 곁들여 우리들의 마음을 촉촉히 적십니다.
선생께서는 예순을 넘기신 연세입니다. 이때라면 나라가 아직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아이들도 즐겁게 시간을 보내며 놀거리가 극히 제한되었던 시절이라 하겠습니다. 저자께서는 책 p57 이하에 그림까지 곁들이며 아무것도 없던 시절 자연을 벗삼아 잘만 놀던 어린이들이 과연 무엇을 벗삼아 소일했는지 저게히 설명해 주십니다. 과연 우리는 이처럼 풍요로운 세상에서, 우리에게 큰 선물을 주고 떠난 우리들의 앞선 선배들, 조상들에게 합당한 감사를 표하고 사는 중일까요, 아니면 은혜를 까맣게 잊고 말초적인 향락에 젖어 불건전하고 무의미하게 세월을 죽일 뿐인 걸까요.
우리네 국토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명승지가 많습니다. 전라남도 고흥군에는 신양선착장이라는 곳이 있고, 연홍도(延洪島)라는 절경의 섬이 있는데 저자께서 친지들과 함께 여행을 다녀오시고 이 책 p144 이하에 그 기행문을 적어 두셨습니다. 사진이 설령 없다 해도 우리 나라 다도해 기행문은 장소가 워낙 장소이다 보니 관광객들에게 자연스러운 흥취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런 글들은 같은 한국인이라면 마음 속에 공감의 파도를 절로 일게 하여, 한 번이라도 다녀온 사람이건 그렇지 않건 간에 풍경에 대한 파도치는 감회와 설렘을 마음 속에 매우 자연스럽게 생성하기 마련입니다. 홍긍표 저자님의 이 부분 기행문도 그렇습니다.
18세기말에 조엄이 한반도에 처음 들여온 고구마는 맛도 좋고 영양도 풍부하여 현대에 이르러서도 널리 사랑받는 작물입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전라남도 여러 곳에서 자라는데, 저자께서는 이 고구마에 대한 추억이 어려서부터 참 많으셨던 모양입니다. p97 이하에 상세히 이어지는 사연은 아마도 홍긍표 선생님과 비슷한 연배의 독자들께 무궁무진한 추억의 연상과 공감을 불러일으킬 듯합니다. 선생께서도 표현하듯 이 작물은 경신대기근 무렵부터 기후 변화로 기근에 시달리던 한국인들에게 구황 작물 노릇을 톡톡히 했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는 웰빙식(食) 메뉴로도 많은 기여를 하는 중이죠.
p183에는 비익조, 연리지라는 말이 나옵니다. 연리지라는 말은, 저자 말씀대로 요즘 예식장에 자주 쓰이는 단어이기도 한데 그 뜻을 알면 참 예쁜 말이 과연 그럴 만해서 자주도 쓰이는구나 생각이 듭니다. 왕소군(p157)은 전한(前漢) 대를 산 비운의 궁녀, 미인인데,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동방규의 유명한 시구에도 등장하여 후대의 독자들에게 더욱 크게 어필한 문학적 모티브입니다. 하동은 경남, 광양은 전남이 그 행정상의 소속인데, 이 두 고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바짝 붙어 있죠. 하동의 명물 녹차, 광양의 상징(제철소와 더불어)인 매화에 대해 구수하게 풀어 주시는 이야기를 들어 보면, 중국의 대학생들도 저자로부터 참으로 소중한 가르침을 들을 듯하여 부러운 마음이 절로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