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닮고 싶은 창의융합 인재 3
김창회 지음, 강윤정 그림, 와이즈만 영재교육연구소 감수, 손영운 / 와이즈만BOOKs(와이즈만북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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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는 일찍이 없던 자유롭고 창의적인 상상의 세계를 무대 위에 마음껏 펼쳐 놓고, 자신과 같은 시대 청중들에게 최고의 사랑을 받았던 작가, 예능인이었다는 점에서 융합인재의 첫손에 꼽힐 만합니다. 표현과 비유가 천재적이었다는 사실은 단지 말재주의 세련되었다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사물과 관념을 그 이전과는 다른 관점에서 볼 줄 알았고, 이를 다른 이들에게 풍성한 색깔을 띤 언어로 가르칠 수 있었다는 뜻도 되죠. 신기하게도 셰익스피어는 아직 근대 영어가 제 모습을 갖추기 이전의 꼴로 작품 활동을 했지만, 현대 영어 원어민들이 (고어[古語]에 대한 지식 없이) 읽어도 그 생동하는 활기와 천재적 영감이 주는 전율이 그대로 느껴진다고 합니다. 시대를 초월하여 널리 읽히고 여전히 사랑 받는 모습을 보면 셰익스피어가 과연 현대적 의미의 창의인재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들에게도, 이런 이유에서 셰익스피어는 닮고 싶은 인재의 대표, 모범이겠지요.



주희도 격물치지(사물과 자연, 인간 사는 모습을 연구하여 그로부터 진리를 깨우침)를 강조했습니다만, 어린 셰익스피어는 스트랫퍼드(온 에이번)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성장하며, 풀밭에 날아다니는 풍뎅이의 모습 하나에도 그에 알맞은 표현을 떠올릴 만큼 재능이 뛰어났다고 이 책에 나옵니다. 우리도 큰 인물은 도시 아닌 시골에서 성장해야 감수성이 자극 받고 다양한 상상력을 어른이 되어서까지 지닐 수 있다고들 하죠. <한여름밤의 꿈> 등에 나오는 다채로운 표현은 이런 어린 시절의 자극으로부터 든든한 창작 소양을 갖추게 된 보낸 그만이 구사할 수 있는 솜씨라는 게 저자님의 주장입니다. 과연 그럴 것 같아요.

셰익스피어의 아버지는 대단히 엄격한 방식으로 아들을 가르쳤다고 책에 나옵니다. 이분뿐 아니라 이 시절 잉글랜드의 많은 부모님들은 그런 식으로 애들을 키웠다고 하는데요. 윌리엄이 다섯 살 되던 해에 부모님은 "문법 학교"에 입학시켜 체계적인 교육을 받게 합니다. <좋으실 대로>에 보면 마치 달팽이가 기어가듯, 마지못한 태도로 아침에 등교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묘사한 대목이 있는데, 이게 아마 이 시절 자신의 추억을 회고하며 창작에 반영한 게 아닐지 하는 작가님의 추측이 책에 나옵니다. 이 학교를 졸업한 후엔 다시 "킹즈 뉴 스쿨"에 다녔는데, 여기서 그는 라틴어, 그리스 어 등 유럽의 고전 문학에 접할 필수 수단일 여러 언어를 배웁니다. 라틴어는 그저 과거의 문예가 기록된 언어일 뿐 아니라, 그 엄정한 문법과 체계적인 어법을 배우면서 말과 생각을 정확히 표현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죠.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표현이 기발한 것 외에도, 고급스럽고 규범을 (알고보면) 정확히 지키는 양식적 우월함으로도 유명합니다.



어린 윌리엄은 특히 오비디우스의 작품을 해석할 때 반에서 가장 탁월한 실력을 보이고 이 때문에 젠킨스 선생님으로부터의 칭찬이 자자하군요. 삽화를 봐도 총명한 그의 모습이 잘 나와서 보는 독자도 마음이 흐뭇~합니다. 친구와 하굣길에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윌리엄은 커서 훌륭한 극작가가 될 꿈에 부풉니다. 친구는 걱정이 되어 이렇게 말하네요. "그렇게 책을 많이 읽다 머리가 터지면 어쩌려구 그래?" 으악! 다행히도 셰익스피어는 머리숱이 좀 적어지는 정도에 그쳤지만 말이죠. 작가님의 말에 의하면, 어린 윌리엄은 그저 신화나 고전 속의 이야기를 즐겼던 게 아니라 "이야기 속에 숨어 있는 사람들의 생각, 생활 방식, 가치관" 등에 대해 깊은 사색을 할 줄 알았다는군요. 훗날 셰익스피어가 희곡 속의 인물 그 성격 창조에 대해 탁월한 솜씨를 보인 건 모두 이 시절의 깊은 생각과 교육의 덕분이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네요.

여기서 작가님의 말을 잠시 인용하겠습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것을 새롭게 창조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하지만 존재하는 지식을 상황에 맞게 고치거나, 다른 분야에 적절히 응용할 수 있다면, 그런 어려운 일도 척척 해 낼 수 있습니다. 셰익스피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지요." (p53)

셰익스피어는 가게에서 아버지의 일을 도우며, 많은 직종, 직업의 사람들을 접하고 그들이 쓰는 언어 습관, 행동의 특징을 눈여겨 관찰했다고 합니다. <베니스의 상인> 등에서 그가 그처럼 법률 용어와 관행, 제도의 운영 원리를 잘 알고 작품에 배경으로 적용할 수 있었던 건 이런 이유가 컸다고 하는군요(법률가, 혹은 송사에 휘말린 손님들의 이야기를 옆에서 경청함). 꼭 천재라서 이런 재능의 계발이 가능했다기보다, 주어진 시간과 집중력을 알차게 사용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가능할 수 있는 창의융합인재의 길이라고 받아들이겠습니다.



"이봐요 젊은이, 연극이 어린애 장난인 줄 아쇼?(극장을 처음 찾아온 셰익스피어에게 어느 단원이)" (p61)
"여봐, 극장이 너무 더러우니 정리 좀 해 주지 않겠나?" (p63)
"뭐야, 저 얼굴 좀 봐! 벌게진 게 꼭 으깬 토마토 같지 않나? 하하하 (대사를 잊은 초보 배우인 그에게 관객들이) (p66)

이처럼 배우로서 셰익스피어는 무대에서 지나치게 긴장하거나, 대사를 까먹는 등 초보 시절 부족한 점도 너무 많았다네요. 그러다가 단역, 조연 배우로나마 차츰 자리를 잡아갔는데요. 이때 그의 뛰어났던 결단이라면 "다른 영역"에도 눈을 돌릴 마음을 과감히 먹었다는 점이겠습니다. 확실히 사회에 첫발을 디디는 그 고비에선, 학벌이라든가 인맥이 경험 없는 젊은이에게 반드시 필요한 게 현실입니다. 이 책에는 이른바 "대학 재사(university wits)"라고 해서,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등 명문대를 갓 졸업한 젊은 인재들이, 셰익스피어 같은 저학력 경쟁자가 나타나면 조소를 퍼붓곤 했다는 일화도 나와 있습니다. 창의인재의 꿈도 좋지만, 학과 공부도 열심히 병행해서 셰익스피어와 같은 곤란을 겪지 않는 것도 때로 필요할 것 같아요!



"이보게, 오늘 공연도 매진이야!"
"관객들이 소리 지르고, 울고 웃고, 아주 반응이 대단했어!" (p74)

이처럼 자신만의 방법으로 재능을 갈고닦았던 셰익스피어는 불과 스물 여덟의 나이에, 극장가 최고의 스타 극작가로 대중 사이에 각인됩니다. 이때 로버트 그린이란 문인은 "우리들의 깃털로 아름답게 치장한, 벼락출세한 까마귀"라며 호되게 셰익스피어를 비난했는데요. 이런 태도는 어린이들이 본받아선 안 되지만 왜 그렇게 엘리트 그룹이 그를 싫어했는지 책에 실린 그린의 원문을 읽고 한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도 있겠어요(설령 온당치 못한 이유라고 해도).

흑사병의 유행, 연극계에 대한 정부의 탄압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시집 <비너스와 아도니스>의 성공, 창작 소네트가 (특히 젊은 독자들 사이에서) 받은 열띤 호응 등으로, 이제 그의 앞날에는 거칠 것이 없어 보였죠. 리처드 버비지, 윌리엄 켐프 등과 협력하여 로드 체임벌린즈 멘 극단을 크게 키운 그는, 이제 경영인으로서도 여왕에게 인정 받는 두드러진 거물이 됩니다. 여기서 작가는 그를 가리켜, "많은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르네상스형 인간"으로 평가합니다. 이 역시 창의융합형 인재상과 통하는 부분이죠.

이런 그에게도 작지 않은 시련이 찾아왔으니, 아들 햄닛(Hamnet)의 때이른 죽음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그는 술집에서 서로 크게 다투는 젊은 극작가(이제는 그가 이런 젊은 인력들을 건사하고 육성해야 할 위치가 되었어요)들이 다투는 소리를 듣고, 연극이나 문예로서의 각본이 추구해야 할 바가 궁극적으로 무엇인지 크게 고민합니다. 이런 고뇌의 산물이 바로 그의 커리어 후반에 창작된 여러 비극들입니다. 희극도 높은 완성도를 보이지만, 생의 본질과 영혼의 심연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은 비극이 더 높은 평가를 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작가님의 결론은 이거네요. "경험과 관찰을 결합시킨 창의력". 확실히 그의 작품은 일찍이 대중 문예, 본격 문학이 짚거나 꿰뚫지 못했던 여러 국면을 생생히 잡아내었고, 말년에는 기교를 떠나 주제와 극 전개에 있어 여태 없던 성숙함과 심오함까지 보였습니다. 벤 존슨의 유명한 애도사로 책은 마무리되네요. "나의 셰익스피어여 일어나시오! 그대는 한 시대의 인간이 아니라, 모든 시대에 속하는 위인이었소."

세익스피어의 시대에 대한 친절한 설명, 어려운 말에 대한 자세한 해설이 나오는데다, 여러 도판에 대한 출처까지 다 달려 있어서 좋습니다. 물론 창작 일러스트가 더 비중이 높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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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렛 아워 - 우리가 언젠가 마주할 삶의 마지막 순간
케이티 로이프 지음, 강주헌 옮김 / 갤리온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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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모든 시작에는 그 끝이 있게 마련이다." 영화 <매트릭스>의 명대사가 다시 짚어준 진리가 꼭 아니라도 인간은 이미, 한 번 있었던 자신의 출생이 언젠가는 "죽음"으로 대칭적 마무리를 갖는다는 걸 알고들 있었죠. 아직 젊었을 때는 자신의 청춘이 영원히 이렇게 이어질 줄로만 기대합니다. 이 책의 저자께서도 냉소적으로 표현하듯, 그러나 그런 헛된 믿음은 대개는 거울 한 번의 응시만으로도 흔들리겠는데요(예외도 있지만). 우리가 딛고 선 평면, 차원 외에 지평선 저 너머에 몸을 숨긴 진리를 묵시(reveal)한다고 믿어지는 뛰어난 작가들, 혹은 위대한 지성들은, 이 "죽음"에 대해 어떤 태도로 자신의 것들을 그 최후의 순간에 맞이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의 서문에도 나오지만, "바이올렛 아워(violet hour)"란 인간의 영혼이 죽음 즈음에 체감하는 그 아득하고도 무섭고, 신비로우면서도 영원에 닿을 듯한 그 주관적 시간을 뜻합니다. T S 엘리엇의 長詩 <황무지>에 나오는 표현이죠. 죽음의 영접을 혹 색으로 표현하자면 정말 제비꽃과 같은 빛일까요? 그럴 법하다고 여긴다면 평소에 진지한 생각을 해 본 분일테고, 모르겠다는 답이 나온다면 아직 나이가 어리거나, 생에 대해 그리 진지한 태도를 안 가져 본 분일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건 간에, 죽음은 그로부터 환영을 받건 말건, 제 때가 되면 찾아가는 손님이죠. 우드로 윌슨 밑에서 부통령을 지낸 토머스 마셜은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장례식에서 이런 弔辭를 했습니다. "죽음은 그가 잠든 동안 찾아와 영원으로 안내했으니, 이는 혹 그가 깨어있었을 시 벌어졌을 법한 다툼을 막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성질 드센 이라도 사신과 싸워 이길 수는 없음을 잘 표현하는 일화입니다.

사신이 와서 갈 길을 청해도 쉽게 따르지 않았을 것만 같은 이들 중의 하나로 대뜸 떠오를 만한 위인이 정신분석학의 개조 지그문트 프로이트인데, 마침 작가님도 책의 첫 주제로 이 사람의 죽음 그 즈음을 다룹니다. 그는 잘 알려진 것처럼 비범한 두뇌의 활력, 명철한 지성, 거의 독재자에 가까웠던 고집과 의지, 독선적 성품 때문에 주위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든 편이었죠. 이런 분이 만약, 낯선 죽음이 이제부터 친구 하자고 찾아오면, 그리 고분고분 교류에 소통에 응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그는 종양(구강암) 때문에 말년에 극심한 고통을 겪었으나, 모르핀 기타 진통제의 투여를 일절 거부했다고 합니다. 이 책에는 프랑스 어느 문호의 모 작품(그가 그 무렵 읽던 중인)에 나오는 묘사대로, 행여 자신과 같은 대 지성이 약물의 효과 때문에 정신이 다소라도 흐려지는 지경까지 가는 걸 거부해서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꼭 그 작품의 영향이 아니라도, 의사인 그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정신에 대한 통제의 고삐를, 외인(外因)적 처방의 손에 조금이라도 넘겨 주지 않으려 한, 어느 한 순간이라도  자신이 그 자신의 주인이고 싶어 한 집념의 소산이라 이해하는 게 온당하고 공정하겠습니다.

수전 손택은 이른바 "대중 문화의 퍼스트레이디"라는 찬사를 받으며 20세기 후반 미국 문화평론(그 자신은 평론의 가치를 높이 두지 않았지만)을 이끈 참여형 지식인입니다. 2004년 타계했을 때 한국에서도 그녀의 저작들이 새삼 주목을 받았을 만큼 지명도가 높은데요. 권력과 미디어가 때로는 헛된 명분, 때로는 더러운 사익 추구를 위해 날조하는 거짓을 그리도 몸서리치며 혐오, 배격, 고발한 그녀였지만 역시 연약한 육신을 지닌 인간에 불과했는지 자신의 건강과 영혼의 평온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주관적 환상을, 특히 말년에 갈수록, 지어내면서까지 선호했던 편이었다고 합니다. 웬만해서는 사후의 상태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없었는지, 지인의 안내로 불가의 교리도 접해 보았지만, 당찬 그녀 답게 대뜸 나온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부처님이 참 매력적이더라고, 하지만 내겐 그 가르침들이 헛소리에 불과했어!" 그는 병세가 점점 악화되었을 때 이처럼 힘없이 고백하기도 했다는군요. "언제나 운이 좋았던 나지만, 이번에는 행운이 내 편이 아닌 것 같다." 이런 말들에서, 재능 있고 그 재능에 자부와 확신을 가졌으며 자신의 의지로 세파를 헤쳐 나간 이들의 공통된 attitude(생전의)가 보이는 것 같네요. 손택의 간병인 중 특히 친했던 피터 페론을 저자가 직접 만나 증언, 회고를 받아적어서 이 파트가 특히 역사적 가치까지 유지합니다. 애써 죽음의 공포를, "신화"까지 만들어 회피한 그녀의 심리에는 비교적 어린 시절 부친의 죽음을 목도한 그 기억이 큰 몫을 차지했다고 짐작합니다.

어떤 소설가들은 편집, 강박, 자기 도취 등 별의별 괴벽을 끝까지 지키려 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의 재능은 신의 선물인데,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면 어쩌지?" 헤밍웨이도 그러했고, 작가는 아니지만 정치적 시인이었던 (개인적으로 얼마 전에 평전을 읽고 리뷰도 썼던) 무함마드도 그런 타입이더군요. <달려라 토끼>로 유명한 존 업다이크 역시 갖가지 자기만의 강박과 습성에서 안 빠져 나오려 애쓰고, 그런 모습이 더 화제를 탄 소설가인데요. 이 사람은 이언 매큐언과 주고받은 서신에서도 짐짓 과장된(그로써 타인에게 위안을 받으려는) self-pity를 드러냈는데, 이게 다 자기애의 한 표현에 지나지 않죠. 그는 잘 알려진 대로 "여성과의 성행위가 작가로서 자신의 소양, 영감 등에 특별한 원천이 된다"고 진심으로 믿었으며, 이런 취향, 생활 태도를 공개적으로 옹호하기까지 하여 일각으로부터 빈축을 샀습니다. 책에 인용된, 그 자신의 회고록 <자의식> 중의 유머러스한(이게 유머가 아니라면, 모럴에 분명 문제가 있는 사람) 어느 문장처럼 "명철한 의식을 얻기 위해 카를 바르트를 읽고, 다른 남자들의 아내들과 사랑에 빠진" 그는 항상 이런 식으로 정신의 선도를 유지했죠(전 처음에 롤랑 바르트의 오타인 줄).

특히 시인들은 그 격정적 기질 때문에 비교적 이른 나이에 죽음을 맞기도 합니다. 딜런 토머스는 이 책에서 표현하는 대로 "스무 살의 나이에 정말 혜성처럼 문단에 데뷔한" 천재 시인이었죠. 그가 체질적으로 약하게 태어난 탓도 있겠지만, 시사주간 <타임>이 노골적으로 지적했듯 그는 (요즘 정확히 개정된 용어대로) 알코올에 의존하는 정도가 지나친, 시인의 오랜 원형 중 나쁜 전통을 불운하게도 이어받은 케이스였습니다. 폭포처럼 솟아나는 영감과 눈부신 표현력으로 주위를 황홀하게 만들 줄 아는 재능을 가진 그였지만, 사랑과 결혼에 대해서만은 병적인 강박처럼 혐오한 이중성도 드러냈죠(찾아오는 여성들은 구태여 거부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과연 그 남편에 그 아내라 할 만큼, 서로에게 운명의 배우자였던 케이틀린 맥나마라 역시 미친 듯 똘똘뭉친 자기애로 남편의 그것과 한번 충돌했다 하면 답이 없는 싸움으로 이어졌죠. 여튼 딜런- 케이틀린 부부의 기묘한 부부관계는 마치 스콧 피츠제럴드와 젤다 세이어의 그것에 비길 만큼 열정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는 게 매순간 전쟁이고, 그 격정의 폭발 순간 언제나 죽음을 염두에 둘 만큼 지치고 예민했던 그의 정신을 생각하면.

<괴물들이 사는 나라>로 한국에서도 이름이 잘 알려진 동화작가 모이스 샌닥은, 독자로서 저 역시 모르고 넘어갔지만 4년 전에 타계했다고 책에 나와 있네요. 명작 동화들이 흔히 그렇지만 그의 작품도 마냥 아름답고 가공된 꿈과 이상으로 부푼 작품 세계가 아니라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아이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 대해 가르쳐 줘야 한다."는 그의 지론이 작품을 통해 표현된 결과겠는데요. "어른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아이들을 그만큼 더 좋아한다고 해도 틀리지는 않겠습니다." 이처럼 유보적인 태도로 동심을 옹호한 그는, 죽음을 가장 멀리하고 싶은 심리에서 인생의 그런 시기를 막 지나치는 중인 아이들의 마음에 침잠하려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는 살아 있는 모든 순간 반대급부라든가 치러야 할 시험이나 되듯 죽음을 의식한 사람이었는데요. 생(개인적 생이든 보편 개념으로서든 간에)에 가득한 수수께끼와 충돌 지점, 혐오스러운 요소들과 싸우는 걸 아예 포기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되 두려움과 원망도 그치지 않았던 좀 특이한(특히 앞의 네 사람과 대조할 때) 경우 같습니다. 아니, 특이하다기보다, 어쩌면 이런 태도야말로 죽음의 필연성과 위력에 압도되어, 애써 (고작) 현세의 괴로움으로 그를 잊으려 드는 우리 모두의 나약함을 그대로 대변하는 정직한 정신의 몸부림과 순응이 아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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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음 맑음 - 지치고 힘든 우리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시간
마스노 슌묘 지음, 오승민 옮김 / 생각정거장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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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수도에 정진하신 스님이라면 그 나오는 말씀이 참 예사 경지의 산물이 아니다 싶은 게 많습니다. 이 책도 참 평범한 이야기 같은데 읽어 나가면 그렇지가 않고, 치열한 직장 생활을 해 보신 적도 없을 텐데(여러 대학에서 환경 디자인학 교수직을 맡고 계시긴 합니다) 어쩜 이렇게 월급쟁이들 마음을 잘 알고 다독이시는지 신통하다 싶었습니다. 꼭 직장인뿐 아니라, 사람 사이에서 부대끼며 상처 받은 이들 그 생채기를 어루만지는 데 정말 능하신, 그저 노하우를 잘 아는 게 아니라 세상의 숨은 이치, 모순, 문제의 발원을 훤히 꿰뚫으신 달인의 토로이자 가르침이라 그런 게 아닐까 싶더군요.


마스노(枡野) 슌묘(俊明)라는 이 저자 스님의 함자는 개인적으로 처음 들어 보는데요. 선종의 일파인 조동종은 스님들에게 법명을 쓰게 하는 게 관행입니다만 이 저자께서는 그대로 속명을 쓰시는 듯합니다. 정원을 가꾸는 자세란 곧 내 마음의 잡풀을 제거하고 온갖 속세의 번뇌와 탐욕, 하잘것없는 집착을 뿌리채 정리하는 그 태도와 통합니다. 인간이란 결코 환경과 유리되어 살 수 없고, 인간을 낳고 품어 준 자연과 적대할 때 인간의 생존마저 위태로워지는 게 자명합니다. 스님께서는 환경에 적응하고 이를 보존하며 그 가장 소중한 고갱이를 돌보고 가꾸는 노력을 통해, 세상에 사람이 모여 사는 가장 깊은 원리를 깨닫고 이를 가장 쉬운 말로 어리석은 대중에게 설파하시는 스승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정말 회사원들과 많이 접촉하고 그들의 애환을 들어 보셨는지, 유독 이 책에는 그들을 염두에 두고 설복하시는 말씀이 많습니다. 할당량을 반드시 납기에 맞춰 조달하는 건, 특히 대기업을 상대하는 많은 중소기업 사원들에게는 피를 말리는 과업일 것입니다. 대기업 입장에서도 마냥 속이 편한 건 아닙니다. 독촉하면 갑질한다고 뒷말이 나올테며, 납기가 늦어지면 일단 깨지는 건 담당자 자신이기에 남의 회사 사정을 자애롭게 고려할 처지가 못 됩니다. 그런데 스님은, 비단 자신의 회사 입장에서만 살펴도 품질을 무시한 기계적 할당량 달성은 결코 바람직한 게 아니라고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황폐화한 후 폐허의 앙상한 잔해처럼 다가올 "미션 완수"가 다 무슨 소용이겠냐는 겁니다. 이게 현실에 맞지 않은 한가한 도리의 설법이라고 생각되시면 다음을 계속 읽어 보십시오.


이 파트 말고 책의 좀 뒤를 보면, 아무래도 스님이신 이상 장례식장에서 일정 역할을 맡아 주십사하는 촉탁이 많이 들어오는가 봅니다. 그것 관련 이야기를 들려 주시는 대목이 있습니다. 일본 유수의 대기업 이사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생전에 광범위한 인맥을 쌓고 업계를 호령하던 분이기도 하고, 그 풍채도 권위 가득한 모습이라 언제나 주위에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런 분이 갑자기 타계하니, 유가족들이 많은 문상객들을 갑자기 맞을 걱정에 여러 채비가 많았고, 스님께도 각별히 당부하는 바 있었다는 거죠. 그런데 막상 조문객을 받으려 하니, 첫 몇 시간에만 줄이 이어졌을 뿐 오후부터는 사람이 오지 않더라는 겁니다. 융숭한 예식을 다 갖춘 상가에 정작 조문이 뜸하니, 유가족이 상심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스님 자신이 민망해 몸둘 바를 모르겠더라는 거죠. 반면 늙은 나이까지 말단에서 근무하다 생을 마감한 다른 어떤 분은, 비록 차림은 빈한해도 "생전에 이분께 은덕을 입은" 이러저런 많은 문상객들이 성의를 보여 그 가는 길이 결코 외롭지 않았다고 합니다. 과연 누가 더 보람된 생을 살다 간 걸까요.


"불교식 사고방식에 양자택일은 없다." 저자의 아주 의미 깊은 말씀, 가르침입니다. 많은 직장인들은 소위 "책상을 뺏기고" 한직으로 물러나거나, 지금까지 맡아 오던 업무와 무관한 부서로 발령나기도 합니다. 대체로 능력 없는 이들, 사고를 치던 이들, 무사안일로 나날을 때우던 잡된 직원들이 그런 대우를 받(아 마땅하)겠으나, 개중에는 억울하게 밀려나는 경우도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때 스님은 "이것 역시 나쁘지 않고, 당사자가 즐겁게 혹은 담담하게 받아들일 만한 운명"이라고 가르칩니다. "나쁜 것"이 있으면 "좋은 것"이 따로 있다는 게 이분법 사고인데, 불교에서 사물과 세상을 바라보는 건 모든 게 동등하다는 태도입니다. 하긴, 나와 타물(他物)도 본디 분별이 없는 법인데, 자신이 처한 운명 역시 좋고 나쁜 고비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와 관련 법사께서는 "대지황금(大地黃金)"이란 법어도 들려 주시는데, 자신이 밟고 선 누런 땅이 바로 복된 곳이라 생각하면, 황금덩이를 깔고 사는 이가 따로 없다는 것입니다. 읽고 나서 참 지당한 이치라며 수긍이 되었네요.


"유연심"을 가지면 "선입견"이 없어지는데, 이로서 무한한 가능성이 싹튼다고 하십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는 흔히 "저건(혹은 저 사람은) 내 타입이 아니다."는 말을 즐겨 하죠. 혹은 내 가치관에 현저히 미달하는 질 낮은 아이템(혹은 사람)이라며 폄하하기도 일쑤입니다. 그런데, 세상을 살며 마주할 갖자기 선택의 순간에서, 당사자가 미처 보지 못하고 넘어가는 무수한 가능성이란 헤아릴 수조차 없습니다. 이런 잠재한, 그리고 간과한 선택지 중, 나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바꿔 놓을 만한 보석 같은 옵션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래서 사물과 모든 인연은 (다시 말하지만) 나쁘고 좋은 품질의 차가 없고, 모든 형량과 분별이란 마음 먹기에 따라 결과가 딴판으로 바뀌는 법입니다. 마음의 벽을 헐면 모든 이가 나의 이웃이요, 나의 형제고 부모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먹는 이가 회사 일이라 한들 척척 못 해낼 리 없고, 상관이나 오너가 시키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은덕을 조직에 베푸는 셈입니다.

임운자재. 참 불교의 가르침에는 좋은 구절이 많습니다. 사람이 애쓰고 버둥거려도 안 되는 일이, 그 나름의 운수와 정해진 바가 있어서 스스로 풀리기도 한다는 뜻입니다. 젊은이들에게 어르신들, 간부들이 종종 따끔하게 놓는 한 마디가, "요즘 젊은이들은 멘탈이 약해."입니다. 그런데 스님은 이미 기성 세대이시면서, "젊은이들은 너무 악착 같이 살 필요가 없다"고도 일깨우시네요. 때로는 모든 업무에 작은 틈을 주며 쉬어가는 게, 일의 여운을 주어 전체 과업이 잘 풀리는 비결이 되기도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스님은 "어제와 오늘이 한결같게 느껴지는 권태"야말로, 정신이 죽어가는 징후임을 지적하며, 당신에게 주어진 날은 그 어느 하루도 같은 시간이 아닌 축복임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긴장과 강박은 다른 것이며, 성실과 집착 역시 다른 범주임을 깨닫게 됩니다. 어떻게 이를 준별하는가. 마음이 바른 곳을 보면 가능하겠습니다. 그 마음이 깨끗해지려면, 먼저 자신의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얼굴,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독기를 품고 때로는 절망한 듯한 그 얼굴들을 편견 없이 봐야겠습니다. 그 얼굴들에서 내 자신의 모습도 볼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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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터[569]번째 책이야기

황태자의 첫사랑 / 빌헬름 마이어푀르스터

내가 몰랐던 책 책이야기 텍스터(www.texter.co.kr)
황태자의 첫사랑 / 빌헬름 마이어푀르스터
연극과 영화로만 알고 있던 <황태자의 첫사랑>의 원작 소설을
더 큰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국내 최초로 완역해서 소개합니다.

신분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의 발랄하고 애잔하고 쿨한 사랑 이야기!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황태자는 궁정에서 백부의 손에 엄격하게 자라났다. 스무 살이 되어 자유의 도시 하이델베르크로 유학 온 그는 첫사랑을 만나고 청춘을 만끽하지만, 아직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이겨 내기에는 나약한 존재다.
숙명처럼 찾아온 첫사랑 케티와의 짧았던 사랑과 긴 이별 그리고 재회.
이 작품은 주변 인물들과 애정을 나누고 갈등을 겪으면서 구속에서 벗어나려는 주인공이 내면으로 서서히 성숙해 가는 과정을 세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 참가방법
  1. 텍스터홈페이지에 회원가입을 먼저 해주세요.
  2. 서평단 가입 게시판에 "황태자의 첫사랑 서평단 신청합니다"라고 써주시고 간단한 서평단 가입의도를 적어주시면 됩니다.
  3. 자신의 블로그에 서평단 모집 이벤트(복사, 붙여넣기)로 본 모집글을 올려주세요.
  4. 자세한 사항은 텍스터 서평단 선정 가이드를 참고하십시오.
※ 문의 : 궁금하신 점은 lovebook@texter.co.kr 메일로 주시거나 텍스터에 북스토리와 대화하기에 문의사항을 적어주시면 빠르게 답변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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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 의사.의과대 학생.직업 전문가가 들려주는 의사의 모든 것 꿈결 잡 시리즈
고정민 외 지음 / 꿈결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요즘 같이 불확실성이 만연한 세상에선 어린 시절부터 진로와 그에 따른 전략을 확실히 결정해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꿈꾸는 직업이라면, 사회적 존경과 높은 보수가 보장되다시피한 "의사"이겠습니다만, 단지 그 이유만으로 맹목적 선호를 보낼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직업이라도 자신의 성격과 능력, 가치관 등과 부합하지 않는다면, 긴 시간의 학업과 수련을 요하는 자격 취득부터가 어려울 뿐 아니라, 설사 자격을 얻는다 한들 개업을 할 본인 자신이 행복해질 지가 의문이기 때문이죠. 남들 따라서 진로를 선택했고, 좋아 보여서 그 길을 밟았지만, 많은 기대를 품은 자신을 막상 기다리는 현실이 "그게 아니라면" 여간 낭패가 아닙니다. 반면, 너무 어려워 보여서 선택이 망설여졌는데, 좋은 선배들(의대생들)과 성공한 개업의들이 들려 주는 충고와 조언을 듣고 "이게 내 길이었구나!"하는 반가운 각성이 밀려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진로 탐색에는 그래서 구체적인 경험담, 현장감 있는 정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책의 부제는 "의사, 의사를 말하다"인데요. 모두 아홉 분의 글이 실렸습니다. 여섯 분은 현직 의사, 한 분은 법의학자, 한 분은 직업 전문가(고용노동부 공무원), 그리고 한 분은 모두가 선망하는 명문대 재학중인 학생입니다. 독자인 제 생각 같아선 의대생들의 합격 수기가 좀 더 많았으면 어땠을까도 싶었지만, 이 책은 "직업" 자체를 탐방, 분석하는 목적이지 입시용 서적이 아니므로 이 정도가 적절하다는 생각도 들었네요.



서울대 의대를 합격할 정도면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까, 아찔한 느낌이 우선 들 것 같습니다. 의예과 1학년 신재문(19)은 먼저 "수학 공부를 생활화하라."고 조언합니다. 많은 이들이 수학이라고 하면 대뜸 어렵다, 뭔지 모르겠다는 생각부터 떠올리는데, 일단 그런 부정적이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떨쳐야 이 과목에 대한 정복... 까지는 아니라도 최소한 접근이나 "교분"이 가능하죠. 수학은 사실 의대를 들어가고 나면 쓸 일이 적어지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접하기로는 의사 선생님들도 특히 응급 환자를 다룰 때 무슨 처방부터 써야 할 건지, 치료 과정에서 어떤 단계부터 밟아야 환자가 가장 덜 아파할지를 결정할 때, 이 "문제 풀이, 최적해 도출" 사고방식이 필요한 것 같았습니다. "여기부터 먼저 손 대면, 환자가 아파서 누워 있지를 못한다고." 일류 의사는 기계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이런 대응을 보여야 한다는 알고리즘만 머리에 채워 넣는 게 아니라, 여러 징후가 한꺼번에 닥쳤을 때 각각의 단계에 우선순위를 정하는 현명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것도 갖기 쉬운 건 아니지만)만으로는 부족하죠. "사랑"에도 지혜가 깃들어야 오래갈 수 있습니다.



박주연 선생님은 아직 어린 티가 가시지 않은, 젊은 산부인과 전문의입니다. 이분이 인턴 시절 쓴 일기의 한 토막을 소개하는데, 독자로서 해당 대목을 읽으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느껴지더군요. 다 귀한 집에서 자란 따님들인데, 사회에서 요구하는 전문 기능을 습득하려니 저렇게 잘 시간도 없이 배우고 수련하느라 고생하는구나.. 그러나 산부인과야말로 우수한 인력들의 세심한 손길이 특히 요구되는 분야입니다(어디인들 안 그런 곳이 없겠습니다만). 아직 젊으신 분인데도 박 선생님은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 그것이 전부다."라는 의젓한 말씀을 하십니다. 근래 수지가 안 맞는다는 이유로 산부인과가 기피되는 과목 중 하나로 꼽히는데, 이렇게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분들이 계속 늘어나야겠고, 이런 책을 읽으며 돈보다는 보람으로 자신의 장래를 설계하는 학생들이 생겼으면 좋겠네요. 박 선생님이 인용하신 좋은 말, "직업은 꿈이 아니다. (그 직업을 갖고 나서 어떻게 살지가 꿈이 되어야 한다). 꿈이 만약 그저 의사라면, 의사고시 합격하고 나서 꿈이 끝나는 인생이 되고 만다." 어떤 의사로 남은 긴 인생을 살지를 진지하게 고민하자는 뜻이겠는데, 모두가 마음에 잘 새겨야 할 것 같네요.



윤준택 원장님은 페이닥터로 2년 정도 경력을 쌓고 개원하신 분입니다. 이분은 해외 봉사 활동에도 수 년 간 몸소 참여하신 경험담을 털어 놓으십니다. 안과의사인 그는 비전케어라는 봉사 단체에 몸을 담으셨다고 하는데요. 백내장에 걸려 실명 직전이었던 다롄의 노인, 캄보디아의 어느 가난한 소녀 등이 그가 도움을 준 환자들로 소개됩니다. 아파서 일을 할 수 없고, 많은 꿈을 품고 키워나갈 어린 나이에 포기와 좌절이라는 아픈 상처를 걸머지어야 할 소녀들에게 다시 희망을 찾아 주는 건, 세상에서 의료인 말고는 누가 대신 수행할 수 없는 크나큰 보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재진 한림대 교수님은 초등학생인 두 딸을 둔 흉부외과 전문의입니다. 그는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을 때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고 고백하시는군요.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하나?" 그의 말에 따르면 이 분과는 의료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점점 영역이 늘어나고,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 마주칠 수 있는 난관도 덩덜아 증가할, 책임이 막중한 분야라는 거죠. 심장과 폐는 인체에 있어 가장 중추적인 기능을 수행할 뿐 아니라, 다루기가 복잡하고 환자의 고통도 그만큼 더 절박한 기관인데, 이런 까닭에 어지간한 사명감 없이는 배겨날 수 없는 하중으로 전문의를 짓누르는 전공이라는 게 그의 설명입니다. 교수님이 강조하는 건 "환자에 대한 측은지심"이며, 이것이 없이는 의사가 자신의 소명을 다할 수 없다는 자못 엄숙한 고백으로 들립니다.

최유경 원장님은 연년생 두 딸을 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입니다. 이 책에 사진이 실린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표정이 밝고 선량한 분위기라는 게 공통점인데요. 꼬마들을 키우는 어머니이기 때문에 "의사라서 가장 좋은 점"이라면 서슴없이 "내 아이들이 아플 때 정확하고 빠르게 돌볼 수 있다"는 점을 꼽으십니다. 한국에서 전문직 여성들이 겪는 이중고는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 만큼 보편적인 고민인데요. 최 원장님은 그나마 "내가 소아청소년과를 선택했기에 고충이 반으로 줄었다"며 웃으시는군요. 이처럼 내 아이를 다루고 걱정하는 마음으로 어린 환자들을 챙기는 의사 선생님들이 늘어갈 때 사회와 국가가 보다 살기 좋고 복리가 증진될 수 있습니다. 시민으로서 너무 감사할 뿐이죠.



외국 드라마를 보면 "병리학자(영드 셜록에서 몰리 같은 사람)"와 검시관(코로너), 법의관 등의 용어가 다 다르게 쓰입니다. 어떤 사람은 의사인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저 의사를 보조하는 역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소설을 읽어 보면 코로너 중에 전문 지식이 빈약해서 주위로부터 경멸 받는 이도 나오는데, 그런 사람은 의사가 아니라는 뜻도 되죠. 이상한 경북대 교수님은, 요즘 특히 CSI 같은 드라마 덕에 주목을 받기도 하는 이 법의학 관련 종사자들에 대해 의문을 잘 풀어 주십니다. 기본적으로 한국에서 이런 법의학 전문가가 되려면, 당연하지만 의사로서의 정규 교육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다른 의사와 차이가 있다면, "전문의 취득 코스"가 없다는 정도인데, 이 역시 얼마 안 있어 마련될 전망이 크죠. 선생님은 자신의 직분상 1) 교육, 2) 병원 진료 3) 연구를 병행하는 어려움을 토로하는데, 여기까지는 다른 의대 교수님들에 공통되는 애로일 것입니다. 그런데 4) 자주는 아니라도 사법 당국으로부터 요청되는 부검까지 업무의 일환으로 책임지니, 이 점이 다른 분들과 차별되는 고충이겠지요. 역시 남다른 사명감과 책임이 아니면 수행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부검이란 "변사체", 그것도 유별나게 큰 손상을 입은 시신이 대부분이겠는데, 일반인이라면 이를 흘낏 보는 체험만으로도 충격이 올 만하죠.

책의 마지막에 인터뷰이로 참여하신 허희진 전문의(동국대 일산병원)께서는, 어려서는 막연히 "나이팅게일의 모자와 에이프런이 예뻐서" 의료인을 꿈꿨으나, 교사이신 아버지가 가정 형편이 어려운 제자들의 도시락을 싸 주는 모습을 보고, 사회적 약자의 구호에 대한 사명감과 책임 의식을 다지게 되었다는 고백을 하시네요. 버젓한 전문의로서 사회의 소금과도 같은 역할을 해 내는 그녀지만, 누가 뭐래도 "가장 힘든 건 공부"라며 "다시 돌아가라면 결코 선택하지 않을 길"에 대해 손사래칩니다. 사회가 원활히 작동하기 위해선 이런 각별한 소명의식을 갖고 직분에 임하는 분들의 재능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런 직업인들이 늘어나려면, 어려서부터 확고한 목적 의식이 교육 과정에서 어린 학생들에게 배양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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