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와당의 표정
정민 엮고 지음 / 열림원 / 2017년 1월
평점 :
구석기 시대 막집, 신석기 시대 움집을 짓고 살던 인류가 비천한 동물이나 다름없던 단계에서 벗어나 문명인으로서 품격을 누리고 살게 된 징표는 이론 없이 의, 식, 주의 양식 진화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세련된 정서의 다듬어진 표현이나 심오한 종교적, 도덕적 각성 등은 정신의 산물, 개성, 성취일 뿐이라서 그게 감각적으로 캐치되질 않습니다. 사람의 생이 사람다운 각성을 이뤘느냐는 누구의 눈에도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의, 식, 주 문화가 어느 정도 안정된 꼴을 갗췄느냐에 달려 있고, 정주 문명이 유목 문명에 비해 높은 평가(부분적으로 부당하거나 과장된 면이 있어도)를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 혹은 나아가 동아시아의 선진 문명을 일구고 살던 옛사람들이 얼마나 이른 시기부터 문명인으로서 감성과 물질 양면에서 여유를 누리고 살았는지 대번에 찾을 수 있는 징표가 있습니다. 특수 계층만이 향유하던 고급 문화의 결정체는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거나 아예 현전(現傳)하지 않지만, 기와의 끝막음을 한 작고 귀여운 장식인 "와당"은 전통 기와 지붕을 올린 가옥이 있는 곳에 찾아가 흔히 접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한옥마을 혹은 인위적으로 조성한 민속촌이 아니라도, 서울 강북 일대만 해도 재개발이 더디 이뤄진 골목길 어귀에서 어렵지 않게 본는 게 와당입니다.
사람 사는 집이란 게, 관리상의 중대 고비를 맞지 않는 이상 사람이 거기 올라가 볼 일은 드물었겠는데(도둑놈이 아니고서야), 다만 지상의 사람들과 지붕이 아슬아슬한 맞대면을 이룰 기회라면 비 오는 날 처마 밑에서 비를 그을 때, 혹은 머슴놈더러 "이리 오너라"를 외친 후 대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짧은 시간에 올려다 보는 지붕의 끝자락입니다. 아주 정교한 예술 작품까지는 아니라도, 보는 이들의 눈을 의식해 (혹은 거주자 본인의 만족을 위해서) 이런 곳까지 뭔가 문양을 그려(새겨) 놓았다는 사실 자체가 먼 후손들의 마음을 뿌듯하게 합니다. 하긴 사람이란 본디 구석기 시절 토굴에 살면서도 희미하나마 예술의 맹아를 남기려 애를 쓰던 별난 동물이며, 이런 마음의 여유(혹은 종교적 동기에서라도)를 갖는다는 점 자체가 오늘날 스스로를 향해 "인간다움"으로 지칭할 수 있는 그 모든 특성, 오로지 인간만이 갖는 존엄한 특징들 중의 핵심이라고 하겠습니다.
와당에 새겨진 다양한 문양들로부터 우리는 그 시절 사람들의 애틋한 정서 한 줄기, 자연과 동식물을 향해 문명 속에서도 품는 애정의 단초, 무병장수와 사후 세계, 혹은 종잡을 수 없는 이상향에 대한 노스탤지어 따위를 엿볼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에서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수키와에다 막음처리를 하고 문양을 새기는(물론 일의 순서로야 문양의 양각, 음각이 먼저겠습니다만) 이 와당은 물론 이 책에 수록된 대부분의 예처럼 수키와에 부착하는 게 보통입니다만 암키와에도 못할 바는 없습니다. 다만 이 책의 도판들은 수키와의 와당을 주로 다루네요.
<좌전>에 보면 이른바 사흉이란 게 나옵니다. 혼돈, 궁기, 도올(김용옥이 이 이름을 따 아호로 씁니다), 그리고 도철인데, 이 도철은 인간의 비루함과 탐욕을 상징하는 신화상의 동물이죠. 한자로는 饕(탐할 도), 탐할 철(餮) 자를 쓰는데, 이 두 글자 모두 이 용례 외에는 다른 곳에서 잘 찾아볼 수 없는 희귀자들입니다. 저자 정민 교수님(물론 우리가 아는 그분입니다)은 이 문양을 두고 "고릴라"라든가, 주름살 많은 할아버지라든가, 놀라서 뜬 눈이라든가, "술취한 사내의 빙글빙글 돌아가는 눈" 같다고 즉흥 감상의 일단을 피력합니다. 은나라때부터 즐겨 사용된(물론 수막새에) 문양인데, 이 책에는 그보다 훨씬 후대인 전국 시대에도 애용되었음을 알려 주는 것들이 소개되었네요. 선악의 평가는 후대에 내려진 것이고, 고대인 특유의 물질적 풍요와 미래의 안녕을 기원하는 심리가 투영되었다고 보는 게 정설입니다.
남북조 시대에만 해도 수키와에 새겨진 여러 짐승들의 형상은 벽사(辟邪)의 뜻을 담았다고 이 책에도 나와 있습니다(p141 등). 猴(원숭이 후) 역시 한국에서는 잔나비가 재수없다고 여기는 게 보통이었던 터라 우리 눈에는 신기하게 비춰지는 게 사실입니다. 당나라 때 것으로 여겨지는 와당을 보면 벌써 민중의 삶 깊숙이 유입된 불교 문화를 반영해서인지 금강역사라든가 연주문이 보이는 등 시대상의 변화가 물씬 느껴지죠.
수레바퀴라든가 해바라기 문양은 출토된 후 연구자들이 그런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만 마치 현대의 추상화처럼 보는 눈에 따라 다양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감이 있습니다. 중국에서야 너른 영역에 해바라기가 자생했으므로 해당 와당에 이름이 붙은 대로 葵(해바라기 규) 자가 일찍부터 고안되었고, 역시 문양을 짓는 이들도 좌우사방대칭의 그래픽을 선호하는 게 인지상정이었기에 이 해바라기나 수레바퀴 말고도 사엽(四葉. 네 잎사귀)의 도형이 즐겨 쓰였음이 이 책을 통해서도 확인 가능합니다.
책의 후반부로 들어서면 한대(漢代)를 거쳐 표음문자의 표준화가 완결되어 가던 사정이 엿보이는데요. "만세"라느니 "만물함성"이라느니 하는 기원형 구호가 새겨지기도 하고, 저자께서 지적하시듯 뜬금없이 "무(無)" 한 글자만 덜렁 보이는 와당도 있습니다. 한자가 본디 그 대종이 그림의 본뜸에서 비롯했지만(이 외에 지사, 형성, 회의, 전주, 가차가 있지만), 이런 역사적 진척이랄까 변천 과정을 보면 인류가 어떻게 자신의 내심을 타인에게 전달해 가는지 그 정격화한 원리를 보여 주는 것도 같아, 심미적 호기심과 만족 못지 않게 언어학적 영감도 떠올리게 돕는 소중한 자료라고 생각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