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에비터블 미래의 정체 - 12가지 법칙으로 다가오는 피할 수 없는 것들
케빈 켈리 지음, 이한음 옮김 / 청림출판 / 2017년 1월
평점 :
품절
지금 우리들이 발 디디고 서 있는 현재가 언젠가는 과거의 궤도로 사라지고 만다는 점은 "피할 수 없는" 법칙입니다. 현재 시점에서 그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미래가 다가온다는 점도 역시 "필연적"이긴 하지만, 그 미래가 어떤 성격인지, 이 미래가 우리를 어떻게 바꿔 놓을지는 반드시 정해져 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아인슈타인이나 호킹 등의 과학자(물론 그 훨씬 이전의 다른 분들 포함)가 시간의 차원성을 논의하며 "미래를 볼 수 있다" 비슷한 주장을 펼 때에는 어떤 일련의 사건군이 이미 정해져있음을 가정한 듯 보이기도 합니다. "볼 수 있는" 사건도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 중 하나일 뿐이며, 현재에 이를 알 수 있었던 행위자와 상호 작용이 가능하다면 미래가 꼭 고정적이라곤 할 수 없습니다. 만약 이 책에 제시된 탁월한 예견을 미리 알고 장래를 대비하는 독자라면, 급변하는 미래의 파고에 그저 수동적으로 대응할 뿐인 다른 미래의 자신과는 운명(?)을 달리 개척해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12가지 법칙화라고 하면 좀 도식적이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는데, 12법칙은 내용의 전부가 아니라 읽는 이들을 위한 "마크"에 불과합니다. 챕터의 제목이 보기 좋게 붙여져 있고 자계서 같은 형식이라며 착각을 부르기 좋지만, 책의 진짜 가치는 그런 도식화가 아니라 방대하게 인용되는 사례들, 혹은 그 사례들로부터 도출되는 저자의 참신하고 과감한 주장에 있으니 정말 펼쳐 읽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페이지를 넘기게 됩니다. 오히려 너무 친절한 편집이 책에 대한 오해를 부를 수도 겠네요.
"하이퍼텍스트"라는 말은 물론 우리가 잘 알듯 테오도르 넬슨이 최초 고안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일반인들이 알게 된 건 인터넷 혁명이 본격화하고서죠. 텍스트가 존재의 의미를 본격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건 저 인터넷 혁명 몇 년 저술되어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네그로폰테의 책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도대체 인터넷이 없었을 땐 사람이 어떻게 살았나요?" 아이들은 이런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하긴 "당연한 걸 뭘 물어?"라며 모든 혜택이 그저 당연히 주어진 것인줄 로만 알고 게임만 하는 애들보다는 저런 "반대 사정을 가정해 보는 회의적"인 태도가 얼마나 바람직합니까. 어떤 수학자는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미지의 암흑에 둘러싸여 있었을 과거엔 천재들이 할 일이 얼마나 많았겠는가?"라며, 이미 이뤄질 게 다 이뤄지고 만(?) 현재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죠.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혁신가들이여 기뻐하라. 진짜 인터넷 혁명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거두는 대로 연구하는 대로 (아직은) 다 당신의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신나고 영감을 솟게 하는 구절이었습니다. 진짜 이 구절 하나를 (신나는 맥락 속에서) 읽은 것 하나만으로도 책 읽은 보람이 있습니다.
제일 궁금했던 게 과연 이 정도 레벨의 저자께서 그 흔한 주제인 인공지능에 대해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ㅎㅎ 저자께서는 너무 심오한 말씀을 하셔서, 아 정말 반도체 덩어리가 인간의 지성을 능가할까 같은 협소한 고민을 하지는 않으시더군요. 우주에는 마음, 인간에 깃든 그 마음뿐 아니라 상상도 못할 만큼 다양한 가능성으로 "마음"의 형성이 존재할 수 있으며(어디까지나 가능성) 이제 인간이 그 가능성 중 하나인 인공지능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 겁니다. "인공지능 따위가 어찌 사람의 복잡미묘한 능력 그 일부라도 흉내낼까?"가 아니라, 이 인공지능이 (애초에 잠재되었던) 그 무궁무진한 가능성 중 일부(인간이 상상도 못하던)를 구현하리라는 기대에 몸을 떠는 어조가 다 느껴집니다. 이인류가 해결 못한 온갖 과학상의 난제를 이 지능은 풀어 줄 수 있을 테고(이분은 일자리 이런 것보다 이 점이 더 관심사네요 ㅎㅎ), 그 지능 역시 또다른 차원의 문제들을 대면하고는 절망하리라는 겁니다(이 정도면 할 말을 잃게 하네요). 저자의 말 중 딱 한 가지는 누구나 동의할 만한 겁니다. "우리는 우리 인간이 누구인지 알려줄 다른 지능이 필요하다." 독자로서 제가 갖는 생각은 바로 프로그래머이자 창조주인 우리가 이를 모르기에 그 복제품이자 모사품인 "인공지능"이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건데, 이분은 이런 식으로 문제를 인식하는군요.
제조환경이란 본래 산업혁명이 본격화하기 전까지는 어디까지나 유형적이고, 제조원가가 노예의 족쇄처럼 해당 상품을 옥죄는 처지였고, 같은 물건에 두 주인이 있을 수 없는 녀석이었습니다. 이러던 게 보십시오. 텍스트 온리의 저작물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복잡한 영상물마저 온갖 불법 복제품이 다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쉽사리 해적판의 희생물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너무나 보수적인 출판업계의 태도) 때문에 e-book이 대단히 느리게, 상대적으로 드물게 나옵니다. 책의 퓨처가 전자책이라는 전망은 우리 생각처럼 그리 폭 넓은 동의를 얻는 견해가 아닙니다. 어떤 전망이든 보기 좋게 뒤집힌 후에야 그게 그렇게 취약했었나 사람들이 비로소 돌아보게 되고, 그런 반성이라도 하는 사람은 그나마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저자는 모든 "제조품"이 근본적으로 복제 가능하고, 완전히 동일한 포멧으로 여러 사람에 의해 공동 소유(점유)된다는 이 본성 자체가 세상을 본격적으로 바꿔 놓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점을 이해한 이들도, "어떤 건 그렇고 어떤 건 결코 그렇게 안 될 것"이라며 분절적인 인식을 해 오던 데 지나지 않는데, 저자는 거기에 반기를 드는 겁니다.
제가 초등학생 시절만 해도 애들 앞에서 PT를 하려면 손으로 일일이 2절지에다 색깔을 그려 가며 자료를 준비해야 했습니다. 하나를 망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을 뿐 기존의 성과를 살릴 수가 없었죠. MS 워드(혹은 널리 워드프로세스 소프트웨어)를 쓰게 되며 가장 놀란 건, 이제 발표 자료를 만들 때 혹 실수를 하거나 마음에 안 들면 직전에 save한 단계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고, 부분만 달리해서 몇 가지 다른 개성을 부여한 "동일한 본판"을 무수히 창조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제는 그저 당연할 뿐으로 여겨지는 이런 이점이, 미래에서는 일반화한 문명의 장점으로 모두가 누리게 될 수 있다는 저자의 과감한 도약은, 석학이란 이런 스케일과 깊이로 사물과 세상을 바라보는구나 하는 신선한 충격을 다시 안겨 주었습니다. 칸트나 헤겔도 동시대인들에게 이런 경탄을 안기고, 그 독자들에게 내실 있는, 그리고 "불가피한" 미래의 대세를 수용하고 준비하게 돕지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