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시민 불복종 (합본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1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이종인 옮김, 허버트 웬델 글리슨 사진 / 현대지성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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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랄프 왈도 에머슨(이 책 앞날개)의 영향 하에 젊은 시절 중국과 인도의 철학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고 그 사상의 기반을 다진 철학자라고 나옵니다. 우리 한국 독자들이 유독 그의 저작을 좋아하고 침잠하는 것도 아마 이런 이유가 있겠습니다. 이 책 앞날개에는 소로의 사상 그 진수가 왜 유독 <월든>이란 작품에 잘 녹아 있으며, 또 <시민 불복종>과 함께 읽혀야 하는지 그 이유가 잘 나옵니다. 


 

"나는 낙담을 칭송하는 글은 쓰지 않을 생각이다(p10)." "나의 숲속 생활에 관심이 없는 독자에게는 미리 양해를 구하고 싶다(p11)." 이 두 마디로부터 우리 독자들은 <월든>에서의 그의 기조가 어떠할지 미리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실 <월든>은 표면상 그의 "숲속 생활"을 다루고 있지만, 문장 하나하나의 이면에는 그의 신조와 확고한 방향성을 잡은 철학이 자리합니다. 숲속 생활에 관심이 있어 책을 고르고 연 독자에게는 당초의 목적이 달성되겠으나, 분명 그 이상이 얻어질 테며 바로 이것이 책과 저자가 그토록 오래 호응을 열렬히 얻는 비결이겠습니다. 

 

"대부분(의) 사치품과 인생을 안락하게 하는 많은 편의품은 굳이 없어도 될 뿐 아니라 인류 정신을 고양하는 데는 많은 방해가 된다(p26)." 어느 정도의 불편과 고뇌는 거창하게 "인류 정신"의 각성까지야 가지 않더라도 개인의 성숙, 성찰, 수양에 필수 조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냥 편하기만 한 정신과 마음가짐 안에서 어떤 심원한 깨달음 같은 게 생길 리가 만무합니다. 이런 작은 깨달음과 반성이 쌓이고 쌓이면 마침내 인류 공의에 대한 비전에 도달하며, 아마도 소로 자신이 그런 경로를 통해 현대에까지 널리 공명되는 작가로 남을 수 있었겠습니다. 


 

우리 한국인들도 오랜 동안,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주로 농업으로 생명을 이어 온 민족입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에 이르러서도 나이든 어르신들은 그저 손바닥만한 땅이 보여도 무엇이든 심고 가꾸며 때가 되면 수확하여 스스로 먹거나 장에 내다파는 게 습관이 될 정도입니다. 소로는 p76 이하에서 자신이 직접 지은 농사와 그 수확물, 방법에 대해 자랑스럽게 털어 놓습니다. 이종인 선생의 자연스러운 번역 덕분에 이 부분만 놓고 읽으면 한국의 어느 농부가 쓴 글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자신의 정직한 노력을 투입하여 얻은 소출에 기쁨을 느끼는 순간 농부의 성취감과 자부심은 제왕의 그것이 부럽지 않습니다. 

 

pp.110~111에는 이 판본의 자랑인, 월든의 실제 모습을 담은 흑백 사진이 두 컷 실려 있습니다. "서리"는 어엄밀히 말해 절도행위지만 우리네 농촌에서는 어느 정도 허용이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도 소로는 "(어느) 투박한 농부가 야생 능금 몇 개를 슬쩍했으리라 상상"한다는 말을 적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어떤 불쾌한 연상이나 도덕적 첵망 같은 게 바로 떠오르지 않는 건, 애초에 소유의 개념이 없는 원초적 자연 상태 속에, 누구나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노동을 투여하고 필요한 만큼 수확해 가는 자연법적 질서의 향유가 그리워지기 때문입니다. 무심히 적은 듯한 이런 짧은 한 구절 속에도 소로는 촘촘한 주제의식을 투영합니다. 


 

소로의 시대에는 요즘 말로 "제2차 산업혁명"이라 불렸던 거센 움직임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일었으며 철도 건설의 광품도 비껴가지 않았습니다. 1960년대 만들어진 스파게티 웨스턴 <석양의 무법자>에도 철도 건설을 반대하는 여러 풍자적인 묘사가 들어가 있으며 이 저작에도 "콧김을 내뿜는 괴물"에 대해 마치 원시인처럼 거부감을 느끼는 저자의 느낌이 자주 표현됩니다. 철도 사업은 결코 정직한 목적에 봉사할 리 없다는 그의 소신 표명은 마치 에언과도 같이 다가옵니다. 자본은 거의 언제나 민중에 대해 적대적이고 부정직했기 때문입니다. 

 

북미 원주민, 중동의 베두인 족, 심지어 조선인들도 거의 언제나 나그네에 친절했고 이런 환대를 배푸는 풍속을 일종의 자부심으로 유지했습니다. p191에도 방문객들을 정성으로 응대하는 농부들. 또 소로 자신의 당당한 표백이 나옵니다. 자연과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너와 나의 경계는 없고 자본이 옹색하게 가른 소유의 울타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p241에는 왜 이 지역에 "월든"이란 이름이 붙었는지 그 사정에 대한 저자의 짐작이 자세히 나옵니다. 짐작의 결은 그의 두터운 애정에 기반한 방향성을 가집니다. 사랑을 품은 사람의 머리에서는 긍정적인 상상과 추측이 솟아나오고, 그렇지 못하고 어떤 못난 원한이나 이기심(이런 것도 대체로는 선의의 가면을 쓰죠)으로 가득한 마음에서는 비뚤어진 짐작이 솟기 마련입니다. 


 

개미는 사람 못지 않게 동족 간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동물로 알려졌습니다. p303에서 저자는 개미들의 싸움을 묘사하며 이것이 나폴레옹이 크게 관여한 아우스테를리츠나 드레스덴 전투와 맞먹는다고까지 말합니다. 과장이 아니라, 자연의 눈으로 보면 대륙의 지배권을 놓고 건곤일척의 전투를 벌인 유럽의 장군들이 전개한 그 숨막히는 혈전이 마치 개미들의 싸움만큼이나 부질없는 헛짓에 불과할지도 모를 일이긴 합니다. 

 

기지는 영혼의 화약일까요? 기지를 잘 발휘하여 인생의 중요 목적을 달성해 본 사람 입에서는 틀림없이 그런 말이 나올 법합니다. 우리말과 달리 영어의 wit에는 의외로 많은 뜻이 들어 있습니다. "인디언들이 화약을 모르듯 대부분의 사람은 기지를 모른다.(p341)" 그저 나쁜 데 쓰일 뿐인 기지라면 애초에 다들 모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p428에는 책을 마감하며 소로 자신이 결국 숲을 떠나게 되었음을 적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부분 각주에서는 이종인 선생이 그 배경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데 역시 이런 것도 초심자인 독자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이종인 선생이 자기 번역서에서 자주 드러내는 장기이기도 합니다. "고독은 더 이상 고독이 아니고 가난도 더 이상 가난이 아니며 허약함 역시 그러하다." 초월주의 철학의 핵심이자 달관의 집약입니다. 

 

자유롭게 태어난 인간은 도처에서 사슬에 매였다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소로 역시 납세를 거부하다 투옥의 위기에 몰린 적 있습니다. 그때마다 소로는 "국가가 나에게 부당히 강요하는 법보다 나는 더 높은 법을 따르는 자유인"임을 강조합니다. 자유인은 그 자유의 본질을 자연 속에서 확인하고 체득합니다. 이런 올바른 확신을 그는 다시 "소위 문명이라 불리는 곳"에 몸소 내려와 실천합니다. 그 저항은 거룩하고 그 도덕은 천의 무봉의 경지입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으로부터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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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의 재발견 - 한반도 역사상 가장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500년 고려 역사를 만나다
박종기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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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고려사를 두고 "한반도 역사상 가장 진취적이고 개방적이며 다양한 사상이 공존한 다원 사회"였다고 규정합니다. 


현재 KBS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OO 이O원>를 보면 이성계의 쿠데타가 성공한 후에도 여전히 팔관회가 열린다는 설정이 나옵니다. 팔관회가 대략 11월 즈음에 열렸고 위화도 회군이 그해(1388) 6월말경에 있었으므로 시기적으로 무리는 아닙니다. 이처럼 커다란 국가 변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팔관회가 국가적 후원을 업고 여전히 성황리에 열렸다는 건 재미있는 팩트입니다. 여튼 팔관회는 불교, 토속 신앙, 기타 외국의 영향을 입은 다양한 풍속이 한데 어울린 페스티벌이었으므로 고려의 다원적 성격을 증명하는 데 부족함이 없습니다. 또 여전히 상업을 중시하던 고려 사회에서 경기 부양을 위한 중요한 장치 중 하나였음도 확인 가능합니다. 국민들의 사기 진작까지 도모했겠음은 당연합니다. 


보통 "공산 전투"라 불리는 팔공산 전투는 아직까지도 이와 관련한 수많은 지명이 현지에 남아 있을 만큼 후삼국 쟁패의 큰 분수령이 된 사건입니다. 고려는 영남 세력이 중심이 되어 세운 나라가 아닌데도 이 지역에 왕건의 큰 고생을 기억하는 지명이 이처럼 많다는 건, 당시 영남 세력이 후백제와 고려 사이의 투쟁을 얼마나 숨죽이며 관찰하고 있었는지를 드러내는 방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고려 왕실의 특징 중 하나로 근친혼을 꼽는데 이는 전조인 신라 왕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근친혼 자체를 선호한다거나 하는 성향이 있어서가 아니라 왕실의 대통을 여타 가문에 쉽게 넘겨 주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는데 그나마 여의치 않아 경원 이씨 등 대성씨가 수시로 왕실의 권위를 넘보았습니다. 경원 이씨는 이자겸의 난이라는 큰 사건을 겪고도 여전히 큰 힘을 발휘하는 가문으로 남았으나 명문 우봉 최씨는 4대 60년의 세도가 몰락한 후 흔적을 찾기도 쉽지 않을 만큼 몰락했습니다. 


저자는 고려가 불교를 국교로 삼긴 했으나 풍수지리, 낭가사상도 중시한 만큼 이 점에서도 다원주의 사회였음이 드러난다고 주장합니다. 현대에도 한반도 곳곳에는 "부곡"이란 지명이 광범위하게 남았는데 이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천민 집단이 거주하던 단위의 한 종류를 가리키던 일반명사였습니다. 그러나 부곡 출신으로 재상이 된 이도 있고, 특히 저자 박종기 박사는 부곡 연구로 학위를 획득한 연구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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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머니 - 감염된 경제, 풀린 돈의 역습에 대비하라
KBS 다큐 인사이트 〈팬데믹 머니〉 제작팀.이윤정 지음, 김진일 감수 / 리더스북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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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전염병이 전 지구를 강타하여 모두가 큰 고생을 합니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분들은 확진자, 위중증자, 사망자들이지만 그 다음이라면 주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분들이겠습니다. 사람의 이동에 제한이 가해지니 유동인구를 바라보며 생업을 유지하는 이들이 힘들 수밖에 없고 이 부문을 중심으로 경제는 경색됩니다. 그래서 각국 정부는 생계비를 벌지 못하는 이들에게 긴급한 지원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실물의 생산은 (일단) 없이 돈만 (먼저) 풀리게 되어 인플레이션, 물가 상승의 요인이 생깁니다. 생산이 그리 큰 간격을 두지 않고 이내 재개되면 좋겠으나, 코로나가 각종 변이를 만들며 여전히 잠잠해지지 않는 통에 여러 부작용과 구조적 문제가 우려됩니다. 


이 책 p37에서는 영화 <인 타임>의 화폐 체계(허구상의)를 소개합니다. 손목에 시계 같은 걸 새겨 남은 수명을 표시하는데 무엇을 사거나 할 때 돈 대신 이것을 조금씩 떼어 주어 교환 수단으로 삼습니다. 즉 시간이곧 돈이며 돈이 많은 사람이란 곧 살 날이 아직 많이 남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가난한 사람은 자연적인 수명도 적게 남은 법이니 그 점에서는 현실보다 불공정하고 가혹하지만 대신 이런 사회에서는 누가 사람 수명으로 장난을 칠 수는 없으므로 인플레이션의 우려가 적을 듯합니다(모든 재화, 서비스의 과소 생산이 벌어지면 모를까). 정부 당국에서 관리하는 화폐의 수량이 실물 경제와 항상 적정선에서 일치하게 할 수 없으므로 인플레의 위험은 언제나 있고 요즘처럼 돈이 많이 풀렸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양적 완화"는 특히 과거 그리스 디폴트 위기 당시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가 세계적 디프레션을 막기 위해 단행한 화폐 증발(增發) 조치 때문에 유명해졌습니다. 이 책에서는 p49에서 특히 도널트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의 "500억 달러 긴급 투입"을 뉴스 사진과 함께 소개합니다. 책에 나온 대로 "한국 GDP의 두 배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라는 설명을 들으니 실감이 납니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이 달러를 미국 영토 외에 다른 나라로 흘러가게 할 힘이 있습니다. 자국 인플레 압력을 해외로 분산시키는 거죠. 사진을 보면 트럼프도 트럼프지만 펜스 (당시) 부통령의 마치 "그럼, 무제한이고말고"라 말하는 듯한 단호한 표정이 인상적입니다. 


돈만 많이 푼다고 되는 게 아니라 그에 걸맞은 실물의 생산이 반드시 뒤따라줘야 인플레이션이 생기지 않습니다. 요즘 일각의 경제이론에서는 어차피 디지털 분야에서의 혁신이 끝도 없이 이어지므로 화폐가 무제한 늘어난다고 해도 이를 뒷받침할 효용이 그만큼 생기는 셈이라고도 하며 특히 런던 등 대도시의 집값이 끝도 없이 오르는 걸 보면 일리가 있긴 합니다. 그러나 모든 부문의 한계 생산이 일정한 게 아니며 p65의 오건영 신한은행 부부장 같은 분은 이런 화폐 증발, 양적 완화가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봉합하는 것"이라 평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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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쇼 데모크라시 일본 근현대사 4
나리타 류이치 지음, 이규수 옮김 / 어문학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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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는 대략 세 구간으로 분류되는데 1) 무단 통치기, 2) 문화 통치, 3) 민족 말살 등이라는 건 우리가 중고교 때 배워서 아는 바입니다. 1)과 2)를 나누는 기준은 3. 1 운동이며 사이토 총독도 스스로 평가하듯 조선인들의 역량이 날로 향상하므로 앞으로 무력 진압 같은 것으로는 저항을 막지 못할 것임을 내다본, 어떤 장기 정책 레벨의 전환이었습니다. 


그 전, 일본은 유럽 대륙에서의 전쟁 추이를 관망하다 승전이 유력한 연합국 측에 가담하였는데 연합국의 반대 진영인 동맹국(Central power)의 중심은 독일이었고 이 독일의 세력권이었던 칭따오 등을 장악해 버립니다. 이어 참칭 황제인 위안 스카이에게 21개조를 내밀어 관철시키는데 이게 1915년의 일입니다. 연합국이 완전한 승리를 거둔 건 1918년, 조약 등으로 패전국의 이권을 갈라먹게 된 건 1919년이며 이때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 등이 나옵니다. 이 와중에 조선에서는 3. 1 운동, 중국에서는 5. 4 운동이 발발합니다.


다이쇼는 메이지 덴노의 뒤를 이은 군주의 연호이며 한자로는 大正이라 씁니다. 일부 기록에 보면 다이쇼 시대가 정식으로 그 군주가 대례를 올린 1915년에 시작한다는 말이 있으나 근거가 없고 1912년 즉위 시점을 기점으로 삼는 게 당연히 맞습니다. 다르게 평가할 이유가 없으니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다이쇼 시대의 개막이 1920년대인 것으로 착각하기도 하는데 문화통치기와 다이쇼 시대를 동일한 구간으로 오해한 결과입니다. 


21기 31주차에 제가 올린 독후감 중에도 그런 말을 썼지만 이 군주는 행사 도중 청중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틈을 타 연설문을 돌돌 말아 망원경처럼 봤다고 하는 일화가 유명합니다. 그만큼 인지나 판단 능력 쪽에 뭔가 큰 문제가 있었다는 뜻인데 다만 정말로 해당 인물한테 심각한 의학적 기준의 장애가 있었는지는 불분명합니다. 지배층에서 군주에 대해 불만이 있으면 광기, 발병, 정신박약 등으로 핑계를 만들어 섭정을 세우거나 왕위에서 축출하는 건 생각보다 드물지 않습니다. 그의 시대는 군주의 자연사와 함께 막을 내렸지만 저런 평판 악화로 인해 실제로는 진즉부터 권한의 올바른 행사가 어려웠습니다. 묘하게도 현대 일본의 직전 군주인 아키히토 역시 헌법 개정 이슈와 맞물려 조기 퇴위했는데 이 사람이나 저 다이쇼 덴노나 친한 성향이었다는 점이 공통입니다. 


일제 때 만들어진 악법 중 하나가 치안유지법인데 물론 일본 국내에서도 널리 적용되었고 심지어 지금도 그 후신이 있습니다만 저 치안유지법이라는 게 1925년 중반에 제정되었습니다. 다이쇼 덴노가 죽은 건 1926년말이니 이 또한 묘하게도 한 시대의 종막과 악법의 발효가 살짝 겹치는 셈입니다. 치안유지법은 이후 독립 운동가의 탄압에 쓰이니 사실상 문화통치는 1920년대 중반부터 그 가면을 일찍도 벗어던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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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가족영화 100
서울국제가족영상축제 지음 / 여성신문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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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우드 영화의 가장 빼어난 점은 가족의 가치를 강조하는 장르에서 타 문화권이 좀처럼 따라하기 힘든 감동의 유발을 깔끔하고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실현한다는 점입니다. 이것도 대략 1990년대까지의 사정이며 현재 만들어지는 미국 영화들은 오히려 이전 시대보다 퇴보한 느낌마저 없지 않습니다. 


<프린세스 브라이드>는 제가 7년 전 책좋사에서 다른 네 분의 회원님과 함께 당첨되어 서평도 남긴 적 있는 윌리엄 골드만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영화도 재미있지만 소설도 골드만 특유의 정신없는 유머와 빼어난 구성력이 빛나는 걸작이죠. 두 개의 병 중 어느 것이 독이 들었는지 알고 살아남는 트릭은 이후 BBC 드라마 <셜록>에서도 그대로 차용되었습니다. 


리처드 도너의 <슈퍼맨>도 있습니다. 이를 가족영화 장르로 뽑은 게 특이한데 경쟁사 마블의 요즘 기획 <어벤져스>라든가 배우 톰 홀랜드 중심으로 두 번째 리부트된 <스파이더맨>은 가족영화라 부를 수 있을까요? 그러기에는 너무 정치적 강박에 시달리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크리스토퍼 리브(RIP...)의 해석이 훨씬 나았다고 보며 요즘 버전(헨리 카빌은 물론 좋은 배우지만)은 지나치게 힘이 들어간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도너 해석의 슈퍼맨이 평면적이지도 않아서 다시 보면 제법 사연이 많습니다. 관객들이 간과했을 뿐.


일주일 전 크리스마스가 지나갔습니다만 <그렘린> 같은 걸 보면 CG에 밀려난 과거 헐리웃 식 특수촬영기술이 얼마나 장인정신에 가득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술적인 면뿐 아니라 주제면에서도 지금 영화보다 훨씬 성숙합니다. 


<굿바이 마이 프렌드>는 1995년에 개봉했다고 나오는데 주연이 약물중독으로 죽은 고 브래드 렌프로죠. <의뢰인>에서는 어린애였는데 여기 보면 한창 때 크는 애들답게 불과 몇 년 사이에 거의 어른이 되었습니다(물론 애입니다만). 같이 나오는 키 작은 에이즈 환자 아동은 저때로부터 2년 전 <쥬라기 공원>에서 누나하고 열심히 도망 다니던, 잔 해먼드 회장의 손자 역이었던 그 배우입니다. 


<귀여운 반항아>는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끈 틴에이저물입니다. 샬럿 갱스부르가 주연인데 이때 14세였습니다. 그 (실제)부친은 좀 정신이 돈 작자이지만(그 엄마도 만만치 않죠. 음치에다가) 여튼 여기서 샬럿은 아주 귀엽게 나오긴 합니다. 배우 이름도 샬럿이고 극중 배역도 이름은 같습니다. 이 영화는 배우들도 배경도 모두 프랑스산인데 한국에서는 이탈리아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리끼 에 뽀베리"가 부른 주제가 "싸라 베르께 띠 아모"가 이탈리아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이 노래는 알렉산드레 아야의 2003년작 공포영화 <엑스텐션(한국 개봉 제목)>에서 두 여주인공이 신나게 차를 타고 가며 부르는 노래이기도 한데 보기만 해도 신이 납니다. 사라 모건의 로맨스 소설과는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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