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우스 로마사 1 - 1000년 로마의 시작 리비우스 로마사 1
티투스 리비우스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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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역사는 지중해 일대의 역사 전체와 그 비중이 맞먹을 만큼 장구하고, 그 위신이란 고대 서유럽사 전반의 그것을 대표한다 할 만큼 중요합니다. 셀주크 투르크가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아나톨리아 반도를 차지했을 때 스스로도 감개무량했던지 점령지의 행정 단위를 "룸(그들식 발음으로) 술탄국"으로 불렀을 정도죠. 심지어 이곳은 원래의 로마(도시)로부터 3200km 정도, 서울 부산 사이 거리의 열 배 가까이 떨어져 있는데도요. 심지어 저 전투는 서로마 제국이 이미 멸망하고도 600년 가까이가 지난 후 치러졌는데도 말이죠.

11세기 후반에조차 로마의 위신이, 그 아슬아슬한 후계자인 비잔티움 제국(동로마 제국)에 의해서 그 정도라도 유지되었다면, 전성기의 공화국, 팽창기의 제국 시절엔 과연 어땠겠습니까. 하물며 리비우스는, 아직 제정, 정확하게는 원수정 초반의 승승장구하는 로마 역사 첫물만을 잠시 구경하다 생을 마쳤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의 저술에는, 말하자면, "당대인들 보아라, 외국인 너희들 경배하라. 후손들이여 주목하라. 우리 로마의 역사, 이처럼이나 자랑스럽고 당당하며 장엄하다." 같은 긍지가 뚝뚝 묻어납니다. 그의 필치는 한 마디로 요약하여 긍지와 애국심 그 자체입니다.

대개 자긍심 가득한 역사가의 필치와 시선이 자칫 잘못하면 주관주의, 국수주의, 독단으로 치닫기 일쑤이지만, 이 책은 심지어 그런 위험이나 경솔함으로부터도 자유롭습니다. 리비우스의 <로마사>는, 신중하고, 체계적이며, 로마 비(非) 시민권자는 물론 심지어 로마에 적대적인 이의 눈으로 읽는다 가정해도 엄정하고 공정합니다. 어떤 대목은 아예 "과학적"이란 느낌마저 줍니다. 무려 2000년도 넘은 아득한 옛 시절, 이처럼이나 체계적으로 사물과 사람을 보고 판단하며 정리하는 사람이 다 있었나 싶을 만큼입니다.

역사는 대체로 "이야기"이기도 하며, 불어에서 "이스투아(historie)"는 역사란 뜻, 이야기(="레씨 recit")란 뜻을 함께 가집니다(영어에선 history와 story가 발음, 철자, 단어 엔트리 등 모든 면에서 구분되나, 직접 어원은 역시 프랑스어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특히 근대에 들어 계몽주의 지성인들에 의해 "과학"으로 접근해갔으며, 랑케의 실증주의에 이르러서는 그 엄정성이 극치에 달했습니다. 헌데 그로부터도 천 수백 년 세월을 격한 이 리비우스의 저술은, 이미, 매우 체제가 질서 바를 뿐 아니라, 어떤 파트에서는 "행정가의 경륜"이 묻어나기까지 합니다. 한 개인이 대체 어떤 식으로 지적인 훈련을 받거나, 스스로 소양을 쌓았길래, 이렇게 생각하고 이런 책을 쓸 수 있는지, 참으로 놀랍게만 여겨졌습니다.

리비우스의 로마사는 이야기로서 망라적일(=빠진 데 없이 촘촘한 사연을 담았을) 뿐 아니라, 당대인과 외국인, 심지어 적국에 대해서조차 신뢰를 보낼 수 있는 표준적 관점을 담았습니다. 물론 역사의 초반에는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늑대의 젖을 먹었다느니, 독수리 떼가 누구에게 더 많이 날아와 결국 로물루스가 창업의 정통을 더 크게 얻었다느니 하는 신이한 전기(傳奇)가 길게 서술됩니다. 허나 당대인들이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고대사를 이상화, 신비화했다는 증언, 인용으로 받아들여도 되지 않겠습니까?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가 아니라 말입니다. 고려 후반의 승려 일연도 <삼국유사>를 저술할 때, 그 기괴한 사연들을 일일이 사실로 믿어서 기록에 남긴 게 아니라, 신화나 전설은 그것대로 후대에 전할 필요가 있다는 동기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우리가 일본 중근세사를 읽으면, 이른바 요바이(夜這い) 풍습 등 참으로 미개하고 낯뜨거운 야만 습속이 많아 얼굴이 다 붉어집니다. 그런데 로마의 창업 초기로 거슬러올라가 봐도, 아직 인지가 덜 깨일 무렵이라, 젊은 남성들이 나체로 질주하며 처녀를 차지하는 경쟁을 벌였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는 말그대로 생면부지의 남성에게 완력으로 장래와 신변을 도적질당했다기보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동네 친구 또래 몇몇을 놓고 양해 하에 스스로 선택권을 줬다는 식으로도 선해가 가능합니다. 현대의 젊은 여성이라고 해서 "쟤 아니면 안 된다"는 식으로 어디 한 남자만 찍어 놓고 살겠습니까?(물론 그럼 좋긴 하지만) 둘 혹은 셋 중에 능력 있고 과단성 더 있는 쪽에 순간 마음이 기울 수도 있죠.

p60:10에 보면 두움비르란 직책이 나옵니다. 라틴어의 duum 등에서 보는 모음 철자 겹침은 실제로도 두 배 길이로 발음하기에 저런 표기는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어떤 건 철자가 같은데도 두 배로 길게 늘여야 할 때도 있습니다. 정격을 갖춘 라틴어 텍스트는 모음 위에 장음기호[이런 걸 마크론이라고 하죠]을 붙여 표기합니다). 참고로, 본문에 duumvirs라고, 영어식으로 복수형이 표기된 걸로 보아 이종인 선생께선 영역본을 저본으로 삼으신 듯합니다. 라틴어 복수는 duumviri로, 어미(엔딩) -i가 붙거든요.

아무래도 이 시기(제1권은 건국초부터 390 BCE까지 다룹니다. pp. 548~550의 연대기에 타임라인이 잘 정리되어 있고, 이런 점 역시 이 책만의 최고 장점 중 하나입니다)는 로마가 자신들만의 정체성과 기반을 다져 나가는 도상(途上)이다 보니, 인접 후진 지역의 주민, 종족들과 갈등하는 양상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래도, 꼭 로마 시민이 아니어도 라티움 지역인들과는 말이 통했고(왜 "로마어"가 아니라 "라틴 어'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방언의 편차는 있어도 반도 인근의 거주자들과는 의사 소통에 큰 무리는 없었을 겁니다.

허나 알프스 넘어, 갈리아 지역을 응시하면 사정이 크게 달라집니다. 이들은 육체적으로 드세고 미개하기에 막무가내이며(로마 인의 관점에서), 그들 나름대로 확고한 정체성을 지녔기에 결코 대적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로마사의 전반부는 이 골 족과의 대립상이 큰 비중을 차지하며, 마치 중화 제국이 동이, 서융, 남만, 북적을 상대로 "왕화"를 시도하거나 군사적 징치를 도모하던 족적과 유사합니다. 물론 우리는 근거도 없이 승자 위주의 세계관에 편승하여 자기기만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되며, 리비우스나 로마인의 관점이 무엇이었든 간에 그 상대측의 입장까지도, 행간을 넘어 객관적으로 관찰하려 애 써야 하겠습니다.

갈리아 인들이 얼마나 로마인들의 골치를 썩였나 하면, 우리가 잘 아는 불세출의 정치인, 군인이었던 줄리어스 시저도 그의 대표 저술 중 하나가 <갈리아 전기(戰記)>일 정도입니다. 골 족 상대로의 대 승전이 그의 커리어 정점을 찍을 만큼 중요한 사건이고, 물론 로마가 생존의 기로에 서서 기사회생한 모멘텀이기도 합니다. 헌데 이 1권에서 다뤄지는 전쟁 기록은 그보다도 300년이나 더 앞선 시기의 것들입니다. 로마인들에게 골 족이 차지하는 위상이랄까 하중은, 마치 중화 제국이 흉노 족을 상대로 느꼈던 부담과 공포감과도 유사합니다. 수백 년 동안이나 말입니다.

역시 300년이나 앞선 시기이지만, 이 책에도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라는 이름이 또 등장합니다. 줄리어스 시저(동명의 조상들은 또 왜 그리 많은지요 원)의 가문이 얼마나 유서 깊었는지 또다시 확인 가능하며, 예컨대 현대 작가 칼린(Coleen) 매컬로 여사의 대작 픽션에서, 재산은 막대하지만 위신이 전무했던 마리우스 장군에게 그처럼이나 비싼 대가를 받고 혼사를 치를 수 있었던 저력의 먼 연원이 대체 어디서부터인지도 새삼 짐작 가능합니다.

르네상스 역사를 공부할 때 중요한 지리적 기준 중 하나가 알프스 이남이냐 이북이냐 하는 겁니다. 정확하게는 "알프스 이편/저편"인데, 그야말로 자신과 타인을 대단히 주관적으로 편가름하는 범주라서 어리둥절할 때가 많았죠. 이런 이상한 명칭의 근원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알려면 바로 이런 로마 시대의 사료를 들여다 봐야 합니다. 고전 중의 고전을 읽는 보람과 재미는 이런 데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책에는 "키살피나"라는 개념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게 cis+alpina입니다. cis는 말하는 사람, 혹은 어느 기준점을 상정했을 때 "이쪽, 같은 편'이란 뜻입니다. 이게 천 수백 년이 지나 나폴레옹의 시대에 이르면 이 사람이 반도를 정복하고 인위적으로 편성한 "치살피나 공화국"이란 이름도 등장하는데. 완전히 같은 어원이고 단 그로부터 수백 년 전 이탈리아어에 폭 넓게 구개음화 현상이 일어나 "키"가 "치"로 바뀌었을 뿐입니다(우리말에서도 종종 발견되죠). 왜 저기 시스 AB형이라든가, 유전자 발현 메커니즘 용어에서도 이 접두어 cis-(반대어근은 trans-)는 너무너무 자주 쓰이죠.

이 1권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서사는 혹 단 둘만 꼽으라면,


1) 현대 영어권, 아니 서유럽 문화권에서 두루 "폭군의 대명사"로 꼽히는 타르퀸 더 프라우드(오만왕 타르퀸)이 과연 누구였는지, 어쩌다 그런 유취만년의 신세가 되었는지. 정통 역사가의 서술을 읽어 나가며 머리 속에 정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타르퀸 왕은 서유럽에서야 거의 네로만큼이나 유명한데 한국인들에게는 비교적 덜 알려진 편이죠. 이 폭군이 왜 중요하냐면, 이후 로마가 공화정을 이어나가며 혹 대중에게 인기를 끄는 실력자가 등장할 때마다, "너, 타르퀴니우스처럼 되고 싶냐? 여러분들, 기분에 끌려 또 독재자 밑에서 신음하시렵니까?" 같은, 일종의 건국이념 반면교사나 안티테제 처럼 기능하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멀게는 브루투스가 시저를 암살한 것도, 대외적 정당화의 기반은 이 고사에서 마련한 행위입니다.

2) 역시 유명한 "정결한 루크레티아" 이야기가 대체 무엇이 원전인지, 이 1권에서 또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대 젠더 담론으로 보면 여성에게 자신이 책임 질 수 없는 사유로 무슨 정절(을 위한 죽음)을 강요하느니 비판이 제기될 수 있지만, 사실 이 책에서도 확인되지만 본디는 그런 가부장적 도그마와는 무관한, 한 자부심 높은 여인의 결연한 처신(무슨 남존여비 사상의 희생양이 아니라, 복수를 해 달라는 확고한 결의, 자신의 존엄을 선명히 하려는 동기였죠. 남자도 치욕을 당하면 자결하는 고사가 역사에는 얼마든지 있습니다)을 잘 드러낼 뿐입니다. 이뿐 아니라 루벤스 외 여러 거장의 그림으로도 유명한 각종 사연의 기원, 모티프가 무엇인지도 그야말로 원전으로(그것도 바로 이 1권애서!) 확인 가능하죠. 또, 앞서 말한 매컬로 여사의 픽션에서는, 브루투스가 그런 거사를 감행한 내적 동기를 놓고, 그 모친의 훈육 방식이나 처신이 아이한테 남긴 나쁜 영향을 은근 암시하는데, 이 1권을 통해 먼 조상님 브루투스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재미있게 배울 수 있습니다.

서술은 당당하고 시야는 원대합니다. 성인은 이 책을 읽고 품위 있는 정사서의 기준이 무엇인지 가치관을 재정립할 수 있고, 자라나는 청소년이라면 바로 이런 위풍 빛나는 역사를 읽고 그 역사를 숨쉬며 만들어 나가는 인물이 되겠다고 보다 큰 꿈을 품을 수 있습니다. 추천사에 나온 대로, 왜 여태 그리스 사가들의 대작들에 비해, 이런 중요한 고전이 늦게 번역되었는지 만시지탄의 느낌이 있지만, 이종인 선생 같은 최고 권위자의 손에 의해 이처럼 우리 독자들과 감개 어린 조우가 이뤄졌으니 더 바랄 게 없습니다. 그저 최고,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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