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 올림픽 백과 - 궁금해요! 동계 올림픽의 모든 것
정인수 지음 / 기린미디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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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만국기 도안을 보여 굉장히 흥미로워합니다. 지구상에 그토록 많은 나라가 대륙 혹은 섬 각 지점에 오밀조밀 배치된 것도 신기한데, 온갖 도형과 색채를 조합하여 "우리 나라는 이런 모양새로 상징될 수 있어!"라고 뽐내듯 나열된 그 조형의 성찬이라니. 헌데 이런 국기를 앞세우며 그 나라를 대표할 만한 빼어난 신체 능력을 지니고 또 발휘하는, 한창 나이의 청년들이 서로 기량을 겨루는 "운동회(실제로 중국에서는 이 번역어를 씁니다)"라니 얼마나 더 가슴이 설렐까요. 어른이 되고서는 그저 심드렁할 수 있지만(특히 그 이면에 숨은 타락한 정치 행태가 보도되거나 하면), 아이들 때는 이런 국제 행사, 매년도 아닌 4년마다 귀하게 열리는 대회가, 특히 설레는 마음으로 주시하게 되는 구경거리입니다.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구경거리의 참맛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규칙과 상황을 정확히 파악한 후라야 합니다. 대충 보고 알 만하다 싶어도 더 철저히 따지고 들어가면 그간 놓쳤던 숨은 묘미를 더 속속들이 음미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고가의 장비와 수트를 마련하여 겨울 스포츠를 따로 즐기는 분들이 많이 늘어났지만, 많은 이들은 아직도 무슨 종목이 있는지, 어디에 포인트를 두고 즐겨야 하는지도 모른 채 남의 집 경사 대하듯 데면데면해할 뿐입니다. 올림픽의 국내 개최가 몇 주 남지도 않았는데(이 기회를 놓치면 생전 다시 맞이나 할 수 있을지 싶은) 아직도 열기가 뜸한 건 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불경기나 정치적 의기소침 같은 이유가 아니라, 동계 스포츠 자체에 대해 낯선 느낌이 먼저 들어서이죠.

하계 올림픽에 대해선 그 개최지나 연도까지 정확히 외우는 분들도 많습니다. 의식적으로 뭘 외운다기보다는 다큐나 홍보를 통해 워낙 많은 정보가 유통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머리에 남아서이죠. 그러나 동계 올림픽이라면 비교적 근래에 개최된 대회들이나 장소(국가, 도시)도 꽤 낯섭니다. 하지만 정보가 질서 있고 알기 쉽게 잘 정돈된 책을 집중해서 읽고 나면, 왠지 나도 동계 올림픽 박사님이나 되어 있을 듯한 뿌듯함이 느껴집니다. "아이들 책인데..." 하시는 분은, 성인인 저도 이 책 무척 집중해서 읽었고, "아 그랬었지." "그게 그런 거였나?" 해 가며 무척 몰입되는 독서였다는 점 자랑스럽게 고백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잘 만들어진 책이라면 아이들 책이 (어른에게조차) 훨씬 유익하다는 점 새삼 강조하게도 되고요.

하계 올림픽이나 FIFA 월드컵도 그렇지만 남한보다는 북한 선수(단)이 먼저 두각을 나타내고 성과도 올렸습니다. p47에 보면 무려 1964년 인스부르크 대회에서 스피드스케이팅 3000m 여성 종목에서 북한의 한필화가 은메달을 따 내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빙속이나 육상의 트랙 종목이나 동양인이 메달권에 입상하기가 무척 어려운데 극동의 이름도 없는 나라 출신이 당당히 시상대에 올랐으니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사실 자체보다 한 선수의 오빠 되는 한필성씨 관련 상봉 사연이 더 널리 화제가 되었지요. 이 대회가 북한으로서는 최초 참가였는데 이 대회를 통틀어 "아시아인 유일 메달 획득"이라고 합니다.

"중립국"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열린 1948년 대회는 2차 대전이 끝난 후처음으로 열린 행사이기도 합니다. 보통 OX 퀴즈에서 우리나라가 최초로 참여한 올림픽이 런던 대회 아니냐고 묻는데, 이 행사가 몇 개월 전에 열렸기 때문에 틀린 겁니다. 1948. 1이면 아직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이었으나 "KOREA"라는 이름으로 IOC에 가입했던 상태였고, 위에 쓴 대로 북한은 1964년부터 참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스쿼밸리 올림픽에 대해서, 저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자세한 걸 몰랐던 게 아니라 아예 이름 자체를 처음 들었습니다. 이 "스쿼밸리"는 책에 잘 나와 있는 대로 미국 캘리포니아 주 소재 스키 리조트의 이름입니다. 관례대로 도시 이름을 딴 게 아니라 상업 시설의 간판을 전면에 내건 유일한 경우이죠. 놀라운 건 동계 올림픽을 대표하는 종목 중 하나인 봅슬레이는, 경기장이 아예 건설되지 않아 열리지 못했는데, 책에는 "참가국이 9개밖에 되지 않은" 이유도 들고 있습니다만 월트 디즈니 같은 장삿속을 앞세운 "회사"가 사실상 주도했던 것도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이런 걸 보면 지금이야 번듯한 구색이고 화려한 외관이라 해도, 그 출발과 성장은 참 어색한 면이 많았던 초보스러운 행사였던 게 동계 올림픽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프랑스는 지형의 영향으로 기후대가 다양한 편이라 동계 올림픽도 세 번이나 열었는데 이건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개최 횟수입니다. 1968년인데 비공식이긴 하나 처음으로 대회 마스코트가 등장했으며, "광고가 새겨진 옷은 입지 맙시다!" 같은 합의가 이뤄지기도 했답니다. 올림픽은 물론 온갖 스포츠 경기 중에 선수인지 샌드위치맨인지 모를 만큼 브랜드가 주렁주렁 빈틈없이 부착된 유니폼이 난무하는 요즘에 참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신선한 외침입니다.

프랑스는 1968년에 이어 1992년에도 동계 올림픽을 개최했는데 우리들도 이름이 익은 알베르빌에서였습니다. 이 대회는 놀랍게도 남성 스피드스케이팅 종목에서 김윤만이 처음으로 은메달을 따 전 국민들을 놀라게 했는데 어째 나라의 국세가 뻗어나가는 모습을 상징이라도 하듯 전 개인적으로 이 무렵이 한국이 가장 살 만한 시기 아니었나 싶습니다. 여성 종목은 지금도 이상화 선수가 정상권에 머물러 있지만 근육량과 체격의 차이가 현저한 남성 종목에서는 동아시아인이 메달 따기가 정말 힘든데, 김윤만의 성과는 지금 생각해도 정말 대단합니다. 그 외에, "쇼트트랙"이 처음으로 정식 종목으로 승격되고, 이미 이 분야에서 한국이 절대 강자라는 정평이 나 있었기에 관계자들은 성적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걱정을 접었더랬죠. 우리 국민들도 미디어를 통해 이 점을 잘 알고 기대치를 한껏 높여 놓은 상태였었고 말입니다.

쇼트트랙이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을 때 고 사마란치 당시 IOC 위원장 같은 이는 "스포츠맨 정신에 어긋난다" 같은 지적을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확고한 자기 자리를 굳힌 종목이라 한때 저런 말을 들었다는 게 실감이 안 될 정도이고, 이후에 성장기를 보낸 한국인들이라면 우리 나라가 동계 올림픽에서 당연히 10위권에는 들어 주는 강국으로 이미지를 형성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988년 캘거리 올림픽에서만 해도 우리 나라는 모두 28명의 선수가 출전하여, 단 하나의 메달도 못 따내는, 그야말로 참가에 의의를 두는 정도였습니다.

책에는 이 대회를 두고 "냉전 시대 마지막으로 열린 올림픽"이라 합니다만, 이때만 해도 냉전이 그처럼 갑작스럽게 끝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 대회 최고의 스타 중 하나는 "동독 국적"의 여성 피겨 스케이터 카타리나 비트였는데, 우리에게는 "김연아를 아낌없이 격려해준 레전드"로나 기억될지 모르지만 당시 저는 이분을 보며 대체 사람이기나 한 건지, 하늘에서 강림한 엘프나 아니었는지 그저 황홀할 뿐이었습니다. 인터넷에 찾아 보면 대회 끝나고 열리는 갈라쇼에서 이분이 마이클 잭슨의 <배드>에 맞춰 연기하는 동영상이 있는데, 전 그것보다 <빌리진>를 배경음악으로 삼아 문워크를 시연하던 그녀의 동작이 잊혀지질 않네요. 정말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2010년 밴쿠버 대회도 캐나다에서 열렸는데 이때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김연아가 피겨퀸으로 전세계인들 앞에 위상을 확고히한 기념비적인 행사였죠. 김연아는 주니어 시절부터 이미 세계 최강자였으나 성인이 된 후에도 그 기량을 유지할지, 올림픽처럼 시청률과 집중도가 높은 장(場)에서도 과연 침착하게 본연의 실력을 발휘할지 그 부담감을 어떻게 이겨 내느냐가 관전 포인트였는데, 사실 그녀는 기량도 기량이지만 멘탈이 차라리 더 쎈(!) 편입니다. 아니 기술적 완성도도 사실 역대 최강이었지만(제가 개인적으로 그렇게 카타리나 비트에게 꽂혀 있어도, 전성기 기술만 놓고 대조했을 때 김연아가 몇 수 위처럼 보이더군요), 냉정하고 침착한 심리를 유지하는 바로 그 능력이야말로 진정 존경스럽기까지 한 자질입니다.

스키는 선수 키의 146% 이내의 길이여야 하는데(p204), 책 저 앞으로 돌아가 보면 p56에 왜 이런 규정이 도입되었는지 그 내력이 나와 있습니다. 1972년 대회는 일본의 삿포로에서 열렸는데(우표 수집하는 분들은 잘 알 겁니다. 국내에 유독 이 기념우표가 많이 찍혔지요), 일본 선수들이 요령껏 길이를 늘려 체공시간을 연장하는 바람에 금은동을 싹쓸이하는 사태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삿포로는 이 대회를 계기로 국제적인 동계 스포츠 리조트로 널리 이름을 알리게 되었는데, 부디 이번 평창 대회도 그런 성공적인 사례로 역사에 남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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