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킹 - 누가 새로운 세상을 지배하는가
앨 라마단 외 지음, 신지현 옮김 / 지식너머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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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뜸 브랜드를 만드는 과제도 보통 힘든 게 아닙니다. 아니, 브랜드 코인은 고사하고, 이미 시장과 영역이 정해진 판도에서 품질로 남을 압도하는 일등 제품을 만들기도 무척 어렵죠. 그런데, 과업의 난이도 자체가 반드시 그 수행자에게 합당한 대가를 안겨 주는 것도 아니라는 게 중요합니다. 이른바 "삽질"을 피하고 영리하게 과실을 따먹으려면, 경제적으로 투입된 효율적인 노력이 더 중요합니다. 저자들은 이런 적실한 노력을 두고 일러, "카테고리 킹이 되기"로 요약합니다.

카테고리 킹이 무슨 뜻일까요? 특정 섹터나 시장에서 그저 1인자로 잘나간다고 카테고리 킹이 되는 건 아닙니다. 1인자의 장점은 영리한 후발자들이 금세 따라 배웁니다. 시장의 충성도도 언제까지나 유지되는 게 아니며, 대중의 변덕은 수시로 수면 위의 보트를 잔인하게 전복하게 마련이죠. "킹"은 선거로 뽑히는 존재가 아니라, (허구의 이론에 불과하지만) 신이 부여한 권리에 의해 핏줄을 따라 세습되는 존재입니다. "카테고리 킹"은 시장에서 불안정한 지위를 놓고 하위 신분과 경쟁을 하지 않습니다. 한 번의 압도적인 수(手)로, 그 확고한 위상을 대물림시킬 만한 막강한 아이템입니다.

세상에 일찍이 없던 상품의 존재 영역, 기능, 그 소비가 부르는 놀라운 환희를 만들고, 이 시장 전체를 그 브랜드로만 기억되게 하는 획기적 개척을 두고 "카테고리 만들기'라 부를 수 있으며, 미개척의 카테고리를 만든 히트 상품을 두고 "카테고리 킹"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상품의 상위 분류명이나 유개념을 정확히 거론 안 하고, 그냥 "호치키스"라든가 "OO밴드"처럼 부르는 게 다 이런 예입니다(사실은 GPS도 상표명에 불과한데,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않고 시스템 자체로 여긴다는 점에서 이 역시 확고한 카테고리 킹의 실례입니다). 소비자에게는 그 개별 아이템 자체가 해당 시장 전체와 동일시되고, 앞으로 그 대체품으로 갈아탈 기미도 별반 안 보이는 압도적 강자이자 유일한 "선수"를 지칭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국망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공적을 쌓은 이가 이후 왕좌에 오르기도 하듯, 카테고리 킹은 여태 없던 걸 세상에 처음 빚어놓은 과감하고도 창의적인 혁신으로 대중의 뇌리에 새겨지는 존재입니다. p75를 보면 제품 디자인, 기업 디자인, 카테고리 디자인에 동시에 성공해야 이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음을 잘 도시화합니다. 기존의 마케팅 이론에서는 제품이 그 자체로 뛰어나기만 해서야 성공할 수 없고(많은 스타트업들이 좌절하는 게, 그 자체로는 뛰어나나 시장의 운때와 맞추질 못해서입니다), 이른바 "시장과의 궁합"이 잘 맞아야한다고들 주장하죠. 이 책은 그 "막연한 논의"를, 제3장을 따로 할애하여 "카테고리 디자인"이 성공적이라야 시장에서 살아남는다며 체계를 구체화합니다.

저자들은 흥미롭게도 무하마드 알리를 카테고리 킹의 좋은 예시로 듭니다. 그 이전에도 복서들은 천부적인 재주를 타고난, 놀라운 스피드나 반사신경을 자랑하거나 강펀치를 뽐내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인성이나 인격, 깨끗한 매너까지 갖추어 타의 모범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까지도 대중은 복서 하면 그저 알리만 떠올리기 십상입니다. 저자들은 이를 두고 "쇼맨, 챔피언, 반항아, 떠벌이, 이 모두를 한데 합쳐 놓은 카테고리가 여태 없었고, 알리가 이를 처음으로 만들어내었기에 불멸의 킹이 되었다"고 평합니다. 앞으로 아무리 뛰어난 PR 솜씨와 종목 적성을 지닌 이가 나온다 해도, 그는 "짝퉁"으로밖에 인식될 수 없으며, 영원히 카테고리 킹을 따라잡지 못합니다. 어린이용 판타지 모험 소설 "카테고리"를 처음으로 주조한 JK 롤링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하는군요.

이런 범주화를 생각하면 삼성의 선전(善戰)이 새삼 놀랍게 각인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애플의 스마트폰이야말로 역사에 남을 "카테고리의 창조"라는 점 누구도 부인 못 합니다. 그만큼이나 현대인의 일상에 밀착되고, 그만큼이나 기능성과 제품 환상을 동시에 갖춘 아이템이 앞으로 한 세기 동안 또 출현이나 할지 의문일 정도로 말입니다. 헌데, 책의 이론대로라면 삼성 같은 후발주자, 2인자는 진즉에 애플에 압살을 당했어야 맞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가장 호평 받는 도전자로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이에는 구글의 안드로이드 체제 경쟁 지원이 한몫합니다만), 1인자의 신경을 여간 쓰이지 않게 만드는 쏠쏠한 실적을 올리는 게 대단하다는 뜻입니다. 하나의 왕국에서 이성 제후가 적통 1인자의 지위를 노리는 건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책은 워낙에 단호하고 박력 있는 말투로 "과연 카테고리 킹이라야 살아남겠구나" 같은 인식을 독자들에게 확실히도 전달하기에, 도리어 이런 예외가 더 두드러지고 훌륭하게 각인되늰 거죠.

하지만 카테고리란 기업이나 마케팅 책임자의 입장에서 최고의 기준으로 준수될 내부 규범에 머무를 수도 있습니다. 기업이야 "그렇군, 카테고리 킹을 빨리 만들어내야겠는걸?" 같은 절박함이 확고히 내면화할 수 있지만, 소비자들에게는 이를 어떻게 어필할까요? 애플도 과거 삼성과의 소송전이 한창일 때, 삼성더러 "그냥 공개 성명서로 우리는 애플의 카피캣입니다라며 인정만 하면 모든 소를 취하하고 봐 주겠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이게 생각보다 중요한 액션이었는데, 그저 감정상의 자존을 지키고 상대에게 굴욕을 주려는 데 그친 유치한 전략이 절대 아니라는 소립니다. 품질이나 기능 외에도 소비자 대중에게 "내가 카테고리 킹이요"라는 확고한 이미지를 주려면(=왕으로 등극하려면), 어떤 스토리를 통한 계기가 마련돠어야 합니다. 상대측의 공공연한 굴복은 매우 광범위한 실효를 내기도 하겠고 말입니다.

이걸 놓고 저자들은 POV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즉, 어떤 상품이 대중 사이에서 "카테고리 킹이다(이런 말 자체는 몰라도 그런 현실적 인식은 다들 공유합니다)"라는 공감대를 퍼뜨리려면, 그럴 만한 스토리가 먼저 유행하고 널리 입에 오르내려야 한다는 겁니다. 사실 인간이 취약한 건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실화(사실은 100% 팩트가 아니며 그저 관점과 희구의 복잡한 대입, 윤색이 끼어들 뿐이지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도 "우리 때문에 죄 없이 희생되신" 스토리 때문에 고대 로마 전역을 급속히 파고들었으며, 어떤 히트 상품도 그 창안자의 신화적 성공담이 제품 개성에 체화되어야 "카테고리 킹"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습니다. 아이폰을 보면 그 창안자의 잡스의 휘광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성공 맥락을 운명처럼 달고 다닙니다. "혁신의 아이콘"은 잡스에게 아호나 별명처럼 붙어 다니는데, 아이폰을 구매하고 이용할 때마다 소비자들은 그 혁신의 "기운"이 내게도 스며들기를 주술처럼 희구합니다. 이게 바로, 같은 상품 하나를 봐도 그 의미가 확연히 다른 색채로 다가오게 하는 마법인, "ponit of view"입니다. 그리고 어떤 상품을 카테고리 킹으로 만드는 건 다름아닌 효과적인 POV의 세팅과 파급입니다.

저자들은 또한 이런 POV를 시장에 충격적으로 퍼뜨리는 기법으로 "라이트닝 스트라이크"를 강조합니다. 이는 말 그대로 번개나 벼락에 맞은 듯한 충격을 가리키는데, 현실의 자연에서 이런 기상 현상은 대피책도 있고 과학적으로 충분한 설명이 가능하므로 그리 무서운 존재가 아니지만, 마케팅에서의 라이트닝 스트라이크는 그야말로 날벼락처럼 경쟁사와 소비자 대중을 덮친다고 저자들은 말합니다. 저자들의 표현을 그대로 옮겨 보면, "... 시장의 잡음을 이겨내고 시장을 컨디셔닝하기 위해 기업의 모든 자원을 동원하는 전사적인 이벤트(p227)"인데, 이 말 자체도 라이트닝 스트라이크만큼이나 멋진 워딩입니다. 좀 오래된 예지만 IBM이 처음으로 1960년대 중반에 시스템/360을 각 기기업들에다 막대한 이윤을 남기고 보급(거의 독점이었고, 이를 감히 넘보는 기업은 존재도 하지 않았죠)하던 사실을 책은 환기합니다. 저자들은 "... 벼락이야 상대를 염두에 안 두고 무작위로 들판 아무데나 떨어질 뿐이지만, 기업의 라이트닝 스트라이크는 상대를 정확히 조준하여 그가 무슨 일을 당하는지도 모르게 가격하여 상품에 넋을 빼놓게 해야 한다(표현은 제 식대로 재구성한 거라 책과 불일치할 수 있습니다)"는 점에서 역시 일개 자연현상과는 차별을 짓습니다.

"카테고리 킹, 그거 매우 좋은 것이구나. 하지만 만들면 좋긴 해도 그게 현실에서 자주 가능하겠으며, 그저 남들 하는 만큼보다 조금 더 잘하기만 하면 시장에서 배겨낼 수 있지 않을까? 너무 허황된 대박을 꿈꾸는 건... " 대략 이 정도가, 특별히 패배자 아닌 우리들이 평균적으로 품는 마인드셋입니다. 다 그걸 하면 다 스티브 잡스게? 저자들은, 바로 이런 구시대적인 안이한 마음가짐을 품는 당신이야말로, 책을 읽을 자격이 없고 당장 책을 덮은 후 익숙한 루저의 루틴에 빠져들기나 해야 할 1순위 독자라고 합니다. 책의 매력은 천지개벽을 시킬 카테고리 킹의 이론화, 체계화 시도에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제는 모두가 카테고리 킹이 되지 않으면 아예 살아남을 수가 없는" 현실에의 각성과 촉구 어조가 더 선명한 개성으로 다가오더군요. 책은 독자를 느긋이 쉬게 내버려 두지 않고, 닦달하고 격동시키고 들쑤십니다. "당신 이렇게 가다간 고꾸라지게 되어 있어!" 가끔은 그 다급한 어조가 불안하게도 느껴지지만, 만인 생산자 시대가 도래하고 대량 소비 구조가 시대에서 퇴조하는 지금, 모두가 자기 범주 안에서 왕이 못 되면 노예로 살아야 할 미래가 코 앞임을 생각하면, 어쩜 당연할지도 모르는 화급한 경고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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