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로 읽는 아시아 - 지정학적 이슈로 보는 아시아의 역사와 미래
장 크리스토프 빅토르 외 지음, 조민영 옮김, 기욤 쇼 지도제작 / 시공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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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는 그 자체에 제작자(혹은 배포자, 반대로 배포를 막거나 통제하는 자)의 의도와 권력 의지를 적나라하게 움켜쥔 살벌한 도구이며, 무엇을 드러내느냐보다는 오히려 무엇을 생략하고 감추는지를 더 눈여겨 봐야 한다는 점은, 작년 5월 19일에 독후감을 남긴 <압축세계사>에서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단, 그 책에서 주장한 내용이었는지 아니면 독자인 저의 감상일 뿐이었는지는 기억이 확실치 않네요) 그 책이 무난하고 소프트한 실용적 의도에서 집필되었다면(게다가 생략의 묘를 확실히 발휘?), 이 책은 몇 백 배는 더 심각합니다. 도법도 그렇고(지도 제작자들은 그간 더 세련되고 더 효율적인 방식을 개량시켜 왔습니다), 지도에 표시하고자 하는 국제 정세의 험악하고 살벌한 추이 역시도 그렇습니다.

이 책의 부제를 보십시오. "지정학적 이슈로 보는 아시아의 역사와 미래"입니다. 어느 지역이나 "역사"도 있고, "미래"도 아마 각자의 잠재력과 의지, 목표에 따라 다양히 전개되겠지만, 간단찮은 "역사"와 지극히 불투명한 "미래"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현재의 아시아만큼 위태롭고 난해한 지정학적 상황, 이슈에 맞닥뜨린 지역은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이 책은 난감하고 첨예하며 당혹스럽기 그지없는 현재의 "지정학"을, 어느 보고서나 르포나 다큐멘터리보다 실감나고 정확하게 독자들에게 프레젠테이션해 주고 있습니다.

p17에는 화려한 원색으로 도시된 한 폭의 지도(뿐 아니라 이 책 전체가 이처럼 편집의 공과 기교를 아끼지 않은 걸작 도판으로 가득합니다만)가 나옵니다. 빨간색으로 표시된 지역은 우리 한국, 그리고 해협 건너 일본 열도뿐입니다. 무슨 지표를 상징하는 배치일까요? 여성 1인당 평균 출산아의 수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아시아에서 딱 두 군데뿐입니다. (아, 너무 작아서 안 보였지만 도시 국가인 싱가포르도 있네요) 텍스트는, "아시아는 본디 젊고 역동적인 인구 구조가 그 특징이다"라고 하는데, 일본은 세계 준비 통화로까지 대접받은 엔화를 운용하는 경제 대국이라고나 하지만, 우리는 그만한 고도 성장의 짜릿한 과실도 맛 못 본 채 이렇게 늙어가야 하냐에 생각이 미치니 다소 억울한 느낌도 지울 수 없군요.

영아사망률은 그 나라 복지와 후생을 판단하는 중요 지표입니다. 천 명이 보통 기준치이기에, 해수 염분의 농도처럼 ‰(퍼밀)이 단위입니다. 일본과 싱가포르는 2‰, 대한민국은 3‰, 중국은 12‰, 북한이 22‰인데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은 각각 41, 33, 70 수준입니다. 아프간은 71‰, 요새 부동산 개발이 한창인 라오스가 44‰, 캄보디아가 30‰나 되며, 반면 인접 타이와 베트남은 각각 11, 19 수준입니다.

서평 앞에서 "살벌한"이란 표현을 썼습니다만, p73을 보면 왜 아시아가 세계의 화약고가 되어가는지 그 현황이 잘 드러납니다. 방사형 부채꼴로 뻗은 그래프에서 청색은 미국, 적색은 중국(의 각종 지표들)인데, 어떤 것은 미국이 중국을, 다른 것은 반대로 중국이 미국을 압도합니다. 대체로 재래식, 양적 지표에서 중국이 미국을 앞설 뿐이고, 질적인 분야에선 여전히 미국이 우위를 점합니다만 어떻게 전개될지는 누구도 쉽사리 그 양상을 점칠 수 없습니다. 우리도 몇 년 전에 뉴스를 통해 안 바와 같이, 명목 GDP는 현재 미국을 중국이 추월한 상태입니다. 단순 길이가 아니라 방사형으로 퍼져 나가는 모양새라서 좀 과장된 감이 있습니다만 단순 인구 수에서 중국이 미국을 훨씬 추월하는 것도 엄연한 현실(저 앞 p15에 박스 아티클로 잘 설명되기도 합니다. 인도가 추세상 중국을 앞지르리라는 점은 우리도 이미 아는 사항입니다)이고, 이 두수(頭數)가 질적인 역량까지 담보할 때 무슨 결과가 촉발될지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을 뿐입니다.

바로 맞은편 페이지에 보면 이른바 "진주목걸이 전략"이 도시되었는데, 이는 현재 인도양 곳곳에 배치된 중국 해군 기지의 분포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유명한 전략 컨셉으로 A2/AD라는 게 있는데, anti-access/area denial의 약칭이죠. 공해를 포함 해양 곳곳에 미국과 그의 동맹국이 자유롭게 지나지 못하도록 장애를 설정하여, 궁극적으로 자국 영토를 더 저렴한 국방비 지출만으로도 방어해 낸다는 중국의 전략입니다. 이 전략의 일환으로 재작년에서 작년까지 핫 이슈였던 이른바 "구단선"이 주목받았고, 이 책에 다소 무섭게 그래픽화한 "진주 목걸이" 역시 이런 원대한 구상의 맥락에서 파악해야 합니다. 지정학의 살벌함과 현실감은 그저 텍스트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이처럼 지도 같은 보조자료의 도움을 얻고 입체적으로 파악해야 그 심각성이 피부에 와 닿습니다.

아시아는 대륙, 해양의 거대한 영역을 포섭한 만큼 무슨 관점에서도 핵심의 비중을 지닐 잠재력이 충분합니다. p106에서는 운송의 허브 역할을 특히 거명하는데, 2014년 기준 세계 20대 항만 중 6개가 중국에 위치한다는 놀라운(아니, 더 이상은 놀랍지만도 않은) 팩트를 지적합니다. 아시아의 으뜸 공항은 순서대로 두바이, 첵랍콕(적렵각), 인천 등이 꼽히지만, 이 페이지에서는 저 서아시아를 커버할 분량이 편집되지 못했으므로 홍콩과 인천, 도쿄 등을 평면 동시 대조할 수 있을 뿐입니다.

흥미롭게도 운송과 교통의 허브를 설명하는 항목 바로 다음에 인구 디아스포라를 화제로 꺼냅니다. 인구는 많고 그 인구압을 감당하거나 부양할 능력은 못 되어 세계 각지로 흩어지는 현상을 "디아스포라"라고 하는데,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이 요즘도 이런 아픔을 겪지요, 중국, 인도의 디아스포라도 전통적으로 유명했는데 근래 들어서는 자국 경제가 활황, 안정기를 맞이할 뿐 아니라 국력과 발언권이 신장되어, 어떤 해외에서 겪는 "설움, 아픔"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진출"로 인식되는 면이 강합니다. 이들 디아스포라 인구를 받아들이기로 으뜸인 나라들은 태국(인접 국가라서 그렇겠죠), 저 멀리 캐나다, 미국 등이군요.

본래 사람들은 오스트레일리아를 폄하하려는 의도로 "다운 언더" 같은 말을 쓰곤 했습니다만, 이 책에서는 지도 제작의 한 기법으로 개념 소개를 합니다. 이처럼 오스트레일리아를 지도 중심에 놓고, 남극을 정북 방향에 배치하는 도법은 기존의 관점을 전복하고 보다 개방적인 시야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합니다. 우주는 본시 위도 아래도, 왼쪽 오른쪽도 없으며, 심지어 절대 좌표계의 존재마저 부정됩니다. 무엇이 표준이고 중심이며, 위와 아래이어야 하느냐는 지도의 다양한 비틀기를 통해 오히려 바로 볼 계기가 마련됩니다. 다만 두 세계 사이에서 어디에 속할 것인지, 포용과 배제를 놓고 무슨 가치를 선택할지는 여전히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이 치열하게 고민할 국가적 아젠다 설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미래는 또한 에너지 확보를 위해 모두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자원 쟁탈의 장인데, 이는 벌써 세계 곳곳에서 그 서막이 이미 오른 전쟁이기도 합니다. 중국은 광대한 영토를 지녔기에 각종 자원이 풍부하지만, 자국의 인구가 워낙 많기에 남의 나라를 힐끔거리며 물색에 여념 없습니다. 이 책은 에너지를 두고 "아시아의 결정적 요인"이라고까지 평가하는데, 그 중에는 수 년 전 일본과 중국이 외교, 무역상 큰 마찰을 빚었던 희토류 이슈도 포함됩니다. 책에는 이례적으로 (화학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주기율표도 실렸습니다. 그린란드, 북한의 정주 인근이 희토류 매장의 새로운 보고라는 예측도 곳곳에서 제기되곤 하죠.

p111에는 아시아의 자원별 수요 추이가 누적 선형 그래프로 도시되었는데, 여전히 석탄의 비중도 높습니다만 재생 가능 에너지의 비율도 눈에 띄게 상승 중이며, 지구 온난화의 주범 중 하나인 중국이 최근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감소 노력에 열심인 사실도 희망적이긴 합니다. 그래프를 보시면 알지만 재생가능 섹터의 비중이 유의미하게 크며, 추세도 현저한 성장 징후를 보인다는 게 무척 반갑지요.

아시아는 특유의 질곡 많은 역사 때문에, 백인 제국주의 세력이 물러간 후에도 여전히 국지적 분쟁에 시달리느라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책에는 여러 국가들의 심각한 내전 내분 양상이 잘 소개되었는데, 일단 카슈미르 지역은 본래부터가 파키스탄, 인도 양국 사이의 목숨을 건 각축장이었고, 인도가 파키스탄과의 전쟁에 골몰하느라 자국 내의 정치 난맥상 때문에 지리멸렬하던 사이 중국군이 진입하여 일부 지역을 점령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게 마오 시대의 일인데, 인도와 중국은 성격이 명확히 구분되는 문화권인데다 덩치 큰 제국으로서의 위신을 내세우는 인접국이었으므로 역사상 사이가 좋았던 적이 없었습니다. 단지 티벳 고원과 히말라야 산맥이라는 지형적 장벽 때문에 그간 대규모의 충돌이 없었을 뿐이죠. 지난번 중국의 한류 통제, 관광 제한 등 이른바 금한령이 실시되었을 때, 인도 총리가 한국을 향해 유독 구애의 제스처를 열심히 보낸 건 이 때문입니다. 전통적으로 미국과 인도 사이도 그리 좋지만은 않았는데, 반 세기 전의 군사적 충돌, 그리고 최근에도 빚어지는 알력 때문에 이 둘은 근래 들어 부쩍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카슈미르 지역도 그렇고, 남쪽으로 내려오면 실론 섬(스리랑카)에도 이 아름답고 풍요로운 지역에서 분쟁이 그칠 날이 없었습니다. 스리랑카에 원 거주하던 인종도 기질이 드세기 짝이 없는데다, 대륙 쪽에서 넘어온 타밀 족도 의지가 굳세고 상대를 향한 적대감이 잦아들질 않는 불굴의 전투 종족입니다. LTTE가 최근에 기세가 주춤해지긴 했으나, 정부군이 워낙 강경 드라이브를 펴기 때문에 (책에서도 나오듯) "지역 공동체 간의 화합은 매우 요원한" 상황입니다. 장 말미에 "최근에는 (전통적으로 가까웠던) 중국보다 인도와 더 가까워지는 추세"라고 하는데, 이를 보며 국제 정세에는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음이 새삼 확인되죠. 스리랑카가 중국과 가까워지면 인도는 남으로부터 중국세에 포위되는 형국이거든요. 인도가 한국에댜 구애의 제스처를 취하니까 중국도 최근 금한령을 느슨히한 측면도 있는 겁니다. 책은 다양한 지도를 통해 이런 "지정학적 사정"을 잘 설명해 줍니다.

태국을 두고 저자는 "노란색과 붉은색이 대립하는 나라"라고 규정하는데, 태국이 본래 영토가 꽤 넓은 국가인데다, 인종 구성도 단일하지 않으므로 국가 통합 실현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 과제입니다. 과거에는 공산화 위험 때문에 군부-왕실 간의 암묵적 카르텔로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으나, 현재는 북부의 빈곤층, 노동자층 vs 남부의 중산층, 왕당파 지지 세력으로 나라가 분열된 상황입니다. 전자가 붉은색, 후자가 노란색을 상징하는데, 말 많고 탈 많은 탁신 일가는 전자를 핵심 지지세력으로 삼습니다. 이 둘의 대립은 어느 한쪽을 간단히 편들고 말 일이 아닌, 대단히 복잡한 구도를 갖습니다.

한 국가의 사정도 이러한데, 동남아시아 전체로 시야를 넓히기까지하면 온전히 화합이 이뤄질 전망이 극히 불투명해집니다. 이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로 스케이프를 확대하면 대체 결과가 어떨까요? 현재 아시아의 운명과 장래 노선은 아시아가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게 당위이긴 합니다만, 아시아 국가라고 해서 서구 세력에 대한 지난시대의 반감만으로 무작정 강경대립노선을 걷는 건 온당치 못합니다. 미국의 부당한 압력도 거부해야 하며, 동시에 중국의 무모한 패권 행보도 견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시아가 온전한 자존을 갖추고 자신과 타국의 미래를 건설적으로 설계하기까지, 디뎌야 할 여정과 극복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험난할 뿐더러 산처럼 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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