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MD : 브랜드 편 - 대한민국 최고의 슈퍼 MD가 알려주는 브랜드 큐레이션의 모든 것! 패션 MD 시리즈 2
김정아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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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에 편집숍("멀티샵, 셀렉샵"이라고도 국내에서 부릅니다) 브랜드 체인(일본의 "빔즈")에 근무하는 여러 직원들의 "집 이야기"를 묶은 책(제목은 <136명의 집>)을 읽고 서평을 남긴 적 있습니다. 현재 한국형 편집숍을 직접 운영하고 업계 원톱으로 일컬어지는 저자님의 책 1권(당시 1권이라고 제목이 붙진 않았으나 이렇게 2권이 나왔으니 이제 1권이 된 셈입니다)을 몇 년 전에 읽었는데, 길에서 별 생각없이 보고 지나쳤던 부띠끄의 경영과 활황 뒤에 그런 숨가쁜 노고와 고도의 센스가 녹아 들었다는 걸 알고 많은 생각이 들기도 했었지요. 당시 그 책을 읽으면서 "바잉(buying) 실력" 같은 낯선 용어를 접하고, 업계마다 천양지차인 논리와 법칙, 수완이 지배한다는 점 실감했습니다.

브랜드는 명품 마켓에서만 위력을 발휘하고 관련 종사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는 건 당연히 아닙니다. 그렇기는커녕 심지어 떡볶이가게, 보쌈집도 그 나름의 브랜드를 설득력있게 구축해야 매뉴팩처들의 실력,연구의 보람이 살아나는 법이지요. 브랜드는 현대 마케팅에서 고객, 대중과 접촉하는 유일한 채널이요 메시지를 전달하는 가장 강력한 미디어이자, 제품의 기능과 효용을 한몸에 압축하는 화체 이상의 실체이며, 차라리 "모든 것(everything)"입니다. 그래서 현재 가장 잘나가는, 최상의 감으로 업계를 쥐락펴락하는 슈퍼MD가 자신의 비결, 노하우를 털어놓는 책은, 어느 대목에서건 자기 일에 활용할 수 있는 영감을 얻을 수 있게 마련입니다. 저는 적어도 그런 기대를 갖고 책을 펼쳤네요.

이 2권의 주제는 "브랜드"인데,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트렌드를 만드는 브랜드, 브랜드를 만드는 트렌드"가 보다 세부화한 캐치프레이징이겠습니다. 브랜드 안에 집약되어 있는 시장의 모든 법칙을, 이성뿐 아니라 세련된 감성으로 탐구하되, 무모한 일반화보다는 신중한 귀납으로 결론과 미래를 도출, 예측해 보자는 의도겠습니다. 말이 이렇다뿐 일상에서 그래도 친숙히 접하는 브랜드의 흥망성쇠를 통해 마케팅과 경영의 이치를 더듬자는 것이니 꽤 재미있고, 좀 심하게 말한다면 보기만 해도 설레는 패션 브랜드(따라서 상당수는 크레이에터인 디자이너의 이름 그대로인)를 컬러사진과 함께 페이지 쇼핑하는 과정이니, 그냥 지면으로 눈호강한다 여기고 일단은 책장만 넘겨도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저자(이자 MD)가 어떤 의미심장한 표현과 어구로 가이딩을 해 주건, 그로부터 뭘 얻는지는 독자의 능력이겠지만 말입니다.

p74에 보면 베라 왕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녀가 <보그>에서 그 어린 나이에 편집자로도 명성을 떨쳤다는 건 처음 알았고, 그녀의 컬렉션에 3만원짜리 드레스도 있긴 하다는 것도 몰랐던 사실입니다. 저자는 그 약점으로 "지나치게 갈래를 친 라인업이 전체 아이덴티티를 흐뜨린다"고 지적하는데, 동양인 특유의 야무지게 시장 전(全) 셰어를 갈무리하려는 습성의 표현이라고 저는 봅니다. 패션 관점에서는 못마땅하겠으나, 혹 패션 자체의 논리와 시장의 생리가 분기하는 대목이 있다면 좀 더 지켜봐야겠습니다.

저자분 개인의 회고와 여담도 재미있는데, 로즈로코 뉴욕(책에는 해당 백화점에서 철수했다고 나오지만 다른 곳에는 [사세가 많이 위축되었는지는 모르나] 여전히 영업 중입니다)이, 한국 전체가 외환 위기로 망국의 고통에 접근해 갈 때 쌩쌩히 잘나간(명품 바람이 분 건 이때부터입니다. 중산층이 날린 재산의 흐름이 고스란히 극소수에 유입될 무렵이죠) 과거를 잠시 언급하시네요. 베라 왕 이브닝드레스의 성급한 국내 론칭으로 이 샵이 치명타를 입었다는 분석이신데, 확실히 시장보다 반 발짝만 앞서가라는 조언이 여기서도 타당한 듯합니다. 여기서, "아름답고 세련된 용모의 대표"님은, E대를 나오신 그 U님을 말씀하시는 거겠죠? 승자의 여유가 느껴지는 서술이라 흥미롭기도 했습니다.(헉)

편집숍은 그냥 명품 부띠끄인가 보다 하고 넘어갔습니다만, 그 "편집"에는 엄청난 내공과 센스가 녹아있어야 하며, 앞의 베라 왕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지면이든 웹이든, 매체이든 샵이든 간에 그 의미가 다르지도 않다는 점 새삼 배울 수 있었네요. 앞으론 그저 무심히 지나치지 말고, 저래서 저 랙에 저 브랜드가 놓여졌나 보다 하고 꼼꼼히 그 배후의 센스, 심리, 세계관을 관찰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긴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게 돈의 흐름과 수입, 승부에 관련된 문제인데 그저 최종의 과시 소비 욕구를 푸는 장소로 안이하게 생각한 자체가 큰 어리석음이죠.

너무 고가의 명품에는 눈이 잘 못 가고, 아무래도 본문 텍스트 중 "가성비"란 단어에 유의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당연히 전 남자지만 이런 건 여친한테 뭘 사줄 때에도 필히 유념해야 할 사항 아니겠습니까?) 이브닝드레스의 또 하나 심연(돈 없는 소비자에게)은, 그 화려한 의상의 구조 때문에, 다른 기회와 장소에서 두 번을 착용할 수 없다는 점이라고 저자는 지적합니다(글켔죠). 그래서 가성비의 미덕이 다시 강조되는 거겠지만요. p79에 보면 타다시 쇼지(의 브랜드)가 소개되는데(책에는 "다카[하]시 쇼지"라고 오식이 나오는데 그분은 가수죠),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레이스(의 디자인)은 물론 패브릭조차 돌체앤가바나 라인의 500~600만원선 작품(아이템)에 못지 않다고 하십니다. 제 막눈으로는 모르겠는데, 탁월하신 대표님께서 그렇다고 하시니 아주 잘 명심해 뒀다가 요긴하게 써먹겠습니다.

저자는 책 곳곳에서 "스트리트웨어 정신"을 강조하는데, 저는 이야말로 창의력과 기묘한 저항 정신이 결합해 "아큐파이 더 스트리트"로 사업적 성공을 거두기까지 한 놀라운 혁신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락&펑크가 샤넬 라인 한 모서리를 점유하기까지 하는 현실(이건 아이덴티티의 희석이 아니라고 저자는 판단하시나 보죠?ㅎ)은, 비유를 하자면 현재 KB가 부동산 앱에까지 진출해, 좋게 말해 고객을 속속들이 만족시키는 스트로잉 브랜칭 아웃, 나쁘게 말해 문어ㅂ.... 여튼 뭐 고객 입장에서야 걸치기 예쁘고 가격 착하면 된 거죠 뭐. 30년 전 쓰레기 취급이나 받던, 소외된 독자층 상대로 코 묻은 돈이나 빨아들인다고 비난의 대상이 되던 B급 문화는 이제 어엿이 주류로 편입하여 당당한 독자적 장르를 개척하기에 이르기도 했는데, 이런 패션 트렌드와도 결코 무관치 않습니다. B급 코믹스 폭력 문화 일부가 북유럽 신화 일부를 싸구려로 차용하여, 도시 하류층에 단단한 팬덤을 구축하기도 했는데(따라서 그런 컨텐츠는 원전이 아니라 2차 가공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현재 족보를 세탁하고 블록버스터로 둔갑한 영상물은 대단한 신분 상승을 이룬 거죠. 이런 게 무작정 끌린다며 얼토당토않게도 신화 원전과 연결하는 네티즌이 있다면, 그 취향의 근원이 가히 짐작되고도 남는다 하겠습니다.

과거에는 유니섹스라고 했습니다만 젠더리스 컨셉은 여전히 현대에도 두루 무난하면서도 젊고 도회적인 분위기를 창출할 수 있는 유효한 외양이라 생각합니다. 저자는 자신의 샵에 어울리지는 않아 바잉은 염두에 안 두지만(역시 저의 감각으론 속속 납득이 안 되는 평가이십니다), 다른 편집숍(더 젊은 층을 염두에 둔- 아 그런 뜻이였군요 이제 겨우 접수)에는 코너에 따라 훌륭한 서브 밸런스를 구현할 수 있으리라는(요 대목은 그냥 저의 표현입니다) 조언을 베푸시는군요.

저자는 스테판슈나이더(브랜드)를 소개하며 "전형적인 유러피안 감성의 파스텔 컬러 팔레트로 똑떨어지는 스타일을 보여준다"고 하십니다. 잘은 몰라도 왠지 그럴 것 같습니다. 저자는 앤 드뮐미스터(우리나라에선 이렇게들 쓰는데 정확히는 "드묄러메스터"입니다. ee는 "이"가 아니라 "에"의 장음이라서요)와 이분이 학교 동기라는 점까지 거론하시는데, 이 책에서는 드뮐미스터를 독립 항목으론 안 다룹니다.

"트래디셔널 미니멀룩이야말로 트렌드나 유행에 관계없이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이다." 저자가 이 책 곳곳에서 펴는 지론 중 하나입니다. 결론은 "(그렇기 때문에) 좋은 브랜드의 고급스러운 룩을 구매하라"는 겁니다. 이런 좋은 충고가, 돈도 없는 주제에 잔돈푼 월급 모아 지가 걸칠 명품만 자나깨나 생각하는 정신 빠진 인간 좋으라고 하는 말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빅토리아 베컴을 두고 "코스의 의상은 예쁘다. 그러나 진정한 럭셔리 라인의 미니멀리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2%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고 저자는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착한 가격이 거의 모든 사소한 불만족을 용서할 수 있다는 말씀도 좀 씁쓸하게 공감되는군요.

책에서는 역시 대세를 충실히 반영하여 스칸디나비안 룩을 따로 한 챕터 분량의 분석, 소재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 중 앤 소피 백(안 조피 바크)은 꽤 긴 역사를 자랑하는 브랜드입니다만 저자께서 지적하시는 대로 "지적이고 스타일에 신경 쓰면서도 혁명적인 이미지를 좋아하는" 여성들에 의해 (여전히) 선호, 지지되는 디자이너의 작품들입니다. 책의 바로 직전 편 "아방가르드"에 분류되었어도 잘 어울릴 성격이었죠. 필리파케이, 타이거 오브 스웨덴 등 유서 깊은 명품이 있는가 하면, 세실 코펜하겐 등 "어린(저자의 표현)", 그리고 패기넘치는 컬렉션도 있습니다. 바이킹의 시대가 저문 지 천 년이 지났어도 유럽 게르만의 아득한 원류, 순혈이라는 고유의 혼과 자부심이 있기에 이토록 긴 역사를 면면히 이어 오며, 1차 산업과 가공업 외에도 이런 고부가가치 산업의 한 핵심을 영위해 나가는 거죠.

저자는 영어 이름을 Anya로 쓰신다고 하는데, 이름이 같은 가방 브랜드 중 안야 힌드마치라는 곳이 있는가 봅니다. 전세계에 여섯 곳만 운영되는 매우 희귀한 스토어인데, "고객이 자사 제품과 함께 자신이 그린 그림 혹은 손글씨를 가져 오면 장인이 그 자리에서 수를 놓아 주거나 새겨 준다(p391)"고 하는군요. 이 브랜드가 특히 인기 높은 곳이 일본인데, 저자는 그 이유를 "장인과 고객을 이어주고자 하는 브랜드의 노력을 알아주는" 분위기 덕분이라고 합니다. 그러고보니 우리 소비자들은, 브랜드나 디자이너만 떠올리지 만드는 장인의 수고는 그리 염두에 안 두는데, 소비자뿐 아니라 브랜드에서도 다들 장인을 그리 각별히 대접하는 풍토인 것만도 아니라고 봅니다. 책에서는 그 점을 환기시켜 주어 유익했습니다.

에필로그에는 역시 멋진 말씀이 많이 나오네요. "패션은 살아 있는 생물이다." 이 말은 한국에서는 어느 정치인이 자신의 종사 분야인 정치를 주어 삼아 코인한 구절인데, 직업인 모두가 명심해야 할 사항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해진, 아주 제한된 범위만 딱 설정해 놓고, "조거 이상 일하면 내가 손해"라며 딴짓이나 하다간 반드시 퇴출됩니다. 목표는 언제나 살아 숨쉬며 종사자를 리드하고, 마치 헬라 신화의 프로테우스처럼 모습을 수시로 바꾸며 관찰자의 눈을 어지럽히기 마련입니다. 고착되어 과거만 주시하는 자는 반드시 낙오합니다. 저자께서 지적하듯 현재 유통 빅 3(현대, 롯데, 신세계)가 주도하는 업계의 재편 전망도 이런 맥락에서 관찰될 필요가 있겠고, 역시 저자도 시사하듯 단 한 순간도 시장의 동향으로부터 주의를 놓지 않고 연구하다, 골든 타임에 혁신의 결단을 내린 과정이 쌓이고 쌓여 이 지점에 이른 겁니다. 단, 현재 중국 시장에서 롯데와 신세계는 철수하기로 결정을 내린 상태인데, 유통과 패션이 결국은 (저자의 지적대로) 한 몸의 지체와 본체처럼 돌아가는 구조를 생각하면, 과연 결과가 어떠할지 주시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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