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시장의 법칙 - 미술품 투자! 이성으로 분석하고 감성으로 투자하라
이호숙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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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산 운용과 증식의 수단으로 미술 작품이 그 유망한 대상이 될 수 있을까요? 그에 대한 대답은 이 책의 저자분도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은 분위기입니다. 이 책에서 "호시절"로 자주 거론되는 2007년은, 전문가들도 일치하다시피 손으로 꼽는, 예외적으로 드문 호황기였다고 하는군요. 그때부터 지금까지는 내내 불황인데다, 설상가상으로 주식 시장, 채권 시장의 악재는 터졌다하면 그건 그것대로 다 수용하는 분위기라서, 상시적 불경기에 요령껏 적응하는 게 전문가의 미덕으로 꼽히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쯤 되면 겁없이 신시장이라며 성큼 발을 들여 놓을 계제는 전혀 아닌 듯합니다.


그런데 설령 해당시장이 그지없는 호황을 맞이하는 중이라 해도, 여전히 문제는 녹록지 않습니다. 미술 작품 시장에서 승자가 되는 비결이란 결국 두 가지로 요약이 됩니다. ㉠ 미술 작품을 보는 안목이 남달라야 한다 ㉡ 재력이 충분해야 한다. 물론, 시장을 보는 면밀한 안목도 있어야 하고, 순발력과 배짱도 남달라야 하고, 가격과 트렌드를 형성하고 주도하는 이들, 키플레이어들이 누구인지 정보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점은, 미술 시장뿐 아니라 투자 시장 어디에서건 적용되고 존중되어야 하는 원칙이라서, 특별히 이 주제, 즉 미술 시장에 한정된 이슈는 아니겠습니다(물론 이 책의 저자는, 이 책의 상당히 많은 비중을 이 원칙의 자세한 서술에 기울이고 있고, 대단히 재미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미술 시장은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은 일단 아니라고 봅니다. 시장에서 위너가 되기 위한 안목은 고사하고, 일반적 교양 수준으로 활용할 심미안을 갖추기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고요. 무엇보다 개별 투자 항목의 단가가 엄청나게 높은 미술품이, 설사 매물로 나왔다고 해도 이를 거리낌없이 사들일 수 있는 큰손이 몇이나 되겠냐는 점에서이죠. 그래서 저는, 이 책이 평범한 소시민들의 재테크 수단으로 쉽게 활용될 것으로는 별 기대되지 않습니다. 대중이 미술 시장에 접근하기에는, 그 진입 장벽이 너무 높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 사람의 독자로서, 이 책을 일반독자가 즐겁게 읽고 바로 실전에 응용한다든지 하는 독서는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을 알아보는 안목이 하루아침에 길러질 리도 없고, 이 책이 그런 안목을 길러주는 내용도 아니며, 그런 조건이 다 갖추어진다 한들, 가격 스플리팅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고 펀드식 지분 참여도 어려운(외국에는 제한적이나마 있긴 합니다) 미술품 투자 시장에, 초심자가 참여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책 저자도, 소더비에 매물로 나온 뭉크의 작품 구매자가 끝까지 누구인지 안 밝혀진 상황에서, 카타르 왕족이 그 주인공이라는 예측 아래, 그 시의적절한 투자 결단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시장에서, 카타르의 거부나 족장도 아니고 왕실 사람들과 레이스를 벌이는 건 꿈도 못 꿀 일이라는 점에서요.


그 런데 저는, 비록 플레이어가 아닌 관전자로서 시종일관 역할이 제한된다고 해도, 제 눈에는 다른 영역의 시장과 확연하게 차이나는 점이 많이 눈에 띄는, 그러면서도 시장 일반의 특성은 또 다 갖추고 있는 이 미술시장의 작동 방식이, 그저 이해의 대상(참여의 대상이 아닌)으로만 삼아도, 자본주의 일반과 세상의 작동 원리에 대해 배우는 바가 많았습니다. 슈퍼 리치, 권력층, 귀족이 아니면 낄 수 없는 게임의 현황을 보며, 역으로 결국 다른 섹터에서도 판을 주도하는 그들의 생리를 관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이죠. 다음으로 이 책의 매력은, "과연 예술품의 미학적 가치와 시장 가치는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하는 의문을 잘 대답해 주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결국 미술시장에서 승리하는 투자가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아직 세상에 덜 이름이 알려진 신출내기 작가들을 유념해서 관찰하고, 그들의 가격이 "아직 쌀 때", 요령껏 선점해 두었다가 좋은 시기에 매도하는 게 유일한 비결이라는 거죠. 높은 안목으로 수집된 컬렉션이나 개별 작품에 대해서는, 각자의 기준이 다 다르고 누가 조언이나 간섭을 할 일도 안 된다는 점, 설사 투자가 실패하더라도 구매자 본인은 결국 제 취향에 의한 선택이었으므로 후회도 없다는 점, 이런 게 다른 시장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하면서도 흥미로운, 매력적인 특성처럼 보였습니다.


미 술시장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는 일반독자라도 재미있게 읽힐 대목이 있어요. 첫째는, 우리가 아는 불후의 미술 작품 중 가짜, 위작이 그리도 많다는 사실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희소성 면에서 어떤 재화나 귀금속도 따를 수 없는 속성을 가지고 있으니, 솜씨 좋은 사람이 감쪽 같이 세상에 하나를 더 만들어 내어도 좀처럼 알기 어려운 판이라 큰 돈을 벌 수 있고(실력 있는 화가는 아침에 일어나서 내키면 피카소, 다른 기분이면 세잔, 이런 식으로 자유자재의 모작 생산이 가능했다고 합니다), 소장가들이 안전의 이유에서 가짜 하나 정도를 주문하는 일도 흔하다고 합니다. 미켈란젤로 같은 이는 오리지널 창작자였을 뿐 아니라, 헬레니즘 시대의 작품이라면서 자신의 창작을 모처에 매장해 두고 이를 "발굴"하는 수법으로 큰 돈을 챙겼다고도 하니, 위작과 기만의 상술이 이미 그 시기에도 진정성과 공존한 셈이라 경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둘째는, 특히 현대 미술품의 경우, 그 가치를 누가 결정하는가의 문제입니다.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에 가 잘 말해 주듯, 과연 예술품의 범주에 넣어야 하는지도 모호한 몇몇 퍼포먼스를 두고 한때마나 그리도 시장가나 평판이 오르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는 겁니다. 결국 유력 평론가, 그리고 시장 운영 주체의 "견해, 미학적 안목"이 어느 정도 시장을 지배하는 현상을 운명처럼 수용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입장입니다.


저 자는 서론에서 주식 시장과 미술 시장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자세히 논합니다. 저는 이 대목을, 미술시장 이해관계자보다 오히려 주식에 올인하다시피하는 분들이 더 주의깊게 읽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어느 대상을 그것만 뚫어져라 쳐다 보면, 오히려 그 속성을 파악하기가 더 힘듭니다. 대조군, 비교 대상이 있을 때에만 그 본질과 특성이 눈에 더 잘 들어오는 법이죠. 읽으면서 오히려 주식시장에 대해 더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그외, 저자는 "대가들의 드로잉에 주목하라."는 유용한 팁도 알려 주고 있지만, 이는 일반인에게도 너무 상식화한 사항이라 큰 힘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구요. 이 책을 읽으면 대체 왜 이중섭 등의 작품에 대해 위작 논란이 도통 그칠 줄 모르는지 그 근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걸 떠나, 깨끗한 인쇄로 소개되는 각종 미술 작품들을 구경만 해도 눈이 즐거워지는 책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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