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마티스, 걱정 마 - 류마티스를 만나고 더 행복해진 젊은 주부 이야기
와타나베 치하루 지음, 한고운 옮김, 유창길 감수 / 큐리어스(Qrious)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옛말에, "병은 내비치고 자랑하라."고 했습니다. 병을 숨기면 병이 안으로 더 곪고 몸을 망친다고 하죠. 저는 리뷰를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사실 몸이 한 군데도 아픈 데가 없어서, 건강의 소중함을 차라리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막상 몸이 아프고 신체의 기관이 물리적으로 손상된 분들은,  그 "정상적임"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통감합니다. 특히 이 책의 주제인 류마티스처럼, 사람의 동작에 있어 필수적으로 작동시켜야 하는 부분, 관절의 아픔을, 움직일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지속적으로 느껴야 하는 분들의 고통은 뭐라 형용할 수 없을 만큼이라고 들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노화의 자연스러운 증상인가 보다 하고 체념이라도 한다지만, 젊은 나이에 끔찍한 통증을 숙명처럼 동반해야 한다면, 그것만큼 견디기 어려운 일도 없다고 추측합니다. 모든 일은 결국 물리력의 동원보다는 멘탈의 싸움인데, "아 나는 아직 나이도 아닌데 왜 이런 병이 왔을까?"하는 자괴감이 벌써 앞선다면, 어떻게 병마와 싸워 이길 수 있겠습니까? 약물 투여건 어떤 요법의 실시도, 이런 정신의 위축과 퇴조로 벌써 질병에 그 사람이 기선을 제압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 책은 류마티스로 고생하시는 분들을 위한 내용입니다. 병은 전문가가 아는 게 아니라, 그 병으로 죽을 고통을 겪고 어찌해서건 그 모면의 방법을 고민한 분들이 더 잘 알더군요. 제가 아는 분 중에도 어린 아기가 혈우병에 걸려 모진 고통과 절박한 위험을 겪어야 하는 분이 계십니다(세상에 과연 하늘의 도리와 법칙이 있는지 참 기가 막힌 것이, 하필 왜 이런 착한 분들한테 몹쓸 게 들러붙어 괴롭히는지 모를 일입니다. 놀고 먹으며 타인에 민폐나 끼치는 악성 분자들은 그 남아돌아가는 시간을 주체 못 해 끝도 없는 망상에 빠져 자연과 사회를 모독하는 중인데, 이런 병은 그런 인간들한테나 좀 가 줘야 공평한 거 아닐까요?). 그런데, 이분 가족들도 해당 질병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으며 유형적, 그리고 정신적인 도움을 크게 입는다고 합니다. 정보화 사회의 폐단이 엉뚱하게 작용하여 쓸모없는 글이나 남발하여 백수들의 스트레스 배설 창구로 쓰이기도 하지만, 이런 유익하고 고마운 채널로도 작용하는 걸 보면 빛과 어둠이란 언제나 쌍으로 같은 길을 가게 마련이다 싶네요.


이 책은, 어느 일본 여성이, 자신이 어떻게 해서 난치병 류마티스로부터 낫게 되었는지, 그 다양한 투병 과정과 극복의 여정을 담은 내용입니다. 병을 치유하는 예수를 두고 당대의 그 지방 사람들이 기적을 칭송했다고 하지만, 기적이라는 게 먼 데 있지 않습니다. 바로 이 저자, 와타나베 치하루 같은 분이야말로 미라클 메이커입니다. 이 분은 처음에. 당치도않는 병마가 자신의 육체에 똬리를 틀었음을 알고 너무도 큰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러다가 생각을 바꾼 것이, "나는 내 몸의 주인이고, 내 몸에 책임을 져야 한다. 내가 느끼는 내 몸에 대한 책임감은, 내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과도 통한다. 나에 대한 사랑은 세계에 대한 애착이자 책임이며, 나를 소홀히하는 마음가짐은 곧 인격의 불성실로 지탄받아야한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 나는 류마티스에 대한 선전을 포고한다."였죠.


이런 고백은 참 의미심장합니다. 병법에서도,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 불태."라고 했습니다. 백전 백승이 아니고, 백번 불패도 아닙니다. 그저 불태, "위태롭지 않음"에 그칠 뿐입니다. 병 역시 마찬가지죠, 만약 어떤 병에 걸려서 완치가 된다면, 그건 당연한 게 아니라 감사해야 할 기적입니다. 한번 손상된 육체는 기껏해야 더 이상의 악화를 막고 상처가 아물 뿐이지, 그 흔적까지 말끔히 지울 수는 없습니다. 그건 열역학 제2법칙에 반하는 결과죠. 병은 걸리지 않기를 바라야 할 뿐, 일단 걸린 후에 예전에의 건강을 온전히 회복하길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이 점을 깨닫는 게 중요합니다. 순리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순리를 받아들인다 함은, 이 병이 내 몸 속에서 그 최소한의 상흔만 남기고 빠져 나가길 유도하는 겁니다. 약물 치료로 통증을 죽이고, 그 통증을 죽이면서 몸도 함께 죽이는 식으로는 도저히 병이 낫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럼 결론은 뭘까요? 자연 치유 요법이죠. 병과 함께 내 몸도 못살게구는 방법이 아니라, 병도 다스리고 내 몸도 고이 만져주는 그런 방법이라야, 난치병 류마티스가 낫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저자분이 하는 말이 그겁니다. "나는 류마티스를 사랑한다." 이 사랑은, 뜻하지 않게 내 몸에 들어와 그 일부가 된 병을 어르고달래야, 그 병이 자연스레 제 갈 길로 소멸한다는 그런 의미의 사랑입니다. 내 몸을 함부로 여기지 않는 사람은, 그 몸을 그저 화학 반응의 대상으로 삼는 무식한 약물에 함부로 맡길 수가 없습니다.


자 연 치유 요법이라고 하면 무조건 사이비로 모는 일부 몰지각한 의사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질병으로부터 인간을 구제해야 할, 가장 원초적인 의무와 소명을 배신하는 악한들입니다. 도움이 되는 수단이 있다면, 지적 호기심에서라도 그 분석의 눈을 들이대어야 올바른 일인데, 그저 무작정 눈을 감고 배척하기에 바쁩니다. 이런 자들 중에 종교를 믿는 이들도 있는데, 2000년 전에 가장 낮은 이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온 그분의 정신이 뭐였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종교와 직분을 이중으로 배반하는 이런 부도덕한 이들을 저자가 만나지 않은 덕에, 그나마 그 병이 일찍 나았다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이 책에는 참으로 신기한 사례가 많이 나옵니다. 양의이지만 침구학을 스스로 터득한 덕에(한방식 혈로를 따르지 않고, 서양 의학에서 가르치는 방식을 그대로 따라 자기가 고안한 방식이라고 합니다), 잠시의 촉진만으로도 내방한 환자의 병증이 뭔지 훤히 알아맞히는 명의 중 명의입니다. 의사의 본분이 무엇일까요? 서투른 지식으로 권위만 내세울 게 아니라, 찾아 온 환자의 바로 지금 그 고통을 낫게 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이 저자의 곁에는 좋은 들이 많이 있어 주었기에, 그런 기적도 이처럼 확연하게 그 발현을 볼 수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 책은 저자 뿐 아니라, 한국인 역자도 똑 같은 류머티스 환자로서, 그 글자 하나하나를 옮기면서 쏟은 정성이 매 구절마다 느껴지는 놀라운 책입니다. 제이슨 윈터스 티가 과연 그리도 효험이 있나 해서 알아봤다는 역주에서는 절로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습니다. 지은 사람이나 엮고 파는 입장이나 조금의 거짓, 상술 없이 오로지 진실과 건강의 보급에 기여한다는 마음으로 빚은 책을 보면서, 환자 아니라도 책을 읽는 보람, 나아가 세상을 사는 맛이 바로 이런 것 아닐까 하는 감동이 밀려 왔습니다. 올해 초에 <하나와 미소시루>라는 책도 읽어 보았는데요, 그 책과는 달리 이 책은 해피엔딩이라 더 반갑고 통쾌했습니다. 류머티스 환자가 아니라도, 우리 사는 세상이 과연 어떤 방법으로 힐링되어야 하는지 깨달음을 얻고 싶은 분들은 이 책을 꼭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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