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탄생
이어령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마로니에북스에서 요즘 박경리, 이어령 등 거장의 라이브러리를 한 권 한 권 예쁘게 복간하고 있습니다. <축소지향의 일본인>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등을 감명깊게 읽었으나, <디지로그>의 선구성(?), 전위성(!)에는 다소 피로감을 느꼈던 저라서, 이어령 선생의 최신간에는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선생의 1980,90년대 "고전"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고 2008년에 나온 책이더군요. 이 마로니에북스판은 그 08년판의 개정판이라고 합니다.


요즘 통섭이라는 단어, 개념, 그리고 그 실천적 캠페인이 유행입니다만, 선 생은 이미 그 한참 이전부터 통섭을 몸으로 꿰고 글로써 그 빛나는 지성의 결과물을 다 지면에 옮긴 놀라운 철학자, 인문학자이면서도 문학 부면의 스페셜리스트이기도 했죠.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한국보다 저 일본에서 더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화제작이었습니다. 한창 젊은 나이였을 그때의 선생은, 오히려 복고적인 소재(그러나 아무나 다루기 힘든)를 저술의 테마로 삼아, 그 분석이 대단히 어렵고, 그 소통이 상당히 까다로울(타민족에게 그 개성이 뭐라며 깨우치는 작업이니까요) 작업을 해내었습니다.


선생은 기이하게도, 연세를 드시고 난 후 오히려 최첨단의 과학(자연, 사회, 기술 분야 두루)에 더 큰 천착을 보이시는 듯합니다. 이 책이 이처럼이나 최근에 저술되었는데도 제가 까맣게 몰랐다는 사실에 놀랐고(저의 무신경), 08년 기준으로 어언 76세에 달하는 연령에 이처럼 치밀하고 시세의 첨단 변화를 다 소화한 그 지적 능력에 놀랐습니다.


통섭 이전에 이미 당신 개인이 통섭 자체였기에, 작금의 학제간 연구이니, 콘실리언스이니(선생은 특유의 날카로운 영어 감각으로 "있지도 않은 단어를 만들어..."라시며 은근 마득찮은 심기를 노출하기도 합니다), 또 경계허묾(경제 경영 분야에서의)이 니 하는 것들이, 그 출현 즉시 즉각의 이해로 다가오셨을 듯합니다. 이 책은, 요즘 출판, 독서계의 트렌드를 최소한 4, 5 년 앞서 내다보고, 그 흐름을 우리 전통의 인문개념 한 마디로 요약합니다. "원. 융. 회. 통"이 그것입니다.


책 어디 하나 버릴 구석이 없을 만큼 명언 명구 명논설로 가득합니다만(요즘도 대학에서 논술 시험을 보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만약 그렇다면 삼국지가 아니라 이 책을 읽혀야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네요), 제가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대칭성과 융합성에 대한 논급 부분이었습니다. 러시아의 국 장은 전통적으로 쌍두독수리인데, 이는 대칭성을 지나치게 따르다 보니 초자연적 기괴성으로 추락했다는 게 선생의 견해입니다. 대칭성을 희생하고 자연스러움, 나아가 평화 지향을 선택한 것이 미국의 일두 독수리(모양으로는 그러하나, 이 독수리 역시 "쌍두형"으로  불리기도 합니다)이죠. 전근대성과 근대성 사이에서 후기근대성(선생의 표현이고, 우리에게 친숙한 말로는 "포스트모던"이죠)이 탄생함을 예증하며 선생이 이 뒤에 바로 들고 나오는 건 우리의 "태극"입니다. 태극은 대칭이 아닙니다. 하지만 대칭보다 안정적이면서, 대칭의 편협성, 고정성을 극복하고 변화무쌍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대칭보다 우월합니다. 태극은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지만, 조화를 해치지 않습니다.


선생은 불의 파괴성, 소모성보다, 물의 유연성, 순리성을 강조합니다. 바뀌는 세태에서 새로운 세대는 고체의 고정성을 지닐 게 아니라, 물처럼 주변에 융합하고 천변만화할 수 있는 융통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지난 정부의 치수 정책을 거론하는 대목이 나왔기에, 저는 여기까지 읽고 비로소 이 책이 최근에 나온 저작임을 알았습니다. 더 앞선 시기의 저술이라고 해도 놀랍지 않은 것이, 선생은 당신 자신이 이미 통섭의 화신이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게 없고, 그 아는 바를 하나의 관점과 시야로 꿸 수 있는 초인적 능력을 갖추었기에, 5년 전에 나온 책이 최신간 자계서마냥 감각이 새로운 거죠.


선생은 또한 선형성 체계에서의 탈피를 강조합니다. 최근 제가 읽은 <안티프래질>에서도, 역동과 발전을 위해서는 선형성의 지양이 중요하다는 점을 주장했지만, 선생의 이 저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더 앞선 시기의 작품인데도요). 벌써 1990년데에 쪽거리(프랙털) 이론, 카오스-퍼지 패러다임이 등장하여 인식의 지평선이 확장되었는데요. 우리도 이런 흐름에 마냥 뒤떨어진 건 아니라서 당시에도 퍼지 세탁기, 자연풍 선풍기가 나왔음을 선생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선생은 이 원융회통, 세계사적 대전환기에 맞서 이분법, 흑백논리의 극복을 또한 강조합니다. 융합과 조화, 다이내믹 변증법의 시대에 진영의 논리를 들고 나오는 자체가, 젊음의 속성. 본질을 배신하는 패착이라는 겁니다. 선생 말을 인용하면, "늙으면 어차피 세월의 풍화에 못 이겨 자연스럽게 한 쪽으로 기울 텐데, 새파랗게 젊어서 곡예하듯 균형 유지가 가능한 그 좋은 나이에 뭐하러 늙은이의 흉내를 내느냐."는 거죠. 이 책은 주로, 이제(08년 기준) 갓 대학에 입학한 파릇파픗 새내기들을 대상으로, 큰 인재가 되고 싶고 정신적으로 자유인으로 성장하고 싶다면, 기존의 낡은 틀을 과감히 벗어 던지고 통합과 조화의 이데아를 지향하라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책의 제목을 보죠. "젊음의 탄생"입니다. 젊음은 사실 그 모습으로 탄생하는 게 아니라, 유아성, 미숙함 따위가 한 단계의 변태를 겪어 이행하는 다음 단계입니다. 그러니 젊음은 꽃이 때가 되면 피고 지듯, 자연의 순리로 다가오는 거지 어느 순간의 탄생을 요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도 선생은 굳이 이 젊음을 두고 "탄생"이라는 술어를 부착하고 있는데요. 이는 젊음이 물리적 상태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그 역량과 본질의 건강성, 나아가 포텐셜의 생산성에 기초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늙고 고루한 생각에 빠져 있으면 그건 이미 젊음의 자격이 없다는 점에서, 저 같은 세대에게 많은 자성을 마련해 주는 계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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