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 수첩 : 사진 명작 수첩
발 윌리엄스 지음, 박우정 옮김 / 현암사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Every picture tells a story.


여기서 픽처는, 일반적으로는 그림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림이 스토리를 말하고 있음은, 미술 이론을 조금이마나 접한 이들은 다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 요즘 나온 미술 관련 서적들을 보세요. " 아는 만큼 보인다."는 모토 아래, 그림 안에 얼마나 많은 상징과 비유, 역사, 작가의 의도가 녹아 있는지 가르쳐 주는 게 그 미션입니다. 이 미션은 인문적 소명과 상업적 속셈을 둘 다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 픽처가 스토리를 말하는 건, 격언의 형태로 알려 주지 않아도 다 알고 있는 소리다 이겁니다.


음악과 같은 시간 예술도 아니고, 미술 같은 공간 예술이 "스토리, 내러티브(시간성이 그 핵심인)"를 지니고 있다 함은 그러나 여전히 낯설게 느껴지는 면 있습니다. 아무리 배워서 알고 있다 하나, 진정한 직관은 인식과 이성을 배신하는 수 있기 때문이죠. 뭐 좋습니다. 그림은 그렇다고 칩시다. 허나 사진도 스토리를 지니고 있습니까? 사진은 순간의 포착, 모사가 그 본질이 아닙니까? 영어의 picture에는 "사진"이란 뜻도 있음은,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저 문장의 picture를 사진이라는 뜻으로 새겨도 되는 것인지요. 우리의 돌사진, 수학 여행 기념 사진, 대학 입학-졸업 사진, 엠티 가서 찍은 사진, 그(그녀)와 둘만이서 은밀한 장소 은밀한 사연을 배경으로 한 채 야시꾸리하게 찍(어서 폰에만 저장되)어진 사진 등이야 우리가 그 배경을 알기에 분명 뭔가 "스토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진 일반이, 개인차를 고려 함 없이, 공감의 화법으로 보통의 스토리를 일반 대중에게, 바벨 탑 공사 현장에서의 방언적 교란 없이 쩌렁쩌렁, 혹은 조곤조곤 전달하는 게 가능하냐 이 말입니다.


그게 그런 줄, 구체적인 케이스에 적용하며 개별 타당성을 확인할 수 있는 줄,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습니다. 이 책의 원제목을 보십시오.

What Makes Great Photography


무엇이 위대한 사진을 만드는가.


조금만 문장을 바꿔 보겠습니다.

What Makes Photography Great

무엇이 사진(술 일반)을 위대하게 만드는가.


이 책의 기획 의도는 제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이렇습니다.

위대한 명작 사진을 보자, 안데르스 페테르센, 래리 설튼, 로버트 카파(얼마 전 전시회에 다녀왔어요), 호르스트 P 호르스트, .. 왜 이들이 찍은 광학물질은, 간단한 셔터 누름 동작 이외 어떤 고차원적 사고나 해석이 개입하지 않을 것 같은 "저차원 창조 행위의 산물"이, 미켈란젤로나 고흐의 피나는 손놀림의 자식들과 같은 차원의 "위대함"을 지니는가?

그것은 플라톤 이래 인류가 인식해 온 그 먼 곳에 있는 이데아(이 책의 목차에 따르자면 일, 이야기, 집, 갈등, 아름다움,.. 야외에서 등)를 저 작가들은 순간의 포착 능력과 이미 장착하고 있던 미학의 프레임으로 필름 안에 담아 내는 일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묘하게 번지는 수면 위의 기름띠가 가장 절묘한 곡선과 면의 배치를 이룰 때,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떠 내는 능력이 마블링 예술가에게 중요하듯, 사진작가 역시 기계적 기교와 편집의 테크닉을 넘어, 보이지 않는 것을 가장 vivid한 컷으로 담아 내는 능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제가 바꿔 놓은 두 번째 문장을 보십시오,

What Makes Photography Great

본디 사진술이란 그리 위대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진을 위대하게 만드는 건, 작가의 인생관과 통찰 능력입니다. 그가 남긴 명작을 그 사진작가의 인생과 개성과 함께 고찰하여, 사진의 숨은 위대함을 간파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여성 사진작가이자 런던 정경대 교수인 저자 발 윌리엄스의 의도입니다. 그녀는 과연 페미니스트답게, 부조리한 현실을 날카롭게 잡아 내어 비판의 아고라에 올려 두는 작가들에 더 치중하여, 사진의 사회 참여적 기능까지 더 절절하게 부각하고 있습니다. 로버트 카 파가 빌바오에서 찍은 그 유명한 사진(p124)을 보세요, shock and awe로 넋이 나간 사람들의 시선 정중앙에, 오불관언이라는 듯 냉소적 체념, 현실 도피를 시도하는 여인을 배치한 대담함을 보시고, 왼쪽 아래에 두려움 없이 패기와 증오심 가득한 눈으로 적기(敵機)를 응시하는 아이를 보십시오. 이게 위대함이라는 겁니다. 이 구도가 얼마나 마음에 들었으면, 이로부터 40년 가까이 지난 후에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는, 영화 <대부 2>에서 소년 코를레오네가 대서양을 건너 미 대륙 항구에 도착하는 그 장면을 찍으면서 이와 똑같은 구도로 모방했겠습니까? (그냥 제 생각일 뿐이니 너무 큰 신뢰와 권위는 주지 마세요^^  제가 보기엔 그랬습니다) 영화가 괜히 motion picture가 아닌 게 이래서라는 거죠.



무엇이 위대한 사진을 만드는가? 나도 만약 위대한 사진 작가 까지는 아니더라도, 위대한 사진 몇 컷이라고 남기고 싶다면, 이 책에 수록된 컷을 휴대하고 수시로 참고하면서, 무작정이나마 그 구도와 색감을 모방해 볼 만합니다. 세세한 디테일을 암만 배워도, 잔재주는 늘 수 있으나 "위대함"에 이르는 길의 진도는 제자리걸음이기 쉽죠. 위대함을 내것으로 하려면, 인문의 바탕이 있어야 합니다, 이 책은 위대한 "사진"과, "위대한" 사진, 둘에 대한 가르침을 동시에 전달하고 있습니다.

p99 에서, "마지막 유원지"로 번역된 부분이 있습니다. 이것은 last resort를 옮긴 건데, 이 어구에는 최후의 의존 수단이라는 뜻이 더 강하고, 그렇게 새겨야 본문의 내용대로 퇴락해가는 영국의 국세를 암울하게 전달한다는 맥락과 통합니다. "마지막 유원지"라고 하면 얼핏 들어도 뭔가 어색합니다. Martin Parr의 이 작품은 저 한 컷뿐이 아니고(책에도 연작이라고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수십 장의 모음으로 구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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