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열두 달 - 고대 이집트에서 1년 살기
도널드 P. 라이언 지음, 우진하 옮김 / 타인의사유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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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문명의 고전 원류는 보통 그리스, 로마를 꼽습니다. 그러나 이들보다 훨씬 앞서 선진 농경 문명, 중앙 집권 국가 시스템을 만든 곳은 지중해 맞은편의 이집트였으며, 이들은 또한 다채로운 신화 체계까지 창조하여 풍성한 정신 문화까지 항유했습니다. 그들 제국의 엄청난 위세는 현재까지도 남아 있는 피라미드라는 유적을 통해 확인되며, 아직까지도 어떻게 이들 건축이 가능했는지 정확하게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이집트는 21세기에도 여전히 무한한 상상력의 원천이며 영감(inspiration)의 고향입니다(p299). 

p30을 보면 이집트의 행정구역이 설명됩니다. 저자는 적절하게도 이를 그리스의 노모스에 비깁니다. 우리가 이집트 관련하여 유념해야 할 것은, 위도상 북부, 즉 나일 강의 하류를 하(下) 이집트라 부르고, 남부 즉 나일 상류를 상(上) 이집트라 부르는 관행입니다. 하 이집트에 22개의 행정구역이, 상 이집트에 20개가 위치했다고 책에 나옵니다. 멤피스는 그리스식 이름이며 구약의 히브리 이름으로는 바로 "놉"입니다. 이곳은 하 이집트의 수도였으며, 테베(룩소르)는 상 이집트의 중심지였고 후기의 수도입니다. 두 도시 모두 현재는 관광지로 유명할 뿐이며,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후에는 알렉산드리아, 이슬람화 후에는 카이로가 새로 수도로 기능했습니다. 

p45에서 보듯 "모세"라는 어근은 파라오들의 호칭에서 자주 보입니다(p178, p185에서도). 이는 고대 이집트어 "물", 혹은 "출산"과 연결되었다고 추정됩니다. 히브리인들의 해방자, 신에게서 십계를 받았다고 알려진 모세도 이들 이름과 같은 계열이겠고 말입니다. 책에는 아멘호테프 파라오의 행적을 소개한 후, 역사 소설처럼 그의 구체적인 하루를 자세하게 묘사합니다.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라는 말이 있듯, 절대 군주 파라오의 삶이 마냥 향락과 권력 행사로만 가득했던 게 아니라 이처럼 책임감과 중압감도 그를 무겁게 짓눌렀던 것입니다. 

예수의 12제자들도 상당수가 어부들이었지만 이보다 수천 년 앞선 고대의 이집트에서도 단백질원인 생선을 잡아 유통하는 직업(p70)이 널리 성행했었습니다. 책에는 가상의 어부 네페르가 등장하여 그 팍팍한 삶이 소개됩니다. 곡식은 어느 정도 보관과 유통이 가능했으므로 수탈의 대상이 되었지만, 어육은 어차피 상품화에 한계가 있으므로 상당부분은 본인이 소비 가능했고(비록 잉여의 부 축적은 어려웠겠으나), 삶이 비록 중노동으로 점철되었으나 적어도 배를 곯을 일은 없었겠습니다. 그래서 저 네페르도 자신의 처지에 저렇게 만족하는 것입니다. 

영어의 paper라는 단어 자체가 그리스어를 거쳐 고대 파피루스(p99)에서 기원했습니다. 파퓌로스 자체는 그리스어이며, 정작 이집트어로 그 특산품(p99)인 종이(이후 많은 변천을 겪었습니다)를 뭐라고 불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1954년 미국 영화 <The Egyptian>에도 나오듯이, 이집트는 풍족한 곡물 생산을 바탕으로 다채롭게 상업이 발달한 나라였으며 p100 이하에도 포도주 거래 등 재미있는 상거래 상황이 이야기를 통해 독자에게 전달됩니다. 혼인 잔치(p108, p280)는 예나 지금이나 공동체의 가장 흥겨운 행사이며 이때로부터 수천 년 후 예수 그리스도도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자 첫 기적을 행했다고 전합니다. 

먼 시골에 사는 이들은 가난하고 일상의 노동이 힘들었던 데다 정보가 부족해서 중앙의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도 주변의 백성들은 임금이 지근거리에 살았기 때문에, 혹 궁정에 변화라도 생기면 당장 이를 화제로 삼아 장래 정국의 향방을 점치곤 했겠습니다. 파라오가 붕어(崩御)하면 누가 제위를 계승할까? 그러나 이 책 주인공 중 하나인 어부 네페르(선한 자)는 "누가 파라오가 되든 나는 오늘도 내일도 고기를 낚겠지."라며 세상의 변함 없는 이치를 읊습니다. 

우리는 신라 지증왕 때 우경(牛耕)을 도입했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먼저 대규모 농경이 시작된 이집트에서는 신라보다 수천 년 앞서 소를 길렀으며, 이 책에는 목동들이 소 기르는 일을 맡아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피스라고 신성시되던 소는 미라(mummy)로 만들어졌다는 서술도 있습니다. 태양력을 채택했던 이집트는 그들의 책력으로 열번째 되던 달 보름에(이것만큼은 달을 보고 정함) 계곡 축제라는 걸 벌였는데, 우리의 주인공 네페르보다는 훨씬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이 축제를 가장 기다렸다고 하며(p245), 이야기 속에서는 여사제 마트카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네요. 

동양이든 서양이든 하층민들의 생이 팍팍했고 중한 노동에 시달렸으며 이웃 나라와의 교역에 경제가 크게 의존했던 일, 장삼이사의 희로애락이 인륜지대사에 좌우되었던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이 재미있는 고대 이집트 이야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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