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 시집 컬러 일러스트
김소월 지음 / 북카라반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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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들 중 분인 소월. 안서 김억의 제자였고 그로부터 한국인 고유의 정한(情恨)을 아름답게 절실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던 시인. 시에 그림을 곁들였을 때 가장 조화롭게 잘 어울리는, 심상으로나 운율로나 최고의 경지에 올랐던 그였기에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받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산에는 꽃 피네/꽃이 피네/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p10)" 이 시 <산유화>에서 셋째 행의 "갈"은 동사 가다의 꾸밈꼴인지, 아니면 가을의 준말인지를 놓고 예전부터 해석이 분분했습니다. 아마도 소월이 그 효과 모두를 노리고 의도적으로 그리 썼으리라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p11을 보면 노랑, 분홍, 녹색이 조화롭게 배치된 게, 누구의 눈에도 완연한 봄 풍경입니다. "산유화"라는 이 시가 너무 유명해서 실제로 산유화라는 꽃이 있는 줄 아는 분들도 있는데 그런 꽃은 없습니다. 이 시가 잘 표현한 것처럼, 산에 핀 한 송이 이름 없는 꽃이 풍기는 정겹고 안온한 분위기가 저 세 글자 안에 오롯이 담겼습니다.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p80)>. 세상 모르고 살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편한 사람이 없을 것 같고, 시적 화자도 그리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내지만, 사실은 화자야말로 세상 모르고 산 사람이 맞습니다. 세상 모르고 살았다며 회한, 자괴감을 표현할 때는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탓하는 말이지만, 제10행에서는 반대로 근심 없고 그리움 없는 아이 같은 상태를 희구합니다. p81의 청색 톤 산수화는, 이미 심화(心火)가 사르고 간, 한때 붉었던 제석산(帝釋山)인 듯도 합니다. 제석산이란 이름은 꼭 관서 지방뿐 아니라 한국 어디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p93에는 <오시는 눈>이 실렸습니다. "기다리는 날에는 오시는 눈." 모두 4행인데 각운도 잘 맞고 7-4의 음수율도 빈틈이 없어 시라기보다 차라리 노래 같습니다. 기다린다는 말은, 어린이가 바라듯 눈을 기다린다는 게 아니라 아마도 그님을 기다리는 중 야속하게 그를 방해하려 눈이 하필 내린다는 원망 같습니다. 이렇게 눈이 오면 님도 나를 못 찾을 뿐 아니라 나도 길을 못 나섭니다. 그런데 눈이 차라리 고마운 게, 눈도 안 오는데 님이 안 오면 그 이상 절망적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눈이 "오신다"는 존대 표현은 예전 사대문 안에 살던 진짜 서울 사람들의 방언 비슷합니다. 페이지 하단 일러스트는 마을 일대가 모두 하얗게 덮인,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을 담았습니다. 

p120에는 "차(次) 안서 선생 삼수갑산 운(韻)"이란 시가 나옵니다(띄어쓰기는 제가 임의로 했습니다). 제목의 뜻은 책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안서 선생도 책 각주에 나오듯이 스승 김억을 가리킵니다. 북한 정권이 세운 핵시설이 소재한 영변은 평안도에 있고, 삼수 갑산은 함경도 소속입니다(현재 북한 행정 구역 상으로는 양강도). 안서 소월 두 분 모두 평안도 사람이라서 시 세계에 이들 지명이 자주 나옵니다. 삼수갑산은 예로부터 귀양지로 유명했는데, 이 시에서는 님과의 사랑이 꼬이고 꼬여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를 비유합니다. 일러스트는 산 속에 사슴이 노닐고, 오른쪽의 하늘에는 삼수 갑산의 울타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유롭게 나는 새들이 묘사됩니다. 

p88의 <접동새>도 국어, 문학 교과서에 자주 나오는 작품입니다. 아우래비, 불설워 등은 토속적인 시어라고는 하는데(뜻은 책에 다 설명됩니다), 소월이 시 속에서 만들어낸 어휘이기도 하고 여기서 그의 천재성이 다시 확인됩니다. 진두강은 두만강이라고도 하지만, 진두(津頭) 자체가 한국 어디서나 쓰는 말이므로 구태여 특정 지명이라고 새길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죽은 누나를 그리워하는 내용인데 p89 하단에 소년보다 키가 큰 젊은 여성이 시골길에서 뛰노는 일러스트가 나옵니다. 소월의 시 자체가 입으로 소리내어 읽으면 그대로 노래가 되는 절창인데, 여기에 예쁜 천연색 일러스트가 함께해서 너무도 행복한 독서였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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