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위의 아이들 라임 청소년 문학 64
남예은 지음 / 라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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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단편이 실렸습니다. 대체로는 해피엔딩이지만, 주인공들이 워낙에 좋지 못한, 불리한 처지에서 시작하다 보니, 이 정도면 그래도 (독자가) 만족하고 마음을 추스려야 하는 건지 조금은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여튼 모든 작품들이, 비관과 절망을 딛고 일어나 현재에 충실한다거나, 사람이 가야 할 바른 길을 회복한다는 점에서, 어린 독자들에게 착한 심성을 심어 줄 듯하긴 합니다. 

<나쁜 사랑>. 우리 나라에는 대성동이라는 마을이 있죠. 휴전이 된지 71년이 지났고, 그간 우리 나라는 세계적 선진국 반열에 들 만큼 발전한 데다 행정 질서도 정밀하게 정리되었다 보니, 아직도 한반도 영토 내에 이런 곳이 있냐며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TV 프로그램에서 곧잘 다루듯 휴전선 직근의 그 대성동 마을입니다. p14에서 오준구가 로운이(주인공)를 놀리며 "삼팔선에서 온 촌놈"이라 할 때 저는 이 소설의 배경이 꽤 오래 전인 줄 착각했는데, 그곳이 대성동을 가리킨다면 말이 되긴 하는 소리입니다. p20의 로운이의 대사에서 대장동은 아마 대성동의 잘못인 듯합니다. 

세상에 나쁜 사랑이 과연 있을까요? 물론 혼외관계, 불륜, 근친상간 등 사회적으로 금기시되고 비난 받는 종류도 있습니다. 그런 부도덕한 사랑은 하지 않으면 그만인 것이고, 아직 어린 로운이가 지설연과의 풋사랑에 구태여 그런 부정적 의미를 덧씌울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로운이는 간만에 대성동을 방문하고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럴 만했습니다. "아빠가 그걸 했는지 안 했는지, 믿을지 안 믿을지가 중요한 게 아냐. 중요한 건, 이미 우리가 이렇게 되어 버렸다는 거지.(p41)" 이 말은, 무섭도록 현실에 충실한 인식, 각성의 산물일 수도 있고, 너무도 메말라 감정의 싹이 새로 피어날 여지가 없어진 황폐한 마음의 표백일 수 있습니다. 무튼, 로운이가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설연이와 잘해보겠다는 결말로 보여 안도가 됩니다. 아빠는 아빠고 아들은 아들이죠. 

<코르셋>. 보통 여권주의자들이, 강요된 여성다움을 탈피하자는 뜻에서 이 말을 쓰기도 하는데 이 작품과는 거의 관계가 없습니다. 생선가게를 하는 엄마와 혼자 사는 하연수는 수영 선수로서 자질이 있었으나 형편이 어려워 중도 포기하고 엄마 일을 돕습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또래남자 친구 기선우와 사이에 애를 배게 됩니다. 선우가 그렇게 나쁜 애이거나 한 건 아닌데, 여튼 애다 보니 능력이 없고, 결과적으로 무책임한 남친이 되었습니다. 

연수는 벼랑 끝까지 몰린 처지에서 (철없는) 친구 고지은의 엉뚱한 도움으로 탈출구를 찾게 됩니다. 이 돈으로 엄마 암도 치료하고 숨을 좀 돌리겠다 싶을 때, 결국 일이 좋지 않게 풀려 돈을 다 반납하게 됩니다. 그러나 엄마가 참 생각이 바르고(비록 다혈질이지만) 심지가 곧은 분이라서 연수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일어서긴 하는데... 솔직히 독자의 마음은 너무도 무거워집니다. "이만하면 부족할 게 없는 밤이었다.(p96)"는 마치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처럼 반어입니다. 문순태의 작품 <어머니의 땅>도 생각이 났습니다. 

표제작인 <선 위의 아이들>은 학폭이 소재입니다. 주인공 서인우는 최기호라는 불량배가 주도한 학폭으로 오영수를 괴롭히다가 의식불명 상태로 만드는 데 영향을 끼치고 지금 자택에서 두문불출하는 중입니다. 최기호의 부친이 택시회사 사장인데 하필이면 인우 아빠가 그 회사에서 일하는 기사입니다. 그러나 인우 아빠 역시 대단히 성정이 곧은 분인지, 직장 내 위치는 돌아보지도 않고 "영수한테 미안하지도 않아?"라며 바른 증언을 할 것을 다그칩니다. 이 와중에 최기호와 그 모친은 인우를 회유하려 집에까지 찾아오는데 이런 쓰레기 양아치들은 반드시 천벌을 받아 죽어야 마땅하죠. 위층에 세들어 사는 6살 정운이가 내는 소음은 인우에게 들려오는 양심의 소리를 상징하기도 하고, 그 역시 한계 상황에 몰린 가정의 일원으로서 사건의 위기를 고조하는 주요 등장인물이기도 합니다. 인우는 많은 고뇌 끝에 결국 바른 선택을 하고 그 결정은 두 가정, 아니 세 가정을 구하는 듯합니다. 

<지하철 1호선>. 주인공 서상희는 대부업을 하는 엄마 덕에 잘살긴 하지만 결함 많은 가정 출신이라는 열등감에 시달리고 친구 강민지를 은근 질투합니다. 상희는 그저 질투할 뿐이었지만 누군가는 몇 걸음 더 나아가 민지네를 완전히 파멸시킬 마음을 먹었나 봅니다. 소설에서는 "사기"라고 표현하지만 제 생각에는 양도담보 계약이었던 것 같고 여튼 이게 부도덕한 짓이었던 건 틀림없습니다. 민지는 극한 상황까지 몰려 모든 것을 잃고 그 예쁜 얼굴에 상처까지 입었지만 아무도 원망하지 않고 열심히 새 삶을 삽니다. 청소년들이 이처럼 꿋꿋하게, 과거에 집착 않고 현재를 사는 건 물론 좋은 일이지만, 저 같으면 도저히 이렇게는 하기 힘들 것도 같아요. 여튼 감동적인 네 이야기를 읽으니 마음이 깨끗하게 맑아지는 듯해서 좋았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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