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X형사 대본집 상·하 세트 - 전2권
김바다 지음 / 너와숲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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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너와숲 출판사에서 제작해 온 다른 드라마 대본집들보다 규격도 크고 두께도 더 두껍습니다. 또 등장인물 소개, 인물 관계도 등이 올컬러로 책 서두에 실렸습니다. 제가 대본집 리뷰를 올리면 어떤 분들은 포카 포함 여부를 묻곤 하는데, 글쎄요, 권말에 실린 (책과 같은 규격의) 16.6×23.5cm의 스틸컷과 화보를 가위로 절취하면 그렇게 쓰일 수 있을까요?(그런 식으로는 2차 시장에서 잘 유통되지 않습니다) 뭐 그것보다는, 이 대본집 전체를 하나의 굿즈로 간주하고, 드라마를 재밌게 본 시청자들이 영원히 기념품으로 간직하는 편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권 전체가 세트인 이 상품은 랩으로 포장되었습니다. 

이 상권 표지에는 "전 앞으로 모든 자산을 이용해서 범인을 잡을 거에요."라는 주인공 진이수(안보현 扮)의 시그니처 대사가 있습니다. 사실 이 대사, 컨셉, 혹은 설정이라는 게 어찌보면 장르의 공식을 역으로 비튼 것이라서 흥미롭습니다. 명탐정의 대명사 셜록 홈즈는 뛰어난 추리력과 놀라운 지식(범죄 관련)이 자산이며, 장르 초창기에는 이처럼 지적 능력의 탁월함으로 승부를 거는 캐릭터들이 많았다가, 이후에는 별반 머리가 좋지 않아도 특유의 근성, 끈질김, 이도저도 아니면 체력이나 미모(?) 등으로 끝내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들까지 나왔습니다. 독자들이란, 언제나 새로움을 추구하기에, 꼭 머리가 좋고 이지적일 필요가 있느냐, 무기가 뭐가 되었든 사건만 해결하면 그만아니냐는 쪽으로 장르가 진행하다가 나중에는 이처럼 진지함을 포기하고 돈으로 다 때우는 B급감성 충만의 코믹물까지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돈이란 하다하다 안 될 때 기대는 최후의 보루라기보다, 자본주의 사회(하권 p163)에서 궁극의 환원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형사물에서 detective는 판사가 아니기에 용의자를 심문하거나 특정 장소를 수색하려면 따로 영장을 발급받아야 하며 자기 권한으로 무엇이든 가능한 게 아닙니다. 그러면 이런 법률상, 사실상 장애물을 어떤 재치와 기지로 뚫어내느냐가 중요한 재미의 포인트인데, 이 컨텐츠(우리 나라 드라마와, 러시아 원작 드라마 Мажо́р[마조르, "금수저"라는 뜻] 둘 다)는 주인공이 정말로 돈으로, 혹은 금수저로 자란 그만의 환경이 여태 준 혜택(인맥, 감각, 기질 등)으로만 모든 장애(따라서 사소한)를 해결합니다. 주인공이 역경을 돈으로 특권으로 해결하는 과정에 한편으로 실소가 나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돈 자체가 능력인 엄연한 현실을 확인하며 주인공의 행보에 차라리 박수를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형사가 재벌가의 젊은 자제라는 건 아이러니입니다. 대개 형사는 박봉이며,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직종입니다. 남다른 사명감 없이는 직무를 수행하기 힘든데, 귀한 환경에서 버르장머리 없이 자란 철부지, 혹은 망나니, 나아가 양아치과가 이 일을 한다? 당연히 정식 채용 절차를 거쳐 임용된 건 아니지만(우리 나라에서는 치열한 경쟁, 비교적 어려운 필기 시험을 뚫어야 가능합니다), 기이한 계기를 통해 신분을 얻은 후에는 의외로 별난 사명감을 갖고 직무에 임합니다. 

그리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오로지 실력과 사명감으로 팀장 자리에까지 오른 비슷한 또래의 여성경찰이 그와 함께 일하는데(직책은 팀장과 팀원으로 상하관계지만 사실상 듀오 같습니다. 계급도 경감으로 같은데 물론 현실에선 불가능합니다. p64. 변호사 자격이 이미 있었기에 특채가 가능했는데 이미 백수 도련님들 명함 찍어주는 기관으로까지 평판이 나빠진 로스쿨을 풍자하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이 이강현 팀장과 진이수의 관계는 마치 5년 전 같은 방송사에서 론칭했던 같은 시간대의 <스토브리그>에서 이세영(박은빈)-한재희(조병규) 사이와도 비슷합니다. 여자가 철벽을 치고 상하권력관계의 선을 분명히 그으려 하며 반대로 남자는 호감을 갖고 껄렁한 매너로 접근하려 드는 게 닮았습니다. 물론 남자 쪽도 내심은 진지한데 이게 아니면 시청자들이 싫어하며 주인공 자격도 없어집니다. 

재미있게도, 이 드라마가 방영되는 방송사의 명칭과 비슷한 SBC라는 가상의 미디어에 소속된 기자가 제법 비중이 큰데(분량은 적어도 중요도가 높습니다),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복선에도 한 발 담그고 있으며, "기레기"라는 멸칭도 어느 정도 수용하며 자기객관화도 하는 이기석 기자 같은 캐릭터도 있습니다. 인물소개란에 나오듯이 대단히 속물적이지만 어느 선은 넘지 않습니다.  

p103을 보면 다른 경찰력이 천신만고 끝에 규명할 만한 특정 모델의 인적 사항이라든가, 그로부터 짐작할 만한 용의자들의 범위, 사건의 진상에 이르기까지, 진이수는 그만의 "자산"을 활용하여 훨씬 능률적으로 알아내거나, 매우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합니다. p121을 보면 진이수는, 죽은 모델 정이나가 DN미디어(가상)의 CF를 찍었고, 그 계약과정에 대한 정보까지 아무 수고도 들이지 않고 알아내는데 이 역시도 피식 실소가 나오긴 하나 여튼 그만의 능력이요 자산입니다. DC코믹스의 베트맨, 즉 브루스 웨인은 과연 슈퍼히어로의 자격이 있냐를 두고 예전부터 논쟁이 있었는데 냉소적으로 "돈이 곧 초능력이다!"로 마무리짓기도 합니다. 브루스 웨인에게 집사 앨프리드 페니워스가 있듯, 진이수에게는 최정훈 비서가 있습니다(아니나다를까 이 책 인물소개란 p13에 그 말도 나오네요). 사실 앨프리드 노인도 브루스 웨인에게 좀 과분한데, 이 드라마에서도 고작 진이수한테 저런 중견급이 뭐하러 붙어다니나 싶긴 했습니다, 솔직히. 

에피소드 4, 아니 에피소드 3의 결말에서 노영수 교수라는 인물이 죽었을 때 저는 개인적으로 내가 이런 장르물을 여태 너무 봤나 하는 자괴감이 살짝 들었습니다. 이 짧은 씬을 보자마자 누가 범인인지, 그 동기가 무엇인지 훤히 짐작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에피소드 4에 가서 살짝 진상에 변형이 가해지고 다른 줄기가 더해지리라는 것까지...  여튼 어느 정도 뻔한 경로에 기대기는 해도, 진이수 이강현 듀오의 시원시원한 스텝과 독특한 분위기 덕분에 진부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확실히 색감이 (왜 이렇게까지 공을 들였을까 싶게) 예쁩니다. 갤러리와 미술 작품들이 등장하기에 특별히 이 코멘르를 곁들입니다. 

p252를 보면 "하루이틀도 아니고 십 년을 그렇게 살았으면 당신도 문제가 있는거야."라는 진이수의 냉혹한 말에 ooo가 자해를 하는 씬이 있습니다. 자해 경위를 캐어묻다 기어이 진이수가 그런 경박한 말을 내뱉은 게 동기가 되었다는 걸 알고 이강현은 매우 책망합니다. 물론 이게 진이수의 어떤 인성을 나무란다기보다, 경찰 본분을 일깨우는 의도이기는 한데, 재벌 3세가 불우한 흑수저한테 배려없이 잔혹한 충고를 한다고 눈살이 찌푸려진다기보다는, 재수가 없긴 해도 뭐 말이야 맞는 말 아닌가 싶었습니다. 마치 테이블에서 디시를 넘기며 아스파라거스의 꼭지만 얄밉게 떼어내는 아이한테 비매너를 탓하자, "원래 여기가 제일 맛있는데 모르셨어요?"라며 천연덕스럽게 항변하는 꼬마처럼 말입니다. 

에피소드 6에서 범인들은 영정사진(p303)을 찍어준다며 노인들의 집에 들어가서는 살인강도를 저지릅니다. 이 부분은 마치, 토머스 해리스의 소설 <레드 드래곤>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피해자들에게 의심을 받지 않고 접근하여, 그런 방법으로 일관되게 죽일 수 있었던 이들이라면... 물론 이건 특정 직군을 싸잡아 범죄위험군으로 매도한다는 비판이 있기도 했지만 여튼 기발하긴 했습니다. p351에서 이강현은 선배 안병식에게 공을 넘기는데, 무슨 계산을 했다기보다 그녀만의 쿨한 성격의 발로이긴 하지만 여튼 이 행동은 나중에 가서 보상을 받습니다. 여튼 이강현도 참 냉정한 위인인데, 감정이 나빠서가 아니라 순전히 경찰의 직분 발동으로 진이수 해촉을 상신하려 하지만 p459에서 보듯 결국은 철회합니다. 인간이기 때문이죠. 또 부친의 라이벌인 왕종태 의원의 수치스러운 비밀도 덮어 주는 걸 보면 진이수도 공사 구분을 잘하는 것 같은데, 호의를 입었음에도 왕 의원은 합당한 보은을 하지 않습니다. p461에서 ooo는 마치 한니발 렉터나 윌 그레이엄처럼 사람 심리를 잘 파고드는데, "본능인가"라는 대사를 제가 TV 시청시 알아듣질 못했고(VOD로 몇 번을 다시 봤는데도), 이 대본집을 보고 비로소 알았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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