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지옥을 건너는 70가지 방법 - 어제의 불행이 오늘의 행복이 되는 쇼펜하우어의 지혜
이동용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쇼펜하우어가 사거한지 근 180년이 가까워오는데도 여전히 그의 철학, 그의 지혜는 독자들에게 꾸준히 읽힐 뿐더러 한국에서는 꾸준히 베스트셀러의 반열에까지 오릅니다. 이 책은 독일에서 철학박사를 취득한 이동용 저자의 책인데, 우리의 기존 상식과 신조에 넉넉하게 호소도 하면서 동시에 미처 살피지 못했던 삶의 여러 국면에서 숨겨진 진실을 들춰내기도 합니다. 

우리는 보통 하나의 문이 닫히면 삶은 또하나의 문을 열어 준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도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고, 이제 죽음에 임하면 모든 문들이 닫힌 듯합니다. 여기서 저자는 감동적인 일화를 인용하는데, 문호 괴테는 조금 다른 말을 했다고 합니다. "두번째 창도 열어라. 더 많은 빛이 들어올 수 있게" 여기서 저자는 두번째 창이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새기지 말라고 합니다. 생이 끝나도 우리가 몰랐던 그 무엇이 있어 다른 문을 열어 줄 수 있다는 취지입니다. 원래 괴테의 유언은 아주 짧은 "Licht, mehr Licht!"일 뿐이지만 친우 실러에게 임종 자리에서 빛이 더 들어오게끔 두번째 창을 열어 달라는 부탁을 한 게(den zweiten Fensterladen zu öffnen, damit mehr Licht in's Zimmer komme) 이렇게 윤색되어 전합니다. 물론 저자의 주장대로, 괴테 역시 그런 두번째 뜻을 담아 한 말이겠습니다. 

동물은 그저 동물적 직관에만 의존하지만(물론 단기적으로 그 정확도가 매우 높긴 합니다) 인간은 직관도 직관대로 가지면서 이성의 통제를 받습니다. 물론 비교 불가의 장점이 있어서 이렇게 진화했습니다만 때로 이 통제 때문에 "버젓이 두 눈을 뜨고서도 보지 못하는" 일이 간혹 발생합니다. 이 역시도 이성이 아주 정밀하게 작동하는 사람이라면 안 빠질 함정입니다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쇼펜하우어의 가르침을 다시 새겨서 이렇게 말합니다. "눈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만 보지 말고, 나 자신에게도 향할 때 비로소 바로 볼 수 있다(p150)." 이 말은 사실 쇼펜하우어 시대 천 수백 년 전에 고대 라틴 속담도 하던 말이며, 더 멀게는 소크라테스가 비슷한 취지의 가르침을 남겼었습니다. 

우리는 학교 다닐 때 카타르시스라는 말을 감정의 정화라고 배웠습니다만 사실 이는 그 개념(체험)의 결과, 효과에 가까우며 그 원래 뜻은 "배설"입니다(p175). 무엇을 배설하느냐, 공포라는 감정입니다. 공포는 인간의 생존에 아무 도움도 안 되면서 의지와 희망을 갉아먹기만 하는 해로운 녀석입니다. 그래서 FDR도 "가장 두려워해야 할 건 두려움 자체"라고 했는지 모릅니다. 쇼펜하우어는 그래서 삶이 본래 지옥이니 회피한다고 부정한다고 뭐가 달라지지 않으며 그저 훈련, 단련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으며 저자는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했다는 아스케제라는 개념을 인용하여 이 "훈련"의 의의를 강조합니다. 독일어의 Askese는 고대 그리스어 ἀσκέω(딴짓않고 운동에 전념하다)에서 유래했습니다. 영어의 ascetic(금욕적인) 같은 형용사도 어원이 같습니다. 

p222에도 또 "연습'이란 개념이 나옵니다. "연습, 오로지 연습만이, 정신을 망각의 늪에 빠지지 않게 도와 줄 것이다." 불행마저도 의미를 따로 품게 하는 것이 연습의 바람직한 결과 중 하나라고도 강조합니다. 확실히 이 책은 여태 독자가 알지 못했던 쇼펜하우어 철학의 많은 이면을 조명합니다. 삶은 본디 많은 모순, 부조리에 가득합니다. 정의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삶을 그대로 수용하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동물은 삷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잔인하게 사자에 잡아먹히는 어린 사슴, 물소 등도 "대체 왜 이렇게 약하게 태어났지?"라며 신세를 한탄하지 않습니다. 물론 맹수에 의해 숨통이 끊어질 때 극한의 고통을 느끼겠지만 그때조차 염세적 태도를 새삼 드러내지 않습니다. 시니컬하게나마 진지한 답을 제시하는 쇼펜하우어더러 염세주의라 규정하는 건 피상적이고 부당합니다. 

"순간을 알고 있기에 인간은 (그와 반대되는) 영원도 상정할 수 있다(p278)." 고통이 없다면 쾌락이 뭔지도 인간은 알 수가 없습니다. 저자는 이런 말도 합니다. "희망은 신이 인간에게 준 고통이지만 그 희망을 거머쥔 건 인간이다." 세상에 마구 던져졌을 뿐 의지대로 태어난 게 아니지만 여튼 태어난 후 대부분의 결정은 우리 자신이 하며 그 책임은 우리 스스로가 져야 합니다. 책임을 지고 기꺼이 고통스러운 길도 걸어갈 수 있기에 인간은 존엄하며 참된 자존에서 일어나는 쾌감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