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 글쓰기의 발견 - 헤밍웨이, 글쓰기의 '고통과 기쁨'을 고백하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래리 W. 필립스 엮음, 박정례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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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하게 글을 쓰면서도 그 안에 백 마디 뜻을 담은 명문장으로 유명한 헤밍웨이. 많은 이들이 그의 모던한 스타일을 찬양했지만 그가 직접 글쓰기와 삶에 대한 여러 상념, 소회를 담담히 적은 걸 보는 느낌은 또 색다릅니다. 지금 이 책은 언론인, 평론가 래리 W 필립스가 솜씨 좋게 헤밍웨이의 여러 에세이, 서간문에서 엮어 펴낸 책이며 읽다 보면 마치 헤밍웨이의 글쓰기 강의, 지론을 직접 듣는 느낌이 들 만큼 잘 편집되었습니다. 이 책의 초판은 1999년에 나왔었으며 이 한국어판도 여러 해 전에 간행되었으나 같은 출판사에서 리커버판으로 이렇게 다시 나왔습니다. 

D H 로렌스는 우리가 <채털리 부인의 연인>으로 잘 아는 20세기 초의 작가입니다. 이 사람은 헤밍웨이보다 십여년 더 연상이고 문단 데뷔도 빨랐습니다. 헤밍웨이는 자신에게 영향을 준 이들을 거명하면서 D H 로렌스에게서는 전원(田園)에 대해 말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D H 로렌스가 그저 관능적이고 외설적인 효과만을 노린 작가는 아니었으며 오히려 서정적이고 우회적이며 사람 심리의 깊은 구석 절절한 정서를 잘 묘파했기에 그런 문명(文名)을 얻었던 것입니다. 바로 앞에 보면 제임스 조이스를 놓고는, 그룰 숭배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다만 그를 친구로서 좋아하며 기술적으로 그만큼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없다고도 합니다. 조이스는 오히려 로렌스보다 몇 살이 더 많습니다. 우리 조상들도 뜻이 통하는 문우(文友)끼리는 열 살, 스무 살이 차이 나도 격의없이 소통했었습니다. 이 부분은 아놀드 깅그리치에게 보낸 편지에서 발췌했다고 나옵니다(p76). 

아치볼드 매크리시에게 버낸 편지에서 헤밍웨이는 투르게네프를 두고 지상 최고의 작가라고 평가합니다. 희곡의 체홉과 더불어 확실히 투르게네프는 근대 문학의 형식적으로 완성한 공이 너무도 큽니다. 이 대목에서 헤밍웨이 특유의 어떤 열정도 감지됩니다. 헤밍웨이는 또한 문장으로 예술로, 앞선 시대의 거장들을 능가하려, "때려눕히려" 열심히 노력했다고 합니다. 문학의 재능 또한 우열이라는 게 있을 수 있으며 후배가 선배를 능가하려는 의욕을 보이는 건 자연스럽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승부욕을 드러내는 것도 참 재미있는 모습입니다. 그는 참 젊은, 혈기넘치는 영혼이었습니다. 물리적 나이에 불구하고 말입니다. 

저런 말들은 찰스 스크리브너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 말인데, 확실히 이런 말들을 보면 그가 아메리카의 문인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유럽이나 브리튼의 점잔빼는 위신이 아닌, 마치 무하마드 알리가 상대를 몇 분 안에 누이겠다는 허풍을 애교 가득히 떨어대던 스타일과도 닮았습니다. 무하마드 알리도 표현이 다채로웠으며 아무한테도 지지않겠다는 듯 패기와 쾌활함을 마음껏 떠들었습니다. 그런데 다음에 살짝 불은 말이 재미있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챔피언이 되겠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p80)" 내 말을 너무 문자 그대로로만 받아들이지 말라는 신중함으로도 들립니다. 

헤밍웨이는 저널리스트였고 그 현장을 누비던 경험이 작품들에도 잘 묻어납니다. 이때 조지 플림프턴은 그에게 묻길 "젊은 작가들에게도 언론인 경험을 권하겠습니까?"라고 묻습니다. 헤밍웨이는 주저하지 않고 그렇다고 답하는데, 단서를 하나 붙입니다. "적당한 때에 그만둘 수만 있다면." 그게 작가가 되기 위한 전초적 과정이라면 모르겠으나, 그를 넘어 전업이 되면 오히려 작가로서의 완성을 기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그가 일했던 지역 캔자스시티는 당시에 지금보다 상공업으로 훨씬 번영한 도시였습니다. 

헤밍웨이가 생쥐들(mice)과 마치 대화를 나누듯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글들은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책에도 p119 등 여러 군데에 인용되는데 "작가가 되려면 필요한 것은?"이라는 생쥐의 질문에 "불행한 어린 시절"이라고 terse하게, 시니컬하게 짧게 답하는(헤밍웨이의 트레이드마크) 대목은 아주 유명합니다. 물론 행복한 어린시절이 훨씬 가치있으며 헤밍웨이처럼 위대한 작가가 설령 된다 해도 함부로 바꿀 일이 아닙니다. Y.C는 your correspondent의 약자입니다. 헤밍웨이는 의문의 죽음을 한 일로도 유명한데, p135에서는 예술가의 응보(artist's reward)라며 작가의 우울증에 대해 얘기합니다. p117에서는 "책 한 권 끝내고 나면 감정적으로 탈진 상태가 된다"며 고충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많은 성취를 이룬 이런 거인에게도 그 나름대로의 숙명적인 고뇌, 고통이 있었다 생각하면 다소 숙연해집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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