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정치 홍성민 교수의 알기 쉬운 정치철학 강의 2
홍성민 지음 / 인간사랑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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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23) 7월에 홍알정(=홍성민 교수의 알기 쉬운 정치철학 강의) 제1권을 리뷰했었고 이번이 그 두번째 권입니다. 이 2권에서는 자유주의 정치 철학과 현실태를 커버합니다. 자유주의는 영국, 프랑스 등 민주주의의 가장 오랜 기초를 꽃피운 나라에서 발달한 정치 사조이며, 그 양태도 어느 하나로 단정지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하게 작동합니다. 반면 전체주의는 비록 내세우는 지향이 좌와 우로 달라도 시민을 억압하는 행태는 놀랄 만큼 닮아 있다는 게 큰 차이입니다. 

윈스턴 처칠은 일찍부터 "민주주의는 최악의 시스템이지만 현존하는 체제 중 최선의 것이다"라고 한 적 있습니다. 좋아서 쓰는 게 아니라 그보다 더 나쁜 억압적 기제에서 살 수가 없기 때문에 운용하는 제도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도저히 자유민주주의를 그 원형대로 쓰기 어려운 지경까지 왔는데, 저자는 그 위기의 본질을 다섯 가지로 짚습니다. 첫째 대표성의 위기, 둘째 빈부 격차, 셋째 포퓰리즘으로 인한 주권자 개념의 타락, 넷째 관료의 부패, 다섯째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진 집단 간의 투쟁과 차별 등입니다. 

이 책은 크게 5부로 나뉘며 자유주의 정치 사상의 대부 다섯 명을 각각 다룹니다. 이 중에는 그 사상적 경향을 자유주의에 한정할 수 없는 훨씬 큰 스케이프를 가진 이도 있으나, 오늘날 자유주의의 재모색 과정에서 반드시 참고해야 할 사상가로서 꼽힌 이도 있습니다. 그 다섯은 홉스(대표성의 고찰), 로크(소유권), 루소(일반의지), 칸트(공공성), 헤겔(인정투쟁) 등입니다.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을 논한 홉스는 사회에서 벌어지는 싸움의 원인을 3가지로 짚었습니다. 첫째 경쟁, 둘째 자신없음, 셋째 명예. 이처럼 자연상태라는 게 개체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을 지경까지 가자 리바이어던이라는 거대한 권력이 안전 보장을 위해 호출되고, 시민의 도구적 이성이 "폭력과 공포의 심리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작동된다는 게 홉스적 시민계약설의 핵심입니다. 영국은 적어도 권리청원(Petition of Right. 1628) 이래 왕의 권력인가, 아니면 의회의 주도권인가를 놓고 끝없는 논쟁이 있어 왔습니다. p29에 나오는 아이자이어 벌린(이 사람은 E H 카의 책에서도 자주 인용되죠)과 퀜턴 스키너의 해석 다툼(20세기)이 그 좋은 예입니다. 

로크의 소유권 개념을 다루기 앞서 저자는 중세 교부 철학상의 원시 개념을 먼저 환기합니다. p57에서 말하는 교부철학자 클레멘스는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를 말합니다. 다음으로는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모스가 등장하며, 마지막으로 스콜라 철학의 개창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나옵니다. 저자는 이 셋의 사상을 토지공유제, 노동가치설, 손상의 한계, 충분의 한계로 요약하는데 현대 자유주의 정치사상의 재의의를 규명하려는 게 그 의의입니다. 이어 저자는 자본주의에 대해 강력한 안티테제로 등장했던 칼 마르크스와 (약간 뜻밖에도) 토머스 페인을 설명합니다. 물론 <상식>을 저술하여 미국 독립 혁명에 불을 지른 그 사람이며 시기상 칼 마르크스가 태어나기도 전에 타계한 그 인물입니다. 토지 소유권에 내재한 사회적 합의설을 거론했던 이유에서입니다. 

루소의 일반의지, 즉 volonté générale에 대해 이후 프랑스 대혁명의 주역 중 하나였던 시예예스 주교, 또 한참 후의 슘페터의 해석이 갈립니다. 시예예스는 국민의회에서 입법권을 행사하는 대의원들이 이 일반의지를 대표하는데 국민의 일반의지라는 게 분명히 선재한다고 여깁니다. 이때의 국민이란 주로 부르주아지(제3계급)이지만, 이후 레닌과 마오는 이를 노동자와 농민으로 바꿔 해석했습니다. 반면 20세기의 슘페터는 전문가의 식견과 능력이 중요하며 일반의지도 하나의 고정된 모습이 아니라 수시로 변용된다고 여깁니다. 저자는 여기서 일본의 문학가 아즈마 히로키(1971~)의 "일반의지 2.0"을 인용하며 루소의 개념이 21세기 현대에 들어 어떻게 재탄생, 재해석되어야 하는지 하나의 시안을 논합니다. 

칸트의 도덕감정 논의는 가장 소박하고 어찌보면 유치하기까지 한 단초에서 가장 추상적이고 고도의 개념을 논의해 가는 그 치밀함에 위대함의 본질이 놓입니다. 계몽을 논하며 그는 "이성의 공적 사용(p195)"을 자세히 추급하는데, 시민은 정부의 공권력 행사에 복종도 해야 하지만(예:납세), 동시에 후견인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미숙한 상태에 놓인 존재가 결코 아니므로 비판적으로 행동해야만 할 때가 있다고 합니다. 국가 전체가 이런 자유사상에 기반해서 작동해야 성숙한 단계로 접어든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위르겐 하버마스의 <공론장의 구조변동>을 인용하며 칸트적 계몽의 현대적 변용을 알기 쉽게 논합니다. 

헤겔은 국가를 인륜의 최고형태라고 규정했었습니다. 이때 인륜의 원어는 Sittlichkeit입니다. 헤겔은 젊었을 적 피가 끓는 개혁주의자였으나 그 역시도 어리석은 자코뱅파가 혁명의 대의를 어디까지 망가뜨릴 수 있는지 본인이 목도한 세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사상은 기존의 자유주의에 대해, 인륜의 객관성을 바탕으로 비판합니다. 헤겔 사상의 2단계에서 저자는 인정투쟁(Kampf um Anerkennung)을 집중 분석하며, 대체 왜 인간 사회에 분쟁이라는 게 발생하는지, 어째서 종교나 이념 등 추상적인 가치 때문에 이처럼 치열한 싸움이 빈발하는지를 규명합니다. 

홍성민 교수님 특유의 쉽고 명쾌한 필치로, 어려운 정치사상의 이슈들이 설명되기에 책이 술술 잘 넘어갑니다. 즐거운 독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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