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인간, 그리고 하나님 - 실재에 대한 통전적 앎을 위한 과학과 신학의 연대
이안 바버 지음, 김연수 옮김 / 샘솟는기쁨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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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턴 상은 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보통 불립니다. 2013년에 타계한 저자 이안 바버는 독특하게도 핵물리학자 출신인데, 서구 세계에서 예리한 지성들이 간혹 보이는 패턴대로, 순수 사유의 영역인 철학 일부 영역에서도 큰 성취를 이룬 인물입니다. 뿐만 아니라 기술과 과학을 메타적으로 바라보며 이를 윤리, 종교와 연결하여 조화적으로 성찰하는 데 탁월한 진전을 이룬 저술가이기도 합니다. 본연의 필드가 핵물리학이었는데 종교 영역에서도 뚜렷한 업적을 이룬 분이라서 그 글들이 더욱 깊이와 매력을 갖는다고 하겠습니다. 

Come Holy Spirit, come, make us truly new creatures in Christ! p91을 보면 성령을 향해 이렇게 간구하는 문구가 나옵니다. 1991년의 세계교회공의회에서 작성된 기도문이 그 출처입니다. 기독교의 가르침에 의하면 아담과 이브의 배덕행위 이후 우리 모든 인간은 원죄를 안고 태어난 것으로 나옵니다. 죄 없이 깨끗하게 태어난 몸과 마음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회개하고 또 회개하여 깨끗한 존재로 거듭나야만 합니다. 저자는 이 결론에 이르기 전 이른바 과정 사상에 대해 설명하는데 어쩌면 신학을 메타적으로 조감할 수 있는 자연과학자의 시선이라서 이 대목이 더욱 박력 있고 정연하며 설득력 있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p76에서 저자가 거명하는 앨프리드 화이트헤드는 1947년에 타계했으므로 이 책 저자 이안 바버와 살짝은 생존기간이 겹칩니다만 직접적인 인적, 학적 연계점은 없습니다. 그러나 저자 바버 박사(물리학으로 학위를 딴 분입니다)는 저 화이트헤드 사상에 대한 심오한 통찰과 사색의 결과물을 이 책 안에 대단히 명징하게 담아냅니다. 양자물리학은 20세기에 출현하여 물리학계에는 물론 철학계에조차 엄청난 역설의 과제를 던지며 논쟁의 핵심으로 자리했는데 화이트헤드 역시 이 논쟁에 참전하여 그만의 독자적인 기여를 한 바 있습니다. 다만 바버 박사는 상대성이론, 양자물리학, 진화론으로부터 모두 화이트헤드의 과정 철학이 일정 부분 빚을 졌다고 규정하는데 보기에 따라 화이트헤드가 거꾸로 이들 분야에 기여를 했다는 해석도 존재하므로 독자는 더욱 흥미롭게 바버 박사의 견해를 좇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과연 타 유인원에 비해 질적으로 구분되는 특질을 지닌 존재일까요, 아니면 그저 양적으로 우연히 타 종(種)에 비해 몇 발 앞서가 만물의 임시 영장 노릇을 하는 중일 뿐일까요? 저자는 예컨대 p109 같은 곳에서 네안데르탈인 등 타 유인원과 비해 인간의 지적 능력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탁월하다고 할 수 있을지, 아니면 그저 "전통적으로 생각해 오던 바에 비해 타 종과의 간격이 훨씬 좁을 뿐인지"에 대해 다소 혼란스러워하는 태도를 솔직히 드러냅니다. 

그리스도는 칼케돈 공의회 이래 신과 인간의 양성을 지닌 존재로 더 명확히 인식되었으며 단성론은 이단으로 배척되었습니다. 저자는 p124 같은 곳에서 과학적 진화론과 신학을 조화롭게 이해하려는 다소 과감한 시론을 보입니다. "단지 몸으로가 아니라 인격으로서도 그리스도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초기 생명 형태에 이르기까지, 전체 진화를 관통하는 연속적인 과정 중 어느 한 부분이었다." 확실히 이런 전향적인 서술은 아직도 구시대 인식에 머물러 있는 많은 목회자나 신도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대목이겠습니다. 

신학은 여태 이성, 감정을 어떻게 이해할지를 두고 중근세 이래 인문주의 진영과 치열한 논쟁을 벌여 왔습니다. 체스터튼 같은 이는 그의 피조물 브라운 신부를 통해 "이성을 함부로 폄하하는 건 천박한 신학"이라는 한 마디 말로 가짜 신부 플랑보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그의 단편 <푸른 십자가> 중). 지금 이 책 p163에서 저자 바버 박사는 감정의 정체를 구명하려 시도합니다. 구교 신교를 막론하고 크리스트교는 이성과의 400년 간 대전투에서 그렇게나 힘들게 포지션을 잡으며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았는데 이제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예측불허의 기질을 뽐내는 감정과도 싸워야 합니다. 저자는 모두 다섯 가지의 접근법을 고찰하며 신학이 바라보는 감정의 정체, 나아가 21세기의 현대인들이 고루 수용할 만한 해석론을 전개하려 분투합니다. 읽으면서 이 석학의 인식 지평의 한계는 대체 어디쯤인지 새삼 경외감을 느끼게 된 대목 중 하나였습니다. 

화이트헤드는 이 책에서 날카로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책의 핵심 토픽 중 하나가 과정 신학인 만큼 화이트헤드의 관점은 이 책이 디디고 선 가장 보편적이고 튼튼한 비계판(scaffold) 중 하나로 보입니다. 이처럼 서양에는 자연과학의 최변방 분야를 개척한 학자들 중 신학과의 새롭고 단단한 접점을 마련하려 분투한 뛰어난 지성들이 있으며, 이 책에서도 우수한 두뇌가 시도하는 미지에의 영역 정찰을 위한 부지런한 발걸음들이 단연 돋보이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지성과 영성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낙원에의 머무름이 즐거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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