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전 시집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서거 77주년, 탄생 105주년 기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뉴 에디션 전 시집
윤동주 지음, 윤동주 100년 포럼 엮음 / 스타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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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은 온 민족의 마음과 영혼 속에 영원토록 그 시혼과 작품이 아로새겨질 문학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 전집은 그의 짧았던 생 중에 창작되었던 모든 작품들을 담았습니다. 

p30을 보면 <또 태초의 아침>이라는 그의 작품이 수록되었는데 전신주 울음소리를 하나님의 계시로 표현합니다. 시인이 받은 계시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저는 이후에 이어지는 내용이 참 독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빨리 봄이 오면 죄를 짓고 눈이 밝어..." 봄이 빨리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사람을 넘어 동물, 모든 생명체에 공통된 생리이겠는데, 죄를 짓고 눈이 "밝어"진다니요? 신의 계시를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은 후 부끄러움을 알았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모두 압니다. 문제는 이미 한 번 겪은 일인데도, 이 시적 화자(아마 아담이겠지만)는 또 같은 과정을 반복하겠다고 천연덕스럽게 표백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제목에도 태초의 아침 앞에 "또"라는 부사가 들어갔습니다. 아담이 딱히 배덕의 영혼이라서 이러는 게 아니라, 그만큼 원초적 인간은 순수하고 자신의 본능을 (말과는 달리) 부끄러운 줄 모르고 표출하는 존재라는 뜻이겠습니다. 

p74는 <비로봉>이라는 작품을 담았습니다. 비로봉은 지금은 북한 땅인 금강산에 속한 대표적인 봉우리인데, 분단된지 74년이 지났지만 현대 한국인들도 이 봉우리가 금강산의 절경을 압축하여 담은 줄 잘 알 정도입니다. "만상을 굽어 보기란 - 무릎이 오돌오돌 떨린다" 아마 몸소 봉우리에 올라 보고 시인이 직접 느낀 바를 솔직히 토로한 것으로 보입니다. 백화는 어려서 늙었고 새는 나비가 된다... 이런 신비스럽고 몽환적인 산세 안에서는 저런 초자연적인 현상도 얼마든지 가능하리라고 시인은 여겼나 봅니다. 

윤동주 시인이라고 하면 서정적이고 차분한 어조에 청명한 심상을 표현하는 고유의 시구들이 바로 떠오릅니다만 p91의 <닭> 같은 작품을 보면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분노와 저항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잠시 인용해 보면 "자유의 향토를 잊은 닭들이/시들은 생활을 주잘대고/생산의 고로를 부르짖었다"라는 구절인데... 당시 표기를 그대로 따르느라 "시든"은 "시들은"으로 저렇게 쓰였습니다. 이 시에서 닭들이란 일제에 의해 자존을 박탈당한 우리 겨레를 상징합니다만 어찌보면 공장식 대량 사육 시스템에서 고생할 일이 없었던 저때 닭들이 더 행복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생산의 고로(苦勞)" 같은 표현은 뭐 누가 봐도 노동계급에의 착취 행태를 꼬집은 말입니다. 

p106의 <애기의 새벽>을 보면 닭이 또 등장합니다. 이 집은 닭도 없는 집이며, 다만 배가 고파 우는 아이 울음소리가 새벽을 알릴 뿐입니다. 부업으로 수익을 올릴 수단이 없는 것도 서러울 텐데, 철없는 아기 먹일 것도 없는 가정 형편이 얼마나 딱합니까. 제2연에서는 "시계도 없음"을 다시 하소연하는데 이게 의미 없는 되풀이는 아니고, 냉혹한 시스템의 생산 강요를 저 시계라는 장치가 상징한다고 봅니다. 궁벽한 시골이라서 아예 시스템의 감시, 독촉의 눈길로부터도 일시 이탈한 채라는 뜻이겠습니다.  

<모란봉에서>는 제목과는 다르게 평양의 근대적인 풍경 일단을 묘사합니다. "철모르는 여아들이/저도 모를 이국말로/재잘대며 뜀을 뛰고..." 현대의 북한이라면 모란봉경기장이라는 시설에서 이런 풍경들이 보일 법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일제 말엽이라면 어떤 상황이기에 어린 소녀들이 일어, 혹은 영어 외마디말로 소통하며 유희를 즐기는건지 감이 안 잡힙니다. 어쩌면 식민 본국에서 이주해 온 일인들의 자녀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튼 시인의 마음은 착잡해 보이며 "난데없는 자동차가 밉다"는 말로 시를 마무리지으며 시대의 모순에 아랑곳않는듯한 도시의 평정을 탓합니다. 

시집 후반에는 여러 문인들의 평론이 실려서 이 독보적인 청신한 심상의 시 세계에 대해 해석의 성찬을 제공합니다. 정지용과 박두진의 이름도 보이며, 교과서에 <다도해 기행>이라는 명문이 실리기도 했던 평론가 백철의 묵직한 글도 있습니다. 이 책 자체가, 지금은 이렇게 스타북스에서 판권을 입수하여 예쁜 장정으로 내었지만 이미 1967년에 정음사가 제3판까지 찍어서 낸 책이라는 사실이, p251에 나와 있습니다(초판은 1955년). 이 연표는 2017년까지의 사실이 정리되었으며 이렇게 망라적으로 깔끔하게 편집한 출판사의 노고에도 독자로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네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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