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전영애.박광자 옮김 / 청미래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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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르브룅은 한때 왕족, 귀족의 초상화 커미션을 도맡다시피했던 화가였습니다. 마담 르브룅의 나이 사십대에 터졌던 세계사적 대사건이 바로 프랑스 대혁명이었습니다. 물론 그녀는 혁명 이후에도 자신의 탁월한 솜씨와 유럽에 두루 퍼진 인맥 덕에 큰 고비 없이 천수를 누린 편에 가까웠습니다만 개인적인 크고작은 고뇌까지 없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녀의 화풍은 30년 전쟁이나 종교개혁 후에도 오히려 더 큰 경제적 풍요를 향유했던 프랑스의 활기 그 자체의 산물, 바로크, 로코코의 정수를 담은 것이었습니다. 지금 청미래에서 올해 새로 펴낸 이 리커버판을 보면, 마담 르브룅의 화사하고 섬세한 작품 세계의 핵심, 대표작이라 불러 지나치지 않습니다. 실제로도 그녀에게 궁정 화가로서 결정적인 명성을 얻어다 준 게 이 작품이었습니다. (큰 의미는 없으나) 마리 앙투아네트와 마담 르브룅은 나이도 동갑이었습니다. 

이 그림을 보면 많은 상념이 떠오릅니다. 혁명 발발 6년 전에 그려졌는데 그린 르브룅이나 그려진 왕후나 28세였을 때입니다. 오늘날 28세의 여성들과 비교하면 다소 나이 들어 보이는 느낌인데, 표정에는 심지어 이처럼 편안한 일상의 스탠스에서도 어떤 위엄이 풍깁니다. 그 어머니의 딸이라서 당연하긴 합니다만 마리아 테레지아 황후와도 닮았습니다. 그러나 황후의 경우 본인부터가 불세출의 군주 기질을 갖고 태어난 만능인이었으며 그 내면의 능력이 위엄으로 겉모습에 자연스럽게 드러난 것이겠지만, 28세의 철모르는, 정치적으로는 더욱 서투르기 짝이 없었던 그 딸이 뭘 안다고 (덩달아) 저런 표정을 지었는지 사실 딱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어쩌겠습니까. 왕족의 운명이 본래 그런 것을. 없는 위엄이라도 지어서 표현해야죠.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해서는 오히려 21세기 들어 더 다채로운 평가가 나오는 듯합니다. 프랑스 대혁명 자체가 구시대 전근대의 썩은 문짝을 걷어차고 새 시대를 확립한 대사건이라는 데 거의 이론의 여지가 없었던 편이었고, 앙시앙 레짐의 적폐를 모두 책임지고 상징하다시피한 루이 16세 왕 부부에 대해 모든 오명이 쏟아지는 건 너무도 당연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과연 마리 앙투아네트가 죄를 짓고 죽었는지에 대해 적잖은 회의론이 제기됩니다. 아예 프랑스 대혁명 자체에 대해서도 새로운 증거와 사료를 바탕으로 프랑스 본토에서조차 회의적 시각이 제기되는 터라 왕비 개인의 평가라면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스테판 츠바이크는 본래부터가 박력있고 흥미로운 전기 서술로 유명했던 20세기의 문필가였고, 어떤 시대의 분위기나 경향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시각을 유지했었기에, 역사 연구가 더 진척된 오늘날에 읽어도 그리 어색하거나 위화감이 덜 느껴집니다. 무엇보다, 전기인데도 소설처럼 재미있습니다. 

p154를 보면 쥘 드 폴리냑 백작부인(=욜랑드 드 폴라스트롱)을 처음 보았을 때 마리 앙투아네트가 어떤 느낌이었을지 츠바이크는 자신의 상상력을 가득 담아 서술합니다. 이때에는 백작부인이었지만 나중에는 남편의 작위가 공작으로 승급됨에 따라 공작부인이 됩니다. 이 부인은 마리 앙투아네트보다 다섯 살이 많았는데 물론 마담 르브룅이 이 부인을 그린 그림도 있습니다. 이 부인은 나중에 프랑스가 왕정 복고(復古)를 이루고 나서 샤를 10세를 보필한 재상이었던 쥘 드 폴리냑 2세 공작(우리에게 드 폴리냑이라고 하면 이 사람이 더 유명하죠)의 모친이기도 합니다. p155를 보면 마리 앙투아네트가 이 부인의 빚도 갚아 주고, 가문을 공작으로 올려준 사실이 다 나오는데 어쩌면 이런 생각없는 총신 편애가 왕조와 체제의 몰락을 앞당겼는지도 모릅니다. 저런 행적들은 엄연한 팩트입니다. 다만 드 폴리냑 가문의 사람들이 귀족 특유의 품격과 인격, 적어도 매력을 충분히 갖추었는지는 또 별개의 이슈입니다. 1세 공작은 러시아로 망명하여 예카체리나 2세에게 농장도 하사받고 말년을 보냈으니 말입니다. 

아... 누군가가 자신을 뒤에서 조롱하고 비웃을 때 이에 오불관언 무시하는 태도(p192)를 보이는 건 과연 왕족다운, 황족다운 태도이긴 합니다. 드레스에 똥파리 몇이 앉았다고 분노를 가볍게 표출하면 그게 똥파리와 같은 격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린 헌트의 <포르노그라피의 발명>이라는 책을 예전에 읽고 저급하고 야비한 시중의 농간이 위엄 가득한 왕실도 거꾸러뜨릴 수 있었음을 처음 알았습니다. 생산의 주력으로 어느새 등장한 부르주아지가 제 역량에 걸맞은 대접을 못 받자 불만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제3계급은 무엇인가? 아무것도 아니었다(rien)! 무엇이라야 하는가? 모든 것이다(tout)! 이제 그들은 무엇을 바라는가? 그 어떤 것이다(quelque)." 시에예스의 너무도 유명한 선언입니다. ㅎㅎ 마리 앙투아네트가 그의 저 언명을 혁명 즈음에 접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제 출신 계급을 배신한 저 담대한 젊은 주교에게, 적어도 그 모후였으면 대갈일성으로 쏘아붙였을 만한 몇 마디가 혹 있었더라면 역사가 (설령 방향을 바꾸지는 않았더라도) 더 다채로워졌을 터입니다. 

이 책은 일단 츠바이크 원저의 완역판이라서 볼륨이 무척 두껍습니다. 게다가 독자로서는 생각지도 않게 각종 회화와 자료 사진들(올컬러)이 많이 실려 독자의 눈이 호강합니다. 역시 마리 앙투아네트, 비엔나에서 종자를 빌려 베르사유에서 피어난 장미 이야기는 시대를 초월하여 대중의 흥미와 환호, 혹은 개탄을 이끌어내는 것 같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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