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칼호에 비친 내 얼굴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3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어령 선생의 글들을 읽어 보면 어쩜 이렇게 많은 글을 쓰셨으면서도 중복되는 소재나 주장이 없는지 놀라울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책 표지에는 "마르지 않는 지성의 불꽃놀이, 현재진행형"이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비록 서거하셨으나 이렇게 많은 글들을 통해 독자들을 계속 만나시니 그의 인문 탐구 정신은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 우리를 만날 것 같습니다. 

요즘은 유전공학이 발달하여 하플로그룹 추적을 통해 우리의 먼 기원이 어디인지 추정할 수 있습니다. p51을 보면 프리모리예, 즉 연해주에서 아득한 우리 조상(중 가야인)의 모계쪽 얼굴이 발견되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가야라고 하면 한반도의 남부인데, 아무리 연해주 쪽과 교류가 고대에 잦았다고 하나 그 흔적이 발견된다는 게 신기합니다. 또 현재 일본인 혈통의 약 9%를 차지한다는 조몬인의 모습도 있다 하니 다시 한 번 놀라운데, 그처럼 한반도가 유전학적으로 다양한 이들이 혼재해 살았다는 근거가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한반도라고 하면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닫힌, 반도를 넘어 거의 섬에 가까운 지형이라고맠만 알았는데 이런 고대의 흔적을 보면 놀랍기만 합니다. 

본래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 세력이 미미했던 신라가 기어이 삼국을 통일한 비결에 대해, 저 멀리 바이칼호 근방에 살던 나그네 민족이 경주에까지 흘러들어와 국제도시, 콘스탄티노플이나 하노이, 시안, 교토 등에 못지 않은(p64) 수도를 건설하여 세계로 문호를 오픈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이어 저자는 고 김원룡 교수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경주 일대의 적석 목곽분이라는 게 시베리아 일대에서 발견되는 것들과 매우 흡사하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책에도 나오듯이 강인구 교수 같은 분의 반대견해도 소개됩니다. 다만 저자는 다시 최병현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신속한 이동이 핵심 목표였던 기마민족의 흔적이 뚜렷하다며 김원룡 교수 설에 찬동하는 편입니다. 

그전부터 서양 문명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을 두 축으로 하여 발전했다는 패러다임이 있었습니다. 이어령 선생은 잘 알려진 네 개의 사과 이야기를 꺼냅니다. 선악과, 트로이 내전을 촉발한 불화의 사과, 빌헬름텔의 사과, 뉴턴의 사과 등입니다. 이 이야기를 선생이 구태여 꺼낸 건 백인중심의 확고한 우월문명적 서사가 사실은 그리 단단한 기반을 갖춘 건 아니라는 반증을 서서히 꺼내는 포석으로 저는 해석했습니다. 책을 읽어 보면 드러나지만 사실 선생은 코카서스 단일 인종기원설에도 짙은 회의를 표시하는 쪽입니다. 

2011년 김호석 화백의 그림 <사유의 경련>은 눈을 지운 어느 유학자의 안경 쓴 모습을 담아 큰 화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왜 눈이 지워지니까 더 많은 의미를 그림이 담게 될까? 그림을 봤던 사람들도 사실 이 이유 때문에 충격을 받았던 것인데 다만 이어령 선생처럼 이렇게 명쾌하게 문장으로 표현을 못 했을 뿐이겠습니다. 보통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하여 그를 통해 세상을 인식하며,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그의 영혼이 보유한 파괴력을 상징한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눈을 지웠더니 더 많은 메시지가 전달된다? 대단한 역설입니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를 담은 문장이기도 합니다. 

우리 문화재에는 예로부터 그 깊은 뜻을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미소를 띤 조상(彫像)이나 회화가 많았습니다. 하긴 다빈치의 모나리자도 그 모델이 미인이라서가 아니라 대체 얼굴에 띤 저 미소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놓고 의견이 다양하게 표출되기에 그렇게나 유명한 것입니다. 저자는 영산회상에서의 마하가섭 심심상인 고사를 들며 사람의 얼굴과 그 웃음이라는 게 천만 마디의 문장보다 더 많은 뜻을 품을 수 있음을 강조하는 거죠. 

저도 책을 읽으면서 감탄(탄식?)했던 게, 어떻게 아이한테 생김새를 칭찬하는 말 중에 "얘는 한국 애처럼 안 생겼어요."가 있는지 하는 구절이었습니다. 아니 애 엄마한테 이런 말을 하면 "그럼 동남아 애 같다는 소리에요?"라고 화내는 경우는 열에 하나도 드뭅니다. 혹여 정말 동남아 사람을 닮았다는 뜻이었다고 해도 일단은 뚜렷한 이목구비를 놓고 좋아하는 소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역시 날카로운 게, 요즘은 인위적으로 고친 이목구비는 뭔가 유흥업소 접객원 같아서 기피되는 풍조가 또 하나의 대세임을 지 는다는 점입니다. 이제 한국인이 경제적 풍요를 달성하고 어떤 미의 표준 중 하나로 한국 고유의 외모를 확립해 가는 중, 우리도 진정한 자긍을 갖고 무엇이 진정 보기 좋은 얼굴인지 떳떳한 생각을 키워 갈 때가 되었다는 뜻도 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