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 학아재 모노그라프 1
김명석 지음 / 학아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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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개념이 모두 시대를 초월하여 살아남는 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 플로지스톤 이론 같은 것은 18세기까지만 해도 유럽 과학자들 사이에서 확고한 지지를 받았으나 이후 모순과 비효율성이 발견되어 폐기되었습니다(그 주역은, 이 책 p11, p89 등에도 언급되는 라부아지에죠). 반면, 엔트로피가 관여된 여러 법칙과 정리는 수백 년 동안 다소의 변경이 있었다고 하나 대체로 큰 변모 없이 오늘에까지 이어집니다. 뿐만 아니라 특히 열역학 제2법칙에 위배되는 어떠한 학설도 성의 있는 검토 과정 필요 없이 바로 기각해도 될 만큼, 일종의 최근본 한계를 형성하는 절대 진리에 가깝습니다. 대체 엔트로피라는 개념이 무엇인데 과학적 진리, 나아가 인간 존재의 범위를 이토록 제약하는지, 저자 김명석 선생은 개념 하나를 타겟으로 삼아 다각도로부터의 궁구, 나아가 해부를 시도합니다. 

우리는 아마 중1 과학 시간에, 기체는 일정 압력 하에, 온도가 높아지면 그에 비례하여 부피도 늘어난다는 이른바 샤를의 법칙을 배웠을 것입니다. 또 보일의 법칙이라는 것도 있는데, 압력과 부피는 반비례한다는 게 그 내용이죠. 이런 내용들은 꼭 과학자들이 아니라고 해도, 또 특별한 지혜 없이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 "법칙"이 언제나, 어느 상황에서나 들어맞는 것일까요? 이미 우리들도 중학생 때 배운 "이상 기체", 즉 우리가 기체는 으레 이렇겠거니 하는 성질들을 두루 갖춘 기체에 정통으로 적용되며, 또 법칙이라고 한 이상 대부분의 기체들에도 다 통한다는 뜻입니다. 법칙이란, 어느 특정 기체에만 맞는 게 아니라, 그것이 기체 상태를 유지하는 한 대부분 유효하다는 말이겠습니다. 단 구체적인 팽창계수라는 게 있기 때문에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정도가 일정하지는 않습니다. 

중1 때 지구과학 섹터(지구과학이라는 과목은 아직 없지만) 중 기상현상을 배우면서 단열팽창(혹은 단열압축)이라는 걸 접합니다. 외부로부터의 열이 차단된다고 가정할 때, 기체가 팽창하면 온도는 내려가고 내부는 뿌예진다는 건데 잘 이해가 안 되면 그냥 외워버리기도 하죠. 여튼, 단열한 채 기체가 팽창한다는 말은 무엇인가? 이 경우는 외부로부터 뭘 받아먹지도 못한 채 "바깥에 일만 해 준 셈(p144)"이라고 책에 나오는데, 우리가 일 개념은 중3때 보통 배우죠. 힘(F)에다가 이동 거리(S. 작용된 힘과 방향이 같아야 합니다. 만약 방향이 다르면 cos θ를 곱해 줍니다)를 곱해 준 것이 일(W)인데, 같은 페이지에 나온 그래프를 보면 압력 P를 부피 V로 적분해 준 게 일(W)이라고 합니다. 저자의 서술은 대단히 직관적이므로 꼭 미적분의 개념을 모른다고 해도 그리 큰 어려움 없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이 책을 통해 "아, 적분이그런 뜻이었어?"라며 어떤 직관을 새로 얻을 수도 있습니다. 

제임스 줄은 19세기에 활약한 과학자입니다. 그의 업적을 기려 에너지, 일의 단위를 (그의 이름을 따서) J로 쓸 때도 있습니다. p156을 보면 줄의 저작 중에서 "비스비바"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이는 줄의 시대에 에너지를 대신해서 쓰인 말이라고 합니다. 제임스 줄은 (앞서 말했던) 플로지스톤 이론을 최종적으로 폐기하는 데 기여를 한 인물이기도 한데, 그가 쓴 글 중에도 이처럼 현대에는 전혀 쓰이지 않는 구시대 개념이 들어 있으니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흥미롭습니다. p159에 드디어 열역학 제1법칙(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수식과 함께 등장합니다. 이 수식이 유도되는 과정도 저자만의 독특한 논리와 개성에 따르기 때문에 재미있습니다. 4장에서는 카르노의 열기관과 이후 켈빈의 수정 과정까지 쫀득하게 서술되는데 이 책 한 권이 과학사개론 구실도 겸할 수 있습니다. 카르노 열기관 토픽 하나에서 이처럼 풍성한 이야기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끌려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저자의 서술은 대단히 섬세합니다. p201을 보면 두 f 함숫값 사이에 가운뎃점이 찍혔는데 이게 보기에 따라서는 벡터곱으로 보이기도 할 수 있으니 저자는 "그냥 숫자 곱하기"라고 친절히 끼어듭니다. 스칼라곱이라는 용어도 쓰지 않고 저런 직관적인 해설을 합니다. 비단 이 대목뿐 아니라 저자는 수학, 과학 소양이 아직 충분치 않은 독자들을 위해 되도록이면 전문용어 사용을 자제하는데, 일일이 쉬운 우리말로 풀어쓰는 태도가 돋보입니다. "가역순환은 두 개의 가역과정으로 이뤄진다.(p218)" 이 말도 여러 개의 적분식을 함께 적어 독자의 이해를 돕는데, 파인만의 경로적분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엔트로피 S의 함수가 최댓값을 가지는 지점은 변화율이 0이 되는 극점이다(p239)." 극점(critical point)에서 함수는 최댓값을 가질 수도 있고 최솟값을 가질 수도 있으며 어쩌면 구간에서 최대 최소 중 아무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일계도함수를 0으로 둔 방정식의 해가 바로 극점의 x좌표라는 진리에서 이처럼 엔트로피를 둘러싼 여러 법칙이 도출되는 과정이 매우 우아하며, 수학과 화학, 물리의 화려한 앙상블이 이뤄지는 지점입니다. 책에 수식뿐 아니라 그래프 등 그림이 많아서 이해가 편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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