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워크 - 가정과 자유 시간을 위한 투쟁의 역사
헬렌 헤스터.닉 서르닉 지음, 박다솜 옮김 / 소소의책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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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예전에 마이클 크라이튼의 어느 작품을 읽으며 "세탁기, 냉장고 등이 등장하여 가사노동의 어려옴이 많이 줄었다고는 하나 과연 그만큼 삶이 행복해졌는지는 의문"이라고 한 구절을 접했습니다. 여전히, 워킹맘들이 직장에서 뼈빠지게 노동하고 돌아오면 그들을 기다리는 건 일, 일, 또 일입니다. 세상이 나아지고 편해졌다고는 하지만 왜 이렇게 끝도 없이 일이 남는 걸까요? 또 여성은 언제까지 가정을 위해, 또 자신만의 자유 시간을 위해 투쟁해야 하는 걸까요? 

저자 두 분은 부부 사이이거나 한 건 아니고 이 책 저술울 위해 일시 콜라보했습니다. 작년(2023) 발간되어 큰 화제가 된 이 책은 그 부제("History of the Home and the Fight for Free Time")에 걸맞게 묵직한 주제를 다뤘으며,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심각한 생각거리들을 많이 던져 줍니다. 캐나다인인 닉 스르니첵은 그 성씨에서도 알 수 있듯 체코 혈통이며 해외에서는 40대의 촉망 받는 학자로 널리 알려진 분입니다. 헬렌 헤스터 교수는 <제노페미니즘> 등 여러 문제적 저서로 국내에서도 그녀를 이미 아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창의적이지도 않고 생산적이지도 않으며 흥미도 없는 일에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써서는 안 된다(p24)." 저도 2년 전쯤(2002. 9)에 그 한국어판을 리뷰했던, 격정적인 활동가로 유명했던 앤젤라 데이비스(현재 80세)의 고전 <여성, 인종, 계급> 중의 한 구절입니다. 예전에 비하면 얼마나 편해졌는지를 놓고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한다며 현재의 모순과 질곡에 무감각해지거나 순응하지 말고, 비위와 악폐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투쟁해야 한다는 게 저 발언의 골자이며 동시에 이 책의 주제입니다. 

본디 진보 사상의 아득한 선구자들은 여성 문제에 대해서도 앞서서 통찰하고 행동했습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엥엘스)가 그러했고, 비슷한 나이의 혁명가들이었던 두 여성,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로자 룩셈부르크 등이 그러했습니다. 책은 적시 적소에 이들의 저작을 원용하며, 문제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으며 다만 우리가 명백히 인식하지 못했을 뿐임을 지적합니다. 사람을 속이고 이익을 사취하려는 악당들은 여전히 거리를 활보하며, 여성들은 감연히 이에 맞서 싸워야 하며 문제를 애써 외면하는 건 의무를 방기하는 무책임일 뿐임을 통렬히 고발합니다. 

"노동 절약 기술이 등장했으므로 그만큼 더 요리 등에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이상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p88)." 여성들에게 특정한 역할을 강요하고 성별 기능(왜곡된) 외에 어떤 자격이나 권위, 재량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가부장적 사고 때문에 지금 이 시간에도 젊은 여성인재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아깝게(자신을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서나) 시들어가는 것입니다. 육아 노동은 예나 지금이나 여성들에게 크나큰 부담이며, 과거의 여성들은 이에 더하여 고된 가사노동, 강도 높은 농업노동까지 수행해야 했습니다. 현재도 엄마들에게 "낯선 꼬마 사람"으로 여전히 힘든 의무를 부과하는 게 아이일 수 있음은, 안타깝지만 엄연한, 그리고 냉정한 현실입니다. 

이 책은 부제를 보면 여성 개인의 자유시간을 위한 투쟁 부분도 언급하고, 잘 보면 home, 곧 가정이라는 단어도 들어가 있습니다. 책의 제5장은 "주거 공간의 재조직"인데, 저자들은 이 집이라는 공간이, 개개인이 고립되거나 인간을 소외시키는 소모적인 노동("젠더화한 노동 분화")을 강요하는 착취의 장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자각하고 극대화하며, 여성이 다른 여성과 연대하여 개혁과 해방의 비전을 마음에 품고, 부조리한 현실과 정면으로 맞서 투쟁하는 홈베이스로 의존할 수 있는 기지로 거듭나기를 촉구합니다. 이 챕터에서 주택 코뮌, 노비 비트에 대한 저자들의 설명은 의미심장합니다. 

주택은 개인의 탐욕과 부정부패를 부추기는 자산 증식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척박한 현실에서 집은 그저 자산이거나 투자 수단에 불과합니다. 저자들은 이에 맞서, "정치적으로 급진적이고 해방적인 주택 형태를 만들려는 노력(p185)", 이른바 주택 리얼리즘은 크나큰 장벽에 맞닥뜨리게 된다고 지적합니다. 주택의 설계 역시 가사 노동의 분담을 어떻게 (정치적으로) 결정할지에 따라 그 모습이 천차만별로 바뀐다고 저자들은 통찰합니다. 저자들은 "부담가능성의 위기"를 거론하며, 하나의 강력한 대안을 제시하여 집이 투쟁의 전초 기지로 재설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동시에 그 현실적 한계도 같이 짚습니다. 

"탈노동사회는 유토피아적 목적지로 오해받기보다, 오히려 자유의 영역을 계속 넓혀가는 한없이 프로메테우스적인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p230)" 이 구절을 읽고 저는 구 소련의 문필가 갈리나 요시포브나 세레브리야코바(Галина Иосифовна Серебрякова)의 대하소설 <프로메테우스>가 생각났습니다. 끝없이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먹히면서도 인간에게 소명의식을 갖고 불을 전래해 준 선지자... 우리 모두는 참여와 희생을 통해, 고립된, 원자화한 개인의 협소한 틀에서 벗어나 더 큰 자아에의 합일을 도모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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