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동작연출 드로잉 워크북 - 기초부터 기획, 연출, 제작, 마케팅까지!, 개정판
차양훈 지음 / 두드림미디어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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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5를 보면 애니메이션의 종류는 대개는 제작 방식에 의해 구분된다고 합니다. 아주 예전에는 모두가 2D였고 초당 24매면 풀 애니메이션, 초당 12매 이하면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나누었다는 말이 책에 나옵니다. 나이 든 세대라면 이 말이 추억과 함께 정겹게 다가올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풀 애니메이션 방식으로는 제작이 거의 이뤄지지 않으며, 특정 장면을 길게 늘이거나 줄이는 식으로 처리한다고 책에 나옵니다. 

다음 페이지에 보면 클레이 애니메이션이 소개됩니다. 아마 이 말 하면 대뜸 1996년작 <월레스 앤 그로밋>이 떠오르는 이들도 있겠습니다. 그 외 스크래치 방식, 절지 방식, 퍼핏 방식이 두루 소개되는데 이 모두가 이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고 책에 나옵니다. 1996년 훨씬 이전에 컴퓨터그래픽 방식이 도입되었지만 클레이는 그 나름 독특한 미감에 호소하기 때문에 장르로서 통째 없어지기에는 사실 아깝습니다. 어렸을 때 장난으로 많이들 했던, 책 귀퉁이에 연속된 그림을 그리고 후루룩 넘기는 플립북 방식도 잠시 언급이 있습니다. 이 모두가 인간만의 창의, 호기심의 소중한 산물들이었습니다. 비록 기술 진보의 흐름에 밀려 도태되었으나 그 정신만은 예술가들이 간직할 필요도 있겠습니다. 

요즘은 유튜브를 널리들 이용하기 때문에 시간이나 형식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개인이 기술과 아이디어만 있으면 얼마든지 자신의 컨텐츠를 세상에 릴리스할 수 있습니다. p27을 보면 혹시 유아용으로 만드는 애니메이션이라면 3D로 만드는 게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유아들은 사선으로 기울여 그린 투시도 같은 개념을 이해 못 하기 때문에, 예를 들어 정육면체의 경우 옆에서 그린 그림이 있다면 이를 입체로 보지 않고 평면 다이아몬드꼴로 보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아들에게 입체를 더 확실하게 인식시키는 데에 3D를 쓰는 편이 훨씬 낫다고 하네요. 

이 책은 특히 제1장, 제2장 하단에 오렌지색으로 Behind Story가 자주 삽입됩니다. 애니메이션의 역사, 흥미로운 에피소드, 기술적으로 간과하기 쉬웠던 유익한 팁 같은 게 이 코너에 소개됩니다. 예를 들어 p33을 보면 일본 애니메이션이 처음으로 미국에 진출했을 때에는 크게 환영을 못 받았다고 합니다. 움직임이 적고 대사 위주의 연출이라서 그랬다고 하네요. 물론 이후에는 "덕 중의 덕은 양덕"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동아시아보다 오히려 북미에서 더 열혈인 팬 집단이 나타날 정도가 되었습니다. 여튼 재패니메이션의 특징을 지적한 저 말은 여전히 타당한 게, 실사판을 만들거나 할 때 감독들이 애를 먹는 게 이런 포인트에서이니 말입니다. 

미술의 기본은 역시 구도입니다. p77을 보면 화면 왼쪽의 루킹룸(looking room), 뒤 공간의 리어룸(rear room)을 적절히 배치해야, 답답한 느낌이나 바보스러운 느낌이 줄어든다고 합니다. 우리가 평소에 예사롭게 보던 부분도 사실은 이처럼 치밀한 이치가 배후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캐릭터가 이동하는 중이라면, 저 루킹룸은 리딩룸(leading room)이 되어 어색함을 피하게 합니다. 말로만 이렇게 설명하면 무슨 뜻인가 해도, 책에는 컬러 도판, 예시가 일일이 제시되었기 때문에 직접 책을 보면 직관적으로 이해가 됩니다. 

황금비율은 내분과 외분의 비가 같아지는 지점에서 발생하는데 그 값은 대개 1:1.618이라고 책에도 나옵니다. 그럼, 애니메이션에서 황금분할 구도는 무엇인가? 책에서는 4:3화면을 9분할하여 그 교차점들에 피사체를 두는 게 기본이라고 합니다. 세로선에는 인물, 가로선에는 배경의 아이 레벨(eye level)을 놓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애니메이션을 볼 때 무심하게 넘기던 게 사실은 이처럼 치밀하게 최상의 효과가 나올 만한 이치가 자리했던 것이죠. 무엇이 우리의 미감과 취향에 가장 효과적으로 어필할지에 대한 고민이, 앞선 전문가들(이에는 멀리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포함됩니다)의 시행착오 끝에 이처럼 결과물로 정리된 것입니다. 

p102를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연출은 항상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는 걸 잊지 말자." 연출은 그냥 예쁜 화면만으로 꽉꽉 채우는 것도 아니고, 허겁지겁 이야기만 이어가는 과정도 아닙니다. 이 페이지를 보면 주관적 구도(책에 설명이 나오듯 이 말은 캐릭터의 시선을 뜻합니다. p97에도 이 설명이 있었습니다)로 대본의 내용을 보여 주는 게 81번 컷입니다. 81번 컷은 책에서 예로 든 스토리보드에 나오는 장면들 중 하나인데,  이 책은 이처럼 실제 스토리보드(예)가 자주 삽입되기 때문에 독자들이 제작 실무의 가장 생생한 순간을 엿볼 수 있습니다. 

p164를 보면 동화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그 뜻은 원화와 원화 사이의 그림을 그려 주는 작업이라고 합니다. 책에 보면 한 작품에서 쓰는 원화 작업자는 수십 명에 달하는데, 아무리 캐릭터 생김새가 딱 정해졌다고 해도 그리는 사람마다 차이가 나는 게 당연합니다. 그래서 원화를 수정하여 원작(=원화작감) 작업을 따로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동화 작업자는 원화를 다시 그리기도 한다고 하네요. 

이 책을 보면서, 그저 생각없이 구경하고 소비하던 애니메이션이 얼마나 치밀한 사전 계산과 갖가지 미학적 스킬, 테크닉에 의해 완성되는지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장면장면이 너무 촘촘하게 짜여도 지루하고, 반대로 너무 팍팍 건너뛰면 시청자가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재미와 이해를 모두 달성할 수 있는 최적점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바로 작가, 감독, 제작자의 센스입니다. 예화와 도판이 많아서 애니메이션 초보라도 재미있게 원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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