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강화 - 강력한 소설 쓰기 비법 125가지
제임스 스콧 벨 지음, 오수원 옮김 / 21세기문화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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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 그것이 실화이건 허구이건 간에 남들 앞에서 재미있게 풀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이야기가 다 소설로 자동변환하여 문학적 자격을 갖추는 건 아닙니다. 어떻게 해야 내 이야기가 버젓한 한 편의 소설이 될 수 있을까? 그것도 독자를 매혹하는 강력한 소설이 되려면? 제임스 스콧 벨은 원래 법정 변호사였다가 현재는 인기 장르물을 써서 명성을 얻은 70세의 미국인 전업 작가입니다. 그는 창작 못지 않게 소설 작법 강의로도 큰 인기를 얻었으며 지금 이 책도 자신의 상업적 성공 비결을 고스란히 담은 문예창작 교재 중 한 권입니다. 

수십 년 전에 한국의 mbc에서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제시카의 추리극장>이라는 TV 드라마가 있었다고 하죠. 원래는 미 지상파 방송국 CBS에서 틀어 주던 건데, 책 p88을 보면 제임스 스콧 벨은 그 시리즈의 총괄 제작자였던 자신의 친구 톰 소여(마크 트웨인이 창조한 캐릭터와 철자, 발음이 같습니다)는 <이해하기 쉬운 소설 쓰기>란 책도 썼다고 합니다. 이 제목은, 쓰는 소설이 이해하기 쉽다는 게 아니라, 소설 쓰는 방법을 이해하기 쉽기 가르친다는 뜻입니다. 여튼 저자 벨은 그의 책으로부터 몇 가지 교훈을 간추려 한 페이지 분량으로 제시하는데, 읽으면서 우리가 열광했던 캐릭터들에게는 과연 저런 매력들이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p106에는 "물리적 법칙을 존중하라"라는 말이 나옵니다. 무슨 뜻인지 독자가 쉽게 이해하게 도우려고 저자는 어떤 장르물에서 한 장면의 예를 듭니다. 인물이 짧은 한 마디를 하면, 그 짧은 시간에 웨이트리스가 이런 식사 저런 메뉴를 날라 오는데, 이게 물리적으로 가능한가 하는 질문입니다. 이런 오류가 대단히 신경에 거슬리는 독자도 있겠고, 저자는 대안을 제시하길 이런 장면은 일일이 대사 처리를 하고 상황 묘사를 해서 메울 게 아니라, 관찰자의 서술, 설명으로 대신하라는 조언을 합니다. 상황에 적합지 않은 억지 묘사를 불필요하게 소설 분위기만 내려고 지루하게 이어가지 말라는 뜻으로 들립니다. 

p116 이하에는 잘된 서두를 만들려면 "주인공의 일상이 교란되는 충격적 장면"을 제시하라고 합니다. 확실히 이런 장면이 소설 초두부터 나온다면 독자들은 느슨한 마음으로 접근했다가 깜짝 놀라며 주의를 집중하게 됩니다. 그 좋은 예로 마이클 크라이튼이 쓴 <폭로>를 드는데, 이 작품은 책에도 본문 중 역주로 나오듯 소설 발표 연도인 1994년에 바로 영화화까지 되어 더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소설은 물론 벽두부터 주인공 샌더스(영화에서는 마이클 더글라스가 연기)가 총에 맞아 크게 다친다거나 투자한 자산 가격이 폭락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밑도끝도없이 궁지로 몰지는 않습니다. 역(逆)시간 진행이라면 모를까, 그렇게 해서는 역효과나 나기 마련이죠. 한 가정의 남편, 애들 아빠라면 며칠에 한 번 정도는 겪을 만한 소동이 묘사될 뿐입니다. 

그래도 독자들은, 이 소동 때문에 정신이 없어진 주인공한테 무슨 더 큰 불운이 닥치지 않을지 걱정하며, 이 불운을 만회하기 위해 남은 하루는 그에게 좋은 일만 생겼으면 하고 바라게 됩니다. 하지만 더 눈치 빠른 독자라면, 마이클 크라이튼이 앞으로 일을 더 배배 꼴 것을 예상하게 됩니다. 저자 벨은 크라이튼의 이런 영리한 처리를 적극 본받으라고 독자들에게 권합니다. 

p154를 보면 장면 전환을 할 때 주인공의 시선이나 행보를 따를 게 아니라, 분위기를 암시하는 다른 인물을 등장시켰다가 (갑자기) 퇴장시키라고 합니다. 그러면 독자들은 저 인물의 퇴장 뒤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궁금해서 빨리 페이지를 넘기게 하는 효과가 생긴다고 하네요. 여기서 포인트는, 평범하게 사건 A 뒤에는 사건 B, 다음에 사건 C 등이 주루룩 이어지게 할 게 아니라, 적어도 한 장면의 마무리에서는 예사롭지 않은 어떤 교란을 집어넣어, 장면 전환은 물론 다른 궁금증까지 유발할 것이며, 그 대표적인 장치가 인물의 퇴장이라는 겁니다. 혹시 다른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그걸 시도해 봐도 좋겠죠. 

형용어구가 결여된 문장은 적어도 문명인의 의사 표현 방식은 아닙니다. 모두가 terse한 헤밍웨이 같은 문장가가 될 수는 없고, 어설프게 흉내내다가는 초등학생의 낙서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래서 적정한 형용 어구는 언제나 제 자리에 배치해야 하는데, p218에서 저자 벨은 첫째 일반 형용사는 캐릭터의 반응이나 평가를 묘사하고, 둘째 특정한 형용사는 "독자들에게 생생한 느낌을 창조하여 전달한다"고 합니다. 책에서 예로 든 구절들을 보면 이 설명이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저는 처음에 이 책 제목을 소설 강화(講話)로 읽었습니다. 마치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작가 이태준의 책 <문장강화>에서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원제 "Power up your fiction"도 그렇고, 책을 곰곰 읽어 보니 그게 아니라 더 독자한테 강렬하게 어필하는 소설 쓰기, 즉 소설 강화(强化)였습니다. 비단 소설 창작뿐 아니라 일상에서 말로 하는 이야기를 더 재미있게 구성할 때에도 이 기법들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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