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문학을 위하여 - 오에 겐자부로 소설론의 결정판! 오에 컬렉션 1
오에 겐자부로 지음, 이민희 옮김, 남휘정 해설 / 21세기문화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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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는 그의 문학 세계 안에 반전과 평화를 담아, 당대 일본인들과 세계의 독자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던 작가입니다. 그의 이런 활동과 성취를 세계도 인정하여 1994년 노벨 문학상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한동안 소식이 뜸했는데 작년(2023) 그의 서거가 뉴스를 타서 많은 독자들이 슬퍼했던 게 불과 얼마 전입니다. 오에 컬렉션이 이렇게 나와 사람들이 그의 문학 세계를 톺아보고 그의 메시지를 다시 새길 기회를 얻은 건 무척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세상은 크고작은 전쟁으로 바람잘 날이 없고 미국이나 중국 같은 큰 나라들이 신냉전을 벌인다고 하지만, 오에가 활동하던 20세기 중후반은 미국과 소련 두 초강대국이 언제라도 핵전쟁을 일으켜 온누리를 지옥으로 만들 수 있다며 사람들이 공포에 떨던 시간이었습니다. 일본은 실제로 연합국과 추축국(나치 독일 중심)이 붙었던 2차 대전 끝에 원폭을 맞아 큰 피해를 입은 유일한 나라이기도 했습니다. 오에가 자신의 문학 세계 중심에 반전 사상을 놓은 건 그의 유려한 필치, 정교한 플롯과 더불어 세계인들에게 그의 문학적 탁월성을 납득시키는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p54를 보면 그는 인류가 본연적으로 안고 있던 전쟁에 대한 공포가, 자연스럽게 20세기 들어 핵전쟁에 대한 저항으로 변용되었다며 그 유구한 뿌리를 강조합니다. 따지고 보면 오늘날 우리가 향유하는, 혹은 체험하거나 표현하는 것 중 그 어떤 것도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는 않은 셈입니다. 여기서 그는 빅토르 시클롭스키를 원용하며, 문학으로 형상화하는 중 익숙한 무엇이 어떻게 낯설게 변하며(이화. 異化. остранение. 아스트라녜니예. p49) 어떻게 전혀 새롭게 다가와 감정의 정화와 각성을 유도하는지 잘 설명합니다. 사람은 익히 접하던 감정 등에는 그리 열렬히 반응하지 않는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또한, 관성에 젖어들면 예컨대 일상의 돌을 더 이상 돌로 알아보지 못합니다. 여기서 오에는 시클롭스키의 이론을 다시 인용하여, 문학의 소명은 그저 무엇을 심드렁하게 알아보는 인지(узнавание. 이즈나바니예)가 아니라, видение(비졔니예), 즉 명시(明視. 오에는 이렇게 번역합니다)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졔니예는 영어의 vision과도 통하며 라틴어 동사 videre가 그 어원입니다. 그저 그러려니 하며 수동적으로 알아채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느끼면서 나의 인격적 가치까지를 투사하는 작용입니다. 핵전쟁에 대해 우리는 태곳적부터 있던 또하나의 전쟁이라며 습관적인 거부 반응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생생하게 다시 솟아나는 거부감으로 반응해야 하며 그 중심에 문학이 작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낯설게하기"란, 습관적으로 미끄러져가는 무심한 우리의 인식과 감성을 확 잡아채며 반대 방향으로 르르게 하는 역류(逆流)를 촉발하는 기법이라고 오에는 강조합니다(p69). 이는 또한 문학의 본원적 한계에도 어느 정도는 기인하는데, 오에는 이를 독자에게 쉬운 말로 설명합니다. "문학은 책 중에 사물을 직접 제시할 수 없다." 물론 앞으로는 3D, 4D book 같은 게 나올 수도 있겠으나 이건 이미 전통적인 의미의 문학 장르는 아닐 것입니다. 오에는 가장 성공적인 낯설게하기 사례로 나쓰메 소세키의 <명암>의 한 대목을 드는데, 이로써 "소세키의 주인공에게 찾아든 심적 이변은 이제 독자들의 것이 되었다(p74)"며 그 미학적 성취를 평가하는 오에의 문장은 차라리 감동적입니다. 

근세 르네 데카르트의 "코기토 에르고 숨" 이래, 생각하는 주체에 대한 의심은 제기되어 본 적 없습니다. 그러나 p156이하에서 오에는 롤랑 바르트를 인용하며 이미 그에 대한 해체가 시도되었고, 이미 작가부터가 한때는 이런 사람, 한때는 저런 사람 등으로 수시로 변한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p157 이하에서 오에가 제시하는 "읽는 중심축" 이론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매우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이어 p186에서 오에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 베주호프 부부의 현란한 대화에 넘어가 당대의 러시아 귀족 사회의 단면을 마치 나의 현실인 양 받아들이게 되는 독자들의 태도를 지적하는데, 이는 문학의 화려한 기만으로 우리가 어떻게 건강하고 유쾌한 각성에 돌입하는지에 대한 오에의 명쾌한 설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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