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언어 - 상 - 논어와 함께 노자, 열자, 장자 읽기 고전 아틀리에 3
최기재 지음 / 인간사랑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보통 제자 백가는 유가와 별개로 보고 따로 떼어서 논합니다. 사실은 제자백가도 그 안에 속한 입장들이 판이하게 다른 철학체계들이기 때문에, 제자백가라는 말 자체가 백가쟁명의 유의어구로 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자 최기종 선생은 제자백가 중 많이 알려진 학파들 중 도가의 시조, 중조 세 분을, 유가의 대표 경전 <논어>에 비추어 재해석하려 듭니다. 어찌보면 수천 년 동안 갈라져 싸웠던 중국의 대표 사조 둘이, 한국의 박학한 지성에 의해 변증법적으로 통합되는 국면을 우리 독자들이 비로소 목격하는 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1장은 도가의 여러 태두들을 개략적으로 살피는데, 수천 년 동안 후학과 논자들에 의해 쌓인 해석과 평가에 기반하기보다, 그들 혹은 그들의 제자들이 정리해 남긴 원전에 근거하여 도가의 정수를 분석합니다. 시간이 없는 분들은 이 제1장만 차분히 읽어 봐도 도가 평설에 대한 핵심이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이며, 동시에 이제 어떻게 현대적으로 유(儒)와 선(仙)이 합일하는지 그 치밀하면서도 조화로운 논증 과정에 압도될 것입니다. 

제2장은 <도덕경>에 대한 강설입니다. 한자 원문을 톺아보며 그 글자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새기는데, 인간사랑에서 전에 펴낸 고 신동준 저 <춘추전국의 제자백가>라든가, <도덕경>, <열자> 등도 원문과 해석, 평론, 시론을 한 권에 모두 담은 편제입니다. 그 책들을 흥미롭게 읽은 독자들이라면, 최기재 선생의 이 탁월한 책도 매우 새로운 관점에서 진지하게 탐독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건 예를 들어 p67 같은 곳을 보면, 고대(혹은 신화로만 엿볼 수 있는 시대)에 메소포타미아, 지중해 세계, 남아시아 등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또 중원에서는 다른 어떤 철학자가 활동하였으며 굵직한 정치적 사건으로는 무엇이 있었는지를 요약하여, 대체 <도덕경>의 집필 추정 시기와 다른 고대의 시간들은 서로 얼마나 떨어졌는지 살필 수 있게 배려한 대목입니다. 옛날이라고 해서 다 똑같이 곰삭은 옛날들이 아니기 때문이죠. 

p104 이하를 보면 도덕경 중 재영백포일(載營魄抱一)하여... 로 시작하는 유명한 구절이, 한문 원문과 함께 깊은 뜻이 상고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너희가 어린이의 마음을 회복해야 천국에 들 수 있다고 했는데, <도덕경>의 이 대목도 "어린아이와 여인처럼 해야 현묘한 덕이다"라는 한 문장으로 저자는 요약합니다. 한국 토착 종교인 동학과 증산도의 경우 말세를 논하면서 학대받은 여인들의 한(恨)이 체제의 석양을 부른다는 식으로 이른바 개벽을 읊었는데, 도덕경에서 구태여 여인의 마음을 들고 나온 것도 참 독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개 유가는 여인네와 소인배는 함께 말을 섞을 상대가 못된다는 식으로 남성 우월 스탠스를 잡는 게 보통이니 이런 점에서도 두 학파가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하겠습니다. 

최기재 선생은 여기서 유와 선의 대조점 하나를 선명하게 짚습니다. 즉 그는 노자가 어린이를 두고 어른이 마침내 도로 돌아가야 할 순수와 무구의 원형으로 권면한 것과 대조적으로, 공자는 자(子)가 입신양명을 통해 그 부(父)와 가문을 빛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보았으며, 또 사람은 생이지지자(生而知之者)가 되기 몹시 힘드므로, 학이지지, 즉 후천적으로 갈고 닦아 궁극의 도에 수렴한다고 보았는데, 이런 것만 보아도 어린이는 빈 그릇에 학식을 채우고 덕성을 빛내어 선학의 경지에 도달하려고 노력해야 할 존재이지 타의 모범이 될 그 무엇은 아니라고 보았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처럼 유가와 도가는 곳곳에서 대조되는 사상의 가지를 쳐 나가는데, 최기재 선생의 박식한 해석을 따라가는 재미가 독자 입장에서는 쏠쏠합니다. 

경전의 원문들만 분석되는 게 아니라, 책 곳곳에는 저자의 상념과 통찰을 담은 아포리즘이 담겼습니다. 예를 들어 p321을 보면 "삶은 길을 걷는 여행이다"라는 서두 다음에, 롱펠로, 몽테뉴, 셰익스피어와 호라티우스의 금언들까지 소개하며 독자의 깊은 성찰을 유도합니다. 동과 서를 넘나드는 학문의 성찬에 독자자가 황홀해지는 대목이며, 이 글은 <열자>의 자생자화(自生自化), 자형자색(自形自色)... 으로 시작하는 구절 끝에 덧붙은 코멘트입니다. 황제(黃帝)가 나라를 다스린 방법은 화서지몽(華胥之夢)이라고 요약되는데(p329) 물 흐르듯 백성과 화합하는 게 정치의 정도이며 어떤 잔기술의 발휘가 오히려 역효과가 날 뿐이라는 게 요지입니다. 지언거언(至言去言), 지위무위(至爲無爲)라는 구절은 <열자>의 유명한 고사, 갈매기를 잡으려는 마음을 가지니 벌써 갈매기들이 알고 해안을 미리 싹 떠나버렸다는 신비로운 이야기에서 유래했는데. 역시 도가의 핵심을 우화적으로 잘 표현한 듯합니다. 

열자와 논어를 오가며 저자가 독자를 일깨우는 포인트 중 하나는 "삶의 균형을 찾자(p370 등)"는 것입니다. 유명한 지음의 고사, 즉 연주자 백아와 평론가 종자가의 우정을 다룬 이야기도 <열자>가 그 출전입니다. 반면 <논어>에는 익자삼우, 손자삼우라는 잘 알려진 구절이 나오는데 마음이 따스해지는 <열자>에 비하면 매우 공리적이고 다분히 타산적인 느낌도 드나 이 역시 바른 인격을 함양하는 노력의 일환이니 배울 바가 많습니다. p376을 보면 <열자> 중 인력과 천명의 고사가 2018년 서울시립대 논술고사에 출제된 점을 들며 출제자의 의도를 분석하는 대목도 있는데, 확실히 이 책은 수험생들이 논술 대비용으로 읽어도 유익할 듯합니다. 

하권은 <장자>가 통으로 다뤄질 예정이라고 합니다. 독자로서 기대가 큽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