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웃고, 배우고, 사랑하고 - 네 자매의 스페인 여행
강인숙 지음 / 열림원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톨레도를 두고 저자는 하늘과 맞닿은 도시라고 평가합니다. 가톨릭 국가 답게 오랜 세월을 견디며 사람들의 영혼을 어루만져 온 멋진 성당들이 곳곳에 있고, 저자는 특히 톨레도 대성당이 소장한 엘 그레코, 고야, 루벤스, 반 다이크(p59) 등의 명화를 차분하게 감상했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역사에 남을 명화는 요즘 같은 세상에 누구나 책에서 인터넷에서 혹은 모사본(사진본), 혹은 진본 일시 대여 전시회 등을 통해 구경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본고장에서 그 작품들의 온전한 기운, 느낌, 소장처와의 조화적 아우라를 느끼며 감상하는 체험이란 또다른 것입니다. p64에서 말하듯 이런 곳에서 현지의 현악 3중주가 들려 주는 음악은 마치 그림들이 직접 부르는 노래를 듣는 느낌 아니었겠습니까. 

마요르카 섬은 당시에나 지금이나 유럽의 부자들이 인생의 말년을 보내는 유명한 휴양지, 또한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으뜸가는 관광지입니다. 여기에 발데모사라는 곳이 있는데, 무려 쇼팽 본인과 조르주 상드가 머물며 항긋한 커피 한 잔을 들이키기도 한, 특별한 자취가 새겨진 마을이라니 눈이 크게 뜨이는 게 당연합니다. 느닷 찾아온 먹구름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도 음악처럼 들리는(p83) 한적한 마을의 카페. 역시 교양 있는 사람이란, 혹은 오랜 문명이란, 짧은 시간에 갑자기 번 돈이나 물질적 여유로 바로 대체나 보충이 안 되는 어떤 품격이란 게 배어나는 겁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한국인들도 대부분 아는, 바르셀로나 지역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며 특정 종교를 떠나 인류사적 의의가 지대한 문화유산(더군다나 현재진행형인)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조각들이라든가 건축 전체의 외관에 대해 아름답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고 솔직히 말하며(p95), 다만 그 장중함이라든가 엄숙한 분위기가 정녕 신의 계시를 받고 이룬 업적 같았다고는 평가합니다. 또, 예컨대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누가 이어서 완성했다는 말은 없지 않냐며, 가우디의 이 건축도 그대로 놔 둬야 하지 않냐는 현지 친구 디자이너 나탈리아의 불만도 함께 소개합니다. 이 대목을 읽고 저는 2019년에 일단 마무리된 백제 미륵사지 석탑 복원 사업이 생각나기도 했네요.  

"¡Qué guay!" 스페인어로 "너무 멋지다!(p152)"라는 뜻입니다. 아무래도 저자께서 당시 이 스페인이라는 나라에 그냥 놀러가셨던 게 아니기 때문에, 지자체라든가 여러 문화 단체와 협업했던 기록이 책 곳곳에 나옵니다. 사물놀이라는 게 우리만의 독특한 개성을 잘 표현해서인지 우리 못지 않게 외국인들이 매우 좋아하는 걸 자주 보며, 바르셀로나에서의 공연도 성황리에 마쳐지는 과정이 책에 잘 기록됩니다. 저자님도 학교에서 "파모사 미나(p155)"가 됩니다.  

스페인이란 나라는 원체부터 기원과 역사가 판이한 문화권들이 공존 경쟁하다 15세기 들어 아라곤과 카스티야 중심으로 극적 통합을 이룬 터라 이후에도 내부 갈등이 잦았습니다. 위에 나온 카탈루냐도 그렇고 p181 이하에 나오는 바스크 족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20세기 후반까지도 스페인의 저 북부 지역에서는 문명 국가의 사정이라고는 상상이 어려울 만큼 무력 충돌과 사고가 잦았는데, 저자는 현지에서 당시 90세의 마이떼 란딘 여사를 인터뷰하며 지난시대 압정(壓政)이 남긴 깊은 상처를 돌아봅니다(아마 지금은 돌아가셨겠죠?). 이는 다큐 제작의 일환이기도 했는데 p197에서 저자는 당시 동료 학생들에게 한국의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해 유비적으로 이야기해 주었다고 적습니다. 

지중해 스페인령 발레아레스 제도에 거의 일자로 이비자(이비사), (위에 언급된) 마요르카, 메노르카가 나란히 놓입니다. 메노르카는 카랄루냐와도 가깝고, 그래서 세상의 끝 마을(p250, p253)이라는 "라 피 델 몬"은 그 이름부터가 프랑스어를 슬쩍 닮은 카탈루냐어입니다. 생긴 것만 딱 봐도 스페인어가 아니죠. 경치 자체가 세상에 둘도 없는 곳인데, 알리시아, 조르디, 하비 등의 친구들과 "우리만의 해변"을 갖고 지낸 그 즐거운 추억을 새긴 이야기들을 읽으니 너무도 부러운 느낌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