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빛 - 창비소설집
김향숙 지음 / 창비 / 198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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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970~80년대 소설은 독자의 아주 원초적인 감정선을 건드리는 데 능숙한 것 같습니다. 18주차에 강유일 작가의 <빈자의 나무>를 리뷰했는데 그 역시 서로가 서로를 너무 아낀 나머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죽을 듯한 회한에 빠지는 사연들이 복잡하게 얽혀드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작품집에는 모두 13편의 단편들이 수록되었습니다. 권말에는 염무웅 교수의 작가론이 실렸는데 교수님 특유의 분단(分斷)담론이 농도 짙게 반영되어 독자의 시야를 넓혀 줍니다. 솔직히 저는 책을 읽으면서 그런 방향으로 독해할 생각은 전혀 갖지 못했는데 다 읽고 나서 그런거였던가 싶기도 했습니다. 더 생각을 정리해 봐야 할 듯하네요.

<문 밖에서>는 암환자의 이야기입니다. 요즘도 암치료는 매우 힘든 과정이며 하물며 저무렵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아직 젊은 아내와 두 아이를 남기고 이제 생을 정리해야 할 처지라면 차라리 몸이 아픈 고충은 둘째일 것 같습니다. 물론 소설 속에서 주인공의 물리적 고통이란 그 묘사가 너무도 절절해서 독자의 신체에까지 그 증세가 전이되는 양 섬뜩한 느낌입니다.

주인공이나 그 아내 되는 분이나 배울 만큼 배운 분들이라서인지 자신보다는 상대방의 감정을 우선 배려하느라 내내 노심초사입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아파하는 모습을 가족들에게 노출하지 않기 위해 먼 곳의 별장에 은거하는데, 이 과정에서 한 여인을 알게 됩니다. 독자는 이 와중에 혼외관계로 슬쩍 기우는 듯한 주인공의 태도를 못마땅하게 볼 수도 있지만, 그건 피상적인 관찰입니다. 아내분이 어떤 기색을 보이는지를 보면 이 기이한 전개에 어떤 상호 배려가 깔렸는지 짐작이 가능하죠. 

아빠가 이제 얼마나 먼 길을 떠나야 하는지 짐작도 못하고 천진난만하게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독자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합니다. 가족을 위해서라도,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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