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세술개론 - 우리가 꼭 읽어야 할 최인호의 문학상 수상작
최인호 지음 / 푸르메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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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 작가는 소개가 필요없을 만큼 유명한, 또 엄청난 다작의 베스트셀러 작가였으며 9년 전에 갑작스러운 부음이 들려 국민들을 안타깝게 했더랬습니다. 


이 책은 제목이 저리 붙었으나 열어 보면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되었으며 그 중 하나가 "처세술개론"입니다. 일곱 편 모두 문학상 수상작이라고 하며 표제작인 "처세술개론"은 현대문학상 수상작입니다. 최인호씨의 전성기는 1970년대라고 봐야 하는데 "처세술개론"이 현대문학상을 받은 건 1972년이며 이 책에 실린 다른 작품들 중 하나인 "깊고 푸른 밤"이 이상문학상을 받은 건 그로부터 10년 뒤인 1982년입니다. 후자는 장미희, 안성기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며 메가폰은 배창호 감독이 잡았습니다. 


제목은 처세술 개론이라 붙었지만 어른들의 처세술 같은 걸 다룬 작품이 아니며 엉뚱하게도 꼬마들이 등장합니다. 젊어서 하와이 이민(말이 좋아 이민이지 노예 노동이나 마찬가지)을 갔던 할머니가 현지에서 큰 성공을 거두어 금의환향을 하는데 두 여성 조카는 서울의 빈민촌에서 아주 어렵게들 삽니다. 그런 이모가 있는 줄도 몰랐으나 교회를 열심히 다닌 덕에 조카 둘과 연락이 되었고(목사의 진지한 노력이 큰 기여를 했습니다) 이 이모님이 아주 독실한 신도이기도 했는지라 일이 더 수월하게 풀렸습니다. 두 조카는 열성 신도라고는 할 수 없는 중년 여성들이지만 형식적으로나마 교회를 다닌 덕에 잘하면 횡재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할머니, 즉 두 중년 여성의 이모 되는 분은 일단 서울에 혈육들이 산다고 하니 보고 싶기도 하며, 다음 목적은 어린 꼬마들(조카의 자녀들) 중 혹시 마음에 드는 애가 있으면 하와이로 데려가 재롱도 보고 좋은 교육도 시켜주는 것입니다. 조카 중 첫째는 별반 생활력도 없는 남편을 맞아 생활도 어려운 데다 애가 여섯이나 되는 통에, 이모라는 분이 아이 하나라도 데려가 입을 덜면 매우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둘째 조카도 욕심이 많고 역시 생활이 넉넉지 못하기에 자기 딸을 저 이모가 데려가서 호강을 시키면 좋겠다고 여깁니다. 첫째 조카는 심성이 착하고 눈치가 다소 둔하지만 둘째 조카는 언니와는 정반대 스타일이며 엄마 피를 받아서인지 그 어린 딸도 여우짓이 보통이 아닙니다.


첫째 조카의 남편은 사람이야 진국이지만 매너가 거칠고 직설적이라서 첫대면부터 이모의 오해를 삽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리어 왕"도 입에 발린 소리를 즐겨하는 못된 첫째, 둘째 딸의 농간에 넘어가 진실된 셋째 딸을 멀리하는 파멸적 실수를 저질렀듯이, 이 이모분도 조카사위의 착한 내면을 끝내 알아보지 못합니다. 이할머니는 첫째 조카의 막내아들이 여자처럼 예쁘게 생겼다고 좋아하는데 생긴 것만 그런 게 아니라 마음도 그 아버지를 닮아 정직하고 착합니다(얼굴은 아빠를 안 닮았습니다). 이대로 놔 두면 이 남자애를 하와이에 데려가겠다 싶어 둘째 조카의 딸은 엄마의 지령을 받았는지 모략을 꾸며 남자애를 폭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데 성공합니다. "네 아빠의 피가 어디 안 가는구나!" 그러면서도 할머니는 끝까지 이 남자애를 데리고 가고 싶어하는 눈치입니다. 어쩌면 이 모든 난리가, 저 꼬마 여자애가 꾸민 수작임을 눈치채고서도 저러는지 모릅니다. 


첫째 조카의 남편은 그 억울한 누명을 자신과 자신의 아들이 뒤집어썼건만 변명도 않고 오히려 잘됐다 싶어 할머니와 헤어집니다. 이 어린 아들을, 아무리 좋은 환경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나 어찌 그 먼 곳으로 보내겠습니까. 꼬마도 마찬가지로 아빠 엄마와 헤어지기 싫어 저 할머니가 뭐라고 하든 신경 안 쓰고 단칸방 집으로 돌아옵니다. 마음으로는 큰 횡재나 한 듯합니다. 능란한 처세로 팔자를 고친 건 둘째 조카의 어린 딸이지만 우리 독자들은 처세의 교훈을 그 아이한테서, 또 그 아이 엄마한테서 배울 생각은 물론 전혀 들지 않습니다. 제목은 그런 뜻에서 역설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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