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와 중국의 역사적 관계
김한규 지음 / 혜안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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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은 본디 강(羌)족과 친연관계가 있었으며,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삼국연의 등의 픽션에도 자주 등장하듯 그 드센 기질이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신라는 신생 당 제국의 무력을 끌여들여 당장의 국난을 모면했으나, 곧이어 반도 전체를 병탄하려는 제국의 음모에 직면해야 했으며 사실 진망도 불투명했습니다. 그러던 게, 토번이 서부에서 큰 세력을 떨치자 당의 입장에선 당장 중원이 위태로웠고, 이후 반도의 경영에 큰 여력을 기울일 수 없을 만큼 상황이 나빠졌습니다. 아마 신라가 반도 남쪽의 불완전한 통일이나마 완수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국제정세의 유리한 변화에 일정 부분 덕을 본 바 컸을 겁니다.


티벳 고원은 고대는 물론 현대의 관점에서도 사람의 거주가 마냥 순탄하지는 않을 만큼 고지대입니다. 이런 곳에 일찍부터 터잡아 자측의 방어는 편리하게 갖추고 공격은 수시로 그 드센 기질을 바탕으로 하여 밀고 내려오면 참 상대방 입장에서는 답이 없었을 만합니다. 이런 곳에 터전을 잡을 정도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보통 강인한 기질이 아니고서는 아예 문명의 시작이 불가능했을 만합니다. 


이 책은 독특하게도 현대로부터 고대로 거슬러올라가는 식으로 서술됩니다. 한때 중원인 전체에 생존의 위협을 끼친 서슬 퍼런 전투 종족의 위세에 대면 참 초라한 형국입니다. 원조, 청조에는 독특하게도 종교를 매개로 별다른 무력 없이도 중요한 위상을 점했습니다. 마치 고대, 중세의 로마 교황청과도 비길 만한데, 중국인들이야 종교 문제로부터 자유롭지만 유목 민족들은 이 미신적인 라마교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했기에 묘한 레버리지를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 조선 시대 사대주의 외교 기조가 지속될 때 문자를 잘 쓰는 사대부들이 국가 안보를 지탱하는 데 특별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사실과 비슷합니다. 현대로 접어들고 티벳 불교가 전혀 영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이제 현실이 이렇습니다. 뭐 서유럽에선 아직 가톨릭의 영향이 시퍼렇게 살아 있을 때에도 게르만의 황제(자칭 로마인의 왕)가 (자의든 뭐든 간에) 로마 대약탈을 벌였지만 말입니다. 


반도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렸을 때, (그들이 의식했든 안 했든 간에) 우리가 어느 정도 신세를 입은 바 있습니다. 이제 그들이 민족 존망의 국면을 맞았습니다만, 우리는 글쎄 얼마나 합당한 관심을 베푸는 중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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