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평화 - 삼국지 이전의 삼국지, 민간전래본
김영문 옮김 / 교유서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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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문 선생은 교유서가(문학동네 임프린트)에서 여러 고전을 번역하여 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분입니다. 


<삼국지평화>는 저자를 알 수 없고 이 책에도 작가 미상으로 나옵니다. 원래 이처럼 민간에서 후한 말기를 대중적으로 쉬운 버전으로 풀어서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 전하던 걸 나관중, 모종강 등이 문학으로 정착시킨 것입니다. 그 내용 전개는 오늘날 우리가 아는 <삼국연의>와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마치 대체역사를 보는 듯 즐거운 면이 있습니다. 물론 시기적으로는 이것이 앞서기 때문에 오히려 삼국연의를 대체물로 봐야 맞겠습니다만 말이죠.


KBS에서 제작 방영한 <용의 눈물>을 보면 군졸 출신으로 조영무가 태종의 처남 민무구 형제를 숙청하는 사건을 겪으며 충격을 받아 이에 "읍참마속"이라는 고사를 적용시키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삼국연의>는 영정조 연간에나 조선에 전해졌으므로 조선 건국 초의 공신인 조영무가 실제 저 말을 썼을지는 의문이 듭니다. 


일단 마속이 가정 전투에서 패하고 촉 군사 수뇌부에 의해 처형당한 사실은 정사에도 나오는 사항입니다. 또 지금 이 <평화> 역시 명초에 충분히 잘 알려졌으므로 설령 문학 버전으로 후한말 역사를 접했다 쳐도 어느 정도는 조영무 입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마속이 과연 참형의 형식으로 죽었는가? 일단 이 대목 관련해서는 평화에도 연의와 큰 차이 없이 군사(軍師)인 제갈량이 마속을 참했다고 명확히 나옵니다. 그러니 마속의 죽음에 관해 "참"의 원형은 아마도 이 평화일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살아생전 마속을 지극히 아꼈던 제갈량이,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고 공(公)을 높이기 위해 사(私)를 낮춘 예로 극적 효과까지 주기에 충분한 화소인 셈입니다. 


평화는 상중하 세 파트로 나뉘며, 아무래도 나관중 본 등과는 분량 면에서 큰 차이가 납니다. 연의 탐독자들이 한번 읽어 볼 만한 재미가 충분합니다. 사실 상당수 독자는 다른 역자의 책으로, 혹은 원문으로, 이미 읽어 본 내용이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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