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속 성 심리 - 에덴에서 예수 시대까지
조누가 지음 / 샘솟는기쁨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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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에서 읽은 말인데 몇몇 기독교 신학생들이 신학교에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며 성경 안에 너무 성적인 이야기들이 많아서 "성경(聖經)이 아니라 성(性)경인가?" 같은 농담을 주고받았다고 합니다. 물론 조심스럽게 꺼내도 꺼내야 할 농담이며 경전에 대한 쉬운 폄훼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만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고 해도 성경 속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당혹스러운 서술에 심경이 복잡해지는 것도 사실이겠습니다. 이 책은 그런 분들이 읽으면 아주 좋을 책입니다. 저자는 <라하트 하헤렙> 등 1980년대에 많은 베스트셀러를 펴낸 소설가 趙星基 선생입니다.

성경 특히 구약에는 수백 년 단위의 수명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기록되어 독자의 놀라움을 부릅니다. 물론 연 단위의 길이가 현재와는 다를 수도 있고 문면대로의 해석을 삼갈 필요도 있겠지만 여튼 장수의 정도에 대해 경이감이 일단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죠. 책에서는 p32에서 "싸네"가 현재로 환산하면 석 달이나 한 달의 기간일 수도 있다고 하니 예컨대 팔백 사십 살이면 70 혹은 210세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저자는 차라리 "현대의 환경 오염이 성생활 수명 단축을 불렀고 그런 까닭에 구약의 기록이 독자들의 부러움을 산다"며 오히려 현대인의 자성과 경각심을 촉구하는 쪽으로 해석합니다. 즉, 술담배를 줄이고 자연식을 하며 긍정적인 마음을 품고 살면 고대인처럼 자연이 베푼 기쁨을 더 오래 누릴 수 있다고 하시니 이 또한 귀 기울여 들을 말입니다.

"성에 대해 용감히 할 말을 하는 사람의 심리에도 성적 수치심은 깔려 있다(p26)" 이는 미셸 푸코의 저작 중 두 구절을 두고 저자가 내린 평가입니다. 저자는 과거 문제적 회고록으로 화제를 부른 여배우 서갑숙과 고 마광수 교수에 대해서도 비슷한 평가를 합니다. 고 마광수 교수는 趙星基 선생과 공교롭게도 나이가 같습니다. 고과연 선악과를 맛 보고 수치심을 처음 알게 되었다는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는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저자는 "창조주와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려는 인간의 노력"에 더 중점을 둡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이고 추방당한 후 에덴의 동편 놋 땅에 거주하며 아내와 동침했다고 하는데 최초의 인간에게서 1대 혈통만 내려온 가인에게 어떻게 동기간이 아닌 아내가 있을 수 있을까요? 근친혼의 의심이 자연히 들 수밖에 없고 이 부분 역시 독자의 마음을 어지럽게 합니다. 아담과 이브의 행위가 신에 대한 배덕이었으니 그 죄과로 우리는 모두 근친혼이라는 악행으로부터 태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해석은 우리의 마음을 더욱 어둡게 만들지만 성경을 하나의 비유로 보고 그 핵심의 메시지만 취하자는 체안도 가능합니다.

왜 인류는 구태여 성기를 가리는 쪽으로 의복 풍습을 만들었을까요? 프랑스는 근세에 이르기까지도 귀족, 부르주아지 여성들이 가슴을 상당히 노출하는 패션이 있었고 여러 문명에서 신체의 다른 부분은 비교적 자유롭게 드러내는데도 말입니다. 사회학자 엘리아스는 수치심이 아니라 반대로 신성의 상징이 성기에 깃든다고 여겼기에 원시 인류가 이를 가렸다고 주장했으나 이에 반대하는 주장이 더 많습니다. 이는 구약에 나오는, 만취하여 성기를 노출하고 잠들었던 노아가 이를 가려 주지 않은 두 아들 함과 야벳을 저주했다는 이야기의 해석에서 저자가 끌어낸 논의와 관계 있습니다.

야곱의 딸 디나는 세겜에게 성폭행을 당하며 야곱은 이를 복수하리라 마음 먹습니다. 세겜의 부친은 야곱의 딸을 좋게 보고 아예 통혼하여 이 고장에 함께 살자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딸이 성폭행당한 굴욕을 참을 수 없어 세겜 족의 남자들을 속인 후 포경 수술의 고통에 신음하는 그들을 모두 죽여 버립니다. 이 이야기는 어렸을 때 대부분 포경 수술을 하는 한국의 남자들에게 당혹감을 안겨 주는 게 틀림 없죠. 성범죄의 응보를 당연히 받았을 뿐이라고 넘기기에도 뭔가 개운치 않습니다.

p77에는 20세기 초반 문제적 작가인 아나이스 닌의 충격적인 주장이 인용되기도 합니다(닌은 헨리 밀러 <북회귀선>에서의 바로 그 여성입니다). 저자는 문제의 저 성범죄가 당대의 종족 보존 관습이나 청혼 등 성적인 면을 떠나 한 인격에 대한 파괴였으며 이런 성격 규정이 오히려 시대를 앞선 면마저 있다고 합니다. 우리도 이 정도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듯하네요.

오나니즘이라는 말은 구약에서 오난의 행위가 정죄된 데서 유래했는데 사실 그 오난의 행위는 오늘날 우리가 이 단어를 통해 지칭하는 그 행위와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또 오난이 죄를 받은 이유는 종족 번식의 의무(당시 기준)를 게을리한 데 있을 뿐 중근세의 터부와도 전혀 무관하죠. 아마도 이런 이름이 한때 붙었던 건(요즘은 잘 안 쓰니까) 그 특정 행위 자체를 단죄하기 위한 의도가 컸겠습니다. 오히려 오난은 근친혼을 회피했으니 현대의 윤리로는 칭찬 받아 마땅합니다. 저자는 상대의 몸을 번식이 아닌 쾌락의 도구로 이용한 데에 오난의 죄가 있고 이 때문에 그 행위에 대해 오나니즘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것이라 주장합니다.

부나비는 죽을 줄 알면서도 불 속에 뛰어듭니다. 엠페도클레스도 사원소설을 입증하기 위해 자진해서 분화구로 뛰어들었다고 합니다(p95). 이로부터 가스통 바슐라르는 "엠페도클레스 컴플렉스"라는 개념을 만들었는데 여성의 유혹 앞에 의연했던 요셉의 미덕을 강조하기 위해 저자는 이 논의를 끌어냅니다. 이 대목은 현대의 젊은 남성들이 읽으면 좋을 듯합니다. 이와 반대로 처신한 사람은 무수히 많지만 대표적인 게 p111 이하에 나오는 삼손입니다.

다윗은 군주였으나 부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탐해 위험한 전장으로보내 그를 죽이고 아내를 취합니다. 예언자 나단이 우화를 통해 다윗이 스스로 그 잘못을 깨닫게 하는데 여기서 저자는 가상의 부자에 대해 다윗이 그토록 화를 낸 건 일종의 투사(projection)이라고 주장합니다.

암논은 배다른 여동생을 범한 파렴치범인데 정작 지탄받아야 할 건 근친상간 자체보다 일을 끝내고 나서 다말에 대한 혐오감이 일어 그녀를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못된 짓은 못된 짓이고 그 심리가 참 묘합니다. 한때는 그렇게도 원했으면서 말입니다. 당시 풍습으로 이런 경우는 성경 본문에도 다말의 말 중에 나오지만 법제적으로 수습될 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여자를 버렸다는 게 암논의 진짜 죄악상입니다. 다말의 친오빠인 압살롬은 이 일로 절치부심하며 몇 년 후에 복수하게 되는데 제 생각에는 암놈의 행동은 압살롬과의 관계까지 함께 고려해야 이해될 듯합니다. 압살롬은 이때 크게 정신적 상처를 입은 바 있었는지 이후 부친과 그토록 갈등하게 된 한 이유가 되었겠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열왕기 상에 연로한 다윗을 위해 "인간 난로"가 된 여인 아비삭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저자는 전순옥의 저서(개발독재 시대 여공들의 참상을 다룸), 시인 고정희가 읊은 "분단의 아픔"까지 이 맥락과 연결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는 판단력이 좀 부족한 사람이었는지 아도니야가 저 아비삭을 요구하자 대신 아들에게 청을 넣습니다. 솔로몬은 영민하여 그 의도를 대번에 눈치채고 격분하여 "어머니, 아예 그를 위해 왕권도 청하지 그러십니까?"라고 쏘아붙이고는 아도니야를 죽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아가>에서 솔로몬이 연모한 여성이 바로 이 아비삭이라는 가정 하에 (정적일 뿐 아니라) 일종의 연적으로까지 아도니야를 규정했다고 추측합니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이지적인 솔로몬이 유독 이 대목에서 격노한 걸 두고 하는 말입니다.

"상징은 비유처럼 옆(para)에 던지는 게 아니라 함께(sym) 던지는(bol) 것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비유보다 깊은 편이다(p172)." 성경에 등장하는 성적 표현은 문자 그대로 새기기보다 비유, 상징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더 바람직할 수도 있겠습니다. 신앙과 관련하여 여러 성적인 면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이들은 이런 책을 읽어 보거나 나이 지긋한 목사님을 찾아 진지한 상담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겠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머리 위에 새가 날아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으나 그 새가 머리 위에 둥지를 짓지 않게는 할 수 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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