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휘둘리는 당신을 위한 심리수업 - 성숙한 어른으로 살기 위해 다져야 할 마음의 기본기
김세정 지음 / 메이트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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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살면서 자기 감정만 제대로 다스릴 수 있어도 큰 실수를 저지르는 일은 일단 피해갈 수 있을 듯합니다. 감정이 자유자재로 조절 가능하다면 그 사람은 아마 사회에서 큰 성공도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평범한 우리들은 어떤 큰 성공까지를 바란다기보다, 다른 사람 앞에서 민망한 모습 보이지 않거나, 혹은 내 자신이 너무 큰 상처를 받지 않고 평정심만 유지해도 대만족이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사회운동가 파커 J 파머는 그의 책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를 통해 "감각이 살아 있는 발을 잘 어루만져 준 빌이라는 친구 덕분에 절망의 끝에서 벗어났다"고 합니다(p27). 그 책을 아직 읽지 않아 잘 모르긴 해도, 저자께서 아주 깊이 공감하셨기에 특별히 인용했을 듯합니다. 상황을 잘 모르긴 해도, 나보다 나의 아픈 구석에 더 잘 공감해 주는 친구가 (다소 엉뚱하게) 내 발을 만져 준다면 너무 고마울 듯도 합니다. 그래서 친구는 "또다른 나"라고 하는 거겠죠.

그런데 저자는 여기서 "빌 같은 친구를 둘 것"을 권하는 게 아닙니다. 물론 그런 벗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우리는 적당히 친하고 적당히 먼 친구는 여럿 있어도 저 정도로 나를 공감해 주는 이가 곁에 있기란 쉽지 않습니다. 당장 나부터가, 어떤 친구에게 그런 소중한 벗이 되고 있기 쉽지 않은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자는 "감각을 깨우는 경험을 반복하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산책, 목공예, 뜨개질 같은 것입니다. 이게 그저 취미생활을 뜻하는 게 아니라(취미와 겹칠 가능성이 높지만), 이것만 하면 나의 좋은 감정, 기분, 살 맛, 혹은 예전의 좋은 추억(구 이성친구와의 교감이라든가)이 생각나고 도로 살아나는 행동이 반드시 누구한테건 있을 테니 말입니다.

감정의 침체는 곧 무기력을 가져옵니다. 이 책 p49에 나오는 서연이는 공부, 엄마의 맥빠지게 하는 잔소리, 오빠와의 비교 때문에 무기력증에 걸렸습니다. 원래는 서연이도 공부를 곧잘했습니다만, 엄마의 욕심이 한도끝도 없고 잠시 폰 좀 들여다봤을 뿐인데 "그딴 식으로 할 거 같으면 다 집어치워라"는 극단적인 질책을 듣고 의욕이 다 사라졌습니다.

앞에서 저자는 "감각을 깨우는 경험을 반복"하라는 충고를 했는데 서연이에게는 반려견 보리의 털을 깎아 주게 했다네요. 저도 예전에 저희 모친이 개 털갈이를 도와 주셨는데 애가 아주 시원해하고 좋아하던 게 기억 납니다. 서연이도 아마 예전에 한 번 깎아 주니 보리가 엄청 좋아하던 기억 때문에 이걸 모멘텀으로 삼았을 겁니다. 엄마는 나한테 짜증을 내지만 나는 (거꾸로) 애한테 잘해준다, 뭐 이런 식으로 부정적 감정과 기억을 반대로 승화시키는 것 아닐지요. 아주 멋진, 극복의 사례인 듯하며, 사실 이런 어린 학생의 경우에는 본인 노력도 노력이지만 엄마가 좀 더 따님에 성숙한 태도를 가져야 할 듯합니다. "딸은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라는 책 제목을 전에 본 적 있는데(읽지는 못했고요), 어떤 엄마의 경우 딸한테 너무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물론 반대로 딸이 엄마한테 너무 마구 대하는 경우도 있죠(아주 많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반성하시길).

서로 한창 깨가 쏟아질 30대 부부 역시 서로에게 상처를 주다 돌이킬 수 없을 지경 직전까지 가기도 합니다. p74에는 선영- 준범 씨 부부 얘기가 나오는데 이분들은 마음뿐 아니라 물리적 상처까지 진행된 경우네요. 부부는 상대 배우자에게 분노조절장애가 있다고 말합니다. 사실 한국인치고 경증이라도 이 "분노조절장애"가 있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텐데 너무 자주, 또 비전문적으로, 이 핑계가 동원되는 것 같습니다. 뭐 말만 나왔다 하면 분노조절장애입니다. 상대가 비정상이라고 지탄하는 건지, 아니면 장애가 있으니 이해할 수도 있다고 한 걸음 물러서는 건지 헷갈립니다.

p76에 인용된 마셜 로젠버그의 말이 놀랍습니다. "(모든 분노에는) 목적이 있다." 즉 누가 분노를 표출하는 건 그만한 이유, 목적, 동기가 다 있다는 겁니다. 당사자 자신이 의식을 하든 못 하든 간에 말입니다. 이 사례에서 남편은 물론 큰 문제가 있는 사람이지만, 저자는 부인 역시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무슨 소리냐, 감정의 문제가 있다면 감정을 잘 달래어(타인이든 자신이든 마찬가지) 해결을 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성급히" 이성(理性)을 불러서 감정을 잠재우려 하는 시도 역시 바람직하지 않고, 이 역시 "감정 발달이 저해된 결과"라는 겁니다. 사실 이성으로 빨리 복귀하는 것도 내 솔직한 감정을 무시하고 무작정 덮는 식은, 이미 가짜 이성인 거죠. 요즘 유행어로 말하면 쿨병 같은 것?

이 부부의 사연은 책에서 비교적 길게 다뤄집니다. 준범씨는 아내에게 존중 받는 이슈에 대해 좀 민감한데 이는 어려서 그의 가정 환경에 일정 부분 이유가 있었습니다. 선영씨 역시 그리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었던 아버지에 대한 불만 때문에 남편에게 이를 투사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감정 통제와 치유는 그 사람의 어린 시절(의 특정 체험)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p96에는 인생 곡선, 혹은 삶 그래프가 나오는데 내가 몇 살 때 무슨 일이 있었고... 이런 걸 그래프 상에 표시한 것입니다. 가로축은 누구나 이해가 되고, 세로축이 문제인데 이것은 감정의 긍정, 부정을 수치로 나타낸 거네요. 이분은 초등학교 이전까지 무척 행복한 기간이었다가 학교에 입학하며 서서히 긍정 지수가 낮아지고, 처음으로 마이너스 구간에 들어간 게 초5때 부모의 이혼이었으며, 고3때 다시 마이너스, 그리고 입학 결과 발표까지 마이너스를 유지합니다. 보통 기다리는 시간이 오히려 놀러 다닌다고 즐거운 사람도 꽤 많은 걸 고려하면 이분은 그 시간이 참 괴로웠나 봅니다(수능 직후 기간이 플러스이긴 합니다).

"물리적 공간은 심리적 공간을 반영한다(p103)." 이 말은 윌라드 프릭의 <자기에로의 여행>에 나온다고 합니다. 저자는 내게 중요했던 집의 평면도를 생각해 내서 그려 보자고 제안합니다. 그 다음에, p107에 나오는 자기치유 질문에 답해 보라고 합니다. 이 책에는 p107말고도 여러 세트의 자기치유 질문이 나오는데 독자는 이 책에 실린 여러 사례 중 자신과 가장 비슷한 케이스 끝에 나오는 질문 세트를 골라 시도해 보면 될 듯합니다.

p117에 나오는 딸 예은씨, 또 바로 뒤에 나오는 어떤 아버지의 경우 자신(의 부모)가 살았던 좋지 않은 경험을 결코 대물림해 줘서는 안 된다는 강박 때문에 오히려 자녀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친 사례입니다. 앞의 사례는 딸, 뒤의 사례는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가 주체인 건 아마 실제 내담자가 그들이라서인 것 같습니다. 이들의 경우는 책임감이 너무 지나친 게 문제였던 듯합니다.

p157에는 "자기 관찰을 위한 다섯 가지 질문"이 나오는데 이는 필립파 페리의 <인생학교 정신>에서 재인용했다고 합니다. 이 다섯 가지 질문에 답하는 걸 1회로 그치지 말고, 계속해서 습관을 들이라고 합니다. 이게 습관이 되면, "자기 관찰"이 (비로소) 시작된 거라는데, 우리가 이처럼 자신을 올바로 관찰하는 일조차 어렵습니다. 우리가 과감히 우리의 민낯을 응시 못하고서 어떻게 상처가 저절로 운 좋게 낫길 바라겠습니까(물론 그런 경우도 드물게나마 있긴 할 겁니다).

경애씨는 65세인데 아들을 잃고 현재 남편과 며느리, 손주 등과 함께 삽니다. 이분이 분노하게 된 건 아들의 묘지 이장 문제였는데, 가문에서 시아주버니가 남편과 이미 합의했다고 하며 아들 묘를 옮기고 땅을 팔라고 한 일 때문이었습니다. 이 상담은 며느리가 예약한 것인데, 알고 보니 이런 표면적인 문제 말고도 며느라와의 관계, 남편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었고 그를 보상하려는 심리가 생전, 그리고 사후의 아들에 더 집착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제 생각엔 그러나 여전히 그 문중 어르신의 태도와 행동에도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아이콘택트인가 하는 예능이 인기였는데, 저자는 반드시 한번 "나 자신과 아이컨택"을 해보자고 합니다(p190). 병든 자기애가 아니라 참된 자기애를 갖기 위해 나와 눈을 마주치자고 합니다. 루이스 L 헤이의 <미러>에 이런 사례가 나온다고 하네요. 아무튼 내 마음을 내가 속일 수는 없습니다. 뭔가가 당당하거나 반대로 창피할 때 이걸 차라리 다른 사람에게 속이는 건 쉽지만, 세상 천지에 나만큼은 지금 내가 이걸 속이는 건지 아닌지 다 압니다. 내 안의 나를 자꾸 병들게 하지 말고, 나 자신에의 관찰을 통해 정직하게 내 감정을 만나 얘를 치유해 줘야 하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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