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만에 완성하는 유화의 기법
오오타니 나오야 지음, 카도마루 츠부라 엮음, 김재훈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중등교육과정 이하 학교에서 수채화 과정은 많이들 연습하지만 캔버스에 그리는 유화는 16세나 넘어야 시도해 본 듯합니다(요즘은 모르겠습니다만). 시간도 오래걸리고 주변도 번잡해지는 그림 그리기를 달갑잖아 하는 이들도 있었겠으나, 생각 혹은 주변의 풍광을 아름답게(최대한) 표현하는 시간은 확실히 아름다운 추억일 뿐 아니라 정서 함양에도 도움이 됩니다. 아름다움을 내 손 끝에서 재현하는 연습을 여러 번 한 영혼이 어떤 나쁜 짓을 저지르기란 쉽지 않기도 하겠고 말입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악기 하나쯤은 자유로 다뤘으면 하는 마음이 있듯, 그림 그리기 역시, 그 중에서도 특히 유화 그리기는 모두가 마음 한 구석에 갖는 소망이지 싶습니다.


수채화에서는 제 생각에 음영색 3색(검, 회, 흰)이 그리 크게는 중요치 않았는데, 유화에서는 그리자유 기법이라고 해서 따로 독립된 영역인 듯합니다. 책에서는 "데셍처럼 빛과 음영의 명암으로 그리지만, 색감이 전혀 없는 건 아니"라고 합니다(p43). 다음에는 이런 설명이 있는데, "사물의 색을 회색계조로 변화해야 하므로(회색계조란 앞에서 말한 검, 회, 흰입니다), 모티브 각 부분의 색은 어느 정도 밝으며 어떤 색이 있는지 확실하게 관찰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책에서 가르치는 대로 따라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계조 같은 생소한 말에도 페이지 아래에 일일이 각주가 달려 있습니다.


그리자유로 그릴 때는 모든 색이 회색계조로 변하므로, 책에도 나오듯이 빨간색은 제법 검게 변합니다. 이처럼 명도가 각기 다른 색을만들 때 "페인팅 나이프"를 쓰는데 아래 사진과 같은 것을 가리킵니다. 아래 사진을 보면 팔레트가 사용 전, 사용 후에 어떻게 바뀌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 그저 사진으로 찍어 놓은 파프리카(노랑, 빨강)들이, 유화로 멋지게 재창조 과정을 거쳤을 때 어떻게 바뀌는지 보십시오. 분명 같은 흑백인데도 어떤 채도의 차이(?)가 느껴지는 것만 같습니다. 


이 책에서 특히 제가 눈여겨 본 게 그리자유 파트였습니다. 막연하게, 아 빨간색은 좀 진하게 나오겠구나, 노랑이니까 연하겠지, 이런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책에서는 특히, 공통되는 색부터 그리면 농담의 차이를 파악하기 쉽다(p46)고 합니다. 또, "회색조로 그릴 때는 배경의 공간과 사물의 농도가 같아져버리는 일이 흔하다(p50)"고도 합니다. 


천연의 색도 그리자유로만 표현하기 어려운데, 대상이 금속이면 어떨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책에서 그리자유+고유색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아마 메탈은 그리자유가 그리 쉽지 않나 보다 하고 짐작합니다만 회색계조로만 계속 나가고 싶은 학습자가 그리 많지는 않겠고, 저 역시 다른 기법으로 발전도 하고 싶었으므로 그냥 책에서 시키는 대로 따라가봤습니다. 


아래 사진에서 보다시피...  특별한 취향이나 관점을 가진 분이 아닌 이상, 와 한 가지 계조로만 하다가 고유색이 들어가니 뭔가 확 다르다 싶어서 신이 난다 하는 게 보통의 반응일 겁니다. 


기법을 연습할 때에는, 이 책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일단 그리자유, 그 다음에 고유색 중에서도 제한된 몇 가지만으로, 이런 식으로 색을 점점 늘려 가며 연습해 나가야 섬세한 표현이 가능해지는 듯합니다. 사실 이런 이치는 수채화에서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겁니다. 


또 책에서는 0호, SM처럼 작은 화면을 먼저 3, 4 시간 동안 그리는 연습을 거치라고 합니다(p65). 그 다음 말씀이 명작인데, "세밀하게 묘사된 작품도 처음 단계에서는 '단순한 면'에 지나지 않는다"고도 합니다. 바로 다음 페이지에는 이런 말도 나옵니다. "선을 그려서 무무늬를 표현하는 게 아니다. 다른 색의 가늘고 긴 면으로 칠해야 한다". 이래서, 왜 어떤 그림은 졸작이고, 어떤 그림은 일반인이 봐도 감탄이 나오는지 그 차이가 설명되는 것 같네요. 


그림을 다 잘 그려 놓고도 정작 캔버스 표면이 신경 쓰이는(p68) 경우가 많겠으며, 저 역시 고교 때 숙제 같은 게 나오면 "이렇게 그냥 내도 될까?"하고 고민이 많았습니다. 선생님께서 아직 젊으신 분이어서 어떤 세심한 코칭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책에서는 하나의 대안을 제시하는데 "흰색 캔버스에 밑그림을 그리고 음영색 셋으로 만든 혼색한 검정으로 밑칠을 하는 것도 좋다"는 겁니다. 


천의 주름(p80) 같은 건 진짜 어렵죠. 책에서는 "그리자유처럼 해도 좋겠으나, 하얀 천에도 색감이 나타남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게, 그림은 어디까지나 그리는 사람의 해석이지, 어떤 모티브의 재생, 복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런 건 동양화를 보면 알 수 있죠(물론 진경산수화처럼 철학이 다른 것도 있지만). 


책을 끝까지 다 읽어 보면 회색 계조의 활용이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이 책과 달리 그리자유 기법을 그리 강조하지 않는 유화도 있겠으나, 저 같은 초보자에게는 이 방법이 훨씬 따라하기가 쉬웠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 그림은 뭘 따라하는 게 아니고, 초보 단계에서는 이런저런 기법을 흉내내듯 하다 나중에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식으로 발전해야 할 듯합니다. 이번 조영남 판결에서 알 수 있듯 중요한 건 아이디어와 창의이지 기법 자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런 기법 훈련 없이 아이디어만 내세운다면 적어도 다른 사람 상대로는 설득력이 없을 것 같아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