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1 (특별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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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음... 다른 건 몰라도, 어려운 주제를 어린이용 모험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다루고 가독성 최고로 표현하는 재주만큼은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당할 작가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소설 전편을 통해 "감정이 농도 짙게 흐르는 기억은 유독 강하게 뇌 속에 남는다"는 말이 나오지만, 이 책에 나온 뇌신경학 여러 원리와 "당신이 몰랐던 진짜 역사"의 편린들은 아마 독자들의 뇌리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습니다. 이 책 2권 p242에는 "더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승자"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법칙(?)은 작가 자신에게도 적용되지 않겠나 싶어요.

p26에 "그렇게 우리는, 아니 자네들은.."이란 말은, 역사에서 언제나 "them and us"로 나뉘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영원한 간극을 실감케 합니다. 이 신작 <기억>의 주제는, "그들"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왜곡된 진실을 언제나 회의해 보고 비판할 줄 알자는 쪽이니 말입니다. 이 대목에 나오는 로베르 조르주 니벨 장군은 2차 대전의 매국노(1차 대전 구국의 영웅) 페탱과 동갑이죠.

주인공 르네는 역사 교사이며, 신비한 능력을 지닌 오팔의 도움을 얻어 전생(前生)의 자신(들)인 (여러) 영혼과 교감합니다. 처음에 아직 재주가 서투를 때는 먼발치에서 영화처럼 구경만 하다, 슬슬 스킬이 늘수록 대화도 나누고 "그보다 더한 것"도 시도합니다. 전생 중 하나인 메노는 갤리선의 노잡이 노예인데, 적절한 시점에 르네가 개입하여 "내면의 소리(웹툰 마음의 소리가 생각나네요)"를 들려 주어 그(라기보다 자기 자신)가 바른 선택을 하게 돕습니다.

이 1권에서는 자주 로마인들의 의도적 역사 왜곡 중 하나로 "카르타고 인들은 식인 습관을 지닌 야만인"이라고 한 행적을 거론합니다. 이는 전근대 사회, 심지어 현대에 들어서도 지배층이 피지배층에게 그릇된 타자의식을 주입하여 "누구누구는 너의 적"임을 세뇌하는 관행을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이겠습니다.

책에는 없지만 신대륙 선주민에 대한 잘못된 지식 중 하나가, 미개인은 머리 속에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이것은 신(이나 어떤 초월적 존재)의 계시"라며 폭주한다는 것이죠. 그저 자기 생각일 뿐인데도 말입니다. 현재는 이런 인식이 백인층의 왜곡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작가 베르베르는 이런 잘못된 선입견을 재치있게 비틀어 이 소설의 제재로 활용하지 않았나 싶네요. 우리도 어느날 문득 좋은 생각(영감)이 떠오르면 전생, 혹은 후생의 "나의 영혼"이 잠시 찾아와 조언을 베푼다고 여겨야겠습니다. ㅋ

베르베르 특유의 여전한 유머도 여기저기서 보이는데 이를테면 p126에서 "자신은 언제나 조정이 싫고 요트가 좋았다"고 말하는가 하면, 제2권 p74에서는 다시 "요트의 진화를 보면 메노가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고도 합니다.

베르베르의 특유의 간단하면서도 심오한 통찰도 여전히 빛납니다. p126에는 고통의 중단이 곧 쾌감이라고 하며, p128에는 행복한 삶은 주관적이라는 타당한 진리를 되뇝니다. p134에는 "자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정신은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데, 제2권 p77에서 이 대목이 오팔의 말 "게브가 가르쳐 준 대로..."에서 반복되기도 하죠.

저 뒤 p186에는 하고자 하는 확신만 있으면 못 할 일이 없다는 말이 다시 나오는데, 2권의 p293, p303에는 "정신의 자유로운 운용"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또 하나의 전생에서 사무라이였던 르네는 "적아 칼을 뽑고 내가 그걸 대비하는 사이에 무한대의 시간이 존재한다"는 걸 깨우치는데 많이 공감되는 말이었습니다. 이런 건 안 겪어 본 사람은 모르죠.

p137에서는 "지진? 가끔씩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삶이 지루하지"라는 게브의 말이 나오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대로 "일체유심조"가 아닐까 합니다. p141의 "무사태평함과 그에서 비롯한 삶의 힘"이라든가, p146의 "살아있는 한 삶에서 만나는 이런저런 불행은 잔파도에 불과하다"는 말 등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돕습니다. 저 뒤 p346에는 스트레스가 잦으면 해마에 구멍이 나고 이것이 기억력 감퇴를 유발한다는 신경학 지식이 나오죠. 그러나 강한 사람이라면, 저 게브의 말처럼 "삶에 있어 일종의 자극" 정도로 잘 소화할 수도 있습니다.

무사태평함과 그에서 비롯한 삶의 힘! p289에서 르네를 조사하던 형사는 그의 범죄 혐의보다 초연한 태도를 두고 더 큰 증오심을 표현합니다. 소인배가 더 우월한 존재를 질시하는 이런 모습은 제2권에서 원시 인류가 아틀란티스 인들을 공격하는 장면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p150, 또 제2권 p100에는 "나비 효과"라는 말이 나오는데 십여 년 전 미국 영화 <나비 효과> 역시 (일기장의 도움과) 정신 집중을 통해 위험한 순간마다 붕 자신의 과거로 여행하는 이야기였죠. 어쩌면 베르베르도 그 영화를 통해 영감을 받았는지도 모릅니다. (아마 맞을 듯) p152에는 "법률상 아버지의 30퍼센트 이상이 사실은 남"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사실 프랑스인들의 혼외 관계는 상상을 초월하게 문란하죠. 영화 <셸부르의 우산>도 사실은 이런 모티브를 조금은...  p175에는 아버지가 요양 중인 시설 이름이 "파피용"이란 말이 나오는데 이게 "나비"라는 뜻이며 같은 제목의 영화도 있습니다. 그 영화의 주제는 "자유"입니다.

시설에서 르네의 아버지는 "사람을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는 태도(p177)를 보이는데  르네는 이걸 두고 "혹시 아버지의 선택"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합니다. 많은 환자들은 "아프니까 저런 행동을 하지" 싶은 동정의 시선을 받지만, 사실은 그 중 상당수가 의도된 행동인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이 작품에서 르네의 부친 그 동기는 2권에 가서야 제대로 드러나고요. p181에 "간유 한 잔"에서 와 정말 비위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부친의 젊은 시절에 대해서는 사회 해체를 주장하는 히피의 삶에 크게 공명했다는 말이 있는데 p278, p166, p178 등에 나옵니다.

p183에서 다윈의 말이라며 "그들이 이긴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건 사실 다윈이 생전에 가장 경계했던 태도입니다. 이른바 사회적 다윈주의에 대해 다윈 본인은 매우 비판적인 입장이었죠.

르네의 여친 엘로디는 과학 교사인데 p211에서 "그래서 나는 남자들에게 너는 여자들에게 이용당하고 만다"고 하는데 신중하긴 하지만 뭔가 피해의식이 비춰지기도 했습니다. p332에서는 다시 전문가들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고, 2권 p84에도 다시 비슷한 장면이 있습니다. 1권에는 남녀 관계에 대해 작가 베르베르의 유익한 통찰이 나오는데, p212 남자를 파멸시키는 여자의 유형에 대한 언급, p215에는 "성적인 접촉이 배제된 그저 편안한 융화"가 최종지점일 수도 있다는 말도 나옵니다.

p274에는 유명한 에릭 번의  교류 분석 이론이 나오며, 르네를 향해 너의 행태는 "퇴행 분석이 아니라 그냥 퇴행"이라고 꼬집는 말이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p392에서 "슈멩 데 담의 전투 교훈" 같은 건 절대 그렇지 않고 유익하죠.

한편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줄기는 게브와 르네의 소통이겠는데, p136에 벌써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나의 전후생"이 언급됩니다. 2권 p97에는 오팔의 말로 "어쩌면 당신이 역사의 흐름을 결정적으로 바꿔 놓은"이 나오고요. 아마 1권 p136에 저 말이 나왔을 때 많은 독자들은 예사로 여기고 넘어갔을 겁니다.

p220에서 구두장이 신발이 가장 더럽다는 말은 우리네 속담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와 비슷하지 않을까도 생각했습니다. 초연하고 이상적인 삶을 사는 게브 들의 독특한 삶의 특성 중에는 "(p244)우리에게는 잉여가 발생하지 않아" 같은 게 있어 마치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떠올리기도 했네요. p305에는 뇌 활용 방법이 언급되는데 아마 재발견만 된다면(!) 자계서 주제로 짱일 것 같습니다. 여튼 그들의 삶은 매우 평온하고도 이상적이며 p305의 폭력에 대한 경멸이라든가 p243의 육식에 대한 혐오, p247의 "무려 80억이 사는 공동체라면 애 다루듯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겠군!" 같은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2권 p238에는 이것 관련 "우리 조상들은 짐승이나 마찬가지"라는 말도 나옵니다.

p358에는 게브와 그의 배우자가 서로 싸우는데 경지에 이른 현자답지는 않은 행동입니다(ㅋ) p359에서 "우리는 대체로 건강함"을 자랑하나, 소설 2권에서 p111 배 위의 다툼이라든가, 2권 p114에서 드디어 병에 걸린다든가 하는 장면은 그들 존재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p383에서 다시 나오듯 사실 그들의 기술 수준은 형편없습니다.

p258의 "집단의 기억"이란 키워드는 사실 이 작품 전체의 주제어에 가깝습니다. 2권 p347에도 "인류는 기억을 되찾지 않으면..."이란 말을 통해 그 과제의 절박성을 다시 일깨웁니다.

p291에는 감옥과 호스피스의 공통점에 대해 뼈아픈 한 마디가 있는데 마치 이번 코로나 사태 때 스페인에서 벌어진 노인 유기 사태가 생각나더군요. p313에 그 유명한 "메스머라이즈"라는 단어의 어원이 나옵니다.

p319에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리를 위한 것"이라는 명언이 나옵니다. 맥락상, 마치 예전 6. 25때 대중 사이에서 유행한 "먹고 안 죽으면 보약이다"가 떠오르기도 하더군요. 이것 관련 2권의 p116에 "시련은 끊이지 않는다..."도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문장입니다.

p322에서 "어떤 거짓말쟁이들은 탐지기도 속을 만큼 자신의 말을 믿는다"는 말이 나오는데, 한편으로 신념의 중요성이 떠오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팩트를 무시한 채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어리석은 인간"에 대한 비판도 되는 문장입니다.

p337에 "아틀란티스는 그리스어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역시 기록의 맹점 내지는 "승자의 기록이 낳는 왜곡"의 예이기도 합니다. 이 소설의 상상대로 아틀란티스가 설령 있었다 한들 그 endonym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르죠. 우리가 아는 페르시아나 그 수도 페르세폴리스 역시 페르시아어가 아니라 그리스어이듯 말입니다.

p354 이하에는 마치 닥터 멩겔레 같은 괴물 의사 쇼브가 나와 "기생 감정"의 불필요성과 해악이라든가 "잡초 제거(p330)" 같은 요설을 늘어놓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 중 일부는 매우 타당성이 크기도 하죠. 안타깝게도요.

p370에서 한때 프랑스 식민지였던 크메르에서 자신의 또다른 전생(상좌부 불교 승려)을 만난 르네는 "공산주의와  파시즘은 결국 광신이라는 점에서 같다"는 소중한 교훈을 배웁니다.

391에는 드디어 수시로 영혼 둘이 합쳐지며 더 큰 힘을 발휘하는데 르네-이폴리트가 아예 이름으로 나옵니다. 이 비슷한 예는, 2권 p91의 르네 -게브, p306의 르네-야마모토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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