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호실의 원고
카티 보니당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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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것인지 모른 채 덩그러니 놓인 원고는 그저 보기만 해도 호기심을 자아낼 수 있습니다. 한국에도 "땅끝마을"이 있습니다만 프랑스에도 저 남쪽 해안에 그 비슷한 이름을 가진 지역이 있는가 봅니다. 여튼 저 "땅끝마을"의 어느 호텔 서랍 속에서 원고가 발견되고, 그 원고는 막연한 주소 하나에 기대어 어렵사리 주인을 찾아갑니다. 마치 "병 속에 담긴 편지"가 임의의 수신인을 찾아가는 셈인데, 그런 편지야 먼저 손에 쥐는 사람이 임자입니다만 이 원고는 엄연히 원작자가 있기에 사정이 많이 다르긴 합니다.

아무튼 꽤나 낭만적이었습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갑자기 사망자가 느는 바람에 망자들의 재산을 여기저기서 상속 받은 누군가가 갑자기 부자가 되는 수가 많았다고 합니다만 최소한의 사회적 신뢰가 살아 있거나 적어도 공증 제도가 원활히 기능해야 그런 신기한 일이 가능하지 않겠나 싶기도 합니다. 이 소설, 아니 거진 실화는 "잘 작동하는 우편 제도"라든가, 물건의 주인과 원작자를 존중하는 사회적 문화가 있어야 애초에 성립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한국에서라면 이런 기적 같은 일이 가능했을까요? 제 생각에는 얼마든지 가능했을 듯하고, 거기에 한국인들 특유의 해학성과 신명이 곁들여져 더 우습고(?) 더 정감 어린 사연이 하나 만들어졌을 법도 하다 싶었습니다. 아무튼 이 사연은 정말 "프랑스적"이었습니다. 지명이나 인명 등이 프랑스식이 아니었다 해도 읽는 이들 대부분이 "거 참 프랑스스럽다"고 느낄 만큼 말입니다.

우리가 예전 초등학교를 다닐 때, 국어 교과서에는 "일기와 편지"라는 단원이 있었습니다. 일기와 서간문은 초등 과정에서는 장르가 비슷한 걸로 다뤄졌던 거죠. 이 훈훈하고 약간은 미스테리스러운 작품은 서간체 소설이지만, 1인칭과 2인칭만 등장하는 대목이 많기에 일기가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확실히 일기와 편지는 닮은 점이 많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스러운 소설" 과연 그렇습니다. 이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려면 남이 쓴 글을 읽고 공감하는 능력과 정서가 받쳐 줘야 할 듯하고, 동시에 남이 남긴 미완성의 사연에 감정 이입하여 "나라도 이 빈 부분을 완성해 줬으면" 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쓴 건 맞는데, 뒷부분은 다른 분, 저보다 훨씬 세련되게 글을 쓰는 다른 분 솜씨인 걸요?" 세계 최초로 미스테리 장르물을 고안해 낸 에드가 앨런 포는 물론 미국인이었지만 오귀스트 뒤팽이 활약한 그의 픽션은 대부분이 프랑스 배경이었고, 르블랑의 뤼팽도 "편지"를 단서로 삼아 멋지게 사건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죠. 이 작품은 추리물은 아니지만, 사람 사이의 관계 때문에 고생도 하곤 하는 우리들의 고민 아닌 고민을 대신 해결해 주는 듯해서 좋았습니다. 훈훈하고 아름다운 사연은 남이 엿봐도 즐겁고, 동참, 동감하는 가운데 이미 "남 일"이 아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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