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그
파드레이그 케니 지음, 김래경 옮김 / 위니더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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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스파이더위크가의 비밀>이란 영화를 본 적 있습니다. 어린 남매와 엄마는 말 못 할 사정이 있어 도심에서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오는데 이곳은 엄마의 아빠, 즉 아이들 외할아버지와 깊은 연관이 있는 집이었죠. 이곳에서 아이들은 사람들 눈에 안 보이는 요괴 떼를 퇴치하려 죽을 고생을 하게 되는데요...

 


파드레이그 케니가 쫄깃하게 창작한 어린이 판타지인 <포그>도 이와 설정이 좀 비슷합니다. 페니와 데이비드는 남매인데 둘은 서로를 불쌍하게도 보고 무한한 혈육애를 느끼기도 하면서 지내는 사이입니다. ㅎㅎ 알고 보니 이들은 인류의 생존을 위해 무한히 큰 사명을 지녔다는 건데요. 그들이 사는 집이 바로 미지의 세계와 연결된 통로 구실을 합니다. 옷장이 마법의 공간으로 향하는 길이었던 <나니아 연대기>가 생각 나기도 하는 대목입니다. 


포그는 뭔가 말투가 귀여운(?), 수호자 노릇을 하는 신비한 존재입니다. 생긴 건 왠지 별로일 것 같은데, 견종 퍼그가 생각나기도 하고 여튼 외모상으로는 큰 기대가 안 되는 그런 애입니다(그냥 제 생각이지만). 이 이야기가 만약 일러스트가 더 보강된다거나, 혹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면 과연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지도 합니다. 얼마 전에 어떤 편의점 알바생이 자기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고 "나는 지키는 사람입니다"라고 한 걸 보았는데 어떤 유저가 댓글로 "졸귀"라고 반응을 보여 주더군요. 그러니까 요즘은 안 귀여우면서도 귀여운, 뭐 그런 이미지가 환영 받는다고나 할지. 여튼 제가 주관적으로 느낀 포그는 그랬습니다.


p26에 드디어 "얼굴에만 털이 난 부족민"이 언급되네요. 포그의 소감은 "털이 나려면 온몸을 다 덮어야지 얼굴에만 털이 난 건 어색"하단 건데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아닐 수도 있겠죠? 여튼 세상을 지키는 포그 생각이 그렇다는 겁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포그는 말투가 어색하고 귀엽습니다. 이 친구는 누가 어색하다, 안 어울린다 등등의 느낌을 거침 없이 표현하는데 정작 자신의 언행 중 어색한 구석은 잘 모르나 봅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포그 집중한다요(p32)

포그 잊지 않았다, 너 생쥐 다치게 했다(p128)

이제 뭐 해야 한다요?(p175)


등입니다. 이 외에도 많고요. 마지막 저 인용은 서서히 포그와 그 남매들의 모험이 끝나갈 무렵에 나오는데, 서양 문예에는 한창 벌여 가던 모험을 마무리하면서 "나우, 왓 아 유 고잉 투 두?"라고 일종의 자문을 하는 장면이 많더군요. 예전에 유명우 챔피언이 "세계 챔프 자리에 오르면 그게 성취의 끝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겨우 시작이었다."라고 한 말이 생각도 났습니다. 옷장이건 다락방이건 그게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인 줄 비로소 깨닫는 어린이들의 각성, 성장도 마찬가지이겠습니다. 


"우리 집에 쥐가 살아!(p58)" 데이비드는 페니를 항상 어리게 보죠. "고작 그걸 말하려고 나를 여기 부른 거야?" "아니 내 말은... 쥐가 있으면 여기 숨기 딱 좋겠다고." 사람은 어떤 장소가 무엇무엇을 하기 좋겠다는 식의 생각을 하기 시작할 때, 자신과 공간 사이의 관계를 비로소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하는 겁니다. 사실 페니의 관심사는 쥐가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가면 나오지만요.


"그리블디!(p67)" 이 기묘한 단어는 엄마가 만들어낸 건데, 따지고 보면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를 때, 난감한 감정을 퉁치는 소리입니다. 소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여태 겪지 못한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그 고민과 고뇌를 저리 선언하는 겁니다. 모르는 난관은 역시 주문으로 해결해야 하나 봅니다. 소리의 비분절성을 탓할 게 아닙니다. 


아빠는 집을 설계하고, 그것 말고도 아이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미래를 소탈하게 털어 놓습니다. p79에는 "비록 미완성이지만 따스하게 마음을 끄는", 아빠가 손수 설계한 집 이야기가 나옵니다. 끝까지 읽고 나서 안 거지만 이것도 일종의 복선이었다 싶더군요. 


p197에 수수께끼의 그가 등장하네요. 내용 누설이라서 자세히는 말 안 하겠습니다만 얼핏 보아 섬뜩하면서도 왠지 정이 가는 호박색의 두 눈, 남매와 포그와 그들을 쫓은 우리 독자들의 불안과 호기심은 여기서 거의 절정에 달한 듯합니다. 


킵위크와 럼프킨 부족(Lumpkin. 238페이지 중간쯤에는 럼크킨이라고 오타가 있습니다) 사이의 갈등은 서서히 마무리 되어가는 듯도 하고 할아버지는 이 모든 상황을 정리하려는 듯 자상하게 설명을 아이들에게 시도합니다. p280에는 이런 심오한 말도 나오네요. "죽은 자들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 마치 미국 군가 중에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구절을 연상시키듯요. 


"할아버지, 이제 뭐 해야 해요?" (p281)


글쎄요. 문이 닫히면 다른 편 문이 열리며, 모험은 새로운 모험을 부릅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어른들에게도 이는 인생의 영원한 과제입니다. 속편을 기다리는 독자에게는 다소 감질나는 대사이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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